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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 새해의 축복(1654. 2015.1.6.경북북지방 신년하례회 설교/장소-영주교회)
민6:22-27
희망찬 새해가 밝았습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새해 행복 하세요’라고 인사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 이는 곧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2014년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 경북북지방 모든 목사님들과 장로님, 임원과 실행부위원들에게 그리고 여기에 모인 모든 성도들에게 2015년도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2015년도에는 우리 모두가 행복한 지방회를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정말 행복한 지방회를 위하여 모두가 힘을 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서로 인사하면서---- 새해복많이 받으시고 행복한 지방, 행복한 교회, 행복한 나의 삶의 현장을 만들어 갑시다...아멘--
2015년 새해를 맞이하여 첫주일 설교를 합니다. 금년 한해동안에 목사님은 여러분에게 이렇게 축복기도 해주고 싶어서 오늘 본문을 택했습니다. 본문은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위하여 축복기도 할때 사용을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우리가 한없는 은혜를 받아 잘되고 잘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그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불러주신 것은 우리로 모든 범사에 잘되고 형통하기를 심히 기뻐하시고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있을 곳을 예비하시고 인도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 인도하시면서 더위에 덥지 않게 하시고 추위에 춥지 않게 하시고 우리 있을 곳을 먼저 아시고 자리를 이동하여 우리의 있을 곳을 준비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은혜와 복을 받아야 합니까? 우리 인간의 모든 문제를 어디에서 풀고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은혜와 복을 받음으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문제는 하나님을 떠남으로 오는 것이고 인간의 문제는 하나님 앞에 돌아감으로 해결됩니다. 인간의 짐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지게 되는 것이고 인간의 모든 짐은 하나님께 돌아옴으로 벗을 수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창조자 하나님의 품안에 있을 때만, 그가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받을 때만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 앞에 간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새해가 되면 복을 많이 받으라고 말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특별히 복을 받는 것은 바로 우리의 죄악을 도말하시고 완전히 제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가 있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노예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유는 바로 그들을 구원하는 어린양의 피가 문설주와 인방에 뿌려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죽음의 사자는 그 피를 보고, 그 집은 구원 받아야 할 하나님의 백성의 집임을 알았습니다. 피가 뿌려지지 않은 집은 사망의 권세가 임했고 죽음과 슬픔과 애통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그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없는 인생은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복을 받기 원합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영과 혼과 육신이 온전히 씻어내어 지고, 그리스도의 피가 여러분들의 믿음의 심장에 뿌려져 새롭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년에 감리사가 경북북지방 모든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세가지 복을 받으라고 설교하니 이 복을 받아서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1.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지키시기를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24절‘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기서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기를 원하신다’고 표현은, 아무나 받는 축복이 아닙니다. 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언약의 자녀들에게만, 집중적으로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켜주시기’를 기도하라는 말씀은, 받은 복을 잘 간수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많이 받느냐도 중요하지만, 받은 것을 잘 지키고, 효과적으로 활용함은 더 중요합니다.
‘지킨다’는 말은 ‘솨마르(ר)’인데, ‘(가시로) 울타리를 친다’는 의미입니다. 악한 원수 마귀는 조금도 쉬지 않고, 우리 인생을 향해 공격해옵니다. 때로는 간교한 유혹으로, 때로는 무서운 핍박과 환란으로 공격합니다. 이때 악한 원수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쳐서 철저하게 지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오늘날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말라고 누누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연약하고 힘이 없는 양은 울타리를 쳐주어야만 보호받을 수 있듯이 연약한 인간은 하나님께서 영적인 울타리를 쳐주셔야만 보호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입니다.
시100:3절‘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울타리가 되 주시는데 누가 감히 넘볼 수 있겠습니까? 요일5:18절‘하나님께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울타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의 울타리가 되 주셔서 재앙으로부터, 사단으로부터, 사망으로부터, 저주로부터 보호해 주십니다.
시121:3-5절‘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도움으로 삼는 사람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아주 자상하고 세밀하게 지켜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정적으로 사업적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 자신의 지혜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하나님은 이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으신 분으로 생각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면서 우리들 지켜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자요 환난 날에 만날 큰 도움이십니다. 우리가 잠잠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랄 때 하나님은 당신의 방법과 당신의 때에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지금도 지켜주시고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실망하고 낙심하는 것은 우리의 불신앙을 결정적으로 드러내 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되 끝까지 신뢰하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본능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눈동자와 같이 지키신다고 하였습니다. 눈동자는 겹겹이 보호 장치가 있습니다. 눈썹이 눈의 보호 장치입니다. 눈물이 눈의 보호 장치입니다. 눈꺼풀이 눈의 보호 장치입니다. 눈꼽도 눈의 보호 장치입니다. 눈은 본능적으로 보호를 받습니다. 지키시는 하나님은 본능적으로 백성을 지키고 감싸십니다. 애굽 사람을 수장하고 이스라엘을 지키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절대적 보호입니다. 과연 위험한 세상을 어찌 혼자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눈동자같이 지켜주시는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위험한 사지에 갈 때도, 사고의 위기 앞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도움을 구하며 바라보는 자들을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믿는 자들을 아무렇게나 살다가 죽게 하시지 않습니다. 아주 소중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늘 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사업을 세우시고 지키실 이는 하나님 뿐 이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영적인 구원에만 힘이 있으신 줄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주인이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주인이시기도 하십니다. 구원도 하나님께 달려있고 사업도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인 우리의 모든 처지를 다 아십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형편에서도 우리를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되 끝까지 지키십니다.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지키듯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고 지키십니다.
우리가 약할 때에도 지키십니다. 우리가 슬퍼할 때도 지키십니다. 우리가 괴로워할 때도 지키십니다. 우리가 외로워하고 유혹을 받을 때에도 지키십니다. 사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을 잊곤 하지만 하나님은 한시도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럼으로 낮의 해도 밤의 달도 우리를 해치 못할 것입니다. 제사장이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를 축복한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러한 은혜를 주신 줄 믿으며 우리의 자손과 가정을 지켜주시기를 마음껏 축복합니다.
2.은혜 베푸시기를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2015년도에 경북북지방 모든 교회위에 하나님이 은혜 베푸시기를 축복합니다. 25절‘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이 세상에 은혜가 필요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예수님으로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그 은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다 부족합니다. 그래서 은혜가 필요하고 도움을 받아야 살 수 있는 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25절‘얼굴을 비추사’라고 한 것은 사심이 없이 온 마음을 향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거친 감정이 없이 다가와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는 궁극적인 이유는 은혜를 베푸시기 위함입니다. ‘은혜’의 히브리어 ‘하난’은 ‘긍휼히 여기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조건 없이 베푸시는 한량없는 사랑입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살아왔고, 또한 살아가고 있으며 그리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 어느 한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구원받을 만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죄악 가운데서 건져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셨습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 지 난 알 수 없도다’라고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은혜’는 값으로 정할 수 없는 귀한 것을 값없이 주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혜는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누립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만물은 특정인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습니다. 공기는 누구든지 돈 없이도 마음껏 호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임하지만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그 은혜가 임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사랑입니다. 누구든지 누릴 수 있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불신하는 자들에게는 은혜의 값어치가 상실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고 지옥에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거나 배반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를 아멘으로 받아야 합니다.
시103:8절‘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베풀기를 원하시는 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무엇인가를 베풀기 원하는 것에 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고 당하고 위험 당하고 가난과 질병, 저주 가운데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죄 값으로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행복하게 잘살고, 풍족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시며, 은혜로우시며, 인자가 풍부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마10:30절‘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나에 대해서, 우리에 대해서 모르시는 것이 전혀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믿음의 생각들을 가지고 행하고자 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가상히 여기시고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진행하면 감당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아래 들어가면 모든 것이 끝입니다. 그래서 목사도 성도들을 위해 복을 빌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기를 기원해야 하고 부모님들도 자녀를 위해 복을 빌 때에 즉 축복할 때에 은혜를 빌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생활이 하나님의 얼굴을 향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얼굴을 우리에게 향하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시지만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거나 등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숨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은 죄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리 인간의 형편을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 은혜를 베푸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을 향하여 그 얼굴로 비취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마다 죄와 사망의 어둠이 사라지고 용서와 사랑, 생명의 빛으로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얼굴로 비취사 삶의 모든 어두움이 사라지고 기쁨과 행복의 빛이 충만하시기를 바라며 우리의 자손과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3.평강주시기를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2015년도 경북북지방 모든 교회위에 평강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26절‘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평강’(peace)은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복들 중에서 가장 크고 위대한 복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천하 권세를 누리며, 모든 명예를 소유했다 하더라도, 마음에 평강이 없으면 다 헛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을 ‘평강’이라 생각해서, 만날 때마다 인사를 ‘샬롬’(shalom) 곧 ‘평안하기를 빕니다’라고 축복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뿐 아니라 평강은 인간들이 추구하는 가장 큰 희망사항입니다. 세계는 평화를 외치지만 평화보다는 다툼과 싸움과 전쟁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사실 행복은 평강의 삶에서 비롯됩니다. 아무리 많은 재물과 높은 지위가 있더라도 평강이 없으면 그 모든 것은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자들이 백성들에게 축복할 때 고통이 없는 안락한 생활을 허락하시지 않고, 그 고통스런 삶 중에서고 기뻐할 수 있는 바로 그러한 힘, 곧 평강을 빌어라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면 그대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죽으신 후에 제자들이 두려워서 문을 잠그고 있을 때 부활하신 후에 그들에게 들어오셔서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고 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두려운 상황이 있을지라도 평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하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초조해 합니다. 우리의 평안을 빼앗아가는 것이 세 가지입니다. 초조함과 두려움과 불안함 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먼저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자녀손들의 삶에 평강이 있기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6절에서 말하는 평강은 전쟁이 없고 풍랑이 없는 소극적인 평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서는 아주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평강을 말합니다. ‘풍랑이 일지라도 잠잠케 하시고, 병들지라도 고쳐주시고, 주릴지라도 먹을 것도 주시고, 얽힌 문제가 있을지라도 해결해 주시는, 그래서 우리에게 평강이 임하도록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크게 두 가지의 축복을 받게 되는데, 그 첫 번째가 영생입니다. 이것을 구원이라고도 말하고, 죄 사함이라고도 합니다. 또 하나는 평안입니다. 즉 마음의 안식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행복은 어디서 옵니까? 마음에 평안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은 곧 평안입니다. 평안 없는 행복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심령속에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한 참된 평강을 주십니다. 이 평강이 우리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늘 ‘샬롬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샬롬의 축복’, ‘평강의 축복’이, 성령의 능력으로 오늘 우리 심령속에 가득가득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평강의 축복을 소유한 자는, 이웃들에게도 이 평강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이웃집을 방문하면, 잠시 마실을 가더라도, 여러분들이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마10:12절 이하에 보면, 제자들을 전도 파송 보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어떤 곳에 머물든지, 그 장소가 예수님의 평안을 소유하는 장소가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그 가정이 예수님의 평안을 받기에 합당하면, 그 평안이 그 곳에 임할 것이고,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빈 평안이 기도한 우리에게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의 인생을 복 받은 인생, 행복한 인생으로 완성해 주는 것이 바로 평강입니다. 평강이 없이는 복이 복일 수 없으며, 평강이 없이는 은혜가 은혜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평강이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평강이 빠진 그 무엇도 복과 은혜가 되기 어렵습니다. 건강도, 미모도, 재능도, 재산도, 권력도, 명예도, 아니, 세상의 그 무엇도 평강이 없으면 오히려 화근이 되기 쉽습니다. 평강을 그 중심에 세우는 것이 바로 우리 자녀들의 인생이 행복할 수 있는 첩경인 것입니다. 평강이 빠진 복은, 복이 아니요, 평강이 빠진 은혜는, 은혜가 아닙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 이 소중한 복과 은혜와 평강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부모가 아무리 원해도, 우리 부모가 아무리 잘 난 것 같아도, 우리 부모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진 것 같아도, 우리 부모들이 내 손으로 빚어 줄 수 있는 복과 은혜와 평강이란 것이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것들입니다. 해서 24절, 25절, 26절 모두, 구구절절이 여호와 하나님께 복을 빌고, 은혜를 빌고 평강을 빌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내 자녀를 위하여 하나님께 복을 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축복의 근원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이 이웃을 축복할 때 우리들을 통하여(제사장을 통하여) 그들을 축복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이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특별히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가 세상의 축복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제사장의 축복권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받는 성도가 되자
2015년도 경북북지방 모든 교회위에 제사장의 축복권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받는 교회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7절‘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제사장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을 축복할 때, 그것은 제사장의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께로 부여받은 하나님의 권위로 축복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론의 축복권을 통하여 주시는 복은, 첫째 여호와가 복을 주시고, 둘째 지켜주시고, 셋째 은혜를 베푸시고, 넷째 평강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 계셔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를 지키시며, 은혜를 베푸시고, 평강을 주십니다. 아론의 축복권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우리가 이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절대 권위(주권)를 인정해야 합니다. 잠3:6절‘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모든 일에 하나님을 앞세워야 합니다. 잠16:3절‘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항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 받으시는 것이 우리의 산 제사입니다.
살아 역사 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히11:6). 하나님이 복 주실 것을 믿어야 하고, 이루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철저히 순종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삼상15:22).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죠지 워싱톤의 어머니가 생일을 맞이했을 때에, 많은 하객들이 몰려와서 축하했습니다. 그때, 하객 중 한 사람이 대통령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어떻게 키웠기에, 그토록 위대하게 만드셨습니까’그 물음에, 워싱턴의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예, 나는 아들에게 하나님께 대하여 절대 복종하기를 가르쳤습니다’ 죠지 워싱톤이 위대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복종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도자(제사장)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히13:17절‘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죄를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사59:1-3절‘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 벧전3:8-12절에 구별된 삶, 사람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이르고 억울한 일을 당한다 할지라도 항상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복 받을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특별히 금년 한해동안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잘 믿으시고 항상 하나님 중심으로, 교회중심으로, 목사님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멋있게 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 여러분이 목사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교회에 나오실텐데 목사님이 여러분이 잘되라고 기도하지 절대로 망하게 하거나 저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말 조차도 꺼내지 말고 이제 부터는 철저하게 순종하고, 이해가 안되면 복종해서라도, 목사가 마음껏 축복기도하고,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하시고, 금년에 제 개인적인 험담이나 내 개인적인 일에 대해서는 제가 부족하니까 그려녀니 하고 넘어가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장난을 치거나 영적인 부분에 대해서 만큼은 잘못된 것이 보이면 바로 책망하는 설교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도 마귀에게 내어주기 싫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영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좀더 강하게 이끌고 가더라도 여러분이 잘 따라오십시요.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홍해바다 같은 신앙으로 이끌고 갈 것이고, 믿음이 있어 보이면 요단강 신앙으로 이끌고 갈 것입니다. 그러기에 순종하면 홍해도 갈라지고 요단강도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곧 여러분에게 축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믿으십시요. 믿고 가십시요. 믿음을 키우십시요. 그래서 금년 한 해 동안에 반드시 믿음으로 백배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선한 일이란 좋은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좋은 마음을 먹고, 좋은 일을 하고, 남에게 유익을 주며, 내 것을 나누고, 악독한 인간에게도 축복을 빌어줄 수 있는 그런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을 가장 복 받게 해주는 비결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복 받을 마음그릇을 준비하여 이 세가지 축복을 받아서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