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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2012년 7월 공연총평
7월에는 계절의 열기와 마찬가지로 각 극단의 공연열기 또한 대단했고, 우수한 작품들이 공연되었다.
필자가 7월에 관람한 공연은 문화창작집단 수다의 장 진 작/연출의 <허탕>(동숭아트센터 소극장), 극단 놀땅의 최진아 작/연출 (본. 다>(국립극단 소극장 판), 극단 상상만발극장의 정영훈 작 박해성 연출의 <영원한 너>(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극단 양손프로젝트의 사무엘 베케트 작 박지혜 번역/연출의 <엔드게임>(산울림 소극장), 극단 달나라 동백꽃의 김은성 작 부새롬 연출의 <뻘>(두산아트센터 SPACE111), (주) 연극열전의 해롤드 핀터 작 박혜영 역 오경택 연출의 <러버>(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창작공동체 아르케의 이해성 작 김승철 연출의 <전하의 봄>(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 명품극단의 이문구 원작 김태현 극본 김원석 연출 의 <관촌수필 옹점이>(대학로 아트센터K 세모극장), 백하룡 작 박근형 연출의 <전명출 평전>(남산예술센터), 극단 마고의 존 파울즈 원작 유현서 번안 장용휘 연출의 <콜렉터-그놈의 초대>와 극단 천지의 테렌스 맥낼리(Terrence Mcnally) 작 송현옥 드라마 트루기 장경옥 연/각색의 <달빛속의 프랑키와 쟈니>(설치극장 정미소),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의 코믹 노동 “옷”니버스 극 오세혁 작/연출의 <그와 그녀의 옷장>(게릴라극장), 유니버설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색동예술단의 조승현 대본 정상훈 음악 송한봉 연출의 뮤지컬 <추억의 흰 목련>(안양아트센터), 극단 완자무늬&극단 노릇바치의 이만희 작 강영걸 연출의 <불 좀 꺼주세요>(대학로극장), 극단 작은 신화의 김숙종 작 최용훈 연출의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정보소극장), 극단 배우마을의 데이비드 그레고리 작, 김성수&김형태 번안/각색, 김형태 연출의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윤당아트홀), 몽씨어터의 공동창작 <더 포토>(아르코예술극장 스튜디오 다락), 극단 竹竹의 가오싱젠 작 오수경 역 김낙형 연출의 <생사계(生死界)>(선돌극장), 2012 국립극장 다문화페스티발 극단 즐거운 사람들의 <The Super Hero>(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극단 수작의 김무지 작 고건영 연출의 <도둑님들>(나온씨어터), 리차드 알피에리 작 김달중 연출의 <여섯 주 동안 여섯 번의 댄스레슨>(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등이다.
이들 공연작품 중 우수한 작품을 평하기로 하고, 서울연극협회에서 성균관 대학교 입구 빵굼터 골목에 새로 개관한 <예술공간 서울>을 소개한다.
1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문화창작집단 수다의 장 진 작/연출의 <허탕>
<허탕>은 남녀 3인의 죄수의 이야기다. 남녀가 따로 수용된 감옥이 아니라, 함께 한 방에 기거하며 생활하는 이색적인 감옥이다.
무대는 여느 감방과는 달리 시설도 깨끗하고, 매트가 깔린 잠자리가 있는가 하면, 오디오 장치가 있어 음악을 선곡해 감상할 수가 있고, 끽차(喫茶)나 음주(飮酒)도 허용된 공간이다. 죄수가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elevator)와 음식물을 나르는 덤웨이터(dumb waiter) 시설이 있는가 하면, 죄수복(罪囚服)도 선이 선명하게 들어간 패션 스타일(fashion style)이라, 죄수들이 착용하면 맵시가 있어 보인다. 의자는 손잡이와 등받이가 있는 최신형 의자를 비치했고, 공중에는 여러 개의 캠코더(camcorder)와 모니터( monitor)가 있어 죄수의 동태를 파악할 수가 있다.
내용은 감옥생활에 적응을 잘 하지만, 기회만 있으면 줄칼로 창살을 절단해 탈옥을 꾀하려는 고참 죄수가 있는 방에 신참이 입소를 한다. 신참은 처음에는 적응을 못하고 과민반응(過敏反應)을 일으키지만, 차츰 감방생활에 익숙해지고, 고참과도 가까워져, 함께 탈옥을 하기위해 창살 자르는 일을 분담하기도 한다. 이곳에 임산부 죄수가 들어온다. 산달이 머지않았는지, 배가 불룩한데다가 자신의 과거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입도 열지를 않아, 고참과 신참은 임산부를 한동안 농아(聾啞)로 착각한다. 남녀가 함께 있으면, 자연 정이 들게 마련이라, 임산부는 어눌(語訥)하게나마 신참과 대화를 하게 되고, 서로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부부처럼 가까워지고, 임산부는 신참을 아기아빠라 부른다. 고참도 임산부를 제수씨라 호칭하며, 두 사람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어느 날 사소한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임산부가 돌연 과거를 떠올리기 시작한다. 고참은 임산부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일종의 최면요법을 시행한다. 드디어 임산부의 결혼생활과 장애아를 잉태한 기억이 되살아나고, 장애아 출산을 두고 낙태를 시키려는 시어머니와 장애아라도 새 생명이니 지을 수 없다는 고부간에 갈등이 벌어지고, 급기야 임산부의 방화로 남편과 시어머니가 불에 타죽는 기억이 되살아난다. 신참은 더 이상 기억이 살아나지 않기를 바라고, 고참에게 최면요법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고 참은 도중에 중단할 수 없다며 최면요법을 계속 펼치니, 신참은 새로 태어날 아기가 장애인일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자신의 집도 방화로 소실되고, 자신역시 불에 타 죽게 될 것이라는 억측으로, 고참에게 폭력을 가하고, 임부의 배도 미친 듯이 가격해, 태아는 물론 임부마저 살해한다.
대단원에서 고참은 이 모든 상황을 캠코더 앞에서 보고하고, 다른 곳으로 가기를 원하니, 지옥문 같은 엘리베이터의 문이 어둠을 헤치며 서서히 열리고, 찬란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문밖으로 고참이 걸음을 옮기면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이철민, 이진오, 이세은의 탁월한 성격창출과 호연이 관객을 시종일관(始終一貫) 연극에 몰입시키고, 갈채를 받았다. 김원해, 김대령, 송유현이 더블 캐스트로 출연한다.
필자는 <리턴 투 햄릿> <서툰 사람들> <허탕> 등 장 진의 연극 세 편을 모두 관람했는데, 보면 볼수록 장진의 비범함이 작품 하나하나에 들어나, 그의 발전적인 장래를 예측하기에 충분했다.
2 두산아트센터SPACE111에서 극단 달나라 동백꽃의 안톤 체홉(갈매기) 원안 김은성 작 부새롬 연출의 <뻘>
연극 <뻘>을 1980년대에서부터 향후 10년간 벌교(筏橋)가 배경이다.
벌교는 전라남도 보성군의 동부에 있는 읍이다. 동쪽에는 제석산, 북쪽에는 백이산, 서쪽에는 존제산(712m), 남쪽에는 장군봉(414m), 병풍산(479m) · 비조암(456m)이 솟아 있다. 읍의 동부지역에 있는 벌교리 · 장양리 · 장암리 등이 남해와 접하고 있으며, 벌교 천과 그 지류가 흐르는 지동리 · 전동리 일대에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읍 소재지인 벌교리를 비롯하여 21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백제 시대 분차군(分嵯郡) · 분사군(分沙郡) · 부사군(浮槎郡), 신라시대 분령군(分嶺郡), 고려 시대 낙안군(樂安郡) · 양악(陽岳)에 속하였다. 낙안군의 옛 고을이 있었으므로 고읍면(古邑面)이라 하여 22개 동리를 관할하다가, 1908년(융희 2)에 보성군에 편입되어 고상(古上), 고하(高下)의 2면으로 분리되었다. 1914년 흥양군(興陽郡) 일부와 순천군(順天郡)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포구로서 번창한 벌교리의 이름을 따서 벌교면이라 하였다. 1929년 순천군 일부를 편입하였으며, 1937년 벌교읍으로 승격하고, 1983년 고흥군 일부를 편입하였다.
<해동지도>(낙안)의 벌교 일대에 벌교 다리가 묘사되어 있다. 1872년 지방지도에는 벌교(筏橋)를 비롯하여 고읍(古邑) · 대포(大浦) 등이 그려져 있는데, 벌교(筏橋) 바로 앞에는 다리가 그려져 있고 '단교(斷橋)'라 기록되어 있다. 호구총수에는 고읍면 벌교리(筏橋里)가 나타난다. 구한국행정구역일람에 의하면 벌교포로, 신구대조에 벌교면 벌교리로 기록되어 있다. 나무다리가 있어서 벌교라 불렀다고 한다.
벌교하면 꼬막이 유명한 먹 거리고, 또한 벌교하면 박기동 선생(1917~)이 쓴 '부용산'이라는 시를 빼 놓을 수가 없다. 부용산은 실제 전남 벌교에 있는 해발 95m의 조그마한 산의 이름인데, '부용산'이라는 시(詩)를 쓴 박기동은 그의 나이 10세 때 여수에서 벌교로 이사와 살게 되었다. 1947년에 이르러 그의 친누이인 박영애가 24세의 꽃다운 나이로 사망하자, 박영애의 시댁 식구 몇 명과 함께 벌교 인근 부용산에 그녀를 묻고, 그날 부용산길을 내려오면서, 살아남은 오빠의 애절한 마음을 시(詩로) 썼다. 이 시를 안성현 선생(1920~2006)이 작곡을 해 애창되기 시작했는데, 안 성현 선생은 일제 강점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전 국민이 애창했던 ‘엄마야 누나야’(김소월 詩)를 비롯해 ‘부용산 ’(박기동 詩), ‘낙엽’ (안성현 작사작곡), ‘앞날의 꿈 ’(조희관 詩), ‘진달래 ’(박기동 詩), ‘내 고향 ’(조희관 詩) 등 암울했던 민족의 슬픔을 노래로 승화시킨 천재적인 작곡가다.
2000년대에 이르러 부용산은 연극과 뮤지컬로 제작되어 연극은 공주 고마나루 연극제에서 공연되고, 뮤지컬은 광주에서 공연한 바가 있다.
연극 <뻘>은 안톤 체홉의 걸작 <갈매기>와 비교된다. 150년 전인 19세기 말의 러시아인들의 삶보다 20세기 말의 벌교인 들의 삶이 공감대를 더욱 형성시킨다. 체홉의 작품에서 극작가나 연극배우로 설정되었던 인물들을 <뻘>에서는 대중가요 작곡가와 가수로 변형시키고, 체홉이 전원풍경을 서양화로 묘사했으나, <뻘>에서는 갈대 우거진 바닷가 마을을 진경산수(眞景山水)로 그려냈다. 또한 체홉이 러시아인들의 정서를 와인과 실내악, 그리고 왈츠로 분위기를 형성시켰지만, <뻘>에서는 막걸리와 가요, 그리고 정겨운 남도 사투리로 엮어갔다. 그리고 시대적 배경을 체홉은 제정러시아말의 귀족사회를 서술했지만, <뻘>은 민주화의 그 찬란한 첫걸음이 다가올 무렵의 젊은이들의 의식과 열정, 그리고 젊은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연예인이 되겠다는 소망, 그리고 민초들의 삶을 작품에 부각시켰다.
무대는 갈대숲과 갯벌, 그리고 마당에 놓인 평상(平床), 그리고 나무로 만든 징검다리, 그리고 확성기를 높이 달아놓은 나무망루 등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치매증상이 있는 노모(老母)는 창인지 타령인지 구별이 안 되는 소리를 연방 중얼거리며 굽은 허리로 무대를 누비고, 배경 막에는 1980년 5월 18일 당시 광주 충장로의 영상이 비장 침울하게 소개되기도 한다.
무대왼쪽에서 남녀 3인의 혼성그룹이 통기타와 앰프기타 반주로 열창을 하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미모의 중년 여가수가 구성진 트롯 가요로 분위기를 상승시키기도 한다.
출연자들이 꼬막을 잡으러 나가는 차림새에서부터 장화를 신은 모습과 손에 들은 함지박에 이르기까지, 관객은 벌교 갯벌에 실제로 와있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등장인물들의 의상, 분장, 소품은 사실적이고, 가수로 출연하는 여성 연기자들의 노래는 직업을 가수로 바꾸는 것이 천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창력에서나 매너에서나 가수들 뺨칠 정로라 한다면 이는 필자만의 느낌일까?
대단원에서 노모가 저 세상으로 가고, 마을 토박이들이 상여가 나갈 때 부르는 만가(輓歌)를 한두 가락 뽑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뻘>은 우리에게 너무나 낯익고, 친숙하고, 정겹고, 피가 통하고, 호흡이 하나가 되는, 그런 장면의 연속이었다.
필자는 김은성 작가의 <목란언니> <연변엄마> <순우삼촌> 등을 관람했기에 기대를 가지고 <뻘>을 관람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는 느낌이다.
연출가 부새롬은 배우 못지않은 미모라 눈길이 자주 가는 것을 자제하느라 힘이 들었다면 연극인들이 믿어줄까?
선종남이 <장석조네 사람들>과 <여기, 사람이 있다>에서처럼 발군의 기량을 보였고, 추귀정은 <갈매기>에서 보인 성격창출 보다 탁월함을 보였고, 미모와 열창으로 명배우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윤상화는 <순우삼촌>에서 보인 연기를 180도 전환시킨 호연이었고, 이지현은 <1동 28번지 차숙이네>나 <민들레 바람되어>에서의 연기력을 뛰어넘는 독특한 성격과 개성 있는 인물설정으로 그녀의 창의력을 평가할 수 있었다. 김종태 역시 <878미터의 봄> <모범생들>에서 보인 그만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강말금은 실제 나이와 100% 다른 연령층을 성심껏 표현해 갈채를 받았다. 이수현과 전석찬 그리고 배선희 역시 개성이 넘치는 호연으로 이 연극의 버팀목이 되었고, 그들의 발전적 장래를 예측케 했다. 유제윤과 신정원은 미남 미녀에다가 가창력까지 뛰어나니, 뮤지컬 출연은 물론이고, 차제에 가수 겸업을 하는 것도 좋으리라는 생각이다.
예술감독 강석란, 프로듀서 김요안, 남윤일, 김재동, 연출부 전진모, 정현, 김재동, 미술감독/무대디자인 여신동, 조명디자인 이유진, 의상디자인 김미나, 분장디자인 장경숙, 소품디자인 장경숙, 남혜연, 사운드 디자인 임서진, 영상디자인 정병목, 사투리 지도 김동영, 음향디자인 신승욱, 무대감독 전진모 등과 그 외에 스텝진의 기량이 함께 어우러져 안톤 체홉 원안, 김은성 작 부새롬 연출의 <뻘>을 한 폭의 명화 같은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3 예술의 전당 자유 소극장에서 (주)연극열전의 해롤드 핀터 (Harold Pinter) 작 박혜영 역 오경택 연출의 <러버 (The lover)>
해롤드 핀터(1930~)는 사뮈엘 베케트(1906~89)에게 작품을 보이고 조언을 구했다. 극작가, 배우, 시나리오작가, 연극연출가, 영화감독으로 활약하고, 프란츠 카프카를 사숙(私淑)했다.
1957년 처녀 희곡 <방 The Room> (1957)은 희극이며, 5막 <생일파티 The Birthday Party>(1958)는 단 1주일간 공연된 후 텔레비전에 방영되었고, 무대에서 재 공연되어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이들 작품이 S.베케트, F.카프카, 그리고 미국 갱(gang) 영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1960년에는 <관리인 The Caretaker>의 성공으로 세계적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 외에 <귀향 The Homecoming>(1965) <풍경 Landscape>(1968) <침묵 Silence>(1969) <지난 세월 Old Times>(1970) 등이 있으며, 라디오 드라마와 시나리오 작품도 있다.
극작가로서 현대 연극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200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핀터가 만든 영화는 단편과 장편 모두 합쳐 모두 54편으로 장편영화만 16편이다. 주로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하거나 스콧 피츠제럴드(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마지막 타이쿤>) 등 다른 유명 작가의 소설을 각색했다. 대중성이나 흥행성을 따지지 않고, 문예영화만 만든 고집통이기도 하다. TV를 포함해 21개 작품에 출연했는데 자기 작품에서 주인공을 맡기도 했지만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위트>에서 에마 톰슨의 아버지로 잠깐 나왔던 것처럼 단역도 마다하지 않았다. 영화는 네 편을 직접 감독했다.
장편영화로는 앤서니 홉킨스 주연, 프란츠 카프카 원작의 <심판>(1993), 존 말코비치 주연의 <옛 시절>(1991), 폴커 쉴렌도르프가 감독한 <핸드 메이드 테일>(1990), 폴 슈레이더 감독의 <컴포트 오브 스트레인저>(1990), 제레미 아이언스와 벤 킹슬리가 연기 대결을 펼친 <배신>(1983)(1978년 아카데미 각색상 후보) 등이 있다. 제레미 아이언스는 이 작품에서 한 여자 아나운서와 바람을 피웠던 해롤드 핀터의 실화를 연기했다.
핀터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로는 “존 트래볼타(<지하 아파트>” “제레미 아이언스”, 그리고 “써 존 길거드(<사장된 땅>”와 “써 로렌스 올리비에(<컬렉션>”, “앨런 베이츠<컬렉션> <관리인>, 그리고 더크 보가트 같은 연기파 배우들이 대부분이다.
여배우로서 핀터의 작품에 가장 많이 등장해 깊은 인상을 남긴 인물은 아내였던 비비안 머천트이다. 주요 연극 작품의 주연뿐 아니라 <귀향> <정부> 등 핀터가 자신의 작품을 각색한 영화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핀터 자신도 자기 작품에서 중요한 배우였다. 1985년엔 그의 출세작을 영상으로 옮긴 <생일파티>에서 악당 골드버그 역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 <생일파티>는 1968년에 윌리엄 프리드킨이 감독했다.
아마 각색자로서 유명하게 된 것은 1982년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각색상 후보에 오른 카렐 라이즈 감독의 제레미 아이언스와 메릴 스트립이 주연을 맡은 <프랑스 중위의 여자>(존 파울즈 소설)이다.
연극 <러버 (The lover)>는 <정부>나 <티타임의 정사>라는 제목으로 1974년 극단 실험극장에서 초연된 이래, 창고극장, 민중극장, 대중극장, 제작극회 등 많은 극단에서 공연이 계속되었다.
<러버>는 부부의 권태기에 들어간 부부가 사랑을 복원하기 위해 벌이는 애정 심리극이다.
무대는 거실 겸 침실로 설정을 했다. 무대 앞부분이 거실이고 뒷부분이 침실이다. 침실장면에서는 회전무대라 침실이 앞쪽으로 이동한다. 거실은 중앙에 안락의자를 비치했고, 그 옆에 서랍장이 있다. 식탁은 오른쪽으로 약간 사선으로 놓아두었고, 오른쪽 벽면에 서랍장을 세워놓았다. 무대 왼쪽에도 테이블과 의자가 있고, 그 뒤쪽에 침대가 있다. 왼쪽 벽과 배경 쪽 벽 모서리를 향해 발을 뻗도록 침대를 놓았고, 중앙에 있는 식탁방향이 침대베개머리다. 침대 오른쪽으로 체경이 세워져 있어, 출연자가 거울에 자신의 전신을 비춰보기도 한다. 배경 왼쪽에 현관문이 있는 것으로 설정이 되어 외부에서 실내로 들어오도록 만들었고, 오른쪽 벽에는 주방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 집의 외곽으로 보이는 기둥과 문짝, 그리고 창문틀 등이, 가려진 벽면이 없이, 틀로만 제작되어 천정에 반쯤 매달려있고, 대단원에서 내려져, 집 외곽을 그럴 듯하게 채우게 된다.
연극은 도입에 일상적인 정장으로 차려 입은 남편이 출근하기 직전 아내의 뺨에 키스를 하고 “당신 애인 오늘 오나?”라고 묻는다. 아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오늘 3시에 온다고 대답한다. 남편은 출근을 하고 저녁 6시에 돌아온다. 저녁 전 술 한 잔씩을 나누며 부부는 퇴근길 교통 이야기, 아내가 낮 시간에 마을에서 점심 먹은 이야기 등 대수롭지 않은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러다 남편이 느닷없이 그날 오후 정부가 왔을 때 즐거운 시간을 가졌느냐, 마당의 양귀비꽃을 보여주었느냐 등 거북한 질문을 퍼붓는다. 그리고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당신이 오후에 애인과 있을 때 남편이 책상 앞에 앉아서 대차대조표와 도표를 보고 있다는 생각해본 일 있나?”고 묻는다. 물론 우유배달을 하는 청년 한사람이 방문을 한 적은 있지만,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여인이 아니라는 것을 관객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아내는 연인과 관계를 한 것처럼 대답을 흘린다. 향후 부부의 대화에서 각자 연인이 있고, 성관계를 맺는 것으로 대화를 하지만, 남편 역시 바람을 피우는 인물이 아님이 들어난다. 결혼 권태기에 이른 결혼 10여년 된 부부의 권태 해소방법과 사랑회복 방법이 해롤드 핀터의 독특한 필치와 야릇한 장면전개로 연극에 펼쳐진다.
대단원에서 부부는 질투심에 못 이겨 으르렁거리며 다투다가 결국 서로에게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고, 깊은 포옹과 함께 몸을 밀착시키는데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송영창이 <너와 함께라면> <노이즈 오프> <인물실록 봉달수>에 이어 핸섬한 모습과 발군의 기량으로 <러버>에서의 남편 역을 능수능란하게 연기해 여성관객의 열정어린 시선을 한 몸에 사로잡았다.
이승비가 <홀스 토메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이후 농염한 자태와 출중한 미모로 남성관객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관능미 만점의 매력적인 아내로, 또는 연인의 모습으로, 또는 요부로 변신을 해, 남성들의 관음증을 살포시 부축이며, 체취까지 전달시키는 호연을 보였다.
김호진 역시 훤칠한 용모와 잘 다져진 체격, 그리고 젠틀(gentle)한 매너로 그의 발전적인 앞날을 예측케 했다.
무대디자인 정승호, 조명디자인 김광섭, 작곡 김태근, 의상디자인 김영지, 소품디자인 권보라, 분장디자인 백지영, 안무감독 천창훈, 봉고지도 정정배, 조연출 조민정 등의 열정과 기량이 어우러져 (주)연극열전(대표이사 허지혜)의 해롤드 핀터 작 박혜영 역 오경택 연출의 <러버>를 걸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4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창작공동체 아르케의 이해성 작 김승철 연출의 <전하의 봄>
<전하의 봄>은 1962년 극단 동인극장에 의해 공연된 신명순 선생의 <전하>를 바탕으로 이해성 작가가 재창작한 작품이다. 세조의 왕권찬탈을 <전하>에서는 1960년대의 정치상황과 비교해 날카롭게 묘사했고, <전하의 봄>에서는 1980년대의 정치상황에 대비시켰다. <전하>나 <전하의 봄>이나 신숙주의 고뇌와 번민, 그리고 정치적 갈등과 철학적 신념에 무게를 두었다.
연극 <전하>는 2011년 3월 서계동 국립극장 소극장 판에서 공연한 단막극 연작 <새판에서 다시 놀다> 3작품 중 신명순 원작의 <전하>를 김승철이 연출해 성공적인 공연을 거두고, 향후 단독공연의 가능성을 타진케 했다.
이해성 작가는, 한 극단이 <전하>를 공연하기 위해 연습하는 과정에서, 사육신으로 등장하는 연기자들과 신숙주, 세조로 출연하는 연기자들의 성격창출과정과 연습장에서의 갈등과 고뇌, 그리고 이 연극을 연출하며 타악기로 배경음까지 연주하던 연출가가, 이 작품이 1961년 5 16 직후에 발표된 작품이라, 당국의 눈총을 받았던 당시의 상황을 극에 포함시켰다.
대단원에 노산군의 죽는 장면, 그리고 노산군의 시체를 건드리면 삼족을 멸하겠다는 어명에 개의치 않고, 시신을 수습해 암장한 엄홍도를 등장시켜, 그의 충절을 부각시키며 극을 마무리해, 새로운 장막극 <전하의 봄>으로 탄생시켰다.
무대 양쪽에 1m높이와 1.5m높이의 조형물을 만들어 연기자들이 계단으로 오르도록 해 놓았고, 배경막 가까이에도 2m높이의 사각의 나무조형물을 만들어 놓았다. 무대 중앙 배경막 가까이 옥좌(玉座)가 나무로 만들어지고, 그 옆에 장검을 얹어두는 3단으로 된 칼 받침대가 눈에 띈다. 오른쪽 객석 가까이에는 타악기를 비치하고, 연출가 역의 연기자가 등장해 시종일관 극의 흐름과 어울리는 효과음을 창출한다.
연극은 도입에 김질의 고변으로 역모가 있었음이 밝혀진다. 곧이어 집현전 학사 성삼문이 포승에 묶인 채 등장하고, 세조 앞에서 성삼문의 단종을 향한일편단심이 무대 위에 숭엄하게 그려진다. 성삼문의 죽기를 고사한 충절에 친구인 신숙주의 우정 어린 설득도 무위로 끝난다. 세조의 분노가 폭발하고, 성삼문은 처형장으로 향한다.
신숙주가 친구를 잃은 슬픔과 허탈함을 안고 단신 귀가를 하니, 노복이 그를 따뜻이 맞이한다. 신숙주의 부인도 그를 맞지만 기색이 심상치가 않다. 자식 역시 여느 때와는 반기는 게 다르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신숙주의 변절소문이 집에까지 이미 난 것이다. 하인들이 모두 이 집을 떠나려한다는 노복의 보고에, 신숙주는 그들에게 땅마지기를 나누어주라며 섭섭함 대신 따뜻한 마음으로 작별을 고한다.
간혹 연극연습과정에서 연기자들의 작품해석과 성격창출에 대한 고뇌와 갈등이 연습중단사유로 되고, 그들의 번민이 연출가에게는 물론 객석에까지 전달된다.
사육신의 장렬한 죽음이 세조의 칼부림과 함께, 하나하나 목이 잘려 무대바닥으로 날아와 딩구는 장면은, 충격적인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명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신숙주의 부인이 남편의 변절을 부끄러워하며, 목을 매어 자진하는 장면 역시 다시 이를 데 없는 명장면이다.
신숙주의 자택을 불숙 방문한 세조에게 부인의 자진을 입 밖에 꺼내지 않는 신숙주의 모습은 인상적이지만, 어머니가 세조 때문에 죽었다며, 칼을 뽑아들고 덤비는 숙주의 아들을 용서하는 세조의 모습 역시 비범함을 느끼게 한다.
향후 신숙주의 승승장구와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봉하고, 단종이 수구대신들과 역모를 꾀했다며, 유배지에 있는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라고 하는 신숙주와 대신들의 집단시위는 현재의 정치관련 시위에 비견되기도 한다.
대단원에서 노산군이 죽임을 당한 후, 시신을 건드리면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 개의치 않고 시신을 염습해 운반하려는 엄홍도와 어명을 지키라는 신숙주가 대의명분과 천하의 도리를 놓고 벌이는 설전은, 타악기의 반복된 울림과 함께 관객의 뇌리에 각인되고, 또한 관객의 가슴에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 연극에서 신숙주의 부인이 남편의 변절이 수치스러워 자결한 것으로 묘사되었으나, 실은 계유정란 이전에 지병으로 작고한 것으로 되어있다.
또한 신명순 선생은 신숙주의 본관인 고령(高靈)이 아니라, 평산(平山) 신 씨이기에, 조상의 행위를 변명하려고 쓴 작품이 아님도 밝혀둔다.
이경성, 김성일, 깁정호, 이형주, 민병욱, 박상석,,서삼석, 김민태, 박시내, 김관장, 이진복, 서왕석, 조용식 등이 출연해 각자 탁월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객석의 갈채를 받았다.
김창기의 조명, 박찬호의 무대, 공양제의 음악, 목진희와 이애리의 분장, 한아름의 의상, 이은경의 사진, 서왕석의 무대감독, 한보람의 기획, 김관장 김능황 홍보, 최문정 조영식 진행, 송해리의 홍보디자인, 마희선의 조연출 등 스텝 진의 노력과 열정이 혼연일체가 되어, 신명순 원작, 배선애의 드라마터그, 그리고 이유라의 학술연구가 한국공연예술센터와 창작공동체 아르케가 공동주최한 이해성 작, 김승철 연출의 <전하의 봄>을 가슴이 저리도록 깊은 감동을 주는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5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유니버설발레단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케네스 맥밀란(Kenneth Macmillan) 안무, 세르게이 에스 프로코피에프(Sergei S. Prokofiev) 작곡, 폴 코넬리(Paul Connelly) 지휘/연주, 줄리 링컨(Julie Lincoln)과 유리 우치우미(Yuri Uchiumi) 공동연출의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
발레의 역사에 대해서는 르네상스 시대에 비롯되었다는 설과 그리스 시대에까지 소급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리스의 발레 전통이 그 문명의 소멸과 함께 일단 침몰되었다가 르네상스를 맞아 부활했다는 설이다. 하지만 자료에 의하면 1489년 밀라노 공 갈레아조와 이사벨라의 결혼식에서 베풀어진 막간극이 사실상 발레의 유래다.
그 후 르네상스의 진원지 피렌체의 메디치家를 중심으로 이탈리아에서 발레가 크게 융성했으나, 16세기 이후로는 그 무대가 프랑스로 옮겨진다.
발레가 프랑스에 최초로 도입된 것은 1552년 피렌체의 카트린느 드 메디치가 프랑스의 앙리 2세와 결혼할 때다. 이탈리아에서 크게 명성을 떨치던 음악가이자 안무가였던 베르지오 조소가 카트린느의 시종으로 프랑스에 가게 된 것이 프랑스에 발레가 뿌리내리게 된 계기가 된다. 남편 앙리2세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섭정을 맡은 카트린느는 아들 프랑스와 2세를 발레에 심취케 한 후 자신이 권력을 좌지우지할 셈으로 발레 진흥에 힘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1581년에는 세계 최초의 발레단 (Le Ballet Comique de Reine])을 창단해 발레가 융성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발레는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옮겨져 그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것은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의 합성어인 <발레>(Ballet)라는 용어를 통해서도 알 수가 있다.
카테린느 왕비 이후, 발레에 열광했던 루이 14세에 의해 1661년 <음악. 무용 아카데미>가 창립되면서 발레는 바야흐로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스스로를 태양왕으로 자처했던 루이14세는 발레를 구경하는 데 만족치 않고, 몸소 춤을 추었고, 그에 힘입어 몰리에르 같은 당대의 문화계를 지배하던 인물들이 발레에 열광했던 탓으로 발레는 더욱 융성하게 되었다.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은 1811년 빈센초 갈레오티(Vincenzo Galeotti 1737~1816)가 안무한 작품이 덴마크 왕립발레단에 의해 공연된 이후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 가운데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음악을 처음으로 안무한 레오니드 라브로프스키(Leonide Lavrovsky 1905~1967)와 존 그랜코(1958년), 케네스 맥밀런(1965년) 등이 국제적인 평가를 받았다.
레오니드 라브로프스키의 안무는 클래식 발레에 러시아적 캐릭터에다가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팬터마임 적 요소 등을 가미해, 춤보다 마임과 검술 등이 많고, 거리의 장면은 자연스럽고 활기가 넘도록 안무했다.
케네스 맥밀란은 한 술 더 떠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드라마틱 발레로 창출해 냈다. 작중인물의 성격을 원작대로 부각시키고, 무용수에게 배우나 마임이스트를 뛰어넘는 감정표현을 이끌어 내도록 안무했다. 세부 동작은 물론, 손가락 하나에서부터 팔 다리의 펴고 오그리기, 눈동자와 방향과 고개 짓 하나까지, 거의 완벽에 가까운 감정전달을 무대 위에 구현해 냈다.
그의 안무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이다.
작곡가 프로코피에프에게 <로미오와 줄리엣> 무곡을 작곡해 볼 것을 권유한 사람은 안무가 디아길레프였다.
현대음악 작곡가 프로코피에프가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고전적 스타일로 작곡에 손을 댄 대표적인 작품 중의 하나인 발레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라브로프스키의 안무로 레닌그라드의 키로프 극장에서 초연되었고,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케네스 맥밀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용수들에게 음악과 일치된 감정이입, 그리고 철두철미한 심리표현은 물론 관능적인 요소까지 가미한 안무로,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 기념으로 마련된 1965년의 런던 로열 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에서 대성공을 거두고,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 40여회의 커튼콜이라는 신화를 창조했다.
이번 유니버설발레단의 공연은 케네스 맥밀란의 안무와 줄리 링컨과 유리 우치우미의 공동연출, 그리고 폴 코넬리 지휘와 강남관현악단의 연주로 이루어졌다.
극장을 들어서면 명작의 고향풍경이 막 대신 펼쳐져 있다. 동화에 나옴직한 두 개의 성(城)이 먼발치로 떨어져 그려있어, 1층 객석을 차지한 어린이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막이 열리면, 아름답고 화려한 무대장치에 객석에서는 “와-!”하는 감탄이 터져 나오고, 무대에는 배경 가까이 대리석기둥과 아치형의 출입구, 그리고 높은 계단과 테라스 등이 만들어져 있고, 군중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하면, 그들이 착용한 고풍스러운 의상과 분장에 또 한번 감탄사를 발하게 된다. 게다가 100여명의 출연자들이 일사분란하게 율동에 맞춰 군중장면에 임하는 데서 연출가의 거의 완벽에 가까운 동선 운용을감지할 수 있고, 베로나 광장에서 상대를 원수라 여기는 캐퓰렛家의 청년과 몬테규家의 청년들이 등장하고, 서로 적대감으로 칼을 뽑고 결투를 시작하는 장면은 그간 연극이나 영화에서의 결투장면 못지않은 맹렬한 칼싸움으로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하고, 공연에 온 정신을 몰입시킨다. 청년 몇 사람이 칼에 찔려 쓰러지면, 에스칼루스 왕자가 분노에 찬 걸음으로 등장해 양가를 질타한다. 그리고 캐퓰렛 영주와 몬타규 영주를 화해시키려 하지만, 겉으로만 응할 뿐 내심은 전혀 화해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마 우리의 남북 관계를 외국인들이 보는 심정과 비견되는 장면이다. 장면전환이 되면 캐풀릿家정문으로 장치가 바뀌고, 연회에 초대된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줄줄이 문으로 들어간다. 마스크를 쓴 로미오와 친구들이 등장해 캐퓰렛 성안으로 잠입하듯 들어간다. 이윽고 화려하기 그지없는 연회장면이 전개되고, 등장인물들의 독무, 2인무, 3인무, 군무 등이 경쾌한 음악에 맞춰 아름답게 펼쳐진다. 아래위층 발코니에 자리 잡은 인물들도 율동에 맞춘 움직임으로 군중 씬은 조화를 이루고 활기로 가득찬다. 드디어 줄리엣이 레이디 캐퓰렛과 유모를 따라 등장하면, 그녀의 앳되고 청초하고, 초저녁별 같은 모습에 객석의 시선이 그녀의 일신에 집중된다. 로미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실연의 상처를 가슴에 안고 방황을 하는 입장이지만, 줄리엣을 보는 순간 로미오는 큐핏의 화살을 심장에 정통으로 맞은 바로 그러한 모습으로 사랑의 화석이 된 듯 꼿꼿한 자세로 줄리엣을 바라본다. 전기가 통해서일까 영감일까 신의 계시일까 줄리엣 역시 로미오를 보는 순간 한동안 얼어붙은 듯 로미오를 바라본다. 이윽고 둘은 서로에게 다가간다. 줄리엣의 약혼자 파리스나, 오라비 티볼트의 만류를 뿌리치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운명처럼 다가가 파드되를 추기 시작한다. 줄리엣의 한 송이 민들레의 씨앗처럼 공중을 날듯 그 맑디맑은 향과 체취를 흩날리며, 어린 숫 사슴보다 상큼 발랄한 로미오의 율동에 몸을 맡기는 장면은 명장면으로, 어린이 관객이나 성인관객이나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저마다 로미오가 되고 줄리엣이 된 느낌으로 공연에 몰입된다. 이윽고 달빛 속에 명 발코니 장면이 펼쳐진다. 두 사람이 사랑을 서로에게 전달하는 장면은 팬터마임과 마찬가지로 표현되지만, 두 사람은 달빛 아래에서 혼신의 열정으로 자신의 사랑을 상대에게 전달하고 발코니에서 내려와 펼치는 파드되는 갈매기나 백조의 비상처럼 영혼까지 하늘을 날아오르는 듯싶은 절묘한 명무로 기억에 삭여진다. 이 장면은 마치 1968년에 제작된 프랑코 제피렐리가 감독하고, 레너드 위팅과 올리비아 하시가 주연해, 주제가인 “What is a youth"를 전 세계에 히트시킨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의 명 발코니 장면과 견줄 만큼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향후 성당에서의 비밀 결혼식 장면이라든가 묘지장면 뿐 아니라, 장면에 비치된 성모상이라든가, 건물에 장식으로 세워놓은 조각상은 공연의 수준을 한 단계 상승시키는 조형물이 되었고 공연의 흐름과 극적인 분위기를 상승시키는 조형물이 되었다.
원작과는 달리 대단원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자살 장면으로 공연은 마무리가 되지만, 객석은 감동에 젖어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서지를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지은, 김나은, 황혜민....유니버설발레단에 이런 천재 발레리나가 있었다니....줄리엣을 완벽하게 춤으로 표현해 낸 그녀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로버트 튜슬리,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이승현, 엄재용의 발군의 기량은 여성관객의 시선을 로미오에게 고정시켰고, 정위, 민홍일, 진헌재, 이현준, 후앙젠, 이동탁은 세계시장 어디에 내놓아도 돋보일 탁월한 기량의 발레로 갈채를 받았다. 예브게니 키사무디노프, 이준규, 오혜승, 황혜승, 장안나, 애인슬리 테일러 잉그리스, 서라벌, 신혜지 등 중견들의 기량이 공연의 대들보 역할을 해냈고, 한상이, 이성아, 손유희, 김애리, 김지윤, 김채리, 팡 멩잉, 이용정, 곽유나, 최효정, 김성민, 전효준 등 출연자 전원의 출중한 기량은 공연의 활력소가 되어 만돌린 리더인 리안 시후아이의 연주와 함께 드라마틱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을 성공작으로 창출시켰다.
단장 문훈숙, 명예예술감독 올레그 비노그라도프, 예술감독 유병현, 수석 지도위원 예브게니 네프, 지도위원 이주리, 타티아나 루사노바, 엘레나 판코바, 이준규, 황재원, 조주환, 음악실장 오은경, 피아니스트 송효연, 건강관리 문용기, 홍보마케팅 팀장 강기수, 공연사업팀 팀장 임소영, 아트센터 박수현, 해외사업 서지경, 언론홍보 김세영, 인턴 오리온, 무대운영팀 팀장 길홍찬, 을 비롯한 스텝 진의 열정과 노력이 하나가 되고, 지휘 폴 코넬리, 강남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서현석, 부지휘자 김홍식, 악장 김경아, 총무 이재룡 김달식, 단무 정승원, 악보 김아영과 단원여러분의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케네스 맥밀란 안무, 세르게이 S. 프로코피에프 음악, 무대 및 의상디자인 폴 앤드류스, 조명디자인 존 B. 리드, 연출 줄리 링컨&유리 우치우미, 액션연출 테렌스 오어, 버밍험 로열발레 제작총괄 더그 니콜슨, 유니버설발레단 문훈숙 단장 제작의 드라마틱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을 세계정상급 무용공연으로 탄생시켰다.
6 대학로극장에서 이만희-강영걸 연극시리즈 1, 극단 완자무늬&극단 노릇바치의 <불 좀 꺼주세요>
이 연극은 40대가 된 남녀주인공과 20대 시절의 주인공을 동시에 등장시켜, 청년시절부터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현재까지 그 마음이 이어지고, 상대를 자주 만나 대면도 하지만, 제각기 가정을 이루고 있고, 허울뿐이기는 해도 각자 남편과 아내가 있고, 과거에 부부가 서로 사랑으로 맺어진 것이 아니고, 현재는 별거 중인 상태지만, 각자의 입장과 도덕심 때문에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현실을, 현재의 두 사람과 과거의 두 사람 4인을 동시에 등장시켜, 현재와 과거, 이성과 감성, 진실과 거짓, 사랑과 욕정 등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며, 진실한 사랑으로 상대에게 다가가는 과정을 절묘하게 그려낸 연극이다.
무대는 중앙의 큰 기둥을 중심으로 왼쪽은 침실이고, 오른쪽은 서재 겸 화실이다. 무대전면은 거실로 꾸며져 보트 형 바닥에 넓적한 나무 등받이가 있는 소파와 전화기를 올려놓은 탁자가 마련되어 있다. 중앙 기둥에는 아래쪽에는 오디오 박스가 있어 장면변화에 따라 음악을 틀어놓기도 하고, 박스 위로 안개꽃을 꽂은 화병이 놓여있다. 화실에는 석고상과 캔버스, 그리고 이젤 등의 화구가 보이고, 책장에는 책이 꽂혀 있다. 배경 막 가까이에 등퇴장 로가 나있다.
연극은 도입에 6인의 등장인물 전원이 등장해 각자 끌어안기도 하고, 키스를 하는 등의 모습을 잠시 선보인다. 장면이 바뀌면 40대의 남녀 두 사람이 등장해 서로 마주 대하는 눈빛에서부터 마음가짐과 태도 그리고 대화 하나하나가 심상치가 않다. 연인인 듯싶으면서도 일정한 거리감을 나타내고, 도입의 장면에서처럼 격렬한 키스신을 연출했으면서도 상대에게 바싹 다가가지 않는 모습에서 각기 남편과 아내가 있음이 객석에서 감지된다. 향후 각기의 남편과 아내가 등장해. 직접 또는 전화로 대화를 나누고, 과거를 돌이켜 볼 때에는 20대 시절의 남녀를 2인의 다른 연기자를 등장시켜, 회상장면을 연기하도록 한다. 남자 주인공에게는 척수(脊髓)장애자인 아들이 있고, 소싯적 공사장에서 막노동에 객혈(喀血)까지 하는 미남 노역자의 모습을 본 공사장 사주의 딸이, 이 광경을 보고 동정심에서 접근을 하다가 사랑의 감정이 싹트고, 눈에 콩 꺼풀이 씌어 척수장애인 아들이 있음도 개의치 않고 구애를 하는 장면은 명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막노동에다가 또한 장애인 아들 때문에 소시 적에 서로 사랑의 감정을 지녔음에도 부모의 반대 때문인지 결혼에 골인하지 못하고, 게다가 남자주인공의 친구에게 강제 능욕(凌辱)을 당해 여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의 친구와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세태와 풍속이 소개되기도 한다. 주인공은 절치부심(切齒腐心)과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입신양명(立身揚名)을 하게 된다. 그러나 고위직을 박차고, 평범한 삶으로 복귀한 내용이, 요즘 정치풍토와 비교가 되어, 객석에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한다. 그리고 미모의 여인이면 늘 상 겪게 되는 남성들의 집요한 집적거림도 이 연극에서 코믹하게 설정되어 객석의 폭소를 이끌어낸다. 덧붙여 여주인공 남편의 이국땅에서의 불륜행각이 상세하게, 또 적나라하게 그려져, 국내 뿐 아니라, 외국에서까지의 남녀 성행각과 자유로운 성 향락 풍조가 세시풍속도(歲時風俗圖)처럼 펼쳐지기도 한다.
대단원에서 주인공 모친의 생애가 소개되고, 장애인 아들이 실은 과부였던 모친이 잉태한 씨앗이었고, 주인공의 아들이 아닌 아우였음이 밝혀지면서 남녀주인공 두 사람은 서로의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게 되고, 몸과 마음을 밀착시키기 위해 “불 좀 꺼주세요”라고 하는 대사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남기애, 박성준, 이효림, 신승용, 이현주, 장정선, 한재영, 윤태웅, 강윤경, 박아름 등이 출연해 각자의 독특한 성격창출과 탁월한 기량, 그리고 출중한 호연으로 시종일관 관객을 극 속에 몰입시킨다. 특히 신승용의 1인 다 역은 그의 열연과 함께 기억에 남는다.
드라마 트루크 김태수, 작곡과 음악 정대경, 조명 이상근, 조연출 심유정, 마케팅 박영욱과 성득환, 홍보 최빛나, 기획진행 강혜지, 기획 홍근숙, 제작PD 박우화와 문광인 등 모두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기량이 돋보여, 극단 완자무늬와 극단 노릇바치의 연극 이만희 작 강영걸 연출의 <불 좀 꺼주세요>를 걸작이자 명품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7 정보소극장에서 극단 작은 신화의 김숙종 작 최용훈 연출의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
무대는 만화가의 집 거실이다. 배경 막 가까이 중앙에 책장이 서있고, 책꽂이에는 만화가 잔뜩 꽂혀있다. 책장 위 벽에는 만화영화 포스터와 만화 캐릭터 그림이 있는 네모 판 두개를 액자처럼 나란히 걸어놓았다.
무대 오른쪽에는 싱크대와 찬장이 있고, 중앙에는 식탁과 의자가 있다.
무대왼쪽 객석 가까이에는 소파와 의자 그리고 탁자가 놓여있고, 소파 위에는 헝겊으로 만든 동물인형이 놓여있다. 출입구 겸 문은 무대 왼쪽 객석 가까이에 있는 것으로 설정되고, 화장실은 배경 막 가까이 왼쪽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배경 막 오른쪽에는 창고 겸 냉장고가 있는 것으로 설정이 된다.
연극이 시작되면 젊은 남자 한 사람이 걸레를 들고 등장해 탁자와 바닥을 청소하다가 동물인형을 보고 다정스레 대하고, 소파 밑에서 작은 로봇을 집어 들고는, 마치 어린이라도 된 듯이 로봇이 날아다니는 동작을 하다가, 오므리고 있는 로봇의 팔을 날개라며 펴고는, 공중을 날아다니는 시늉을 하는 모습에서, 성인이라기보다는 어린이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물로 보인다.
잠시 후 벨소리와 함께 커다란 가방을 든 중년남성이 출입구에 모습을 드러내고, 손가락으로 계속 벨을 누르는 동작을 취한다. 젊은이는 문으로 다가가 문구멍으로 바깥을 내다보는 동작을 취하며 누구냐고 묻는다. 물론 문이나 벨은 보이지 않고, 마임을 하는 동작으로 두 사람은 연기를 한다. 중년남성은 출판사 이름을 대며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집 주인을 만나러 왔다고 한다. 젊은이는 주인이 외출 중이라며 문 열기를 거부한다. 중년남성은 돌아간다. 젊은이는 하던 걸레질을 계속한다. 잠시 후 중년남성이 다시 벨을 누르며 고통을 호소하는 모습을 보인다. 젊은이가 다가가자 용변이 급해 그렇다며, 문을 열어달라고 호소한다. 그리고 바지에 쌀 것 같다며 울상까지 짓는다. 젊은이는 마지못해 문을 열어준다. 중년남자는 급히 들어와 화장실을 묻고는 용변을 참으며 걷는 걸음걸이로 화장실로 들어간다. 잠시 후 물 내리는 소리와 함께 중년남성이 바른 자세를 취하며 걸어 나온다. 그리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냉수 한 잔을 청한다. 젊은이는 배경 막 오른쪽으로 들어가 쟁반에 컵을 바쳐 들고 와 건넨다. 중년은 곧바로 컵에 입을 대고는 머그컵에 보이차라고 감탄을 하며 고마움을 표한다. 그리고 거실 안을 둘러보고는 잔뜩 꽂힌 만화에 관심을 보이며, 자신이 알고 있는 만화 캐릭터와 만화의 제목, 만화관련영상물을 열거한다. 그리고는 만화 한 권을 집어 들고는 자신의 딸이 몹시 좋아하는 만화라며 반가워한다. 젊은이는 그건 자신이 그린 만화라며 수줍은 듯 소개를 한다. 중년은 젊은이에게 만화가시군요 하며 놀라워하고, 딸이 바로 젊은이 만화의 팬이라며 싸인을 요청한다. 청년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종이대신 만화에 싸인을 하고는 딸에게 주라며 만화책을 건넨다. 그리고 자신이 개구리 소재의 만화를 구상중임을 밝힌다. 중년남성은 자신이 외판원 신분임을 밝히고, 출판사 이름과 52권으로 된 백과사전을 소개하고, 만화가의 백과사전 소유는 필수라며, 백과사전 속 개구리 사진과 두꺼비 사진을 펼쳐놓고, 만화의 캐릭터 설정에서부터 백과사전의 중요성을 구구절절 열거하며 외판원의 본색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젊은이는 차츰 외판원의 말솜씨에 빠져들어 냉수를 가져다주기도 하고, 주스를 내어오기도 한다. 그리고 종당에는 백과사전을 구입하기로 결정을 한다. 계약서를 쓰고, 계약금을 결재하는 과정에, 젊은이는 친구가 자신의 카드를 가지고 나갔다며, 두 시간 정도 기다리면 친구가 돌아오리라는 얘기와 함께 그 때 결재를 하겠노라며 외판원에게 기다려 주기를 청하고, 대신 점심식사를 함께 하자고 권한다, 만화가는 자신이 요리학원에를 다닌다며 수강과정에서 만든 음식인 <가정식 백반>을 소개하고, 식탁에 백반 상을 차리기 시작한다. 식탁에 즐비하게 그릇들이 놓이고, 두 사람은 <가정식 백반>이 마련된 식탁에 마주앉는다. 식탁에 앉으면 자연스레 나오게 마련인 가족관계가 대화의 소재로 떠오르고, 친근감이 느껴져서인지, 만화가는 외판원을 형이라 부르겠다고 하니, 외판원은 고개를 끄덕인다. 향후 만화가는 소시 적에 형이 사다준 스케치북에 만화를 그려다 보이면, 형은 칭찬처럼 만화가가 되라고 했다는 얘기, 그 후 결혼한 형과 떨어져 살면서 가끔 형의 생활을 형 모르게 살펴보았던 이야기, 하도 오랫동안 서로 떨어져 있었기에 나중에는 형을 직접 대면을 해도 형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 했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외판원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차츰 심상치 않은 기색으로 변하고, 스케치북 이야기나, 자신의 처와 자녀 이야기가 나올 때에는 음식을 먹다가 사래까지 들면서,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겨들고 문으로 향한다. 그러나 문은 손잡이를 돌리고 비틀어도 쉽게 열리지를 않는다. 만화가가 이를 급히 제지하는 장면에서 암전된다.
다시 조명이 들어오면, 자다가 일어난 모습의 만화가와 외판원의 모습이 눈에 띤다. 그런데 외판원은 결박이 되어있다. 소파에 앉혀진 외판원에게 다가간 만화가가 평소에 늘어놓던 어눌하고 느린 말씨와는 달리, 마치 법정에서 검사가 피고인에게 질문하듯 또렷하고 세련된 어조로 질문을 하나하나 던진다.
먼저 외판원이 용변이 급하다며 쩔쩔매고 들어와 화장실에서 물만 내렸을 뿐 용변을 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다. 외판원이 물을 내렸는데 어찌 용변을 아니 봤다고 그러느냐고 물으니, 자신의 집의 변기는 덮개가 특수해, 열고 닫은 흔적을 감지할 수 있는데, 뚜껑을 열지도 않고 어떻게 변을 보았느냐고 만화가는 되묻는다. 외판원은 아연해 한다. 만화가는 외판원이 조갈이 심하다고 해서 보이차를 대접했는데, 맛만 보고 컵 타령만 늘어놓고는, 차를 마시지를 않았을 뿐 아니라, 다음에 떠다준 냉수는 물론, 주스까지 마시지 않은 까닭을 묻자 외판원은 파랗게 질리기 시작한다. 게다가 형이 사다가 준 스케치북에 만화를 그린 장면을 상세히 알고 있고, 자신을 싫어하던 형수라든가, 딸 이야기에 허둥대던 외판원의 모습,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형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외판원이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묶인 몸으로 문으로 달려가려하니, 제자리로 끌어다 앉히고, 이번에는 붕대로 외판원의 입을 목뒤로부터 칭칭 동여매어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봉한다. 그리고 옛날에 아버지가 꿩 사냥을 할 때에 늘 상 사용하던 치명적인 독약, 청산가리성분의 싸이나 통을 꺼내든다. 그리고 머그 컵에 약을 털어 넣고 외판원에게 다가간다. 외판원은 온몸을 버둥거리고, 입안으로 비명을 지르며 살해당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런 모습을 잠시 들여다보던 만화가는 자신의 형이자 외판원 앞에서 독약이 든 머그컵의 물을 마시고 그 자리에 쓰러진다. 형은 아우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경악과 슬픔, 그리고 후회와 연민 등 온갖 고뇌와 번민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눈물을 펑펑 쏟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김문식이 만화가로 손종범이 외판원으로 출연해 탁월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1시간 20여분의 공연동안 관객을 일말의 유예도 없이 극 속에 완전히 몰입시켜 객석으로부터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았다. 서현철과 임형택이 손종범과 함께 외판원으로 출연한다.
민새롬의 조명디자인, 이형주의 음악과 음향 코디네이터, 이지혜의 조연출, 임영혜의 조연출보, 이서연의 무대감독, 신승철의 조명오퍼, 김해린의 음향오퍼, 다홍디자인의 그래픽디자인, 코르코르디움의 기획 홍보 등 모두의 기량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극단 작은 신화의 김숙종 작, 최용훈 연출의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을 손꼽을 만한 걸작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8 윤당 아트홀에서 극단 배우마을의 데이비드 그레고리(David Gregory 1951년~) 작, 김성수/김형태 번안/각색, 김형태 연출의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Dinner with a Perfect Stranger)>
경영학을 전공한 데이비드 그레고리는 경영현장에서 활동하다가 돌연 하던 일을 그만두고, 노스 텍사스 대학교에 들어가 종교와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댈러스 신학교에서는 신학을 공부한 후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이 책은 쎈세이션(sensation)을 불러일으키며 뉴욕에서 베스트셀러로 부상해 무명의 신학자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그라자 데이비드 그레고리는 가족 간의 종교 갈등 문제를 다룬 <예수와 함께한 가장 완벽한 하루>를 발표하고, 이 두 권의 소설로 독자를 확보한 그는 세 번째 소설인 (예수와 함께한 직장생활>을 통해 탁월한 창의력을 소유한 작가로 인정받는다.
저서로는 <놀라운 만남The Marvelous Exchange><복음서에 남은 이야기 The Rest of the Gospel> 등이 있고, 현재는 고향인 텍사스에서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무대는 주택의 거실로 사용이 되고, 레스토랑으로도 설정된다. 배경 막 가까이 만들어진 거실의 커다란 창문은 집의 규모나 레스토랑의 크기를 짐작케 한다. 무대중앙에 마련된 식탁은 집의 식탁으로 사용이 되고, 자리를 옮겨 레스토랑의 식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배경 막 좌우로 등퇴장 로가 나있다.
연극의 내용은 평범한 샐러리맨인 닉이 어느 날 나사렛 예수 로부터 저녁식사 초대장을 받는다. 친구들의 짓궂은 장난이라 생각 하고 초대에 응한 닉은 레스토랑에서 자신을 예수라고 소개하는 낯선 남자와 대면을 한다. 붉은 나비넥타이에 조끼까지 차려입은 이 남자는 오늘 저녁식사 동안만 자신을 예수로 생각 해 달라며 진지한 표정으로 제안을 한다. 처음부터 장난이라고 생각한 닉은 상대의 제안을 농담처럼 받아들이지만, 한마디 두 마디 대화가 오고가고, 질의응답이 계속되면서 닉은 초면의 남자의 대화에 차츰 빠져 들게 된다. 이 들의 대화는 재치문답처럼 이어지기도 하고, 교회와 신에 관한 질문과 답변에서 남자의 대답은 정곡을 찌르고, 기상천외의 답변으로 닉을 대화에 몰입시킨다. 하느님은 교회에 계시지 않고, 그를 믿는 자의 가슴속에 있으며, 마더 테레사나, 아돌프 히틀러나, 인간의 선악판단기준과는 관계없이 하느님에게는 똑같은 자식이고, 닉이 자식을 사랑하듯 하느님은 모든 인류를 자식처럼 사랑하고, 또 닉이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버릴 수 있듯이, 하느님도 인류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으며, 예수가 바로 인류를 위해 목숨을 버린 하느님 자신임을 천명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열두 제자가 자신의 부활을 직접 대면하고, 확인하고 나서야, 복음으로 하느님의 부활을 전하게 된 것이라며 예수가 바로 하느님인 자신임을 대단원에서 손목에 박힌 못 자국을 보이며 설명을 하기도 한다.
이 연극은 시종일관 잔잔한 대화로 연극을 이끌어가고, 비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내용을 전개시키는가 하면, 간단한 설명과 정곡을 찌르는 답변으로 닉 뿐만 아니라 관객을 납득시키고, 하느님의 뜻을 거의 완벽하게 객석에 전달시킨다는 점에서, 기독인이나 비기독인을 막론하고, 자신의 가슴속 깊은 곳에 하느님을 포용하도록 만드는 감동적이고 성스럽기까지 한 공연이었다.
최성원, 정태야, 홍서준, 김수정, 장혜진, 탁성준, 김건우, 강소연, 안성빈 등이 출연해, 절제된 연기로 잔잔함 속에 격정을 전달함으로써 객석에 공감대를 형성시킨다. 특히 탁성준의 1인 다 역 연기는 기억에 남는다.
프로듀서 김준영, 예술감독 김재권, 무대디자인 이학순, 무대 윤병진, 음악 서성완, 안무 임춘길, 캐스팅디렉터 유영선, 사진 에프비젼, 스타일리스트 최선임 등 스텝진의 기량이 돋보여, 극단 배우마을 제작의 데이비드 그레고리 작, 최준호 역, 김성수 김형태 번안 각색, 김형태 연출의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를 기억에 남을 걸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9 혜화동 선돌극장에서 극단 竹竹의 가오싱젠 작 오수경 역 김낙형 연출의 <생사계(生死界)>
2000년 가오싱젠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그를 소개한 기사내용이다.
중국 출신의 프랑스 작가 가오싱젠(高行健·60)이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12일 소설가이자 비평가, 극작가, 연극연출가, 번역가, 화가이기도 한 가오싱젠이 “언어적 독창성, 예리한 통찰력, 보편적 진실로 개인의 투쟁을 문학적으로 표현해 중국 소설과 연극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 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중국 출신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는 처음이다. 상금은 약10억원이다.
1940년 장시성(江西省)에서 태어난 가오싱젠은 1962년 베이징외국어대학에서 프랑스어과를 졸업하고, 베이징 인민예술극단에서 극작가로 활동하던 중 문화혁명이 일어나 하방(下放)을 겪기도 했다.
1882년 희곡 데뷔작 <절대 신호>를 무대에 올려 큰 성공을 거뒀으나 이듬해 상영금지 당하는 등 당국의 탄압이 심해지자 1987년 해외로 도피한 그는 이듬해 정치적 난민 자격으로 프랑스에 망명했다.
대표작으로는 1986년 발표 이후 지금까지 중국에서 공연 금지된 희곡 `피안(彼岸)'과 1996년에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돼 호평을 받은 장편소설 `영산(靈山, Soul Mountain)'이 있다.
수상 소식을 접한 가오싱젠은 “놀라울 뿐이다. 그러나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며 기뻐했다.
다음은 문학평론가이자 서울대학교 중문과 성민엽 교수의 <가오싱젠 '모더니즘-전위주의'의 선구>라는 글을 소개한다.
1940년생으로 1978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가오싱젠(高行健)은 소설가로서, 그리고 극작가로서, 나아가서는 평론가로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전개했다.
중편소설 <추운 밤의 별>, 희곡 <절대신호> <정거장> <야인(野人)>, 평론 <현대소설의 기교에 대한 초보적 탐색'>등이 초기의 대표작들이다.
그의 드라마는 새로운 연출 방식과 새로운 사상적 지향으로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서구 모더니즘(혹은 아방가르드) 연극의 수법을 대폭 수용하여 기존 연극의 시간구조를 해체하고 연극 표현의 공간을 확장했으며 새로운 연극 관념과 무대 관념을 탐색했다.
또 그의 평론은 현대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고 인간의 내면 세계를 탐색하며 복잡한 인간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현대주의(모더니즘 혹은 아방가르드) 기교의 적극적 사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고, 이 주장으로 인해 문단에 널리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70년대 말 80년대 초 중국문학에서 가오싱젠은 중국적 `의식의 흐름'을 개발한 소설가 왕멍(王蒙)과 함께 선구적인 역할을 했고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80년대 중반부터 `선봉파'(전위파, 아방가르드)라는 이름 아래 대거 등장한 젊은 작가들의 눈부신 활동은 가오싱젠과 왕멍, 두 선배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1987년 이후로 가오싱젠은 프랑스로 건너가 지금까지 프랑스에서 살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해왔다.
중국 작가 가오싱젠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지금까지 소외되어왔거나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해온 동아시아 문학의 입장에서는 분명 반갑고 기쁜 일이다.
하지만, 필자로서는 가오싱젠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대단히 긍정적인 일로 생각되면서도 약간의 의혹이 이는 것을 금할 수 없다.
그것은 가오싱젠이 대학에서 불문학을 공부했고 1987년 이후 십 몇 년을 프랑스에서 프랑스 시민으로 살고 있다는 점이 수상자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는 점 때문이다.
혹시 심사자들이 가오싱젠의 작업을 유럽의 부조리극 및 아방가르드를 중국에 소개한 것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했다면 그것은 큰 잘못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가오싱젠의 현대주의는 서구 모더니즘(혹은 아방가르드)과는 다소 다른 점이 있다.
희곡 <절대신호>를 예로 들자면,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연애의 갈등과 열차강도 사건의 복합 속에서 삶과 세계의 부조리함을 그리고 있는데, 필경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내면의 절망으로부터 이상과 신념을 향한 재탐색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가오싱젠 문학의 전체적 주제가 허무와 반역이라면, 그것은 이상과 신념에 대한 추구라는 모티프를 포기하지 않는 허무와 반역이다.
우리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중국문학이라는 지평에서의 가오싱젠과 보편이라는(유럽이 아니라) 지평에서의 가오싱젠, 그리고 동아시 문학이라는 지평에서의 가오싱젠인 것이다.
<생사계(生死界)>는 버림받은 여인이 자신의 육체에 대한 일종의 반성과 성찰이라 볼 수 있다. 내적인 자신과 외적인 자신을 떠올리듯 또 하나의 여인을 등장시켜 이성적으로 또는 감성적으로 여인의 주위를 맴돌게 하고, 자신을 떠난 상대남도 등장시켜 그 남성은 대사 한 마디 없이 나무널판으로 만든 다리나 붉을 색의 의자를 들여다 육체의 욕망을 표현한다. 여인은 자신이 마치 다른 사람이 자신의 육체를 탐하듯 그 널판을 기어오르고, 남성과 공유하기도 하면서, 어느 때는 아찔할 정도로 그 널판 때문에 목숨을 잃거나 몸을 다칠지도 모른다는 자각을 관객과 공유한다. 붉은 의자 역시 깔고 앉고, 쓰러뜨리거나 자빠뜨려서 사랑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로 묘사된다. 여인의 얼굴을 칭칭 동여 맨 붕대는 사랑으로 눈이 멀었던 세월을 떠오르게 하고, 이별 후에 뼈저린 고독과 정신적 방황 속에서 비로소 여인은 자신의 육체를 되돌아보고, 아름답지 못한 관계를 쾌락만으로 지속하려 했던 육체적 욕망을 혐오하며, 절단된 손처럼 허공중에 매달려 떠도는 육체의 일부분을 응시하고, 생과 사, 존재와 허무, 사랑과 욕정, 정신과 육체를 마치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에서처럼 자기인식과 부정을 공조시키며 1시간 20분간의 독백(獨白)을 철학적이고 심리학적으로 전개해 간다.
선돌극장의 무대를 검은색으로 처리하고, 등장인물 역시 검은색 의상으로 설정해, 극의 무게와 깊이가 심연(深淵)처럼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정아미와 이자경이 후반부와 전반부에 여인으로 출연해 2인1역을 하는 독특한 인물설정과 열연으로 극의 분위기를 한 단계 상승시켰고, 백진철은 삭발을 한 모습으로 등장해 호연을 보임으로써, 원작에서의 승려 역 또한 100% 부각시킨 효과를 창출했다. 장미향은 여인의 또 다른 모습으로 출연해 여인의 의식을 춤추듯 묘사하고, 그 체취까지 객석에 전달시켜, 미향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듯 그녀의 향기를 무대 위에 흩날렸다.
손호성의 무대, 금배섭의 안무, 주성근의 조명, 김동욱의 음악, 윤장호의 무대감독, 인크리디블의 디자인, 모슈컴퍼니 이보희, 이지은의 기획 등 모두의 열정이 어우러져 극단 竹竹의 가오싱젠 작 오수경 역 김낙형 연출의 <생사계>를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10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CJ E&M 제작, 리차드 알피에리(Richard Alfieri)작, 김달중 연출의 <여섯 주 동안 여섯 번의 댄스레슨(Six Dance Lessons in six weeks)>
리차드 알피에리(Richard Alfieri)는 <불의 수확(1996)> <비엔나의 우정(1998)> <푸에토 발라타 스퀴즈(2004)> <시스터즈(2005)>의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비엔나의 우정>을 제작한 남미출신 미국작가다.
<여섯 주 동안 여섯 번의 댄스 레슨(Six Dance Lessons in six weeks)>은2001년 미국 L.A에서 초연된 다음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었고, 12개 국어로 번역되어 20여 개 국의 50여개 공연단체에 의해 공연이 되었다.
이 연극에서 주인공이 보여주는 춤은 <스윙 댄스>, <탱고>, <왈츠>, <폭스 트로트>, <차차차>, 그리고 <컨템포러리 댄스>다.
<스윙 댄스>란 재즈음악에 맞추어 추는 격렬한 춤을 말한다. 이 스윙 댄스는 1945년까지는 재즈 댄스 또는 스윙(Swing) 혹은 지루박((Jitter Bug) 등으로 호칭되었고, 그 뜻은 넌센스, 엉터리, 야유하다 등의 뜻이다.
발생지는 북아메리카 미시시피(Mississippi)강 하구에 가까운 루이지애나(Louisiana)주의 뉴우 올리안즈(New Orleans)에서 1910년대에 발생한 재즈음악이 1930년 무렵에는 부기우기(Boogie Woogie: 재즈 피아노의 일종) 연주법이 사용되면서 이 음악에 맞추어 추기 시작한 새로운 댄스가 린디 홉(Lindy Hop)이란 춤이었는데, 이 린디 홉에다 북미의 흑인들의 역동적인 동작과 익살 맞는 제스처를 곁들여 춘 새로운 춤을 지루박(Jitter Bug: 일명 스윙 댄스)이라 명명했다.
<탱고>는 스탠더드 댄스(standard dance) 종목 중 하나로 1880년 무렵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하층민 지역에서 생겨났다. <탱고>가 처음 등장할 때의 명칭은 ‘바일리 꼰 꼬르떼(baile con corte)’였는데, 그것은 ‘멈추지 않는 춤’이라는 뜻이었다. 그 후 명명된 <탱고>라는 용어의 기원은 아프리카이며 ‘만남의 장소’, ‘특별한 공간’을 의미한다.
<탱고>가 탄생할 무렵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남성은 목이 긴 부츠에 쇠 발톱(spur)을 달고 가우초(gaucho)라는 바지를 입었으며, 여성은 풍성한 스커트를 입었다. 그와 같은 복장으로 춤을 추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율동이 오늘날 <탱고>의 기본 동작이 되었다.
<탱고>의 비약적인 발전은 19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초기의 탱고는 경쾌하고 활기찼으며, 1915년 무렵 유럽에도 전해져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1920년대가 되자 탱고의 분위기가 바뀌어 우수가 깃든 춤으로 차츰 변하면서 서정적인 춤으로 인식이 되고, 스텝도 실내 무도 스텝으로 부드럽게 변했다. 그러나 21세기에 이르러 열정적이고 역동적인 춤으로 본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월츠(waltz)>는 프랑스의 <보르타(Volta)>라는 춤에서 기원한다는 학설과 1178년 11월 9일 빠리에서 처음 추어졌다고 문헌기록으로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듯싶지만, 실제로 빠리에서 유행하게 된 것은 16세기부터였다.
<보르타>란 원래가 「돌다」라는 뜻으로 당시의 춤은 원무(Round Dance)였음을 알 수가 있다. <보르타>의 어원은 프랑스의 봐르세(Volse), 독일의 왈저(Walser), 이태리의 왈즈(Walz), 영국의 왈츠(Waltz)등 모두가 빙빙 돌다라는 뜻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독일인들은 <왈츠>를 자기네의 지방무용인 「란트러 : Landler」에서 기원하였다고 전한다. 이러한 왈츠가 유럽의 전 지역에서 전성기를 이루게 된 것은 슈베르트나 스트라우스 등 그 외의 많은 음악 대가들이 불멸의 왈츠 명곡들을 작곡하고 부터다. 19세기 초에는 이러한 빠른 템포(1분간 60소절)의 왈츠는 라운드 턴(Round Turn : 360도의 회전)을 사용하는 로터리 왈츠(Rotary Waltz)였다.
19세기 중엽에는 요한 스트라우스 풍의 비엔나 왈츠(Vienna Waltz)가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Wien)에서 시작하여 대중화되었으며,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미국에선 보스톤 왈츠(Boston Waltz)란 것이 발생하여 유행의 물살을 타게 되었다.
<폭스 트로트(fox-trot)>란 명칭의 기원에 대해서는 미국 서부지방의 <폭스 트로트>로 알려진 말의 걸음걸이에서 시작되었다는 학설이 가장 유력하다. 여우나 말 따위의 네 발 짐승이, 빠른 걸음걸이로 걸어갈 때의 동작을 <폭스 트로트>로 볼 수 있다. 즉 네 발 짐승의 걸음걸이는 오른쪽의 앞발과 왼쪽의 뒷발, 그리고 왼쪽의 앞발과 오른쪽의 뒷발이 동시에 움직여가는 경쾌한 종종걸음이고, 또한 두 앞발과 두 뒷발이 동시에 움직이는 급속한 걸음걸이인 갤럽(Gallop)을 춤으로 표현한 것이 <폭스 트로트>이다.
<차차차>는 1943년 쿠바의 최대 밴드의 지휘자로 프레도(Palace Prado)가 종래의 룸바 음악에 관악기들의 강한 리듬을 곁들인 새로운 음악, 발 빠른 맘보를, 세 박자의 스텝으로 추도록 변형시킨 것이 <차차차>의 탄생 배경이다.
<차차차>란 어원의 발생은 서인도제도(카리브해역)에서 자생하는 타타(TaTa), 또는 콰콰(KwaKwa)라는 열매를 맺는 나무로 만든 악기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므로 <차차차>라고 하는 것보다는 그냥 "차차"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이지만 사람들은 이 춤을 <차차차>라고 불렀다.
<컨템포러리 댄스(Contemporary dance)>는 모던댄스(modern dance), 즉 현대무용을 일컫는 다른 이름이다.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의 신무용과 구별되는 것으로, 유럽 현대무용의 개척자인 독일의 마리 비그만(Mary Wigman)이 주도적인 인물이다. 춤을 추는 아티스트에 의해 춤의 형식이 자유롭게 결정된다. 현대무용의 대세를 이루는 것이 <컨템포러리 댄스>다.
무대는 거실의 창밖으로 바다가 바라다보이고, 그 잔잔한 물결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 그리고 황혼의 햇살을 객석에서 실제인 듯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창 왼쪽에 장식장이 있고, 오디오 세트가 놓여있어 춤을 출 때 적절하게 사용된다. 창 오른쪽에는 조리용 싱크대가 놓인 움푹 들어간 공간이 있고, 그 옆에 주방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나 있다. 오른쪽 벽면에는 벽 안쪽 움푹 파인 공간에 냉장고 넣고 문짝을 달아 가려놓았고, 그 오른쪽에는 내실로 들어가는 통로가 보인다. 통로 양쪽에도 장식장이 있고, 벽에는 초상화를 걸어놓았다. 무대 중앙에는 소파와 의자가 놓이고, 소파 옆 작은 탁자위에는 전화기가 보인다. 소파 앞쪽으로 카페트를 깔아두었다. 현관문은 왼쪽 벽에 만들어져 있어 집의 등퇴장 로로 사용되고, 벽에는 작은 책꽂이와 벽모서리에 세워둔 전기스탠드도 보인다.
연극은 도입에 현관의 벨소리가 들리고, 집주인인 나이든 부인이 등장해 누구냐고 묻자, 분명히 남성인데 말씨는 여성 닮은 방문객이 대답을 하고, 잠시 실랑이를 벌이다가 주인이 문을 열자 젊은 남성이 들이닥친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젊은 남성은 댄스 강사로 나이든 여주인에게 춤을 지도하러 온 것임이 알려진다. 그런데 강사의 차림새나 말씨, 그리고 태도가 여주인의 마음에 안 들었는지, 여주인은 강사에게 남편이 귀가하기 전에 돌아가기를 청한다. 강사는 자신의 처가 와병중이고 생활이 곤궁하다며 재고해 줄 것을 간청하고, 여주인은 마지못해 승낙을 하고 춤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강사의 춤 솜씨가 영화 <긴다리 아저씨>의 “후레드 아스테어”나 춤과 노래의 달인인 스타 “세미 데이비스 주니어”를 능가하는 수준이고, 상대하는 여주인의 춤동작도 초보로 보기에는 너무나 유려한 동작이다. 여하튼 두 사람의 댄스레슨은 그 서장을 아름답게 인상 짓는다. 날자가 바뀌고 춤 강습이 계속되면서 여주인은 남편이 일부러 자리를 피해 외출을 한 거라며, 강사에게 남편귀가 전에 강습을 끝내라는 주문을 하고, 강사는 실은 자기의 처는 남성이며, 자신은 남성호모인 게이라는 고백을 한다. 여주인은 첫눈에 춤 강사를 그런 사람인 것으로 알아 봤다며 자신이 여교사 출신이라는 답변을 한다. 향후 두 사람의 끊임없는 말싸움과 한결같은 실랑이 속에서도 춤 교습이 지속되고, 두 사람의 춤은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의 춤동작으로 객석에 비춰진다, 춤을 추기위해 오디오를 틀 때마다 아래층 노부인으로부터 시끄럽다는 닦달 전화를 받지만, 여주인은 인내심으로 버티며 아래층 부인에게 다정하게 전화통화를 하는 모습에서 여주인의 교양미가 감지되고, 춤 강사의 그칠 줄 모르는 요설은 차츰 여주인은 물론 객석에까지 용납이 될 정도로 친근감이 형성이 된다. 아래층 전화는 어느 날 갑자기 아래층 노부인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어느 날 여주인은 초췌한 모습으로 현관문을 열어주고, 몸이 불편해 강습을 못 받겠노라고 하며 수강료 계산을 한다. 춤 강사는 그럴수록 연습을 게을리 해서는 아니 된다며, 여주인이 몸이 불편해도 돌보아줄 남편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여주인에게 무도회에 가자는 권유를 한다.
대단원에서 노부인의 지병인 암과의 투쟁이 알려지고, 노부인의 입원과 퇴원, 그리고 춤 강사의 간병 모습이 잔잔한 파도와 노을이 깃든 창가를 배경으로 그림처럼 펼쳐진다. 숙환으로 기진한 여주인에게 춤 강사는 붉은 노을을 속에서 춤을 추자고 청한다. 마지막인지 모를 두 사람의 춤이 꿈결 속에서처럼 펼쳐진다. 두 사람의 춤은 은하수 위로 긴 자취를 남기고 흐르는 밤하늘의 유성처럼 그 길고 긴 꼬리를 관객의 가슴에 깊이 심어놓는 명무로 연극을 마무리한다.
고두심.....그녀가 일생일대의 명연으로, 관객의 가슴에 뇌리에, 그녀의 열정과 춤, 그리고 체취를 듬뿍 실어 전달한다.
지현준...그의 천재적인 춤사위와 절제된 동작은 깊이 있는 연기와 더불어 그의 발전적인 장래를 예측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무대장치와 조명, 영상과 음악, 음향과 분장은 물론, 의상과 안무에 이르기까지 스텝 모두의 열정과 기량이 톱 클래스였기에 CJ E&M 제작, 리차드 알피에리 작, 김달중 연출의 <여섯 주 동안 여섯 번의 댄스레슨>을 우수작이자 걸작연극이라 평하겠다.
7월에 공연된 작품은 무더위보다 더 뜨거운 열기로 점철된 공연이 있었는가 하면, 무더위를 날려버릴 만큼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의 공연이 있었고, 무더위를 전혀 의식하지 못 할 만큼 공연에 몰입시킨 세계정상급 공연도 있어 필자로서는 관극자체가 더위를 극복하는 방법이고 피서라는 생각이다. 8월에도 역시 작열하는 태양 같은 공연이 있으리라 기대를 한다.
극작가/연출가/평론가 박정기(朴精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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