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에 용인 샘물 호스피스 병원에서 아버지를 간호하고 있는 철수의 형 영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제 아버지의 운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가족들이 다 모이라는 전화였다. 철수는 급히 택시를 탔다. 용인 샘물 호스피스 병원에 도착해서 철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는 거즈를 입에 대고 가쁜 호흡을 연신 내쉬고 계셨다.
형 영수는 간호사에게 동생 철수와 그의 가족들이 도착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간호사는 생명을 조금 연장시키는 주사를 놓았다. 이윽고 여동생들도 도착했다. 아버지는 영수를 포함한 4남매의 얼굴을 뚜렷이 보셨다. 그리고 얼마 후 아버지는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오후 4시 50분경 영수네 4남매의 아버지의 호흡이 점차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의 거친 호흡과 함께 소천하셨다. 인생을 흔히 들숨에서 날숨까지라고 한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숨을 들이마시며 태어나지만 죽을 때에는 숨을 내쉬면서 죽는다. 영수네 4남매와 가족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편안히 천국으로 가시도록 찬송가를 불렀다.
철수는 자신도 모르게 두 빰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철수의 아버지는 정말 인자하고 마음이 여린 분이셨다. 세상은 마음이 여린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 모진 풍파가 많은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을 '새옹지마', '부침', 'ups and downs' 그리고 '고해'라고 부른다.
철수의 아버지는 전라북도 정읍에서도 한 시간 가량 들어간 시골에서 직물사업을 하셨는데 사람들의 말에 너무 현혹이 잘 되어서 동업하고 돈을 엉뚱한 곳에 투자했다가 수없이 실패를 하셨다. 그의 아버지는 사업이 완전히 망한 후 50대 중반에 혈혈단신으로 성남으로 올라가셨다. 아버지는 시골 공장에서 기저귀와 손수건을 직접 만드셔서 서울에서 이 집 저 집으로 판매하러 다니셨다.
철수의 아버지의 친동생이신 철수의 작은아버지께서는 성남에서 안경점을 하시며 어느 정도 기반을 닦고 있으셨다. 그때 아버지는 동생이 세놓은 집의 방 한 칸을 얻어서 사셨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가 집을 방문해서 유아용품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면 사람들은 이야기를 잘 듣지도 않고 "당신 입만 아프니 다른 데로 가보세요"라고 말했다.
철수의 아버지는 점심때가 되면 언젝나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셨다. 식사를 제 때에 하는 것이 철수 아버지의 삶의 원칙이셨다. 그때 아버지의 옆 테이블에서 대학생들이 깎두기에 소주를 먹는 것을 본 철수의 아버지는 자신도 없는 형편에 그들에게 안주를 시켜 주셨다.
그의 아버지는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셔서 무작정 서울에서 유아용품으로 유명한 곳에 아무런 약속도 없이 들어가셨다. 그러자 경비가 철수의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왜 허락도 없이 이곳에 들어오는 겁니까?"라고 경비가 말했다. 아버지는 "제가 좋은 유아용품이 있어서 소개해 드리려고 왔습니다"라고 했다. 경비는 사장님께 이 일을 보고하고 사장님은 아버지와 유아용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아버지와 거래를 하셨다. 한 곳에 거래가 트이니 다른 곳들에서도 도미노처럼 거래가 이어졌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유아용품으로 유명한 여러 회사와 거래를 하게 되셨다. 영수와 철수는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의 아버지가 차취하시는 성남으로 올라왔다. 그의 어머니는 여동생 둘 그리고 할머니와 시골에 사셨다.
그의 아버지는 자취를 하시며 자신의 아들들에게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주셨다. 그의 아버지가 잘 만드는 음식은 바로 만두와 복어국이었다. 만두속에 들어갈 고기, 잡채, 시금치 등 온갖 양념들을 넣고 만드신 만두는 가족들의 별미중의 하나였다. 영수와 철수가 대학에 다니면서 영수네 가족의 어머니는 두 딸과 함께성남으로 올라오셨다. 영수네 가족은 4남매이다.
성남 작은아버지가 전세집을 비워서 어머니를 모셨다. 그런데 영수의 아버지의 지나친 음주는 훗날 간암의 원인이 되었다.
철수의 할머니는 38세에 남편을 여의고 혼자서 안 해보신 일이 없이 하셔서 5남매를 키우셨다. 그의 아버지의 사업은 점점 발전해서 유아용품에서 성공하셨다. 아버지는 유아용품 저장 창고가 필요해서 건물을 찾다가 여인숙 건물을 구입하시고 몇 년 후 그 건물을 지하 1층 지상 4층의 건물로 신축하셨다.
철수의 할머니는 그가 대학교 4학년에 다닐 때 뇌경색으로 돌아가셨다.
철수는 대학에 다니면서 장학금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그가 대학교 4학년때 과수석을 해서 장학금을 타서 그의 아버지께는 양복을 어머니께는 한복을 해드렸다. 철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한 학기 마치고 군대에 입대했다.
철수가 군대에서 느낀 것은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자신보다도 나이 어린 상급자 밑에 있다는 정신적인 문제였다. 그가 이등병때였다. 그의 고참이 불침번을 서고 그를 깨웠다. 이등병은 고참의 손이 옷깃에만 다아도 관등성명을 불러야 하는데 그는 한 번 잠에 빠지면 천둥 소리도 그에게는 아무도 없는 산사에 누워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고참은 화가 나서 체크리스판을 그의 머리에 쳤다. 그의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흐른다. 그의 고참은 다음날 철수를 기와건물쪽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그의 키와 기와의 높이가 비슷한 것을 보고 소대장께 철수가 화장실에 새벽에 가다가 머리가 기와에 닿아 찢어졌다고 했다. 그 외에도 철수가 겪은 여러 일들은 지면상 생략한다.
철수가 군생활을 한 지도 1년이 넘어 어느 날 그는 상병 계급장을 달고 휴가를 왔다. 그는 어머니께 가족사진 한 장을 찍자고 했다. 그는 다시 군대에 복귀했고 며칠 후 집에 전화를 하니 어머니께서 "지난 번 네가 휴가 왔을 때 찍은 가족 사진 아주 잘 나왔더라"라고 기뻐하신다.
그 전화가 철수와 어머니의 마지막 전화가 될 줄을 철수는 꿈에도 몰랐다. 그의 어머니는 철수의 전화를 받으시고 며칠 후에 화장실에서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그의 어머니께서는 중증 고혈압 환자셨는데 건강 검진을 받으신 후 잠깐 혈압약을 안드신 게 문제가 되었다.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그날 철수는 계시몽을 꾸었다 그가 갑자기 어두운 굴 속으로 들어가는 꿈이었다. 그는 꿈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의 부대로 전화 한 통화가 날라왔다. 그의 아버지의 전화였다. 의사가 이제 죽음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철수는 정신 없이 부대에서 청원휴가증을 받아서 어머니가 계신 병원으로 갔다.
그의 어머니는 이미 차디찬 시신이 되어 있으셨다. 그의 어머니는 뇌출혈로 쓰러지신지 몇 일만에 돌아가셨다. 그때 그의 어머니의 연세는 불과 55세이셨다. 그의 어머니께서는 네 자녀중 한 명도 결혼하는 것을 보지 못 하시고 눈을 감으셨다. 그의 어머니는 지난 번 철수의 휴가때 철수를 부대 앞까지 배웅해 주셨다. 그의 어머니는 아주 자상한 분이셨다.
어머니 장례식을 끝마치고 철수가 부대로 복귀하는 데 그의 형이 철수를 부대까지 배웅해 주었다. 부대 앞에서 철수의 형 영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철수는 부대에 복귀하자 어머니를 생각한 틈도 없이 훈련에 참여했다. 낮에는 바쁘게 훈련하다가도 밤이 되면 어머니 생각으로 침낭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어머니를 잊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철수는 제대 후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잊기 위해 바쁘게 살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학원에서 영어를 강의하며 대학원에서 영문학 공부를 병행했다. 철수는 일주일에 50시간씩 강의하며 2002년 6월에 영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철수는 박사 학위 논문을 쓰면서 어학원 강의를 했는데 강의실에서 그는 자신의 신발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의 왼 발에는 갈색 구두가 신겨져 있고 오른 발에는 검은색 구두가 신겨져 있는 것이었다. 그가 집에서 논문 수정본을 검토하며 나오면서 신발을 잘못 신은 것이다. 그는 강의가 끝난 후 택시를 타고 집에 가서 다시 신발을 바꿔 신고 집을 나왔다.
또 한 번은 그가 논문 수정본을 보다가 버스에 탔는데 차가 경기도 광주로 가는 것이었다. 그는 분당에 과외하러 가는 중이어서 다시 버스에서 내려서 택시를 타고 분당으로 향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샐린저와 벨로우의 작품과 도연명의 작품 비교 연구>였다. 그의 아버지는 가난하셔서 정규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셨다. 초등학교를 몇 년 다니신게 그의 아버지의 학력의 전부였다. 그렇지만 그의 아버지는 서당 교육을 받으셨고 혼자 책을 많이 읽으셨다.
아버지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새 여자와 분가해서 사셨다. 아버지는 그때 5억을 가지고 계셨는데 다단계 사업에 빠져서 전 재산을 날리셨다. 그때부터 그의 형 영수와 그는 아버지께 매달 몇 십만원의 용돈을 드렸다. 그때 그의 아버지는 영수와 철수 형제가 드리는 용돈으로 새 여자에게 용돈 주고 전기세와 수도세를 내주고 먹을 것은 그의 아버지께서 직접 사서 새 여자에게 주셨다.
아버지는 다단계 사업에 실패하기 전에 새 여자 명의로 집을 전세로 얻어 주셨다. 새 여자는 전세로 얻은 돈에 매달 받는 용돈을 더해서 빌라 한 채를 구입했다. 아버지는 하숙생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철수의 아버지가 다단계 사업을 하면서 어느 날 철수에게 인감 하나를 떼어 달라고 했다.
철수는 아무 생각 없이 인감을 한 통 떼어 드렸는데 그것이 과점주주가 되어 철수에게도 엄청난 세금이 날라오고 철수의 집은 압류당했다. 그가 지하철에서 교통 카드를 찍으면 E006이라는 신용 불량자 번호가 떴다. 철수 형제는 조세 심판원에 이의를 신청해서 결국은 승소했다. 철수 형제가 승소한 데에는 철수의 형 영수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그의 형은 그의 아버지가 다단계 회사를 폐업한 이후에 발생한 문제라는 여러 자료를 제출했고 그것이 승소의 이유가 되었다.
철수가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해에 이런 사건이 발생했고 얼마 안 있어 철수는 갑자기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는 갑자기 혈압이 올라가서 병원에 가서 심전도도 찍고 검사도 했는데 이상이 없었다. 철수가 한 번은 학교에서 강의를 하다가 갑자기 심장이 조여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강의를 끝낸 후 급히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는데 의사가 그에게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
주택 압류 사건 이후의 갑작스러운 공포감이 공황장애의 원인이 되었다. 작년 10월 철수의 아버지께서 허리가 너무 아프다고 정형외과에서 MRI를 찍으셨는데 의사 선생님이 이미 암세포가 전이된 것 같다고 하셔서 분당 서울대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간암 4기였다.
철수의 아버지는 갑자기 말기암 환자가 되셨다. 새 여자는 아버지가 말기암 환자인 것을 알고 아버지를 집에서 쫓아냈다. 아버지는 색전술(암세포가 전이되지 못하게 하는 수술)을 받으셨고 분당 서울대 병원에 입원하시면서 세례를 받으셨고 세례명은 요셉이었다. 철수의 아버지는 그의 형의 집에 계셨다. 철수는 시간이 남으면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음식을 사드렸다. 그의 아버 지는 2013년 1월 14일에 용인에 있는 샘물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하셨다.
철수의 형이 일주일에 5일은 간병을 하고 철수와 여동생이 일주일에 하루씩 간병을 했다. 철수의 형 영수가 그의 4남매중에서 가장 수고를 많이 했다. 철수의 아버지는 처음에는 음식을 떠서 입 안에 넣어드리면 잘 드셨는데 점점 음식을 못 드셨다. 점점 암세포가 그의 온 몸에 퍼졌다.
철수는 설날 전 날에 아버지에게 갔다. 아버지의 기력은 많이 쇠해지셨다. 밥은 전혀 못 드시고 물도 넘기기 힘들어 보였다. 철수는 아버지께 커피를 타드렸다. 그것이 철수가 아버지께 해드린 이승에서의 마지막 봉양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커피를 드신 후 계속 주무셨다. 그날 오후 철수의 바로 밑 여동생내외가 아버지께 갔는데 잠깐 깨어나셨고 막내 여동생이 아버지가 안좋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지방에서 급히 올라왔다.
막내 여동생이 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워 드렸는데 그것이 아버지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외출이 되었다. 철수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철수의 바로 밑 여동생이 병원에 와서 간병하고 있는데 그의 아버지는 자신을 간병하는 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다.
"죽은 너희 엄마가 내가 사준 새 옷을 입고 내 옆에 앉아 있다. 함께 가고 싶은데 내가 뼈밖에 남지 않아서 같이 못 떠나니 내 다리 좀 주물러 줘라"
결국 철수의 아버지는용인 샘물 호스피스 병원에 가신지 한달 후인 2013년 2월 14일에 소천하셨다. 미국의 유대계 작가인 솔 벨로우의 작품 <허조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인간의 마음은 양서류와 같다."
이 말은 인간에게는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응이 동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철수의 아버지는 철수에게 매달 첫 날 아침에 용돈 부쳤냐고 전화가 왔다. 철수는 그의 아버지께 "제가 빚쟁이예요?"라고 화를 낸 적도 있었다. 철수는 아버지에게 잘 해드리다가도 아버지가 너무 얄미운 적도 있었다.
화장터에서 철수는 아버지의 시신을 화장하고 수골함으로 갔다. 정말 남아 있는 것은 뼈 몇 조각 뿐이다. 화장장에서 그의 아버지의 뼈를 잘게 빻아서 삽으로 퍼서 분골함에 넣어 주셨다.
인생은 정말 한 점, 한 줌이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철수의 아버지는 79세로 현세에서의 삶을 마치셨다.
철수는 아버지의 유골함을 파주 보광사로 모시고 온 지금 아버지와의 추억을 회상한다. 그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아버지와의 좋지 않은 감정보다는 아버지와의 좋았던 추억을 떠올리겠습니다."
아무리 의식이 없으셔도 아버지께서 살아계신다는 자체만으로도 힘이 된다.
철수는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 아버지께 이런 말을 했다.
"아버지께서는 천국에서 신선처럼 사실 분인데 지상 세계에 내려 오셔서 고생이 많으시네요."
철수의 아버지는 파주 보광사에 있는 그의 어머니의 유골함 옆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셨다. 철수는 영가에 아버지께서 젊은 시절 어머니와 함께 찍으신 사진을 보니 마음 한 구석이 슬펐다.
철수는 아버지께서 용인 샘물 호스피스 병원에서 하신 말씀을 떠올린다.
"여기가 지상 천국이다."
모든 간호사, 자원봉사자들이 말기암 환자들이 마지막 가시는 길을 편히 가시도록 즐겁게 봉사하시던 모습이 눈 앞에 선하다.
철수는 길을 걸으면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철수야"라고 손짓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이 부모를 공양하고자 하나 부모님이 살아계시지 아니한다.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시는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께 이 글을 바친다. ***********
첫댓글 배독하고 갑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8.19 14:56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8.19 14:51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8.19 15:13
미국에서 아는 언니의 시아버님 문병을 했을 때 마지막 들숨과 날숨의 숨가빠 하시던 모습이 생경했습니다.우리 내 인생사 마지막 외출이 아름다운 기억의 소풍이 되길 바램해 봅니다.
잔잔한 사랑의 숨결이 전해오는 듯 합니다.
애쓰셨습니다.
소설 같습니다
다녀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