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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 方 廣 佛 華 嚴 經
第二會
一次 普光明殿(六品) 十信分
修因契果生解分
差別因果中 辨因
卷 第十四
十一, 淨行品
1. 지수(智首)보살이 문수(文殊)보살에게 법을 묻다 1
(1) 불과(佛果)의 삼업(三業)이 원만함을 묻다 1
(2) 불과(佛果)의 구족함을 묻다 2
(3) 열 가지의 지혜를 묻다 2
(4) 도(道)를 갖추는 인연이 되는 힘을 묻다 2
(5) 법의 선교(善巧)를 묻다 3
(6) 칠각분(七覺分)과 삼공(三空)을 묻다 3
(7) 육바라밀과 사무량심(四無量心)을 묻다 4
(8) 열 가지 힘을 묻다 4
(9) 열 명의 왕이 공경하고 호위함을 묻다 5
(10) 일체중생의 이익이 됨을 묻다 5
(11) 일체중생 중에서 가장 높음이 됨을 묻다 5
2. 문수(文殊)보살이 지수(智首)보살에게 대답하다 6
(1) 이익을 위하여 법과 물음을 찬탄하다 6
(2) 마음을 잘 쓰면 큰 공덕을 얻는다. 6
(3) 마음을 잘 써서 수승하고 큰 공덕을 얻음을 게송으로 답하다 7
① 집에 있을 때 마음 쓰는 법 7
② 출가(出家)해서 계(戒)를 받을 때에 마음 쓰는 법 10
③ 坐禪時
若入堂宇인댄
當願衆生이
昇無上堂하야
安住不動하며
若敷床座인댄
當願衆生이
開敷善法하야
見眞實相하며
正身端坐에
當願衆生이
坐菩提座하야
心無所着하며
結跏趺坐에
當願衆生이
善根堅固하야
得不動地하며
修行於定에
當願衆生이
以定伏心하야
究竟無餘하며
若修於觀인댄
當願衆生이
見如實理하야
永無乖諍하며
捨跏趺坐에
當願衆生이
觀諸行法이
悉歸散滅이니라
③ 좌선(坐禪)할 때에 마음 쓰는 법
만약 당우(堂宇)에 들어갈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위없는 당에 올라가서,
편안히 머물러 움직이지 않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상좌(床座)를 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선법을 열어 펼쳐서
진실한 모양 보기를 원 할지어다
몸을 바로하고 단정히 앉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보리좌에 앉아서,
마음에 집착하는 것이 없기를 원할지어다.
가부(跏趺)를 맺어 앉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선근(善根)이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지위를 얻기를 원할지어다
선정(禪定)을 닦아 행할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정(定)으로써 마음을 조복하여
구경(究竟)에 남음이 없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관(觀)을 닦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실상(實相)과 같은 이치를 보아서
길이 어기거나 다툼이 없기를 원할지어다
가부좌를 풀고 앉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모든 행법이,
다 흩어져 멸함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기를 원할지어다
③ 좌선(坐禪)할 때에 마음 쓰는 법이라
출가할 때
집에 있을 때
좌선할 때
若入堂宇인댄
當願衆生이
昇無上堂하야
安住不動하며
若敷床座인댄
當願衆生이
開敷善法하야
見眞實相하며
正身端坐에
當願衆生이
坐菩提座하야
心無所着하며
結跏趺坐에
當願衆生이
善根堅固하야
得不動地하며
修行於定에
當願衆生이
以定伏心하야
究竟無餘하며
若修於觀인댄
當願衆生이
見如實理하야
永無乖諍하며
捨跏趺坐에
當願衆生이
觀諸行法이
悉歸散滅이니라
만약 당우(堂宇)에 들어갈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위없는 당에 올라가서
堂자는 사실은 마루 堂자죠.
上堂法問 하고 뭐 할 때처럼 침상 堂자, 마루 堂자
위로 올라가
편안히 머물러 움직이지 않기를 원할지어다
만약에 상좌(床座)를,
禪床, 참선하는 그...
중국은 참선할 때 이래 같이 해보니까
우리처럼 방바닥에서 하는 게 아니고 이렇게 올라가서 하더만요. 그죠?
올라가서 하고
거기는 좀 특이하게 하더라고...
한 열흘 같이 이래 살면서 정진하는데 보니까
요만한~ 데 이렇게 여기 올라가서 해요.
올라가서 이렇게 보고 있는 거라.
면벽하는 게 아니고
그리고 반은 禪床에 올라가서 참선을 하고
뭐 절마다 풍습은 좀 다르겠지만
반은 한 30명이 들어가서 정진하면
15명은 참선방 禪床 위에 올라가요.
올라가서 가부좌 틀고 딱~ 앉아 있고
나머지 열댓 명은 그 앞에서 뱅뱅~ 돌면서
"아미타바~ 아미타바~ 아미타바~"
아미타불 염불 계~속 하는 거라.
잠 잘 여가도 없어요.
그렇게 한 30분 하다가 교대하고
그 팀이 올라가면 반대팀
청팀 올라가면 백팀 내려와서 또 뱅~뱅 도는 거라.
'이게 무슨 참선이고 이게 무슨 염불이고...' 싶대.
아마 정토선 같은 게 자리 잡으면서
그렇게 하니까 그런 데도 있기는 하지만
여기 한 번... 다 그런 뜻입니다.
우리 지금 선방에 이렇게 앉는 거 하고는 조금 내용이 다르죠.
요 정도밖에 안돼요. 상이...
잘못하면 쳐박히겠더라고요.
육조 혜능스님 절, 삭발했는 절 법성사라고 하죠.
요즘은 중국 꽝쩌우에 가면 광효사라고 하는 절이
바로 육조스님께서 다시 삭발하시고 난 뒤에
그 삭발한 머리카락을 묻은 자리에
보리수가 이만~하게 한... 서너 아름드리 되는
커~다란 것 몇 백 년 된 게 있습니다. 천 년된 게
그 뒤에 이제 祖堂이라고 있는데
조당 뒤에 선방이 있습니다.
선방에 가보니까
와~ 그 스님들은 얼마나 육조스님의 냄새가
천 년 뒤에까지 지금도 전해 오는지
이렇게 누워 있는데 미이라가 이렇게
나는 모형이 사람이 앉아 있는 줄 알았어요.
빼짝 마른 스님이 이래 누워 있는데 꼼짝도 안해요. 누워가지고
가만히~ 건드려보려 하니까 일어나더라고...
앉아서 가만히~~ 정말 부동이라.
우리 선방에 이런 냄새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조금 덩치가 왜소하고 그래서 그런지
빼싹 말라가지고 그렇게 앉아 있는데
미이라처럼 그렇게 누워 있고 앉아 있고
와선도 하고 좌선도 하고 그렇게 하대요.
그래서
'야~~ 정말 한 사람이 야무지게 살아놓으면
천년 뒤에 후손들까지도 그렇게 저렇게 사는구나!'
싶은 걸 한 번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몸을 바로 하고 선상을 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선법을 열어 펼쳐서
진실한 모양 보기를 원할지어다
몸을 바로하고 단정히 앉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보리좌에 앉아서
마음에 집착하는 것이 없기를 원할지어다.
보리좌에 앉는다는 말은
스스로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해주는 것이 보리죠.
自利利他가 菩提라.
가부(跏趺)를 맺어 앉을 때에는
마땅히 결가부좌 할 때는 마땅히 중생이
선근(善根)이 견고하여
딱 야무지게 매듭을 지은 것처럼 풀리지 않는 것처럼
딱! 결가부좌하고 앉아가지고
흔들리지 않는 부동지를 얻기를 원할지어다
不動地가 바로 無生法忍이죠.
선정(禪定)을 닦아 행할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정(定)으로써 마음을 조복하여
구경(究竟)에 남음이 없기를 원할지어다
어설프게 조금 남겨놨다가 다시 재발하면 골치 아프잖아요.
싹! 긁어내가지고 완전히 그냥 핵을 짜내버려야죠.
만약에 관(觀)을 닦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실상(實相)과 같은 이치를 보아서
길이 어기거나 다툼이 없기를 원할지어다
사마타를 닦을 때는
잡념을 끊기 위한 것이라면
비파사나를 닦을 때는
잡념이 너무 없어버리면 너무 맑아버리면 고기가 안 살듯이
자비심이 없어지니까 비파사나관을 닦는다고
기신론 같은 데는 그렇게 해놨죠.
摩訶止觀에도 그렇게 설명을 하죠.
止觀을 닦을 때의 예의를 자세히 해놓죠.
앞에는 선정을 닦을 때는
그게 이제 바로 止에 해당하게 되겠습니다.
전에 약간 설명을 드렸습니다.
止觀이나 定慧나 같은 말입니다. 그죠?
止觀은 因의 입장에서 얘기하는 것이고
결과적인 입장에서는
止는 定이 되고 觀은 慧가 되지요.
서로가 붙어 있기는 하지만...
이거는 因果로 따질 때는 因의 입장에서 이렇게...
果의 입장에서는 뭐죠?
선정과 지혜라 하죠.
定慧雙修라 하죠.
기신론에서는 止觀雙修로 배웠죠.
定慧雙修
바라밀을 닦을 때도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
이렇게 하지 않고 지관 바라밀 묶어서 얘기하잖습니까?
그때 이거는 시발적인 입장에서 얘기하는 거고
이거는 결론적인 입장에서, 골 지점에서 얘기하는 것이죠.
그리고
가부좌를 풀고 앉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모든 행법이
다 흩어져 멸함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기를 원할지어다
諸行이 無常하고 諸法에 無我고
그 다음에
④ 行時
下足住時에
當願衆生이
心得解脫하야
住不動하며
若擧於足인댄
當願衆生이
出生死海하야
具衆善法하며
着下裙時에
當願衆生이
服諸善根하야
具足慚愧하며
整衣束帶에
當願衆生이
檢束善根하야
不令散失하며
若着上衣인댄
當願衆生이
獲勝善根하야
至法彼岸하며
着僧伽黎에
當願衆生이
入第一位하야
得不動法이니라
④ 행(行)하고자 할 때에 마음 쓰는 법
발을 내려 머무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마음에 해탈을 얻어서,
편안히 머물러 움직이지 않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발을 들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생사의 바다를 벗어나
뭇 선법을 갖추기를 원할지어다
아래 옷을 입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모든 선근을 입어서
부끄러움을 갖추기를 원할지어다
옷을 정돈하고 띠를 맬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선근을 살피고 단속하여,
하여금 휘어지거나 잃지 않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윗옷을 입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수승한 선근을 얻어서
법의 저 언덕에 이르기를 원할지어다
승가리(僧伽黎)를 걸칠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제 1위에 들어가서
움직이지 않는 법 얻기를 원할지어다
④ 행(行)하고자 할 때에 마음을 쓰는 법이라
④ 行時에
下足住時에
當願衆生이
心得解脫하야
安住不動하며
若擧於足인댄
當願衆生이
出生死海하야
具衆善法하며
着下裙時에
치마 裙군자죠.
當願衆生이
服諸善根하야
具足慚愧하며
整衣束帶에
當願衆生이
檢束善根하야
不令散失하며
若着上衣인댄
當願衆生이
獲勝善根하야
至法彼岸하며
着僧伽黎에
當願衆生이
入第一位하야
得不動法이니라
발을 내려 머무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마음에 해탈을 얻어서
편안히 머물러 움직이지 않기를 원할지어다
참 우리에게 두 발이 있다는 사실마저도
기적과 같고 너무 아름다운 겁니다.
뭐 여러가지 불편한 걸 생각하시겠지만
그러나 두 발이 있는데
그게 무슨 위대하고 신비하고 기적같은 일이라 하냐고...
그러면 당장 오늘 한 발 잘라보든지
한 발 접어가지고 한 발로 집에 가시면 어떻습니까?
이것 불편해요.
다리 하나 내가 다쳐보니까 화장실 가기도 불편하고
다리를 다쳤는데 왜 손이 목발 짚으니까 손이 없어져버려.
아니 그렇찮아요?
두 다리 성할 때는 이 두 손도 같이 성한데
한 다리만 다치니까 두 손도 같이 불편한 거라.
그래 사람 집에 한 사람 아프면
자기 혼자 아픈 게 아니고 몇 사람이 아픈 거요?
온 집안이 다 아픈 것이라.
이런 거 저런 거 생각해가지고
내 아픈데 여러 사람한테 피해 안 준다 생각하지만
이 중은 아플 권리도 없어요. ㅎㅎ
무조건 아파도 안 아파야 돼.
부처님도 얼마나 편찮고 아스피린 잡숴야 될 일도 많았겠어요?
그래도 뭐 그래 살아가시는 거라.
제가 어른스님 이렇게 모시고 살면서
한 번은 이래 보니까 많~이 부으셨어요.
부으셨는데 보니까 이빨을 뽑으셨는가 봐.
한 6개를 수리하시고 하시는데
그래도 아무 말씀 안 하시고 강의하시더라고...
수리수리 마하수리 ㅎㅎ
그렇게 하시더라고...
'아~ 저렇게 하시는구나!'
강의 내~내 한 말씀도 없었어요.
거기에 대해서는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생각이 없으시고
오직 강의 내용만 남아 있으시는 거라.
그렇게 환희심을 느끼신 분들은
그래 見聞覺知하는 것이 전부 보현행이고
발을 옮기든지 내리든지 전부 문수심이고
그렇게 되는 거죠.
발을 내려 머무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마음에 해탈을 얻어서
편안히 머물러 움직이지 않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발을 들어서 움직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생사의 바다를 이렇게 쓱! 벗어나기를
뭇 선법을 갖추기를 원할지어다
着下裙時에
스님들은 三衣一鉢이라 해가지고
안쪽에는 安陀會 Antaravasa라 그러나요?
鬱多羅僧 Uttarasanga
바깥에 겉 가사는 僧伽梨 sanghati라 이렇게 얘기를 하거든요.
아래옷을 입을 때에는
오조가사 그런 것 입을 때는
마땅히 중생이
모든 선근을 입어서
부끄러움을 갖추기를 원할지어다
아래 옷을 입을 때에는 부끄러움을 갖추기를
최소한 無慙 無愧 하면 中隨煩惱에 떨어지면 안되죠.
뻔뻔스러워지죠.
뻔뻔스러워지면 조금 있으면 사람이...
그러니까 보복심이 강하고 원한심이 강하고 이렇게 그런 사람들은
남에게 아첨 잘 하고 이런 사람들은 뻔뻔스럽습니다.
뻔뻔스러우면 그 사람은 어디로 가느냐 하면
혼침하고 산란스럽고 방방 뜨고 이제 게으르고
그런 쪽으로 불신 종자가 살~ 이제 밀어져 나오는 거죠.
여기 그냥 써놓은 것도 써놓은 거지만 부끄러운 줄 알아야죠.
自懺自悔하고 흔히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되죠.
흔히 慙참이라고 하는 거는 스스로 부끄럽다 그러고
愧괴라고 하는 거는
남에게 조금 양심을 갖춘다~ 이런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참이라는 말은
또 잘난 분들에 대해서 좀 미안스럽게 생각하고
괴라고 하는 거는
밑에 사람들한테 조금 미안스럽게 생각하고
이게 이제 慙愧라 하고 여러가지 뜻이 있습니다.
그 다음
옷을 정돈하고 띠를 맬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선근을 살피고 단속하여
하여금 휘어지거나 잃지 않기를 원할지어다
절에서는 우리 어릴 때 발우 공양 하다가 보면
정신 없이 자다가 일어나서 밥 퍼고 이렇게 해야 되거든요.
자다가 밥 퍼다가 끈을 덜 매고 맸는 줄 알고 나왔는데
밥을 퍼도 절에는 전부 승복이 다 핫바지로 돼 있으니까
밥을 한참 퍼드리고 방장스님께 퍼드릴 때까지는 좋지.
다음에 주지스님 펄 때는 바지가 막 흘러내려가지고
이 밥통은 들고 바지는 밑에 흘러내리고...
이러는 수도 있죠. ㅎㅎㅎ
어떤 때는 냉면 먹다가 정신 없으면
이제 퇴수 그릇을 저~ 밑에서부터
하판에서부터 상판으로 이렇게 올라가야 되는데
방장스님 앞에 떡~ 먼저 갖다놓으면 방장스님이
"야가 냉면 먹고 취했나~"
이렇게...ㅎㅎ
그런 큰방에서 에피소드가 많~죠.
우리가 이렇게 살다보면
스님들도 그런 것 많이 느끼셨겠지만...
죽비 치다가 지대방에 있다가 허겁지겁해서 큰방에 와서
죽비 소리 탁 탁 치니까
들어와서 전부 앉아 있으니까 발우를 척~ 펴는데
다른 사람들 일어나버리는 수도 있고....
공양 끝나고... ㅎㅎ
참 여러 군데가 많습니다.
지금 여기 이것 읽으니까
그 때 그 시절을 지내왔던 게 그냥 주마등처럼 정말 스친다더니
확~ 나오네요.
밖에 이렇게 지금 옵저버라 해가지고
참가하신 신도분들께서는 잘 모르시겠죠?
한 번 살~ 깎아보십시오. ㅎㅎ
절에 들어오면 재밌습니다.
스님들이야 뭐 늘 이렇게 살아가는 거니까 환~하지만....
그 다음에
옷을 정돈하고 띠를 맬 때에는 그렇고
자기를 잘 단속해라~ 이말이에요.
만약 윗옷을 입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수승한 선근을 얻어서
법의 저 언덕에 이르기를 원할지어다
승가리(僧伽黎)를 걸칠 때에는
제대로 된 가사를 걸칠 때는
마땅히 중생이
제 1위에 들어가서
이것이야말로 제 1위 아니겠어요?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이 가사야말로
이 세상에 제일 괴로운 일이 袈裟下에 未明心이라.
가사 입고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이것보다 더 괴로운 일은 없다고 얘기하는 거죠.
제 1위에 들어가서
움직이지 않는 법 얻기를 원할지어다
舊來不動名爲佛이라
움직이지 않는 법이라고 하는 거는 불법이죠.
승가리라고 하는 것은 화합을 뜻하고
그렇게 돼 있어요.
그 다음에
⑤ 用便洗手
手執楊枝에
當願衆生이
皆得妙法하야
究竟淸淨하며
嚼楊枝時에
當願衆生이
其心調淨하야
噬諸煩惱하며
大小便時에
當願衆生이
棄貪瞋癡하야
蠲除罪法하며
事訖就水에
當願衆生이
出世法中에
速疾而往하며
洗滌形穢에
當願衆生이
淸淨調柔하야
畢竟無垢하며
以水盥掌에
當願衆生이
得淸淨手하야
受持佛法하며
以水洗面에
當願衆生이
得淨法門하야
永無垢染이니라
⑤ 대소변을 보고 세수할 때에 마음 쓰는 법
손으로 양칫대를 잡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모두 묘한 법을 얻어서
구경에 청정하기를 원할지어다
양칫대를 씹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그 마음이 고르고 깨끗하여
모든 번뇌 씹기를 원할지어다
대소변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탐진치를 버려서
죄업(罪業)을 깨끗이 없애기를 원할지어다
일을 마치고 물에 나아갈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출세하는 법 가운데
빨리 가기를 원할지어다
몸의 더러운 것을 씻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깨끗하고 부드러워
필경에 때가 없기를 원할지어다
물로 손을 씻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깨끗한 손을 얻어서
불법(佛法)을 받아 지니기를 원할지어다
물로 얼굴을 씻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청정한 법문을 얻어서
길이 더러움에 물듦이 없기를 원할지어다
⑤ 대소변을 보고 세수할 때에 마음을 쓰는 법이라
별 것 다 해놨죠?
手執楊枝에
當願衆生이
皆得妙法하야
究竟淸淨하며
嚼楊枝時에 (嚼씹을 작, 깨물 초)
當願衆生이
其心調淨하야
噬諸煩惱하며 (噬서 깨물 , 씹을)
大小便時에
當願衆生이
棄貪瞋癡하야
蠲除罪法하며 (蠲견 밝을)
事訖就水에
當願衆生이
出世法中에
速疾而往하며
洗滌形穢에
當願衆生이
淸淨調柔하야
畢竟無垢하며
以水盥掌에 ( 盥관 대야 )
當願衆生이
得淸淨手하야
受持佛法하며
以水洗面에
當願衆生이
得淨法門하야
永無垢染이니라
손으로 양칫대를
그 옛날에는 버드나무 가지가 부드럽고 이랬잖아요?
치솔 하고 했으니까
양칫대를 잡을 때에는
요새는 버드나무 양치 그대로 쓰죠.
마땅히 중생이
모든 묘한 법을 얻어서
구경에 청정하기를 입을 헹구듯이 그렇게 원할지어다
양칫대를 씹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마음이 고르고 깨끗하여
모든 번뇌 씹기를 원할지어다
그러니까 버드나무에도 치약같은 성분도 좀 있다 하죠?
버드나무
마음이 고르고 깨끗하여
모든 번뇌 씹기를 원할지어다
대소변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탐진치를 버려서
죄업(罪業)을 깨끗이 없애기를 원할지어다
똥을 삶아먹고 이런 사람 없잖아요.
아까워가지고 안 버리고 이런 사람도 없잖아요.
확! 버려야 돼.
탐진치 뭘 쓸만하다고 계속 꾹~ 잡고 안 버리려 하는지
별로 좋은 것도 아닌데 툭툭 털어버리면 되는데
탐진치 버리기는 커녕 뭐 탐진치에 사로잡혀가지고
애지중지하고 사는 게 이제 우리 인생 아닙니까?
저부터라도 그래요.
일을 마치고 물에 나아갈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출세하는 법 가운데서
빨리 가기를 원할지어다
몸의 더러운 것을 씻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깨끗하고 부드러워
필경에 때가 없기를 원할지어다
오늘 이래도 밥을 자실런가...ㅎㅎ
물로 손을 씻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깨끗한 손을 얻어서
불법(佛法)을 받아 지니기를 원할지어다
깨끗한 손에다 불법을 받아야지.
그래서 경전을 읽을 때는 꼭 7번 손 씻어라 하잖습니까?
우리 여기 오면 아무도 손 안 씻죠.
7번 손 씻고 경전 펼친다고 하는 경전 독송하는 법들이
정해진 건 아니지만 그렇게 정해놓은 법도의례는 있습니다.
물로 얼굴을 씻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청정한 법문을 얻어서
길이 더러움에 물듦이 없기를 원할지어다
⑥ 乞食
手執錫杖에
當願衆生이
設大施會하야
示如實道하며
執持應器에
當願衆生이
成就法器하야
受天人供하며
發趾向道에
當願衆生이
趣佛所行하야
入無依處하며
若在於道인댄
當願衆生이
能行佛道하야
向無餘法하며
涉路而去에
當願衆生이
履淨法界하야
心無障礙하며
見昇高路에
當願衆生이
永出三界하야
心無怯弱하며
見趣下路에
當願衆生이
其心謙下하야
長佛善根하며
見斜曲路에
當願衆生이
捨不正道하야
永除惡見하며
若見直路인댄
當願衆生이
其心正直하야
無諂無誑하며
見路多塵에
當願衆生이
遠離塵坌하야
獲淸淨法하며
見路無塵에
當願衆生이
常行大悲하야
其心潤澤하며
若見險道인댄
當願衆生이
住正法界하야
離諸罪難이니라
⑥ 걸식하러 나갈 때 마음 쓰는 법
손으로 석장(錫杖)을 잡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크게 보시하는 모임을 베풀어서,
실상과 같은 도를 보이기를 원할지어다
응기(應器)를 집어 가질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법의 그릇을 성취하여
하늘과 사람의 공양 받기를 원할지어다
발을 내딛어 길을 향할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부처님이 행하시던 데로 나아가,
의지할데 없는 곳에 들어가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길에 있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능히 불도를 행하여
나머지 없는 법을 행하기를 원할지어다
길을 걸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청정한 법계를 밟아서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원할지어다
높은 길에 올라감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길이 삼계를 벗어나서
마음에 겁약(怯弱)함이 없기를 원할지어다
낮은 길에 나아감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그 마음이 겸손하고 하심 하여,
부처님의 선근을 장양(長養)하기를 원할지어다
비탈지고 굽은 길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바르지 않은 길을 버려서
길이 악견(惡見)을 없애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곧은길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그 마음이 바르고 곧아서
아첨 없고 속임 없기를 원할지어다
길에 티끌이 많음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멀리 티끌을 여의어서
청정한 법 얻기를 원할지어다
길에 티끌이 없음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항상 큰 자비를 행하여
그 마음이 윤택하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험한 길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바른 법계에 머물러서
모든 죄와 어려움을 여의기를 원할지어다
⑥ 걸식하러 나갈 때 마음 쓰는 법
걸식을 하는 거는 여러가지가 이유가 있죠.
중생상을 타파하는 것도 되고
또 걸식함으로 해서
그 사람이 불법의 인연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도 해주는 것이고
그런데 요새는 뭐 그렇지 않고
이렇게 하다가 보니까 폐단이 너무 많으니까
우리나라 걸식 거의 없어졌죠.
탁발하는 것이
手執錫杖에
當願衆生이
設大施會하야
示如實道하며
執持應器에
當願衆生이
成就法器하야
受天人供하며
發趾向道에
當願衆生이
趣佛所行하야
入無依處하며
若在於道인댄
當願衆生이
能行佛道하야
向無餘法하며
涉路而去에
當願衆生이
履淨法界하야
心無障礙하며
見昇高路에
當願衆生이
永出三界하야
心無怯弱하며
見趣下路에
當願衆生이
其心謙下하야
長佛善根하며
見斜曲路에
當願衆生이
捨不正道하야
永除惡見하며
若見直路인댄
當願衆生이
其心이 正直하야
無諂無誑하며
見路多塵에
當願衆生이
遠離塵坌하야 (坌분 티끌)
獲淸淨法하며
見路無塵에
當願衆生이
常行大悲하야
其心潤澤하며
若見險道인댄
當願衆生이
住正法界하야
離諸罪難이니라
제가 생각 났는 게 또 읽다가 이렇게 생각 났는 게 그거네요.
앞으로 조금 펴가지고 17P요.
噬諸煩惱하야, 모든 번뇌를 씹기를
깨물 噬서자라고 했죠?
제가 잘 쓰는 말 중에 능엄경에 나오는 얘깁니다만
噬臍莫及이라.
배꼽 臍제자, 그래 하나 써놓으면 좋겠네요.
말 莫막자, 미칠 及급자
배꼽을 깨물어도 깨물 수가 없다, 하는 거죠.
噬臍莫及이라.
여기 내용 하고는 전혀 다르겠습니다만
경전 읽다가 좋은 내용이라서 제가 체크해놓은 것입니다.
아까 읽다가 문득 떠올랐어요.
경전을 이제 크게 많이 공부한 거는 저는 아니지만
이렇게 읽다보면 그런 게 있죠.
가만~히 있으면 경전이 지가 와서 그 구절이 와서
'스님 나도 한 번 스님 입으로 나오고 싶습니다.'
이럴 때가 있죠. ㅎㅎ
지가 이제 얘들이 이리로 오고 저리로 오고 불러 와요.
끄집어내려고 하면 힘들어 죽겠는데
지가 나와서 톡 튀어나와버리니까 기분이 좋죠.
부지런히 읽으세요.
부지런히 읽으셔야...
손으로 석장(錫杖)을 잡을 때에는
석장을 잡을 때는
저쪽에서는 6개 해가지고 이렇게 하지만
이쪽은 12개 해가지고 이렇게 하기도 하죠.
4개 하고 12개 하고 6개 하고 다 의미가 있죠.
짤랑 짤랑~ 해서 이제 석장을 잡을 때는
개미나 작은 미물들이 자리를 피해라고
그렇게 이제 탁발하러 나갈 때 그렇게 하는 거요.
마땅히 중생이
크게 보시하는 모임을 베풀어서,
실상과 같은 도를 보이기를 원할지어다
응기(應器)를 집어 가질 때에는
발우를 들고 나갈 때는
마땅히 중생이
법의 그릇을 성취하여
인천의 공양을 받기를 원할지어다
발을 내딛어 길을 향할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부처님이 행하시던 데로 나아가
의지할데 없는 곳에 들어가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길에 있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능히 불도를 행하여
나머지 없는 법, 무여법을 행하기를 원할지어다
길을 걸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청정한 법계를 밟아서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원할지어다
높은 길에 올라감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길이 삼계를 벗어나서
向上一路
마음에 겁약(怯弱)함이 없기를 원할지어다
無伽碍 無伽碍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이라
究竟涅槃까지가 해당하겠네요.
낮은 길에 나아감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그 마음이 겸손하고 하심하여
부처님의 선근을 장양(長養)하기를 원할지어다
하심을 대표적으로 표하는 것을 우리는 바다라고 얘기 하죠.
바다는 어떻죠?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고 바다라고 하죠. 바다
그래도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마음이 그냥 빼딱~하니 그렇죠.
初發心自警文에 어떻게 나옵니까?
凡有下心者는 萬福이 自歸依라.
하심하는 사람에게는
부처님처럼 만 가지 복이 스스로 귀의해서 들어온다.
절에 부자절에 가면 그 스님이 하심을 잘 하는 스님입니다.
잘 먹고 잘 사는 절에는
그 뭐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지만
'아~ 이 스님은 넉넉한 것 보니까 하심이 잘 돼 있는 스님이구나...'
어떤 데 가면 먹고 못사는 거
게으르든지 아니면 도가 높든지 둘 중에 한 개라.
먹고 못사는 데는...ㅎㅎ
도가 높아서 그런 것이 필요 없든지
부처님처럼 天上天下 唯我獨尊 하든지
원효스님처럼 그렇게 탱천해가지고 혼자 잘 난척 하고 사시든지
그렇게 이제 사시는 분들은
가난해도 가난한 게 아니고 귀하게 사시니까 괜찮죠.
獨修常尊
혼자서 그렇게 獨也靑靑하고 사시는 분들도 계시죠.
비탈지고 굽은 길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바르지 않은 길을 버려서
길이 악견(惡見)을 없애기를 원할지어다
악견이 없어지면,
악견은 어떻습니까?
이 번뇌 중에서 우리가 흔히 10가지를 十使라 그러죠.
앞의 것은 貪 瞋 癡 慢 의심까지는, 이거는 찐득찐득해요.
五鈍使라 그러죠. 오둔사
그리고 악견은 이거는 날카로운 五利使라.
이거는 모래처럼 탈탈 털리기는 견해를 버리기는 쉬워요.
그런데 앞에 이거는 조청 같아가지고 찐~득찐득해.
탐진치 교만하고 의심하고
貪 瞋 癡 慢 疑는 찐~득찐득한 五鈍使라.
골탄 같은 것 골탄 같고
악견은 뒤에 붙으면 五利使는 어떻습니까?
身見 邊見 邪見 見取見 戒禁取見
이렇게 얘기하죠?
제가 왜 이런 얘기를 굳이 말씀드리느냐 하면
그냥, 악견,
아~ 나쁜 견해를 없애기를 원할지어다,
글에는 이렇게 돼 있고 넘어가지만
우리 지금 여기서 대학원, 또 화엄경, 이래 보는 입장에서는 낱낱이
그러면 내 몸이 있다, 내 소유가 있다, 집착하는 것 身見
我와 我所에 집착하는 것
邊見,
사람은 죽으면 인생이 끝이다, 斷見 常見에
이쪽이냐 저쪽이냐, 좌익이냐 우익이나 따지면 邊見
좌변 우변 따지면
見取見,
자기 소견머리 좀 돋아나면 거기에 사로잡혀가지고
자기 것이 옳다고 빡~빡 우기죠.
내 사상이 어떻고 니 사상이 어떻고
돈오점수가 어떻고 돈오돈수가 어떻고
빨갱이는 빨갱이 대로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대로 별 걸 다 합니다.
그거 전부 見取見
또 戒禁取見
邪見,
내가 잘 먹고 잘 살면 땡이지.
인과는 없다. 죽으면 끝이지 뭐.
이렇게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사견이죠. 사견
撥無因果 하는 사람들,
인과를 없다고 부정하는 사람들,
인과를 믿지 않으면 불교를 믿지 않는 거죠.
인과는 역연하죠.
아함경에 나오는 대목이 어떻습니까?
假使百千劫....어떻게 되나요?
所作業은 不無하여 因緣合遇時에 果報를 還自受 하리라.
그것 안 믿으면 불교 안 믿는 거죠.
그게 이제 邪見이죠. 사견
身見 邊見 邪見 見取見 戒禁總見
자장율사 같은 분들도 戒禁取見에 걸려가지고 문수보살을 친견 못하죠.
깨끗하게 해가지고
절에 죽은 개를 이렇게 내려놓으니까 어떻게 했습니까?
"왜 아침부터 이 늙은이가 절에 와서
죽은 개를 갖다가 절에 풀어놓고 데리고 왔냐"고
문수보살 친견한다고 지금...그죠?
結界, 禁亂榜을 붙여가지고
'도량에 지금 이렇게 아~주 밥도 안 먹고 지금 정진하고 있는데
그렇게 추접게 한다고...'
뭐라 해버렸더니...
노인이 개를 쓰윽 내려놓고 그 죽은 개가 어떻게 됐죠?
청사자가 되고 노인은 그 청사자를 타고 갔다는데
그 노인이 알고 보니까 문수보살이라.
그 얘기는 실화든지 아니든지 간에
거기서 우리한테 경계하는 것은
너무 그래 호들갑 떨고 니 잘났다고 깨끗하게 사는 척 하지 마라.
戒禁取見에 떨어지면
눈 앞에 있는 부처님도 못보고 문수보살도 볼 수가 없다.
이게 전부 악견들입니다. 악견들
계금취견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그런 거는 이제 좀 털어버리기는 쉬워요.
악견은 자기 생각만 바로 잡으면
이제까지 자기 인생을 계~속 사리불 목련존자처럼 살아오다가
아~자기의 견해가 아니다 싶으면 즉시에! 털어버릴 수 있잖아요.
그런데 탐진치 같은 건 잘 안 떨어져요.
하루 아침에...
처음에는 제가 볼 때는 검은 때가 쑥 빠지는 것 같아요.
제가 본다 해서 바른 것도 아니지만... ㅎㅎ
그 다음에 속 때가 빠지는 것 같아요.
묵은 때는 죽어도 안 빠져요.
묵은 때가 빠지려면 어느 날 시절인연이 도래해서
마치 화공약품 싹! 썼을 때
즉시에 그것 왜 락스 같은 것 하든지 뭐 이런 것 있잖아요?
시절인연이 되고 선지식을 만나고 어떤 계기가 돼가지고
자기가 사물을 보든지 소리를 듣든지 물건을 보든지
보고 듣고 하든지 사람을 만나든지 이런 계기가 됐을 때
묵은 때가 확! 빠지면서 무생법인을 얻는 것 같아요.
저는 안 가봐서 그런 것 모르겠지만...
그냥 검은 때 그저 바깥에 때 구정물 조금 이렇게 얼룩도 안 진 것
그것 이제 대충 세탁해서 입고 다니는 게 그냥 수도자라고 보면 돼요.
수도는 그런 게 수도가 아니고
어느 정도 어질게 되면 그냥 양심은 갖춰져 있는 것이고
지금 그 단계도 아니거든요. 여기는
저~ 밑에거든.
그걸 이제 통과하게 되면
어느 정도 이제 이치를 알게 되고 통달하면
도를 본다 이런 수준이죠.
그 다음부터는 具戒地라 해서
끊임 없는 수행의 연속이 돼야 되는 거죠.
수행이 연속돼서
그 수행이 남을 위해서 완~전히 꽃 펴서 무르익어서
회향하는 마음이 이제 갖춰졌을 때
그게 이제 회향하는 마음이 갖춰진다 하더라도 꽃은 안 피고
꽃몽우리 좀 이래 돼 있죠. 꽃몽우리처럼
그러다 회향하는 마음이 이제 완~전히 무르익어가지고
꿈속에도 이래 자다가도
남한테 나눠주는 마음이 이렇게 생겨진다 하면
꿈속에서 불안하고 떨고 초조하고 가위에 눌리고 이런 것이 아니고
꿈에까지라도 자식 생각해가지고
현실상에는 못주면 꿈에라도 막 줄 수 있잖아.
꿈에는 공짜니까 그죠?
꿈에는 돈이고 떡이고 막 줄 수 있거든. ㅎㅎ
그런 마음이 현실상에서 있다가
꿈속까지도 남에게 나눠주는 이런 마음들이 확 도래했을 때
비로소 이제 자기 마음의 心花가 조금 피는 것 같아요.
그때 見道라.
도를 이제 보는 것이라.
지금 여기는 그 예행 연습 턱이죠.
맞는지 안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악견도 없애고,
여기 얘기를 다 줄이면 뭐가 되겠습니까?
衆善奉行 諸惡莫作
어떤 조건이든지 나쁜 걸 만났을 때는
또 나쁜 걸 안 따라 가기를 원하고
좋은 걸 만났을 때는
좋은 걸 따라 가기를 원한다.
이것이 이미 돋아난 선근은 없어지지 않기를,
그걸 뭐라 하죠?
四如意足이라 하죠. 그죠?
이미 돋아난 악한 것은 빨리 뽑기를 원하고, 그죠?
아직 돋아나지 아니한 악근은 어때요?
돋아나지 않기를 눌러버리고
이미 돋아난 선근은 잘 크기를 바라고
아직 돋아나지 않은 선근은 돋아나기를 바라고
저기 십지품 가면
이제 한 4지쯤 가면 그것 나오겠네요. 그죠?
四如意足 37조도품에 대해서 쭉~ 설명해놨죠.
곧은 길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그 마음이 바르고 곧아서
아첨 없고 속임이 없기를 원할지어다
아첨 속임, 여기는 2 가지만 써놨지만
조금 늘리면 이래요.
분하고 한스럽고 가리고 덮고 숨기고
忿 恨 覆 惱, 남을 뇌고롭게 하고 골치 아프게 하고
그 다음에 誑, 속이고
諂, 아첨하고 교만하고 해코지하고
이 8가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게
이 앞에 악견할 때 좀 늘려서 다섯 가지로 얘기했죠.
여기도 얘기하면 8 가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거라.
그래 가만히 보면
남한테 분한 마음을 많이 내고 지 마음에 안들면
뭣이 한스러운 게 많고 가리고 덮고 숨기고 막~이런 것이 많고
남 교만스럽고 해코지 잘 하는 이런 사람들은
아첨하고 속이는 게 딱 붙어 질투 많고
같이 가더라도 왜 시장 같이 가가지고
도너츠 하나도 안 사고 이런 사람도 있잖아요.
얍삽하게~ ㅎㅎ
아니 그런 사람들 많잖아요.
그런 사람들 아첨하고 속이는 것도
그리고 지 마음에 들면 만 원 그~얻어먹으려고
막 오천 원까지는 팍팍 쓴다. 그래도
그런데 자기한테 한 푼도 없으면 한 푼도 안 써요.
길에 티끌이 많음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멀리 티끌을 여의어서
청정한 법 얻기를 원할지어다
그래 제가 이렇게 화엄경 이래~ 보면서
'어떻게 이래 자세하게 써놨노~'
감탄할 때
이것은 실제적으로 이 길에서 수행길에서
자기가 체험해보고 성공했던 사람이 토로해놓은 것 같아요.
토로해놓은 게 맞죠. 사실이죠.
또 우리가 가야될 길이기도 하고... 재밌죠.
이것만 잘 보면 한 백 일만 야무지게 보면
점쟁이집 철학관에 문 다 내려야 된다.
척~ 보면 음...말하는 것 보고 밥 먹는 것 보고 이러면 다 보이잖아요.
이 도장 찍히듯이 보인다. 찍히듯이
길에 티끌이 없음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항상 큰 자비를 행하여
그 마음이 윤택하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험한 길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바른 법계에 머물러서
모든 죄와 모든 어려움을 여의기를 원할지어다
⑦ 山林
若見衆會인댄
當願衆生이
說甚深法하야
一切和合하며
若見大柱인댄
當願衆生이
離我諍心하야
無有忿恨하며
若見叢林인댄
當願衆生이
諸天及人의
所應敬禮하며
若見高山인댄
當願衆生이
善根超出하야
無能至頂하며
見棘刺樹에
當願衆生이
疾得翦除
三毒之刺하며
見樹葉茂에
當願衆生이
以定解脫로
而爲蔭暎하며
若見華開인댄
當願衆生이
神通等法이
如華開敷하며
若見樹華인댄
當願衆生이
衆相如華하야
具三十二하며
若見果實인댄
當願衆生이
獲最勝法하야
證菩提道하며
若見大河인댄
當願衆生이
得預法流하야
入佛智海하며
若見陂澤인댄
當願衆生이
疾悟諸佛의
一味之法하며
若見池沼인댄
當願衆生이
語業滿足하야
巧能演說하며
若見汲井인댄
當願衆生이
具足辯才하야
演一切法하며
若見湧泉인댄
當願衆生이
方便增長하야
善根無盡하며
若見橋道인댄
當願衆生이
廣度一切를
猶如橋梁하며
若見流水인댄
當願衆生이
得善意欲하야
洗除惑垢하며
見修園圃에
當願衆生이
五欲圃中에
耘除愛草하며
見無憂林에
當願衆生이
永離貪愛하야
不生憂怖하며
若見園苑인댄
當願衆生이
勤修諸行하야
趣佛菩提니라
⑦ 자연을 보았을 때 마음 쓰는 법
만약 대중이 모인 것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깊고 깊은 법을 설하여
온갖 것이 화합하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큰 불기둥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나의 다투는 마음을 여의어서,
분한 마음이 없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총림(叢林)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모든 하늘과 사람들에게,
응당 공경하고 예배하는 바가 되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높은 산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선근이 뛰어나서,
능히 정상에 이르러도 만족함이 없기를 원할지어다
가시나무를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빨리 삼독의 가시를
제거할 수 있기를 원할지어다
나무의 잎이 무성함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선정과 해탈로서
그늘이 비치게 되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꽃이 피는 것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신통과 여러 법이
꽃과 같이 피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꽃이 핀 나무를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여러 상호가 꽃과 같아서
32상이 구족하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열매를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가장 수승한 법을 얻어서
보리도를 증득하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큰 강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법의 흐름에 참예(參預)하여,
부처님의 지혜바다에 들어가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늪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모든 부처님의
일미의 법을 빨리 깨닫기 원할지어다
만약 연못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어업(語業)이 만족하여
교묘히 연설하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물 긷는 우물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변재를 갖추어서
온갖 법을 연설하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솟아오르는 샘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방편을 증장(增長)하여
선근이 다함없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다리 놓인 길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널리 온갖 것을 제도함에
마치 다리와 같이하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흘러가는 물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좋은 의욕을 얻어서
의혹의 때를 씻어 제거하기를 원할지어다
원두밭 매는 것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오욕의 원두밭 가운데
애욕의 풀을 뽑아 제거하기를 원할지어다
근심 없는 숲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길이 탐욕과 애정을 여의고,
근심과 두려움이 생기지 않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동산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모든 행을 부지런히 닦아서
부처님 보리에 나아가기를 원할지어다
⑦ 자연을 보았을 때 마음 쓰는 법
若見衆會인댄
當願衆生이
說甚深法하야
一切和合하며
若見大柱인댄
當願衆生이
離我諍心하야
無有忿恨하며
若見叢林인댄
當願衆生이
諸天及人의
所應敬禮하며
若見高山인댄
當願衆生이
善根超出하야
無能至頂하며
見棘刺樹에
當願衆生이
疾得翦除 (翦 자를 전, 화살 전)
三毒之刺하며
見樹葉茂에
當願衆生이
以定解脫로
而爲蔭暎하며
若見華開인댄
當願衆生이
神通等法이
如華開敷하며
若見樹華인댄
當願衆生이
衆相如華하야
具三十二하며
若見果實인댄
當願衆生이
獲最勝法하야
證菩提道하며
若見大河인댄
當願衆生이
得預法流하야
入佛智海하며
若見陂澤인댄 (陂 비탈 피, 비탈 파)
當願衆生이
疾悟諸佛의
一味之法하며
若見池沼인댄
當願衆生이
語業滿足하야
巧能演說하며
若見汲井인댄
當願衆生이
具足辯才하야
演一切法하며
若見湧泉인댄
當願衆生이
方便增長하야
善根無盡하며
若見橋道인댄
當願衆生이
廣度一切를
猶如橋梁하며
若見流水인댄
當願衆生이
得善意欲하야
洗除惑垢하며
見修園圃에
當願衆生이
五欲圃中에
耘除愛草하며
見無憂林에
當願衆生이
永離貪愛하야
不生憂怖하며
若見園苑인댄
當願衆生이
勤修諸行하야
趣佛菩提니라
많네요.
만약 대중이 모인 것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깊고 깊은 법을 설하여
온갖 것이 화합하기를 원할지어다
異姓同居에는 必須和睦이요 方袍圓頂에는 相互淸規 라
갖가지 성받이끼리 살 때에는 반드시 화목해야 되고
머리 깎고 가사 입었을 때는 청규를 지켜라 하는 옛말이 있죠.
만약 큰 불기둥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나의 다투는 마음을 여의어서,
분한 마음이 없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총림(叢林)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하늘과
叢林이라는 거는 빽빽~하게 이제 나무가 심어져 있는 거죠.
(草不亂生活叢) 木不亂長活林이라 하잖아요.
나무가 총총~하면 다 곧게 자라잖아요.
사람이 여러 사람 있으면 다 곧게 크죠.
형제간이 많은 사람들 대충 곧고
형제간이 없으면 빼딱하죠. 애들이
외동 아들이 좀 고집스럽잖아요.
모든 하늘과 사람들에게
응당 공경하고 예배하는 바가 되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높은 산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선근이 뛰어나서
능히 정상에 이르러도 만족함이 없기를 원할지어다
가시나무를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빨리 삼독의 가시를
제거할 수 있기를 원할지니라
나무의 잎이 무성함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선정과 해탈로서
그늘이 비치게 되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꽃이 피는 것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신통과 여러 법이
꽃과 같이 피기를 원할지어다
매일 피죠. 우리 마음에는
만약 꽃이 핀 나무를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여러 상호가 꽃과 같아서
32상이 구족하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열매를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가장 수승한 법을 얻어서
보리도를 증득하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큰 강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법의 흐름에 섞여서 참예(參預)하여
부처님의 지혜바다에 들어가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늪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모든 부처님의
일미의 법을 빨리 깨닫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연못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어업(語業)이 만족하여
교묘히 연설하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물 긷는 우물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변재를 갖추어서
온갖 법 연설하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솟아오르는 샘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방편을 증장(增長)하여
선근이 다함이 없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다리를 놓인 것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널리 온갖 것을 제도함에
마치 다리와 같이 하기를 원할지어다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그것도 있죠.
만약 흘러가는 물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좋은 의욕을 얻어서
의혹의 때를 씻어 제거하기를 원할지어다
원두밭을 매는 것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오욕의 원두밭 가운데
애욕의 풀을 뽑아 제거하기를 원할지어다
근심 없는 숲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길이 탐욕과 애정을 여의고
근심과 두려움이 생기지 않기를 원할지어다
만약 동산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모든 행을 부지런히 닦아서
부처님 보리에 나아가기를 원할지어다
여기까지 하고
사람을 만났을 때 마음 쓰는 법은
이어서 다음 시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아 참 고맙습니다 ^^ _()()()_
歡喜心을 느끼는 사람은 見聞覺知하는 것이 전부 普賢行이고
발을 옮기든지 내리든지 하는 모든 것이 전부 文殊心이다.
見道........
어떻게 이리도~~~
지선화 님!!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_()()()_
고맙습니다_()()()_
용학스님 지선화님 고맙습니다 낱낱이 일거수일투족 중생들이 부처님과 같이 되기를 축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