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언어에 대하여 - 2012. 8. 13
‘사랑스럽다’
미완성이다
‘사랑한다’
반쪽이다
‘사랑’은
의지(意志)가 아니라
‘너’도 ‘나’도 ‘우리’도 없는
새로운 창조이다
‘별도 따주는’
대가(代價)가 아니다
‘죽도록’
약속이 아니다
‘사랑’은
물질과 시간이 낄 수 없는
새로운 창조이다
‘아름다운’ ‘큰’ ‘고귀한’
어떠한 수식(修飾)도 없는
‘사랑’은
창조이전부터 홀로 영원한
절대가치이다
석류(石榴) - 2012. 9. 13
홍일점(紅一點)도 잠시
풍파(風波)에
거칠어 빠개지도록
마침내 깊은 속 드러낸
수정 결정(結晶)에 가둔 불꽃
처음은 새콤하지만
뒷맛은 달콤 개운하여 또 찾게 되는
인내와 열정으로 가꾼
내 삶의 불꽃
선인(先人)들은 이 가을에
다시 가을, 지겨워 한 말이 아니라 좋은 계절이 돌아와서 한 말이다. 덮지도 춥지도 끈적이지도 아니하여 입는 것을 알맞게 즐기며, 푸른 하늘아래 단풍이며 떠나기 좋은 계절이다. 따지고 들면 가을만 좋으랴?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의 사계(四季)가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어 철마다 우리를 부른다.
계절은 지구가 스스로 도는 자전축이 기울어져서 태양의 둘레를 공전할 때에, 그 4분의 1바퀴씩마다의 평균온도 변화를 가리켜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한 것이다. 이런 계절의 시작을 봄으로 하는 데에는 역사적으로 모든 지역이나 민족이 하나이었다. 바로 씨를 뿌리는 시기를 시작으로 삼은 것이다.
계절에는 저마다 가장 아름다운 시기가 또 있어 우리는 계절마다의 인사말로 즐거이 축복처럼 사용한다. 신춘(新春)과 성하(盛夏)와 만추(晩秋), 그리고 엄동(嚴冬)이 그것이다.
‘새 봄’을 나타내는 신춘(新春)은, 새싹이나 꽃의 아름다움보다는 씨를 뿌리고 새싹이 돋아나는 기쁨에서 그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다.
‘뜨거운 여름’을 나타내는 성하(盛夏)는 생산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아름답기로는 신록(新綠)이 으뜸이지만 뜨거운 태양에 윤기 잃은 성하를 노래한 것은 가을의 풍성한 열매를 그리며 한 말이다.
‘무르익은 가을’을 나타내는 만추(晩秋) 역시 단풍은 색을 잃지만 가을걷이가 끝나는 수확과 관계있는 말이다.
그리고 ‘가장 추운 겨울’을 나타내는 엄동(嚴冬)은 오랜 기다림과 인내 끝에 오는 희망이요, 설렘이요, 다음 생산의 준비이었다.
이처럼 선인들은 생산과 관련지어 계절을 노래하는 한편, 계절을 인생에 곧잘 비유하였다. 신춘(新春)은 유년기의 희망으로, 성하(盛夏)는 청장년기의 열정으로, 만추(晩秋)는 노년기의 원숙함으로, 그리고 엄동(嚴冬)은 인생의 힘든 시기를 말하기도 하고 인생 그 너머를 생각하였다.
주로 아이들을 지칭하는 ‘철부지(-不知)’라는 말이 있다. 철이란 우리말과 한자어의 합성되어 생긴 말로, 사리분별(事理分別)이 안 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철없다’로도 쓰이는 ‘철’이란 말은 계절의 흐름을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행동을 보고 생긴 말은 아닐까? 여름에도 겨울옷을 입고서 좋아하고, 겨울에도 팬티만 입고 밖에 나서려하고, 맑은 날 비옷에 장화를 신고 우산까지 차리고 밖에 나서려하는 그 귀여운 어린아이들의 행동을.
계절의 눈부신 빛의 향연(饗宴)과 그 변화는 때때로 말할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런 웅장한 자연의 경이(驚異)는 그것을 보고 느끼고 누리는 자의 것이다.
그것들은 기록으로 남겨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역사가 누적될 만큼 누적된 지금도 계절은 아무리 감탄하고 노래하여도 마르지 않는, 그리고 마르지 않을, 예술(藝術)과 사색(思索)의 샘임이 분명하다.
감탄에 취(醉)해서만 살지는 말자. 사색(思索)하고 감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잊지 말자. 사색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 가을이다. 우리 인생에 앞으로 누릴 수 있는 가을은 몇 번이나 남았을까? - 2012. 9. 14
거미줄에 맺힌 이슬 - 2012. 9. 13
내 욕심이 늘어날 때마다
하늘은
밤새워 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
출근 길 - 2012. 9. 11
철장(鐵場) 안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느낌 없는 출근 길
어! 갑작스런 안개
아하! 바다안개(海霧)
아직 먼 법성포구(浦口)
고개 넘어 마중 오다
가을
깊고 푸른 하늘로 내려
여름 끝자락 열기(熱氣) 덮고서
빈 배 – 2000. 10. 24
배가 물을 멀리하여
갯벌에 누웠다
바지 걷고 들어가
세움직도 하다마는
두어라 때 되면
절로 일어날 것을
중국기행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중심 여강고성(麗江古城) 2/4
인상여강(印象麗江)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을 연출한 장예모(張藝謀;장이모)외 2인의 감독이 연출한 공연이다. 장예모는 1987년 ‘붉은 수수밭’으로 화려하게 데뷔하여 ‘홍등’ 등 중국의 강렬한 붉은 색조로 아름다운 영상미를 선보이며 세계적인 감독으로 오른 뒤,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영웅’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감독이다. 2003년 계림의 ‘인상유삼저(印象劉三姐)’를 연출하여 크게 성공을 거두자 2007년 항주의 ‘인상서호(印象西湖)’, 그 뒤 이곳 리장의 ‘인상여강(印象麗江)’, 2009년 중국 최남단의 섬 해남도(하이난)의 ‘인상하이난(印象海南島)’과 무이산의 ‘인상대홍포(印像大紅袍)’ 등 인상(印像)시리즈를 잇달아 만들었다. 자기의 실력과 명성을 바탕으로 소수민족, 결국은 백성과 나라를 살찌우는 마음을 알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후공연을 보기로 되어있어 먼저 점심식사를 하러 식당에 들어섰다. ‘입맛들이 이렇게 다를까?’, ‘그것이 관광이니’ 하며 식사를 하고 식당가를 둘러보니, 천마 동충하초 상황 운지 영지 패모등의 약재와 송이버섯 등이 대부분이다. 차마고도의 냄새가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고산에서(만) 나오는 차마고도의 교역물품들이기 때문이다.
공연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3,100m의 산중턱에 자리잡은 원형의 대형관중석을 둘러싸는 노천무대(露天舞臺)에서의 공연은, 하얀 눈을 쓰고 있는 옥룡설산의 실경(實景)을 배경으로 웅장하고 사실적인 공연이었다. 12층 높이의 전면무대는 붉은 황토 빛으로 산과 산 속으로 통하는 지그재그의 좁고 긴 오름길과, 숲을 상징하는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 평원을 상징하는 원형관중석의 둘레를 연결하는 차마고도(茶馬古道)를 나타낸다. 지역민 500여명과 말 100필(匹)이 등장하며, 내용은 나시족(納西族)을 비롯한 인근 소수민족의 전통적인 생활과 신앙과 전설이다. 이때 등장하는 말들은 관중석의 둘레를 돌아 질주한다.
옥룡설산(玉龍雪山;위룽쉐산). 여강시에서 북서쪽으로 20km 떨어진 곳에 있는 주봉이 해발 5,596m의 가파른 바위산으로, 사람이 꼭대기에 서본 일이 없다고 한다. 설산(雪山)이라는 말은 히말라야를 지칭하기도 하나, 만년설(萬年雪)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열대에 있는 설산으로 기후대가 다양하고 다양한 식물의 종을 자랑하여 ‘식물왕국’이라 부른다. 서유기(西遊記)에서 손오공이 갇혀 벌을 받았다는 산으로도 전해진다. 해발 3,000m 지점까지 등산로가 나 있고 케이블카로 4,500m에서 내렸다.
전망대를 가려고 원시림 사이의 길을 오르는데 일행 중 어지러움을 호소한다. ‘아, 고산병이 나타나는 높이를 넘었지’ 라는 생각이 들자 호흡이 확실히 힘들었다. 서로를 격려하며 나아가니 갑자기 시야가 트이며, 삼나무 원시림으로 둘러싸인 평평하고 넓은 들 운삼평(雲杉坪)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삼나무는 우리나라에서 보는 삼나무와는 달리 비슷한 침엽수들을 통칭하는 것 같았다. 전망대라는 곳은 그 높이가 그 높이로, ‘멋들어진 배경으로 설산(雪山)이 잘 보이는 위치’라는 높이를 배제한 순수한 의미로 이해되었다. 여기가 해발 4,450m, 나름 애써 준비한 내 등산화의 용도가 거기까지였다. 그러나 삼나무 원시림을 배경으로 눈 덮인 봉우리와, 멀리 초원의 말들에 섞여있는 야크들이 이곳의 높이를 자꾸 일깨워 주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옥룡설산의 방향으로 고도를 높일 때마다 관광지가 하나씩 더한 셈이다. 여강으로 바로 내려가는 2차선의 호젓한 길은 거의가 직선이었다.
다음날 일찍 이 여행의 중심인 여강고성(麗江古城)으로 갔으나, 오후에 간 ‘흑룡담’과 ‘속하고진’을 먼저 이야기하겠다. 송이버섯 이야기를 꺼내었더니 마침 송이버섯이 나오기 시작한단다. 수소문하여 송이버섯을 주로 하여 점심식사를 하고 흑룡담으로 향하였다. 흑룡담(黑龍潭). 옥룡설산의 눈이 녹아 땅속으로 흘러 여강 북쪽의 상산(象山) 아래에서 솟아난 샘들이 큰 호수를 이루는 곳으로, 나시족들이 신성시하는 곳이다. 호수는 멀리 눈 덮인 옥룡설산을 담고 있었고, 얕은 곳에서는 그 물이 솟아나오는 것도 보았다. 설산아래의 옥룡(玉龍)에 이어 이 호수를 흑룡(黑龍)이라 하는데, 이 흑룡담의 물이 갈래를 만들고 또 나누며 ‘여강고성’과 ‘속하고진’을 있게 한 것이다.
포장마차를 타고 속하고진(束河古鎭)으로 향하였다. 조잡한 용접으로 만든 원형파이프 프레임과 포장이라야 남루한 천으로 만든 펄럭이는 커튼이 전부이다. 들어가 앉으니 말의 체취와 실룩이는 말 엉덩이가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마구간과 같은 느낌이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재미를 더하였다. 이윽고 사각 돌로 포장된 옛길 옆에 잘 다듬은 사각 돌로 만든 집들이 이어지더니 막힌 듯 작은 광장에서 내렸다. 틈이 있나 싶은 골목에 들어서 길을 꺾으니 골목이 더욱 좁아지며 흙벽으로 만든 집들이 푸근하다. 끝 지점에서 시야가 트이며 제법 널찍한 텃밭위로 집들이 나타난다. 흰 구름 푸른 하늘과 함께 집을 올려다보며 걸으니, 갑자기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여름방학 때에 시골에 사시던 할아버지 댁을 찾아가는 것 같은, ‘속하고진’은 그런 곳이었다.
그곳을 빠져나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언제부턴가 돌로 만든 옛 포도(鋪道)에 가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물가 수양버드나무를 배경으로 호젓한 유원지의 가게들 같은 풍경이 계속되는데, 아열대기후라서인지 벽도 문도 없는 열린 구조이다. 그때 건물 안 깊숙이 어두운 조명아래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는 라이브카페가 있었다. 한쪽에서는 무심한 담배연기 속에 마작이 한창이고, 밖의 물가 수양버들과 포도(鋪道)위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다. 목을 축였다. 갑자기 나그네의 마음이 되어 축축이 젖어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