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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상에 대한 현대적 이해
김성철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1. 화장장엄세계의 성립신화
2. 화장장엄세계에 대한 합리적 해석
⑴ 화엄신중의 세계
⑵ 화장장엄세계의 구조
⑶ 상즉상입의 의미에 대한 과학적 해석
3. 화엄신화와 정보통신사회
1. 화장장엄세계의 성립신화
ꡔ화엄경ꡕ에서는 우리가 사는 이곳이 정토라고 설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모르고 살아간다. ꡔ화엄경ꡕ에서는 이 정토를 화장장엄세계, 또는 연화장세계라고 부른다. 온갖 꽃과 보석으로 휘황찬란하게 장식된 세계란 뜻이다.
화장장엄세계는 서방에 있다는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와 그 구조가 다르다. 천만 억 불국토를 지난 곳에 존재하는 서방의 아미타정토에서는 무한한 수명(無量壽: amitāyus)을 갖고 무한한 광명(無量光: amitābha)을 뿜는 부처님이신 아미타부처님께서 직접 설법을 하고 계신다. 그러나 화장장엄세계에서는 부처님의 몸이 그대로 이 세계가 되었다. 우리는 고요한 광명(寂光)의 부처님인 비로자나불, 대일여래의 털구멍 속에 살고 있으며 그 모든 털구멍에서 비로자나부처님은 깨달음의 세계를 노래하고 계신다.
모든 현상을 마음의 흐름으로 설명하는 불교 유식학에서는 부처의 몸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부처가 깨달은 진리인 법신(法身)과 부처의 영성(靈性: Spirit)인 보신(報身)과 부처의 육체인 화신(化身)이 그것이다. 아직 부처의 몸으로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도 이런 세 가지 몸이 있다. 법신은 모든 존재의 본질인 공성이며, 보신은 우리의 영혼 또는 중음신에 해당하고, 화신은 중음신과 결합된 수정란에서 발아한 후 생장하여 老病死하는 우리의 육체다. 우리가 부처가 될 때 우리는 법신인 공성을 깨닫고, 우리의 영혼은 3아승기겁 동안 쌓은 무량한 공덕을 갖춘 부처의 보신이 되며, 우리의 육체는 32가지 대인(大人)의 모습을 갖춘 부처의 화신으로 성숙한다. 지금부터 2500여 년 전 인도의 카필라성에서 태어나신 후 80세에 열반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은 화신으로 활동하셨고 영적인 세계인 서방극락정토의 아미타부처님은 영적인 부처님, 즉 보신으로 활동하고 계시며 화장장엄세계인 비로자나부처님은 진리의 부처님, 즉 법신으로 우리가 그 몸 속에 살고 있다.
부처의 법신인 화장장엄세계의 모습은 우리가 그 속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업식(業識)을 깰 때 부처의 털구멍 하나 속에 과거의 모든 불국토의 모습이 담겨 있고,1) 부처의 털구멍 하나 속에서 모든 중생이 살고 있으며,2) 그 털구멍에서 뿜어져 나온 광명은 우주에 가득 퍼져 끝없는 설법으로 중생을 교화하고3) 우리의 모든 번뇌가 사라지게 하는 화장장엄세계가 직관된다.4)
화엄교학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기세간(器世間)과 중생세간(衆生世間)과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의 세 가지로 구분한다. 기세간이란 지구나 우주와 같은 물리적 세계를 의미하고 중생세간은 그런 물리적 세계에서 살고 있는 유정류의 세계를 가리키며, 지정각세간은 불보살의 눈에 비친 세계이다. 이 세 가지 세계는 오버랩(overlap) 되어 있지만 아직 깨닫지 못한 우리는 기세간과 중생세간만 체험할 뿐이다. 아직 깨닫지 못한 인간의 눈에는 중생세간 중 그나마 인간계와 축생계, 기세간 중 그나마 수미산[地球]과 허공과 물리적 우주만 보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전생, 또는 그 이전의 어떤 생에 지었던 업의 과보로 받은 세계에서 인간이라는 중생으로 살아갈 뿐이다. 아직 무명에 쌓여 있는 우리는 불보살의 세계인 지정각세간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깨닫게 되면,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이 휘황찬란한 보석이었고, 온 우주가 부처님의 몸이 되어 깨달음을 가르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또 온 산천이 생명을 갖는 존재로 다시 살아난다. 해와 달이 노래하고 밤과 낮이 노래하고 산과 들이 노래한다.5) 지정각세간인 화장장엄세계가 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화장장엄세계는 누가 만들었을까? 언제 어떻게 성립되었을까?
고대 인도의 바라문교 성전인 Veda에는 갖가지 창조신화가 등장한다. 마치 목수와 같이 각종 재료를 갖고 이 세계를 만들었다는 창조신 위슈바까르만(Viśvakarman), 무에서 유가 창조되었음을 노래하는 무유아가(無有雅歌), 황금의 알에서 이 세계가 전개되었다는 금태신(金胎神: Hiraṇyagarbha)의 노래, 태초의 유일자 뿌루샤(Puruṣa)의 몸이 변하여 이 세계가 되었다는 뿌루샤 찬가 등등…. 또, 셈족의 종교인 이슬람교와 기독교와 유대교의 신화(myth)에서는 조물주 야훼가 이 세계를 만들었다고 가르친다.
일반적으로, 불교에서는 우리와 세계, 즉 중생세간과 기세간 모두는 각 중생의 업력(業力)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업의 근원은 우리의 마음이기에, 모든 것은 우리 마음이 만든 것이다.6) 유식학의 언어로 표현하면, ‘각 개인의 아뢰야식(藏識)에 내장되었던 업의 종자가 과보의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것’이다.
한편, 불전 중 ꡔ무량수경ꡕ이나 ꡔ관무량수경ꡕ 등 정토계 경전에서 말하는 서방 극락정토는 법장비구의 서원(誓願)과 보살행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부터 무수겁 전 세자재왕부처님(世自在王如來)이 계실 때, 한 국왕이 있었는데 세자재왕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보리심을 내어 왕위를 버리고 법장이라는 이름의 스님이 되었다.7) 성불의 발원을 한 법장비구는 48가지 서원을 하게 되는데 그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내가 부처될 적에 그 나라에 지옥과 아귀와 축생이 있으면 정각을 얻지 않겠습니다.
4. 내가 부처될 적에 그 나라 중생들의 모습이 한결같지 않고 잘나고 못난 구별이 있으면 정각을 얻지 않겠습니다.
5. 내가 부처될 적에 그 나라 중생들이 숙명통을 얻어 백천억 나유타 겁의 옛일을 알지 못하면 정각을 얻지 않겠습니다.
10. 내가 부처될 적에 그 나라 중생들이 모든 번뇌를 여의는 누진통을 얻지 못하고 망상을 일으켜 자신에게 집착하는 분별이 있으면 정각을 얻지 않겠습니다.
11. 내가 부처될 적에 그 나라 중생들이 정정취에 머물러 반드시 멸도(열반)에 이르지 못하면 정각을 얻지 않겠습니다.
18. 내가 부처될 적에 그 나라 중생(人,天)들이 내 나라에 태어나기 위해 지극한 마음으로 신심과 환희심을 내어 내 이름을 내지 열 번 불러 내 나라의 태어날 수 없으면 정각을 얻지 않겠습니다.
48. 내가 부처될 적에 다른 세계의 보살들이 내 이름을 듣고 제1, 제2, 제3법인을 성취하지 못하고 또한 모든 부처님이 구한 불퇴전의 경지에 이를 수 없으면 정각을 얻지 않겠습니다.8)
그 후 자신이 만들 불국정토를 장엄하기 위해 무수한 보살행을 하여 드디어 성불하게 되고 애초 발심할 때 품었던 48원 역시 그대로 실현되어 서방에 극락정토가 만들어진 것이다. 법장비구의 보살행으로 만들어진 극락정토는 그 어떤 괴로움도 없는 곳이고, 임종시에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의 이름을 열 번만 부르면 그곳에 태어날 수 있을 정도로 왕생하기 쉬운 곳이며, 열반이 보장되는 곳이다. 법장 비구가 아미타부처님이 되어 극락정토가 만들어지고 난 후 이제 10겁이 지났다고 한다.9) 그리고 법장비구의 보살행으로 만들어진 서방 극락정토는 세자재왕부처님께서 보여주신 210억 곳의 불국토의 모습에서 취사선택하여 장엄된 곳이다.
이 우주에는 수많은 불국정토가 있다. 아미타불의 서방 극락정토와 같이 그런 불국정토들은 모두 그 곳을 주재하시는 부처님의 무수겁에 걸친 전생 보살행에 의해 장엄된 곳들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바로 이곳에도 정토가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비로자나불의 화장장엄세계이다. 아미타불의 극락정토는 법장비구의 보살행으로 만들어진 곳이지만, 우리가 사는 화장장엄세계는 대위광태자10)의 보살행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화장장엄세계는 세간과 오버랩되어 있다. 더 엄밀히 말하면 우리의 마음에서 무명의 때를 벗길 때 드러나는 우리가 사는 세간 그 자체다. 중생의 업이 초래한 과보의 세계를 담고 있으면서, 그와 동시에 도처에서 깨달음의 진리가 울려 퍼지는 곳이 화장장엄세계이다. ꡔ화엄경ꡕ 「비로자나품」에 기술된 화장장엄세계의 성립신화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이 세계에 있는 티끌의 수를 제곱한 것만큼의 수의 겁(劫) 이전에 보문정광명(普門淨光明)이라는 이름의 세계해(世界海)가 있었는데, 그 세계 중에 다시 승음(勝音)이라는 이름의 세계가 있었다. 그리고 승음세계 가운데 청정광명이라는 이름의 향수바다가 있고 그 바다 가운데에 화염보장엄당(華焰普莊嚴幢)이라는 이름의 수미산이 있으며, 그 산 위에 마니화지륜(摩尼華枝輪)이라는 이름의 큰 숲이 있고, 이 숲 동쪽에 염광명이라는 이름의 큰 성이 하나 있었다. 또, 그 성에 희견선혜(喜見善慧)라는 왕이 있었는데, 그 왕의 아들이 바로 비로자나부처님의 전신(前身)인 대위광태자(大威光太子)였다.11) 그 당시 최초의 겁 동안 열 분의 여래가 그 곳에 출현하셨는데, 그 중 첫 부처님의 명호는 일체공덕산수미승운불(一切功德山須彌勝雲佛)이었다. 대위광보살은 이 부처님의 광명을 보고 전생에 쌓았던 선근 공덕으로 열 가지 능력을 갖게 된다.12) 그 후 자신의 아버지인 희견선혜왕과 함께 일체공덕산수미승운불의 설법을 들은 대위광보살은 일체공덕수미승운불이 전생에 모았던 온갖 법의 광명을 갖추게 된다. 모든 법이 평등하게 모이는 삼매지혜의 광명, 모든 법이 다 초발심 속에 들어가 머무는 지혜의 광명, 시방법계에 두루하게 담긴 광명을 청정한 눈으로 아는 광명,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과 바다와 같은 대원을 아는 광명 등등13)
그 당시 사람의 수명은 2소겁이나 되지만 부처의 수명은 50억 세밖에 안 되어 일체공덕산수미승운불께서는 곧 열반에 들고 그 후 바라밀선왕장엄왕이라는 이름의 부처님이 정각을 이룬다.14) 대위광태자는 이런 모습을 보고 다시 염불삼매와 대지력법연다라니와 갖가지 중생에 수순하여 조복시키고 해탈케 하는 대비심과 乃至 일체불법청정장이라는 지혜의 광명 등을 갖추게 된다.15) 그 후 이 부처님은 대위광태자에게 앞으로 부처가 되어 많은 중생이 의지해 살 곳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수기를 준다.16) 두 번째 부처이신 바라밀선왕장엄불이 열반에 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위광태자는 전륜성왕위를 물려받는다. 대위광전륜성왕은 그 후 출현한 最勝功德海라는 이름의 세 번 째 부처님으로부터도 앞으로 부처가 되어 미혹한 중생들의 의지처가 될 곳을 만들게 될 것이라는 수기를 받는다.17) 그리고 보안연화안당(普聞蓮華眼幢) 부처님이 출현했을 때, 대위광보살은 인간으로서의 목숨을 마치고 수미산 정상에 있는 궁전에 태어나 천왕이 되어 그 법문을 듣고 삼매를 얻는다.18)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갖가지 공덕을 모은 대위광보살이 성불하자 드디어 화장장엄세계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화장장엄세계는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의 전신인 대위광보살이 미진수의 부처님을 가까이 하며 발했던 대원(大願)과 무량억겁에 걸친 보살행으로 청정하게 꾸며진 곳이다.19) 비로자나부처의 몸은 그대로 이 우주가 되었다. 그 몸과 음성은 온 우주에 편재하며(ubiquitous),20) 그 몸에 난 털끝 하나로 온 우주를 모두 담을 수 있고,21) 털구멍 하나 속에 모든 중생이 살고 있으며,22) 온 우주에 편재하는 몸으로 갖가지 중생의 근기에 맞게 설법을 베푸시고,23) 한 마디 말로써 무량한 이치를 가르치신다.24) 또 매 찰나마다 한없는 진리의 가르침을 주시고,25) 털구멍에서 뿜어지는 찬란한 광명은 우리의 온갖 고통을 모두 소멸시키고 세간의 번뇌를 다 없앤다.26) 이러한 곳이 바로 비로자나불의 법신 그 자체인 화장장엄세계인 것이다.
총34품(또는 39품)으로 이루어진 ꡔ화엄경ꡕ은 법신불에 대해 설하는 문수경(文殊經)과 보살도를 설하는 보현경(普賢經)으로 나누어지는데, 60화엄의 경우 제1, 2, 3, 4, 5, 25, 26, 28, 29, 30, 32품은 문수경에 해당하고, 제6, 7, 8, 11, 12, 13, 14, 17, 18, 21, 22, 23, 24, 31, 33품과 제34 입법계품은 보현경에 해당한다.27) 문수경에서는 비로자나부처님의 전신인 대위광보살의 서원과 공덕으로 장엄된 화장장엄세계의 모습과 비로자나부처님의 신력이 묘사되고, 보현경에서는 십주(제11품), 십행(제17품), 십회향(제21품), 십지(제22품) 등과 같이 성불을 위한 보살의 수행법이 상세하게 설명된다. 그리고 마지막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등장하여 53선지식을 방문하며 보살행을 물은 후 마침내 불보살과 동등한 지위에 오르는 것으로 ꡔ화엄경ꡕ의 드라마, 화엄의 신화(myth)는 막을 내린다.
2. 화장장엄세계에 대한 합리적 해석
⑴ 화엄신중의 세계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으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7일 간격으로 다른 나무 아래로 자리를 옮기며 4주 동안 묵묵히 해탈삼매를 즐기셨다고 한다. 화엄경은 부처님의 이런 4주간의 침묵에 대한 신화적 기록이다. 보리수 아래 앉아 계신 ꡔ화엄경ꡕ의 부처님은 미소 띈 채 침묵하지만, 땅과 나무, 강과 바다, 불과 바람, 밤과 낮, 해와 달 등28) 온갖 자연물이 살아나고 육욕천에서 색계 제4선천에 이르기까지 온갖 하늘나라의 천신들과 보현보살, 보덕지광보살, 보명사자보살 등 온갖 보살들이 일어나 부처님의 깨달음을 찬탄한다.
ꡔ금강경ꡕ에서는 아상(我相: ātma-samjñā), 인상(人相: pudgala-samjñā), 중생상(衆生相: sattva-samjñā), 수자상(壽者相: jīva-samjñā)을 버리라고 설한다. 이 중 중생상은 ‘살아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다. 나[我]랄 것도 없고, 개체[人]랄 것도 없지만, 우리는 살아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산과 돌, 바람과 물, 해와 달은 모두 무정물이고 짐승과 사람은 모두 살아 있는 유정류인 줄 알았는데, ꡔ금강경ꡕ에서는 유정류가 살아 있다는 생각도 착각이라고 가르친다. 반야 지혜의 끝에서는 살았다거나 죽었다는 관념이 해체된다. 엄밀히 분석할 경우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살았다’는 말을 못 붙인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 어떤 것도 살아 있지 않다’는 판단은 ‘모든 것이 살아 있다’는 판단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음’의 의미를 해체시킨다. ‘살아 있는 것도 있고 살아 있지 않은 것도 있다’는 이분적 세계관을 벗어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이 두 판단은 그 역할이 같은 것이다. 무아의 극단에서 모든 것이 내 몸[同體]이라는 자각과 함께 큰 자비심[大悲]이 샘솟듯이, 그 어떤 것도 살아 있지 않다[無衆生相]는 조망의 극단에서, 거꾸로 모든 우주만물이 살아나 숨을 쉬고 춤을 춘다. 땅도 살아나고, 산도 살아나고, 나무도 살아나고, 강도 살아나고, 불과 바람, 밤과 낮, 해와 달 등 모든 것이 살아난다. 수많은 화엄신중은 이렇게 다시 살아난 자연물들인 것이다. 자연물은 물론이고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은 원래 살아 있었다.
화엄신중은 ‘의인화된 자연물’이 결코 아니다. 산신(山神)이나 칠성신(七星神) 등에 대해 ‘의인화된 자연물’이라든지, ‘인격을 부여받은 자연물’이라고 규정하는, ‘합리적 사유’의 배후에는 ‘물리적 환원주의’(physical reductionism)가 진하게 깔려 있다. 모든 것을 과학적, 합리적, 객관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현대의 로고스중심주의(logocentricism)는 만고불변의 진실이 아니라 다만 이 시대에 잠깐 유행하는 또 다른 ‘신화’(myth)일 뿐이다. 진실은 공(空)과 무아(無我)뿐이다. 그 어떤 이론이라고 하더라도 모두 어떤 전제 위의 허구다. 우리가 ‘살아있음’과 한 치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동등한 타당성을 갖고 땅과 산, 강과 바다, 해와 달 역시 ‘살아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살아 있지도 않은 우리’에 대해 ‘살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아와 공의 가르침에 근거할 때, ꡔ화엄경ꡕ에서 땅과 산, 강과 바다, 해와 달이 모두 살아나 소리 높여 부처님을 찬양하는 것은 비유도 아니고 상상도 아니다. 우리 앞에 항아리가 있다는 생각과 동등한 타당성을 갖는 ‘사실’이다.
⑵ 화장장엄세계의 구조
80권본 ꡔ화엄경ꡕ의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에서 묘사하는 화장장엄세계, 다시 말해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의 모습에 대한 설명 중 대표적인 것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a. 온 우주에 편재하며 교화하는 비로자나불
그 몸은 일체 세간에 가득 차고 그 음성은 시방 국토에 두루 퍼진다(ubiquitous). 비유하면, 허공이 갖가지 물건들을 담고 있지만 그에 대해 분별을 내지 않는 것과 같다.29)
부처님의 몸은 법계 전체에 가득 차 있어서 온갖 중생에게 그 모습을 나타내어 갖가지 가르침으로 교화한다.30)
여래의 엄청난 지혜의 광명이 시방의 온 국토를 두루 비춤으로써 그 곳에 사는 모든 중생들이 다 부처님을 보게 되고 갖가지 방식으로 교화된다.31)
부처님은 매 찰나마다 엄청난 진리의 비를 온 세상에 내림으로써 모든 중생의 번뇌를 소멸시키신다.32)
b. 비로자나불의 털구멍이나 털 끝, 또는 빛살 하나에 온 우주가 담긴다.
온 몸의 털끝 하나하나에 모든 세계를 담지만, 서로 걸림이 없으며, 그 각각의 털끝이 무한한 신통력을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교화한다.33)
과거의 모든 나라들이 부처님 털구멍 하나 속에 모두 나타나 보인다.34)
여래는 항상 엄청난 광명을 뿜어내는데 그 빛살 하나하나에 무한수의 부처님이 있어서 중생을 교화한다.35)
과거, 현재, 미래의 무량겁에 걸쳐 이룩되고 무너졌던 갖가지 일들이 부처님의 털구멍 하나 속에서 모두 나타날 수 있다.36)
부처님의 털 구멍 하나 속에 모든 중생이 살고 있는데 그들 역시 오고감이 없다.37)
c. 한 찰나 속에 무량겁이 들어간다.
모든 부처님은 이 세계에 가득 차는 묘한 음성으로 과거 무량겁의 세월 동안 설법했던 내용 전체를 단 한 마디의 말로 다 가르치신다.38)
부처님의 광명은 그 크기가 허공과 같아 모든 중생 앞에 두루 그 모습을 나타내고, 백천만겁에 걸쳐 존재했던 모든 불국토가 한 찰나의 시간에 모두 분명히 나타난다.39)
이러한 비로자나부처님의 몸은 그대로 지정각세간인 화장장엄세계이면서 바로 법계(法界)이기도 하다.
그리고 ꡔ화엄경ꡕ에서 설하는 이러한 법계의 연기적(緣起的) 구조는 지엄(智儼: 602~668) 에 의해 십현문(十玄門)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된 바 있다.40) 지엄은 ꡔ화엄일승십현문ꡕ에서 먼저 일(一)과 십(十)이라는 수를 예로 들어 법계연기에 대해 설명한 후, 십현문이라는 이름 아래 그 의미에 대해 조망한다.
1.同時具足相應門(此約相應無先後說): 한 걸음이 가능하면 모든 걸음을 걸어 결국 목표점에 도달하게 되듯이 하나의 사물이 성립할 때 일체 만물이 동시에 성립한다.
2.因陀羅網境界門(此約譬說): 온 우주를 덮은 인다라망의 구슬들이 서로서로 비추는 것과 같이 곳곳의 미진들은 각각 온 우주를 반영한다.
3.袐密隱顯俱成門(此約緣說): 달의 이 쪽에서 본 보름달과 저 쪽에서 보이는 반달이 동시에 성립되어 있듯이 사물의 다양한 측면이 동시에 함께 이룩되어 있다.
4.微細相容安立門(此約相說): 미세한 먼지 속에 무량한 불국토가 다 들어가 있어도 걸림 없이 모두 수용한다.
5.十世隔法異成門(此約世說): 한 찰나 속에 온 시간대가 들어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속의 과거, 현재, 미래, 현재 속의 과거, 현재, 미래, 미래 속의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열 가지 시간대가 제 각각 성립되어 있다.
6.諸藏純雜具德門(此約行說): 모든 것이 보시라고 볼 수 있고 모든 것이 인욕이라고 볼 수 있듯이 하나의 행동에 대해 다른 모든 행동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7.一多相容不同門(此約理說): 모든 국토가 한 국토 속에 들어가고, 모든 중생의 몸이 한 중생의 몸 속에 들어가지만 모두와 하나 각각은 파괴되지 않고 제 모습을 지킨다.
8.諸法相卽自在門(此約用說): 초발심 보살이 바로 부처님이라고 하듯이, 하나의 법을 획득하면 모든 법을 획득한다.
9.唯心迴轉善成門(此約心說): 마음 그 자체는 청정하거나 부정한 것이 아니기에 마음먹기에 따라 여래도 되고 중생도 된다.
10.託事顯法生解門(此約智說): 한 가지 대상에 대해서도 무한한 해석이 가능하다.41)
이런 십현문은 ①敎와 義, ②理와 事, ③解와 行, ④因과 果, ⑤人과 法, ⑥境과 位, ⑦師와 弟, ⑧主와 伴 및 正과 依, ⑨體와 用 및 逆과 順, ⑩根機와 示現의 십문에 대한 조망이다. 다시 말해 ①敎와 義 등의 열 가지 쌍42)은 상기한 십현문적인 관계를 갖는다. 이런 열 가지 쌍 각각의 뜻은 다음과 같이 풀이된다.
① 가르침(敎)과 의미(義)43)
② story(事)와 이치(理)44)
③ 이해(解)와 수행(行)45)
④ 불과(佛果)와 보살의 인행(因行)46)
⑤ 행원, 지혜, 자애, 대비 등의 개념들(法)과 그런 개념들이 인격화된 보살(人)47)
⑥ 온갖 보살신중과(境) 그 역할(位)48)
⑦ 가르치는 자(師)와 가르침을 받는 자(弟)49)
⑧ 설법의 주인(主)과 설법의 청중(伴)50)
⑨ 주체(體)와 작용(用) 또는 역행(逆)과 순행(順)51)
⑩ 중생의 근기(根機)와 그에 응하여 나타나는 가르침(示現)52)
동시구족상응문의 경우, ①하나의 가르침(敎)으로 모든 의미(義)를 드러내고, ②선재동자의 구법 story(事) 그 자체가 화엄의 보살행(理)을 가르치고, ③ꡔ화엄경ꡕ을 봉독하고 이해하는 것(解) 그 자체가 그대로 수행(行)이고, ④불과(佛果)가 그대로 보살의 인행(因行)으로 사용되고, ⑤보살이 갖춘 덕목(法)이 그대로 그 인격화(人)되었으며, ⑥온갖 보살신중(境)이 동시에 참여하지만, 그 역할(位)이 분명히 나뉘어져 있고, ⑦가르치는 자(師)와 가르침을 받는 자(弟)가 의존적으로 공존하며, ⑧누구 하나가 說主(主, 正)가 되면 나머지는 청중(伴, 依)이 되고, ⑨주체(體)와 작용(用), 역행(逆)과 순행(順)이 모두 포괄되어 있으며, ⑩그 어떤 중생이라고 해도 그 근기(根機)에 맞는 가르침이 베풀어진다(示現).
이런 식으로 ‘敎와 義’ 등의 十門을 십현문 각각에 대해 적용하면 총 100가지 조망이 도출될 수 있다. 이런 조망은 화엄종의 初祖 杜順에게서 시작되어 제2조인 智儼에 의해 십현문, 십문으로 체계화 된 이후, 제3조인 法藏에게 계승된다. 그리고 신라의 의상이 저술한 ꡔ화엄일승법계도ꡕ에 그대로 반영된다.
십현, 십문의 100문적 조망은 一卽一切多卽一의 相卽的 조망과 一中一切多中一의 相入적 조망으로 요약된다. 일중일체는 相의 측면에서 본 화장장엄세계의 모습이고, 일즉일체는 理의 측면에서 본 화장장엄세계의 모습이다.53)
⑶ 상즉상입의 의미에 대한 과학적 해석
화엄종의 제4조 澄觀(738~838)은 부처님이 가르치신 세계, 즉 法界를 事法界, 理法界, 理事無碍法界, 그리고 事事無碍法界의 4종류로 나눈다.54) 전자에서 후자로 갈수록 그 조망이 점점 심오해진다. ꡔ화엄경ꡕ에서 묘사하는 화장장엄세계, 또는 지엄이 말하는 십현문의 세계, 또는 일중일체 일즉일체인 상즉상입의 세계는 四法界 중 마지막의 사사무애법계를 가리킨다. 사사무애란 문자 그대로 현상(事)과 현상(事)이 서로 걸림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티끌 하나 속에 온 우주가 들어와도 걸림이 없고, 한 찰나에 무량겁이 들어와도 걸림이 없다. 시간적으로든 공간적으로든 만물이 상즉상입한다.
그러면 이런 사사무애법계, 십현문에 의해 묘사된 세계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사무애법계의 의미에 대해 인식론적, 존재론적, 수행론적, 가치론적 접근 등이 모두 가능하다.
나는 학생에 대해 교수이고, 아버지에 대해 아들이고, 아들에 대해 아버지이고, 부인에 대해 남편이고 … 호랑이에 대해 고기 덩어리이고, 바퀴벌레에 대해 괴물이 되듯이, 상황(緣)에 따라 나(一)는 모든 존재(一切)가 될 수 있다[존재론적 접근]. 내 눈에 보이는 컵의 모양은 옆에서 보면 네모지고, 위에서 보면 둥글고, 눈 앞에 대고 보면 벽이 되고, 멀리 떨어지면 점이 되며, 더 멀리 떨어지면 허공이 되고, 빙글빙글 돌리면 원이 되듯이, 상황(緣)에 따라 이 하나의 컵(一)은 그 어떤 모양(一切)이든 가질 수 있다[인식론적 접근]. 처음 보살의 마음을 낸 순간(一)이 바로 정각(一切)을 이룬 순간이다[수행론적 접근]. 보살의 모든 행동(一切)은 다 보시행(一)이고, 보살의 모든 행동은 다 인욕행이며, … 보살의 모든 행동은 다 지계행이다[가치론적 접근].
사사무애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다양한 조망이 가능하지만, 이 자리가 정보통신기술과 불교의 화엄사상을 비교하는 자리이기에 본고에서는 논의의 범위를 좁혀 우리가 살고 있는 물리적 세계만을 소재로 삼아 그에 대해 조망해 보기로 하겠다.
ꡔ화엄경ꡕ 「세주묘엄품」에서는 부처님의 지혜광명과 그 음성과 그 몸이 온 우주에 편재한다(ubiquitous)고 설한다. 그런데, 부처님의 음성과 몸만 아니라, 우리의 음성과 몸 역시 편재적 성격을 갖고 있다. 우리 모두 부처님이기 때문이다. 내 입을 통해 나온 소리는 지금 이 강당 안에 가득 차 있다. 내 소리가 편재하기 때문에 지금 이 강당 그 어디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귓구멍 속 고막을 때리는 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강당 안 그 어디에 녹음기를 놓더라도 내 목소리가 녹음될 수 있다. 내 몸의 모습 역시 지금 이 강당 안에 편재한다. 그래서 그 어디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망막스크린에 얼룩진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무엇을 본다고 할 때, 눈 밖에 있는 사물을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동공 속 망막에 맺힌 영상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망막에 맺힌 영상은 검은 눈동자 한 가운데 뚫린 작은 구멍을 통해 들어간 빛발이 만들어 낸 것일 뿐이다. 우리가 아무리 광활한 풍경을 바라봐도 우리는 단지 100원짜리 동전 크기의 우리의 망막을 볼뿐이다. 세상은 돈짝 만하다. 아니, 더 조그만 먼지크기로 압축되어 있다. 동공에 뚫린 바늘구멍 속으로 온 세상이 모두 빨려 들어가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지금 이 강당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모습은 이 강당 안에 편재한다(ubiquitous). 칠판이든, 백묵이든, 의자든, 교탁이든 지금 이 강당 안에 있는 모든 사물들의 모습은 이 강당 안에 편재한다. 지금 이 강당에서 나는 모든 소리는 이 강당 안에 편재한다. 지금 이 강당 밖에서 나는 소리도 모두 이 강당 안에 편재한다. 지금 이 강당에 뚫린 창 밖의 풍경 역시 이 강당 안에 편재한다. 지금 이 강당 밖 저 하늘 위 태양에서 뿜어지는 전자파는 이 강당 안에 편재한다. 지금 온 우주에서 쏟아지는 전자파는 이 강당 안에 편재한다. 지금 KBS, MBC, SBS 방송국에서 송출한 모든 전파는 이 강당 안에 편재한다. 지금, 전 세계의 모든 방송국에서 송출한 전파는 모두 이 강당 안에 편재한다. 지금 우리 국민이 갖고 있는 핸드폰의 전파 모두는 이 강당 안에 편재한다. 그들이 내는 소리와 영상 모두가 이 강당 안에 편재한다.
이 강당 안에는 나의 목소리도 꽉 차 있고, 나의 모습도 꽉 차 있고, 청중 모두의 모습도 꽉 차 있고, 온 우주의 전파도 꽉 차 있고, 전 세계 모든 방송국에서 송출한 전파도 꽉 차 있고, 전 인류가 쏘아대는 핸드폰의 전파도 꽉 차 있다(ubiquitous). 이 강당 안의 그 어떤 점을 잡아도 그 점 속에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다 들어가 있다. 티끌 만한 공간 속에 온 우주의 정보가 다 들어가 있다. ꡔ법성게ꡕ에서 말하듯이 먼지 한 톨 크기의 공간에 온 우주가 담겨 있는 것이다(一微塵中含十方). 그리고 온 우주공간은 그런 티끌 만한 공간들이 가득하다. 따라서 그 각각의 티끌 만한 공간 낱낱이 모두 온 우주를 담고 있다(一切塵中亦如是).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서로 부딪치지 않는다(事事無碍). 이는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다.
다시 ꡔ화엄경ꡕ 중의 한 구절을 보자.
온 몸의 털끝 하나하나에 모든 세계를 담지만, 서로 걸림이 없으며, 그 각각의 털끝이 무한한 신통력을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교화한다55)
이렇게 털끝 만한 공간 속에 온 우주가 담겨 있는 화장장엄세계의 구조는 제석천의 그물인 ‘인다라망’에 비유된다. 삼계 중 욕계의 삽십삼천, 즉 도리천 중앙에 거주하는 天主인 釋帝桓因(Śakra-Devānām-Indra: 신들의 주인이신 인드라)의 그물은 입체적 그물이다. 그리고 그 그물 매듭 하나마다 마니구슬이 달려 있다. 마니구슬은 그 표면이 거울과 같이 반짝이기 때문에 四方, 四維, 上下의 十方의 모습이 그 표면에 모두 비쳐 보인다. 그런데 무수한 마니구슬들이 인다라 그물의 매듭마다 매달려 있기에 어느 한 구슬의 표면을 보면 다른 모든 구슬들의 모습들이 비쳐 보인다. 그리고 다른 구슬들 각각의 표면에도 모든 구슬들이 비쳐 보인다. 각각의 구슬에는 다른 모든 구슬이 나타나지만, 그 어떤 구슬도 이동하지 않는다. 어느 한 구슬에 검은 점을 찍으면 그와 동시에 다른 모든 구슬에도 검은 점이 나타난다.56) 마치 거울 두 장을 마주 대었을 때와 같이 구슬들간의 相互照影은 무한히 이어진다. 그리고 허공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마니구슬 각각의 크기는 무한소로 수렴한다. 그 무한소의 한 점에 무한대의 우주가 반영된다.57) 이것이 事事無碍法界의 물리적 모습이다.
물리적 현상 중에 편재성을 갖는 것에는 소리, 빛, 전파, 냄새 등이 있다. 他心通58)과 텔레파시의 예에서 보듯이 우리의 의식도 편재한다. 내가 아무리 몰래 그 어떤 생각을 해도 그 의식의 파장은 온 우주에 퍼진다. 말하지 않아도 남이 내 마음을 다 안다. 말하지 않아도 내가 남의 속마음을 다 짐작한다. 내가 세속에 내려오지 않고 평생을 토굴 속에서 수행을 해도, 내 마음의 파장이 우리 온 국민을 정화시킨다.
소리와 빛, 냄새와 같이 편재성을 갖는 것들은 우리 삶 속에서 정보전달 수단으로 사용된다. 모든 것이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를 송신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오관과 의식으로 포착 가능한 것들만 수신한다. 눈은 무지개 빛 可視光線만 수신하고, 귀는 일정한 주파수의 소리만 수신하며, 코는 공기를 타고 퍼지는 일정한 강도의 냄새만 수신한다.
88올림픽 개막식 때 잠실스타디움에서 풀어져 각각 집으로 회귀하는 비둘기, 대전으로 팔려간 지 3개월만에 진도로 돌아온 진돗개 백구, 강원도 남대천에서 방류되어 동해로 나간 후 대서양에서 살다가 산란기가 되어 남대천 그 강물로 다시 돌아오는 연어. 생물학에서는 이들의 회귀현상에 대해 아직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편재한다는 화엄의 이치’에 의거할 경우 이들의 회귀는 쉽게 설명된다. 비둘기든, 백구든, 연어든 그 각각이 살던 곳의 정보는 온 세상에 편재한다. 따라서 ‘자기가 살던 곳의 정보의 양’이 커지는 방향으로 이동하면 자신이 살던 곳에 도착하게 된다. 잠실스타디움의 관중들이 날린 수천 마리의 비둘기들의 경우 무리 지어 그 상공을 몇 바퀴 선회한 후 흩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자신이 살던 집의 정보의 양이 커지는 방향이 어느 쪽인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 후 각각의 비둘기는 자신의 집이 있으리라 예상되는 방향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온 세상이 송신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감관이 포착 가능한 것만 수신한다. 눈과 귀, 그리고 우리의 뇌는 수신기의 역할을 한다. 무선수신기이다. 눈은 빛을 통신수단으로 사용하고, 귀는 소리를 통신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이제 정보통신사회가 되면서 신통력의 세계가 열렸다. 天眼通59)과 天耳通60)의 세계가 열렸다. TV,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s), 핸드폰의 중개를 통해.
3. 화엄신화와 정보통신사회
가상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하루 종일 컴퓨터 속의 가상 공간 속에서 살아간다. 가상공간은 우리의 삶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무중력의 공간이다. 글씨가 구름이 되고, 구름이 노란 단풍잎이 되어 바람에 날아간다. 가상공간 속에서는 오감 중 눈과 귀만 이용해 모든 것을 체험하고, 손가락이 모든 행위를 대신한다. 손가락을 움직여 가상공간 속의 나의 대리인, 나의 아바타를 걷게 하고, 손가락을 까딱거려서 가상공간 속에서 기기묘묘한 체험의 세계를 전개시킨다. 우리 모두 스티븐 호킹이 되었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손가락만 옴찔거려도 온갖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컴퓨터 밖의 삶도 가상적이다. 우리는 계절에 관계없이 언제나 모든 과일과 채소를 먹을 수 있다. 자연과 단절된 삶이다. 우리는 헬스클럽에서 러닝머신 위를 달린다. 현실과 무관한 운동이다. 그러나 다람쥐처럼 쳇바퀴를 돌리기에 넓은 공간이 필요 없다. 환경 친화적 운동이다. 골프장을 건설하고 놀이공원을 만들고, 낙시터나 경마장, 스포츠 스타디움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규모로 자연을 파괴해야 한다. 그러나 CD 한 장과 손가락만 있으면 컴퓨터 앞에서 골프도 치고 낚시도 하고 정글을 탐험할 수 있다. 누구를 만나고자 할 경우 자동차를 타고 어디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다. 이불 속에 누워서 하루 종일 핸드폰을 귀에 대고 노닥거린다. 혹은 컴퓨터 앞에 앉아 친구와 화상으로 대화한다. 수선을 피우지 않기 때문에 환경 오염도 적어진다. 정보통신기술은 지극히 환경 친화적인 기술이다. 그리고 이는 화엄적 기술이다. 다음은 인터넷 상의 한 사이트에서 채취한 詩이다.
「인드라망」
- 하이퍼텍스트 형식으로 쓰여진 ‘앤드류 스톤’의 시 -
얽힌 그물 인터넷은 그대로가 제석천의
구슬 그물 인드라망 자취 없는 그림자요
단말기 앞 우리들은 무량무한 Web에 맺혀
온 세계를 반영하는 오색 영롱 구슬이니
시간이든 공간이든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단말기 앞 우리들을 갈라놓지 못한다네
컴퓨터를 부팅하고 전진하세 시도하세
어디든지 도달해서 그 누구든 만나보세
온 세계에 펼쳐 있는 인드라망 구슬들은
낱낱마다 온 세상의 모든 것을 담고 있네.61)
여기에 인용하면서 재현하지는 못했지만, 몇몇 단어에 대해 저자는 하이퍼텍스트(hypertext) 형식62)의 링크를 달아 해설을 붙이고 있는데, 인터넷만 화엄적인 것이 아니라 하이퍼텍스트라는 문서형식 역시 화엄적이다. 하이퍼텍스트에서는 그 텍스트 상의 어떤 지점을 클릭하면 그와 링크된 엄청난 양의 정보들이 중중무진하게 나타난다. 마치 먼지 만한 공간 속에 시방의 모든 불국토가 들어가는 重重無盡(끝없는 반복)한 인다라망경계와 같이. 우리는 이제 컴퓨터 단말기와 인터넷 없이 생활할 수 없다. 신통력과 같은 과학기술과 假想的 콘텐츠가 조합되어 영위되는 환경 친화적 문명인 정보통신문명을 거부하고 역사의 흐름을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다.
정보통신기술은 가상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가상은 현실적 힘을 갖는다. 가상은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 가상은 우리를 타락시킬 수도 있지만, 우리를 향상시킬 수도 있다.
종교 역시 가상이다. 힌두교를 신봉하는 인도인들은 코끼리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가네샤(Ganesha)신을 가장 좋아한다. 가네샤는 자기 아버지인 시바(Śiva)신이 그 목을 자른 후, 지나가던 코끼리의 목을 붙여놓았기에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힌두교의 원숭이사원에 가면 스리랑카에서 인도를 한 걸음에 건너서 비쉬누신인 라마의 부인을 구출했다는 원숭이 신 하누만(Hanuman)이 모셔져 있다. 이 모두가 가상이다. 그러나 모든 힌두교도들은 이런 신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올린다. 힌두교의 가상은 20세기 최고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를 만들어 내었다. 힌두교 이외에 기독교와 유대교와 신도와 이슬람교등 다른 모든 종교 역시 제 각각의 가상을 갖고 있다. 모든 종교에서 제공하는 가상이 선한 것만은 아니다. 어떤 종교적 가상은 사람을 옹졸하고 사악하게 만들기도 한다. 종교로 인해 수많은 전쟁을 치러 온 인류의 역사가 이를 예증한다.
다른 모든 종교적 가상들과 비교할 때 화엄신화에서 말하는 보살도는 우리를 지독하게 선하고 자비롭고 지혜롭게 만들어 주는 가상이다. 성불 한 후 자신이 머물게 될 불국정토를 장엄하기 위해 보살은 무량겁에 걸쳐 무한한 공덕을 축적한다. 온 우주가 부처님의 몸이기에 내 종교 남의 종교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그 어떤 종교인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진솔할 경우 부처님의 털구멍에서 방사되는 진리의 가르침을 발견할 수 있다.
현대의 정보통신 기술은 각 개인 개인을 비로자나부처님의 털구멍 앞에 앉혀 놓았다. 온갖 중생이 그 곳에 들어 있고, 온갖 나라가 그 곳에 들어 있는 부처님의 털구멍과 같은 컴퓨터 단말기, PDA 앞에 앉아 우리는 전 세계를 만난다.
ꡔ화엄경ꡕ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이 세계의 연기적 구조에 대한 신화적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성불을 향한 보살의 신화다. 앞에서 전자를 문수경 후자를 보현경이라고 부른 바 있다.
정보통신의 세계 역시 두 가지 측면을 갖는다. 하나는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무선통신이라는 기술에 의해 이룩된 인드라망 구조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인드라망의 매듭마다 놓여진 단말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컨텐츠들이다. 정보통신기술의 인드라망 구조는 화엄의 문수경에서 묘사하는 사사무애법계의 구조를 닮아 있다. 단말기 앞에 앉아 있는 우리들은 전 세계와 교통한다. 보리수 아래를 떠나지 않고 도리천과 야마천과 도솔천에 오르시는 부처님과 같이. 우리들은 점점 더 全知的으로 되고(omniscient) 全能해진다(omnipotent). 또, 양자 모두 각각의 구조를 통해 컨텐츠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그러나 비로자나부처님의 털구멍에서는 우리의 탐욕과 분노를 잠재우고 우리를 지혜롭게 해 주는 컨텐츠가 뿜어져 나온다. 十信, 十住, 十行, 十廻向, 十地와 같이 우리를 보살과 같이 살아가게 해 주는 컨텐츠가 방사된다. 우리는 어떤 것이 가상임을 알면서도 그 가상에 푹 빠질 수 있다. 결코 죽지 않을 영화주인공의 위기를 보고 가슴 졸이고, 울고 웃고 하듯이…. 그 story를 다 아는 춘향전을 열 번 백 번 재탕해도 항상 재미를 느끼게 되듯이…. 가상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을 갖는다. 화엄신화에서 제공하는 보살도의 컨텐츠는 우리를 고결하고 성스럽게로 만들어 주는 위대한 가상이다.
1) 過去所有諸國土 一毛孔中皆示現: ꡔ大方廣佛華嚴經ꡕ, 大正藏10, p.6b.
2) 汝應觀佛一毛孔 一切衆生悉在中: 같은 책, p.8b.
3) 世尊光明無有盡 充遍法界不思議 說法敎化度衆生: 같은 책, p.16b.
4) 如來一一毛孔中 悉放光明滅衆患 世間煩惱皆令盡: 같은 책, p.18a.
5) 「世主妙嚴品」에서, 인격화된 자연, 즉 日光보살, 月光보살, 主夜신 主晝神 등이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6)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ꡔ大方廣佛華嚴經ꡕ, 앞의 책, pp.102a~b.
7) 爾時次有佛 名世自在王如來應供等正 覺明行足善逝世間解無上士調御丈夫天人 師佛世尊 時有國王 聞佛說法心懷悅豫 尋發無上正眞道意 棄國捐王行作沙門 號曰法藏: ꡔ無量壽經ꡕ, 大正藏12, p.267a.
8) 같은 책, pp.267c~269b.
9) 佛告阿難 法藏菩薩 今已成佛現在西方 去此十萬億刹 其佛世界名曰安樂 阿難又問 其佛成道已來爲經幾時 佛言 成佛已來凡歷十劫: 같은 책, p.270a.
10) 60화엄에서는 普莊嚴童子로 번역됨.
11) ꡔ大方廣佛華嚴經ꡕ, 앞의 책, pp.54a~b.
12) 大威光太子 見佛光明已 以昔所修善根力故 卽時證得十種法門 何謂爲 十 所謂 證得一切諸佛 功德輪三昧 證得一 切佛法 普門陀羅尼 證得廣大方便藏 般若波羅蜜 證得調伏一切衆生 大莊嚴大慈 證得普雲音大悲 證得生無邊功德 最勝心 大喜 證得如實覺悟一切法大捨 證得廣大方便 平等藏大神通 證得增長信解力大願證得普入一切智 光明辯才門: 같은 책, p.54c.
13) 時彼如來 爲欲調伏諸衆生故 於衆會道場海中 說普集一切三世佛 自在法修多羅 世界微塵數修多羅 而爲眷屬 隨衆生心 悉令獲益 是時 大威光菩薩 聞是法已 卽獲一切功德須彌勝雲佛 宿世所集法海光明 所謂 得一切法聚 平等三昧智光明 一切法悉入最初菩提心中住智光明 十方法界普光明藏 淸淨眼智光明 觀察一切佛法 大願海智光明 入無邊功德海 淸淨行智光明 趣向不退轉 大力速疾藏智光明 法界中無量變化力 出離輪智光明 決定入無量功德 圓滿海智光明 了知一切佛決定解 莊嚴成就海智光明 了知法界無邊佛 現一切衆生前 神通海智光明 了知一切佛 力無所畏 法智光 明: 같은 책, p.55c.
14) 彼大莊嚴劫中 有恒河沙數小劫 人壽命二小劫 諸佛子 彼一切功德須彌 勝雲佛 壽命五十億歲 彼佛滅度後有佛出世 名波羅蜜善眼莊嚴王 亦於彼摩尼華枝輪大林中 而成正覺: 같은 책 p.56b.
15) 爾時 大威光童子 見彼如來 成等正覺 現神通力 卽得念佛三昧 名無邊海藏門 卽得陀羅尼 名大智力法淵 卽得大慈 名普隨衆生 調伏度脫 卽得大悲 名遍覆一切境界雲 卽得大喜 名一切佛功德海威力藏 卽得大捨 名法性虛空 平等淸淨 卽得般若波羅蜜 名自性離垢 法界淸淨身 卽得神通 名無礙光普隨現 卽得辯才 名善入離垢淵 卽得智光 名一切佛法淸淨藏 如是等十千法門 皆得通達: 같은 책, p.56b
16) 善哉功德智慧海 發心趣向大菩提 汝當得佛不思議 普爲衆生作依處: 같은 책, p.57a.
17) 善哉福德大威光 汝等今來至我所 愍念一切衆生海 發勝菩提大願心 汝爲一切苦衆生 起大悲心令解脫 當作群迷所依怙: 같은 책, p.57b.
18) 復有佛出 號名稱普聞蓮華眼幢 是時大威光 於此命終生須彌山上 寂靜寶宮 天城中 爲大天王 名離垢福德幢: 같은 책, p.57c.
19) 復告大衆言諸佛子此華藏莊嚴世界海 是毘盧遮那如來 往昔於世界海微塵數劫修菩薩行時 一一劫中 親近世界海微塵數佛 一一佛所 淨修世界海微塵數 大願之所嚴淨: 같은 책, p.39.
20) 其身充滿一切世間 其音普順十方國土 譬如虛空具含衆像 於諸境界無所分別 又如虛空普遍一切 於諸國土 平等隨入: 같은 책, pp.1c~2a.
21) 一一毛端 悉能容受一切世界而無障碍 各現無量神通之力敎化 調伏一切衆生身 遍十方而無來往: 같은 책, p.2a.
22) 汝應觀佛一毛孔 一切衆生悉在中 彼亦不來亦不去: 같은 책, p.8b.
23) 佛身周遍等法界 普應衆生悉現前 種種敎門常化誘 於法自在能開悟: 같은 책, p.7c.
24) 一法門中無量門 無量千劫如是說 一切甚深廣大義 如來一句能演說: 같은 책, p.10a.
25) 佛於一一刹那中 普雨無邊大法雨: 같은 책, p.15a.
26) 如來一一毛孔中 悉放光明滅衆患 世間煩惱皆令盡 此現光神所入門 一切衆生癡所盲 惑業衆苦無量別 佛悉蠲除開智照 如是破暗能觀見: 같은 책, p.18a.
27) 李道業, ꡔ華嚴經思想硏究ꡕ, 민족사. 1998, p.44~45.
28) 地神, 樹神, 河神, 海神, 火神, 風神, 主夜神, 主晝神, 日天子, 月天子 등.
29) 其身充滿一切世間 其音普順十方國土 譬如虛空具含衆像 於諸境界無所分別: ꡔ大方廣佛華嚴經ꡕ, 앞의 책, p.1c.
30) 佛身周遍等法界 普應衆生悉現前 種種敎門常化誘: 같은 책, p.7c.
31) 如來廣大智慧光 普照十方諸國土 一切衆生咸見佛 種種調伏多方便: 같은 책, p.10a.
32) 佛於一一刹那中 普雨無邊大法雨 悉使衆生煩惱滅: 같은 책, p.15a.
33) 一一毛端 悉能容受一切世界而無障礙 各現無量神通之力 敎化調伏一切衆生: 같은 책, p.2a.
34) 過去所有諸國土 一毛孔中皆示現 此是諸佛大神通: 같은 책, p.6b.
35) 如來恒放大光明 一一光中無量佛 各各現化衆生事: 같은 책, p.6c.
36) 三世所有無量劫 如其成敗種種相 佛一毛孔皆能現: 같은 책, p.8b.
37) 汝應觀佛一毛孔 一切衆生悉在中 彼亦不來亦不去: 같은 책, p.8b.
38) 諸佛遍世演妙音 無量劫中所說法 能以一言咸說盡: : 같은 책, p.8a.
39) 光明遍照等虛空 普現一切衆生前 百千萬劫諸佛土 一刹那中悉明現: 같은 책, p.13c.
40) 智儼, ꡔ華嚴一乘十玄門ꡕ, 大正藏45, pp.515~518.
41) 此中以事卽法故 隨擧一事攝法無盡: 같은 책, p.518c.
42) 一者敎義 二理事 三解行 四因果 五人法 六分齊境位 七法智師弟 八主伴依正 九逆順體用 十隨生根欲性: 같은 책.
43) 所言 敎義者 敎卽是通相別相三乘五乘之敎 卽以別敎以論別義 所以得理而忘敎 若入此通宗而敎卽義 以同時相應故也: 같은 책.
44) 第二 理事者 若三乘敎辨卽異事顯異理 如諸經擧異事喩異理 若此宗卽事是理 如入法界等經文是體 實卽是理相彰卽是事: 같은 책.
45) 第三 解行者 如三乘說 解而非行 如說人名字而不識其人 若通宗說者卽行卽解 如看其面不說其名而自識也 相顯爲行 契窮後際爲解: 같은 책.
46) 第四 因果者 修相爲因契窮爲果: 같은 책.
47) 第五 人法者 文殊顯其妙慧 普賢彰其稱周 明人卽法也: 같은 책.
48) 第六 分齊境位者 參而不雜各住分位 卽分齊境位: 같은 책.
49) 第七 法智師弟者 開發爲師相 相成卽弟子: 같은 책.
50) 第八 主伴依正者 擧一爲主餘卽爲伴 主以爲正伴卽是依: 같은 책.
51) 第九 逆順體用者 卽是成壞義也: 같은 책.
52) 第十 隨生根欲性者 隨緣常應也 如涅槃經云 此方見滿餘方見半 而月實無虛盈: 같은 책.
53) 같은 책, p.514b.
54) ꡔ반야심경ꡕ의 가르침을 예로 들어 이에 대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事法界: 색, 수, 상, 행, 식의 오온의 세계, 즉 현상세계. ②理法界: 공의 세계, 즉 진리의 세계. ③理事無碍法界: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역부여시’라고 설하듯이 五蘊不離空, 空卽五蘊인 세계, 즉 현상과 진리간의 갈등이 사라진 세계. ④事事無碍法界: 색이 공이고, 수가 공이고, … 식이 공이기에, 색이 수이고 수가 행이 식인 세계(색=공, 수=공, ∴ 색=수 等), 즉 현상과 현상간의 갈등이 사라진 세계.
55) 一一毛端 悉能容受一切世界而無障礙 各現無量神通之力 敎化調伏一切衆生: ꡔ大方廣佛華嚴經ꡕ, 앞의 책, p.2a.
56) 此帝網皆以寶成 以寶明徹遞相影現涉入重重 於一珠中同時頓現 隨一卽爾 竟無去來也 今且向西南邊 取一顆珠驗之 卽此一珠能頓現一切珠影 … 點西南邊一珠者 一珠著時卽十方中皆有墨點 旣十方一切珠上皆有墨點 故知十方一切珠卽是一珠也: 杜順, ꡔ華嚴五敎止觀ꡕ, 大正藏45, p.513b.
57) 라이프니츠의 Monad 역시 인드라망에 달린 구슬과 같이 온 우주를 반영한다: 'Thus, although each created Monad represents the whole universe, it represents more distinctly the body which specially pertains to it, and of which it is the entelechy; and as this body expresses the whole universe through the connexion of all matter in the plenum, the soul also represents the whole universe in representing this body, which belongs to it in a special way'.(Theod. 400.): Monadology 62.
58) 六神通 중 하나로 남의 마음을 읽는 신통력.
59) 六神通 중 하나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는 신통력.
60) 六神通 중 하나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 신통력.
61) The IndraNet / Hyper Poetry by Andrew Stone / The InterNet is just a hollow shadow of the IndraNet / Each being is a pearl in the infinite web / There is no time or space separating any of us / Go ahead, and try it! Reach in and touch someone / The omnipresent IndraNet folds all dimensions into one /(http://www.stone.com/Indranet.html).
62) 마치 먼지 만한 공간 속에 시방의 모든 불국토가 들어가는 重重無盡(끝없는 반복)한 인다라망경계와 같이, 하이퍼텍스트 형식의 문서에서는 그 문서상의 어떤 지점을 클릭하면 그와 링크된 엄청난 양의 정보들이 중중무진하게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