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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자녀 되기 삼세판>의 줄거리:
삼세판이란 더도 덜도 없이 꼭 세 판만 한다는 뜻입니다. 나 한 사람이 자녀되는 것이 꼭 세 판은 해야 제대로 자녀 됩니다. 먼저는 독사의 자식이고 둘째가 아브라함의 자식이며 마지막 세번째 판에서야 비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 삼세판의 과정을 모르면 여전히 독사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로 착각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자녀 되기 삼세판
(마3:1~17)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자녀 되기 삼세판>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삼세판이 무엇인지 여러분들 다 아시지요?
‘더도 덜도 말고 꼭 세 판만 하자’
친구끼리 놀러갔습니다, 밤에 야식으로 라면을 먹고 싶은데 누가 이 깜깜한 시골집에서 동구 바깥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라면을 사올 것이냐?
가위 바위 보를 하자, 그래서 했어요, 그런데 제대로 끝나는 적이 한 번도 없지요.
진 사람들이 꼭 하는 말이 ‘아냐, 아냐, 삼세판’ 이래서 꼭 어쩔 수 없이 삼세판으로 결정을 하기도 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자, 자녀 되기 삼세판, 자녀라고 하는 게 한번 되면 그걸로 끝이지 자녀가 되는 데에 무슨 삼세판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신앙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 되는 데는 꼭 삼세판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자녀가 이렇게 삼세판으로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경우에 하나님자녀 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자녀 되지 않고서 하나님자녀 됐다고 생각하는 이 오해의 상황이 십중팔구 벌어지게 됩니다.
반드시 삼세판이라는 이 과정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하나님자녀가 됐는가 안 됐는가를 분명히 알 수가 있다는 겁니다.
나 자신이 지금 하나님의 자녀인가 아닌가, 괜히 믿지도 않으면서도 예수님 믿는 줄 알고 있고, 예수 믿어 하나님자녀 되는 권세를 주신다는 말만 배워가지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떠들고 다니지 말자 이겁니다.
삼세판을 알아야 내가 자녀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것이에요.
오늘 본문에 보면 세 종류의 자녀에 대한 명칭이 나옵니다.
7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특별히 종교적 열심이 남달랐던 자들이고 지도자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여기서 첫 번째 자녀의 명칭이 나와요.
독사의 자식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서 9절에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두 번째 판의 자녀 됨의 명칭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이름이 나와요.
끝으로 세 번째는 17절 맨 마지막에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칭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3장에서는 세 가지 아들의 명칭이 나옵니다.
첫 번째가 독사의 자식, 두 번째가 아브라함의 자식, 세 번째가 하나님께서 직접 너는 내 아들이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칭입니다.
이 세 가지 명칭을 우리가 생각할 때에 독사의 자식, 독사의 새끼, 독사의 아들과 딸이라고 하는 명칭은 나와 무관하게 생각할 수가 있어요.
세 가지 명칭이 다 따로따로 노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고, 어느 한 사람에게 하나의 명칭이 적용된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서도 하나님의 자녀로 착각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독사의 자식과 아브라함의 자손과 하나님의 아들 됨은 예수님 이외에는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삼세판으로 겪게 되는 자녀 됨의 과정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모를 때, 독사의 자식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인 줄로 아는 일들이 너무나 빈번하게 많이 거의 압도적으로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에요.
자, 그러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향해서 세례요한이 독사의 자식이라고 부를 때, 이 독사의 자식은 어떤 자를 말하는 것일까요?
인류가 다 독사의 자식입니다, 왜냐하면 에덴에서 뱀에 의해서 타락한 후 모두가 다 독사의 자식이 되었어요.
그런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고 부릅니다.
자기들은 선민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기실 그 내용적으로 보면 여전히 독사의 자식이었던 거예요.
선민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독사의 자식이라는 겁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다 독사의 자식입니다, 인류가 다 독사의 자식이에요.
그런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처럼 종교적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사의 자식입니다.
그러면 독사의 자식의 내용이 뭐예요? 어떤 자가 독사의 자식입니까?
이걸 알아야 하나님의 아들 됨으로 나갈 수도 있지요.
내가 지금 독사의 자식인데도 그걸 모르고 있어요, 독사의 자식이 뭔지를 모르니까…
창세기 3장에 보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사탄인 뱀의 꾐을 받고 하나님의 대적자의 위치에 서게 됩니다.
이때 아담과 하와에게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한 결과를 저주로 내리시고 뱀에게도 저주를 내리십니다.
3장 14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종신토록 흙을 먹는다, 실제로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관찰할 때 뱀은 흙을 먹지 않습니다.
이게 상징적인 의미예요.
뱀이라고 하는 동물을 형상화 시켜서 사탄을 지칭하는 것도 상징적인 것이지요.
이 상징성 안에서 사탄의 특징이 뭐냐 하면 ‘배로 다니면서 흙을 먹는 것’입니다.
배로 어디를 다닙니까? 땅 위에서 배로 다닌다는 것은 이 배를 땅에 붙이고 다닌다는 겁니다.
배를 땅에 붙이고 다니면서 흙을 먹으면서 산다는 거예요. 이게 독사예요.
마귀 사탄의 정체가 뭐냐 하면 배를 땅에 붙이고 다니고 흙을 먹으며 배를 채우는 것.
쌀밥 먹고 사는 아버지 밑에 태어나면 쌀밥 먹으며 자랍니다.
김치를 먹고 사는 엄마 밑에 태어나면 김치 먹게 되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매우니까 물에 씻어먹더라도 김치를 먹습니다.
여러분, 내가 독사의 자식입니까?
간단히 알 수 있어요, 내 마음이 이 땅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마음이 붙어있지요, 마치 뱀이 땅에 배를 붙이고 기어 다니는 것처럼 내 마음이 이 땅의 어떤 것에 붙어있으면서 내 마음의 배를 붙이고 있는 것에서 내 배를 불리려 하고 있지요, 흙을 먹는다는 게 배 부르려는 거 아닙니까?
땅의 것으로 배 부르려 하고 있습니다. 땅의 것에 마음을 붙이고 만족하려 한다는 겁니다.
땅의 것을 어떻게 해봐 가지고 기뻐하려 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독사의 자식입니다.
독사가 배를 땅에 붙이고 다니는 자요, 땅에 있는 흙을 먹어 배 부르려 하는 자이기 때문에 독사의 자식들이 누구냐 하면 이 세상 것을 주워 먹으면서 세상 것으로 배 부르려 하고, 세상 것으로 만족하려 하고, 세상 것이 안 되면 슬퍼하고 세상 것이 되면 기뻐하는 자들이 다 독사의 자식들입니다.
가정에서 자식들을 잘 키워서 배 부르려 합니까?
아내로부터 만족을 얻으려 하고 남편으로부터 만족을 얻으려 합니까?
다 뱀의 소굴이 돼버려요, 가정이 아니라 뱀의 소굴이 돼버립니다.
직장에 나가서 건수를 올리고 상사에게 잘 보여서 내 인생의 만족을 얻으려 합니까?
당신은 독사입니다. 독사의 자식이에요.
땅에 배를 붙이고 땅의 것을 먹고 땅의 것으로 배 부르려 하는 모든 자들이 독사의 자식이에요.
여러분, 어제 목요 동서남북 때문에 서울에 올라가려고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기사아저씨가 올라오셔서 시간이 돼서 딱 시동을 걸자마자 천장에 붙어있는 TV가 켜지면서 나와요.
그런데 딱 첫 장면이 뭐냐 하면 미국 애플사의 CEO였던 스티브 잡스, 정말 IT 산업에서는 레전드 전설과 같은 존재가 췌장암으로 죽었다는 소식이었어요.
그런데 56세로 사망했다는 얘기가 나와요.
그때 마침 검표원이 승차표를 다 걷어서 기사아저씨에게 넘겨줄 때입니다.
그걸 보면서 기사아저씨가 한 마디 합니다.
“야, 그 많은 돈으로도 어쩔 수 없었나 보네!”
그러니까 검표원이 기사아저씨에게 하는 말이, “형님, 형님은 지금 몇 살이슈?”
기사아저씨가 하는 대답하기를 “내가 지금 스티브 잡스와 동갑인 56세야!”
그러니까 그 검표원 하는 말이 “아! 스티브 잡스보다 났네, 형님이”
‘56세인데 이렇게 건장한 모습으로 고속버스 기사로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애플사의 CEO로 그 많은 돈을 버는 일을 한 스티브 잡스보다 당신이 났습니다’라는 말을 한 거지요.
많은 걸 생각했습니다.
과연 날까? 그러면 안 날까?
났다는 말도 말이 되고,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났다고만 할 수도 없고, 왜냐하면 IT산업계에 전설이었으니까, 아니면 56세를 넘어 더 오래 사는 게 위대한 것인가?
제가 볼 때는 둘 다 별 볼일 없어요.
스티브 잡스가 굉장한 일을 한 것 같아요.
땅에 배를 붙이고 땅의 일로 그의 마음이 만족하고 있었다면 애플사에서 나온 아이폰이 삼성의 제품보다 많이 팔렸다고 만족해하고 기뻐하고 살았다면 어쩝니까?
성경이 말하는 대로 배를 땅에 붙이고 살고 땅의 것으로 배 부르려 하고 기뻐했다면 독사의 자식이지요, 어쩔 수 없이.
그분이 어떤지는 몰라요, 예수를 믿은 분인지 땅의 것으로 많은 것을 이뤘지만 땅의 것으로 만족한 적이 없고 하늘의 것으로 만족한 기독교인이었는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랬다면 애플사 아니라 더 굉장한 것을 갖고 있었다 해도 독사의 자식입니다.
그 사람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렇다면 누구든지…
자, 그러면 아브라함의 자손, 여기서 말하는 아브라함,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너희가 속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긍심을 갖지 말라.
우리로 말하면 교인이라고 특별히 선민의식을 갖지 말라는 겁니다.
자, 이 아브라함의 자손은 뭡니까?
선민이라는 의식을 뒤집어쓰고 있는 독사라는 거예요.
뱀들이 허물을 벗지 않습니까?
그런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향하여 선민의 지도자층에 속한 이 사람들을 향하여 세례요한이 독사의 자식이라고 부른 것은 ‘너희가 선민의식이라고 하는 뱀의 허물을 벗지 않고 정체를 감추고 있으면서 선민의식에 취해있지만 넌 여전히 독사의 자식이다’
왜 그렇습니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메시아신앙을 갖고 기다리고 있으면서 율법과 계명을 지켰던 모든 이유가 뭐냐 하면 이 땅에 배를 붙이고 땅에서 돈이면 돈, 사업이면 사업, 배를 붙이고 그것으로부터 배 부르려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례요한은 독사의 자식이라고 부르고 있는 겁니다.
자, 교인이 선민이에요.
교인이라는 타이틀, 선민이라는 타이틀을 허물로 뒤집어쓰고 있는 채로 교회 안에 들어와서 여전히 배를 땅에 붙이고 이 땅의 것으로 기뻐하고 땅의 것으로 만족하기를 원하며 사는 모든 자들이 교회 안에 있는 독사의 자식들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향해 말하는 이 세례요한의 지적은 옛날의 그들에게 해당되는 것만이 아니라는 거예요.
목사님들조차도 독사의 자식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예배당 건축에 총력을 기울이며 그것으로 만족하려는 목사님이 계신다면 독사의 자식입니다.
누구든지 이 땅의 것을 이루어서 만족하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을 때 선민의식이라는 뱀의 허물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독사의 자식이에요.
그걸 어떻게 피하겠습니까? 누구나 독사의 자식입니다.
이걸 모르니까 교회가 뱀의 굴이 되어있으면서 독사의 자식들이 모여 있는 뱀의 굴이 되어있으면서도 주님의 몸 된 교회라고 하고 있고, 그러면서 한다는 일들이 이 세상에서 이렇게 저렇게 잘될 거다 설교하고, 그렇게 하면 ‘아멘, 아멘’ 하면서 살아가고 있고, 이 세상에서 예배당 짓고 하는 이런 일에 만족을 찾고 있는 독사의 꿈과 이상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몰라요, 몰라.
독사의 자식이 뭔지 모르니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만 독사의 자식이라는 거예요.
우리 모두가 다 이 과정을 겪는 거예요.
원래 독사의 자식으로 살다가 이 땅의 것으로 배부르고 만족하려고 살다가 선민이라고 교회로 부름을 받았어요.
그런데 교회 들어와서 한다는 일이 ‘두 번째 자녀 되기, 선민의식이라는 껍데기를 쓴 독사의 자식들이 되는 것이에요, 또.
여전히 예수님의 이름 빌리고 하나님의 이름 빌어서 이 세상 것을 이루어서 만족하겠다고 질질 짜고 난리가 났어요.
두 번째 자녀 되기가 바로 여전히 독사의 자식이지만 타이틀을 바꿔버립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택받은 교인이라고.
자, 그러면 세 번째.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주님은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 세례요한이 주님에게 ‘당신이 내게 세례를 베푸셔야 될 분인데 왜 세례를 받으시려 합니까?’라고 묻습니까?
세례의 의미가 무엇인데 원래 주님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겁니까?
세례라는 것은 독사의 자식 됨을 죽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땅에서 무엇을 얻어서 만족하며 살겠다는 그 체질을 죽이는 게 바로 세례라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러실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이 땅의 것으로 만족하겠다고 하신 분이 아니기 때문에 세례요한이 펄쩍 뛰면서 ‘당신은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제가 독사의 자식 끼가 있기 때문에 당신이 내게 세례를 베풀어 주셔서 나의 독사의 자식 됨이 죽어야 될 판인데 왜 제게 세례를 받으려 하십니까?’라고 할 때 주님이 ‘이렇게 해서 내가 너에게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주님은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는 분이지만 왜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주님이 세례를 받으신 사건에 우리가 포개지게 하시려고…
바로 메시아가 하는 일이 그거예요.
당신에게 포개어 지는 자마다 주님에게 일어난 일이 똑같이 일어나도록 하게 하는 것이 메시아의 역할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마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메시아를 경험합니다.
도대체 메시아가 그 유대사회에서 기대되고 있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른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십니다.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을까?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했던 그 사건의 의미를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이 이야기 속에서 미리 발견해내는 겁니다.
‘아! 나의 독사의 자식 됨을 죽이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고 그리고 그 십자가를 지신 의미를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이미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면서 선취(先取)하시는구나!
독사의 자식 된 이 땅에 대해서 마음의 배를 붙이고 땅의 것으로 만족하는 이 기질, 이걸 죽여 버리시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셨고 그 세례 받으셨던 주님의 자리에 서는 모든 자들이 독사의 자식 됨이 죽는 역사가 일어나고 경험되게 하시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셨구나!’ 생각하신 거예요.
자, 이렇게 세례를 받자마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세례 받고 강에서 올라오자 하늘에서 소리가 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세 번째, 세례를 거치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왜냐하면 세례가 이 땅의 것으로 배를 붙이고 만족하려고 하는 독사의 자식 됨이 죽는 사건이 세례이기 때문에 땅에 대해서 죽을 때 비로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께서 나의 아들이라고 불러주시는 역사가 주님의 자리에 서게 되는, 주님을 따라가서 주님을 껴안고 주님과 연합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아들 됨이라는 겁니다.
주님을 향해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그러시지 않습니까?
세례를 받으신 주님, 땅에 대해서 죽으신 주님이에요.
그 주님을 껴안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하나님의 외침이 주어진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삼세판을 거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자녀 됨이에요.
이 삼세판의 과정을 분명히 우리가 깨닫고 인식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로 독사의 자식인 채로 하나님의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살게 됩니다.
그러면 하늘에서 소리가 났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여러분!
우리가 어릴 때 동네에서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넘어가도록 뛰어 놉니다.
그러다 어머니나 할머니께서 대문 밖에 나와서 어디서 노는지도 보이지 않지만 ‘승철아, 승철아!’ 하고 부르십니다.
그 동네가 작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소리를 듣고 막 뛰어옵니다.
‘나 이제 밥 먹으러 가야 돼, 할머니가 부르셔!’ 하고 막 뛰어옵니다.
여러분, 주님을 향하여 하늘에서 소리가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영적인 의미에서 죄악 때문에 너무너무 멀리 떨어져 있던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가까이 오는 거예요.
그래서 세례요한이 마치 문 밖에 나서서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들을 찾을 때 눈에 보이지 않던 아들이 그 소리를 듣고 쫓아올 정도로 가까이에 있었던 것처럼 세례요한이 2절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였으니…’ 주님이 이 땅에 오시는 바람에 아들을 따라서 하나님아버지가 계신 하나님의 나라가 천국이 아들 따라 가까이 오신 거예요.
그래서 아들에게 말로 육성으로 부르면 들릴 정도로 가까이 온 겁니다.
그래서 이 자녀 됨의 삼세판의 과정을 의식하고 ‘아, 나의 독사의 자식 됨의 기운이 십자가 세례를 통해 완전히 죽어야 되겠다!’ 라고 마음먹은 자들이 십자가에서 죽고 다 잊어버렸는데 하나님이 부활시키시고 가까이 코앞에 계신 천국에서 나를 향해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불러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내 마음이 이제 하늘로 배 부르려고 합니다.
주님이 수가성 여인에게 전도하신 뒤에 배가 양식을 구하러 갔다가 돌아온 제자들에게 ‘내게는 너희가 모르는 양식이 있다, 천국에 계신 내 아버지의 원하시는 바를 행하는 것이 나의 양식이다’고 말씀하십니다.
배부름의 이유가 달라진 겁니다.
우리 이 세상의 독사의 자식들은 이 땅에서 무엇인가를 이루어서 배 부르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된 뒤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으로 배 부르려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에요.
자, 자녀 되기 삼세판, 천국이 가까웠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 내 사랑하는 딸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부르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애타게 부르시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입으로부터 나를 향해 속 시원하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내가 널 기뻐한다’고 말씀하실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내가 첫 번째, 독사의 자식 됨을 깨달아야 하고, 여전히 독사의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선민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교회를 들락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님의 십자가에서 온전히 세례 받아 주님과 연합하여 죽음을 통하여 독사의 자식 됨이 죽어버려서 온전히 하나님의 아들 되어 하나님이 시원하게 목이 터져라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나를 향하여 외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자녀 되기 삼세판의 과정을 잊지 않게 하셔서 지금 내가 어느 단계에 있는 몇째 판의 자녀인지를 깨닫고 하나님 자녀 되기 위하여 날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주님과 연합하여 주님의 보혈로 세례 받는 하늘의 아들딸들 될 수 있도록, 주님! 날마다 죄악에 쓰러지는 우리의 이 마음을 권고하여주시고, 일으켜주시고, 강화시켜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