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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높은 곳을 향하여
제 8 일 : 10월 15일(금) : 맑았다 흐렸다 반복, 아침 온도 : 0℃
(디보체 3820 – 팡보체 3930 – 쇼마레 4010 - 페리체 4240)
등반고도차 : 420 m, 등반거리 : 9.5 ㎞, 등반시간 : 7시간
다시 아침이 밝았다. 오전 6시가 조금 못된 시각에 눈을 떴다. 기상시각의 온도는 0℃. 쌀쌀한 아침 공기가 나도 모르게 뺨을 어루만지게 한다. 롯지 문을 열고 정원으로 나가보니 경동과는 특별한 사연이 많은 아마다블람(Ama Dablam 6814)의 아침햇살에 빛나는 아름다운 봉우리가 손에 잡힐 듯 바로 코앞에 보인다. 알프스의 마터호른, 안나푸르나의 마차푸차레와 함께 세계 3대 미봉중의 하나인 아마다블람. 네팔어로 아마는 어머니이고 다블람은 보석목걸이라는 뜻인데 가만 보니 이름의 뜻처럼 어머니의 목걸이를 닮기는 닮았다. 큰니마가 부연설명을 하기를 앞의 봉우리를 뒤의 주봉이 감싸 안고 있는 형세가 마치 갓난 아이를 보듬어 안고 있는 엄마의 형상이라나? 그것도 그럴싸해 보인다. 그래, 바로 저 봉 어드메인가를 20여 년 전 훈상이를(35이훈상) 비롯한 후배들이 도전을 했었고 저 뒷벽으로는 삼 년 전 유동이가(39조유동) 공략했던 루트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언제인가는 다시 도전을 해보리라 생각을 하니 돌연 가슴이 벅차 오른다.
1진의 임시 산행대장을 맡으셨던 20기 염일순 선배님은 그 동안 678시스템으로 운행을 하셨단다. 강호동의 고깃집 육칠팔이 아니라(그 상호는 고기의 육질이 팔팔하다는 뜻이란다.) 6시 기상, 7시 식사, 8시 출발이라는 일정을 미리 정하여 규칙적으로 산행을 하였던 것이다. 아침 8시,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어제의 무리한 산행으로 걱정을 많이 했지만 전대원의 컨디션은 좋다. 특히 어제 하루 1,000 미터 이상을 치고 오른 2진 대원들은, 고소증커녕 펄펄 날아갈듯한 기세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고산증 예방약 한 알을 삼킨다. 고산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하루 4리터의 물을 마시고 예방약 다이아막스를 매일 한 알씩 먹으라 했다. 마늘스프가 도움이 된다고는 했지만 네팔의 마늘스프는 영 입맛에 맞지 않아 늘 생략을 한다. 제발 고소증이여 우리를 피해 가다오.
처음으로 전대원이 일렬로 늘어서서 산행을 시작하니 보기에도 매우 멋져 보인다. 오른쪽으로 아마다블람을 계속 보면서 걷는 산길이 환상적이다. 10시에 팡보체(Pangboche 3930)의 작은 마을에 도착을 하여 밀크티를 마시며 30분을 넘게 휴식을 취하였다. 다시 길을 떠나 점심을 먹기로 한 쇼마레(Shomare 4010)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30분. 출발할 때에 맑았던 하늘은 수시로 바뀐다. 파란 하늘이 순식간에 하얀 구름으로 뒤덮이더니 잠깐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보면 다시 파란 하늘로 바뀌고 산무(山霧)는 쉴새 없이 산허리를 휘돌며 춤을 춘다. 날씨가 추워져서 인지 옷을 두껍게 입었는데도 땀은 나지 않는다.
오후 1시, 오늘의 목적지 페리체를 향하여 출발한다. 이미 고도는 4000미터를 넘어섰고 날씨도 제법 싸늘하다. 전대원 보속을 줄여 천천히 걷고 있다. 아직 고소증 현상을 보이는 대원은 없지만 점점 줄어드는 산소량과 낮아지는 기압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천천히 한발씩 떼는 발걸음이 제법 묵직하기만 하다. 먹고 걷고 자고, 그렇게 우리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고 있다. 오후 1시 50분, 페리체와 임자체(Island Peak 6189)가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잠시 휴식을 한다. 고도는 서서히 높아져만 가고 깊은 계곡을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날카롭고 거세게만 들린다. 센바람 때문에 체감온도가 낮아지므로 방풍복을 꺼내 덧입었다.
오후 3시, 오늘의 목적지인 페리체의 히말라얀 롯지에 도착하였다. 아직 사방은 환하고 대원들의 컨디션도 좋지만 더 이상 산행은 무리다. 이곳 페리체의 고도는 4240미터. 다음 마을인 토글라까지는 쉴만한 마을이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황량한 산길이고, 이곳 페리체는 남체 이후 고소증이 나타나는 분기점이라고 하니 무조건 산행을 마쳐야 한다. 모처럼 산행을 일찍 마치니 긴장이 풀어지면서 갑자기 피곤이 엄습해온다. 몸이 으슬으슬거리면서 온몸의 계기판에 적신호가 온다. 체력의 여유가 있는 대원들은 따듯한 난로가에 둘러 앉아 담소를 하고 있지만 나는 일찍 방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런 날에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것이 제격이지만 트레킹 중에는 샤워는 물론 머리를 감는 것조차 금기사항. 물티슈로 다른 날보다 더욱 꼼꼼히 몸을 닦는 것으로 샤워를 대신하고는 일찍 침낭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 15회 조남직 선배님과 39회 조유동군은 험한 산길을 셀파보다 잘 걷는다. 24회 함기영 단장님의 처남댁 심인숙씨와
동생 심광숙씨도 엄청 잘 걷는다. 그래서 두 명의 네팔 조씨와 두 명의 네팔 심씨가 탄생을 했다. 서기 2010년 10월에.
페리체를 향하여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된다.
막강 선배님들 - 좌로부터 20오상필, 15강보현, 16이완석, 15임우빈, 15조남직
제 9 일 : 10월 16일(토) : 기상변화가 심함,
(페리체 4240 – 토글라 4620 – 로부체 4910)
등반고도차 : 670 m, 등반거리 : 7.7 ㎞, 등반시간 : 7시간
아침날씨가 그리 좋지는 않다. 주위가 온통 개스로 가득 차있다. 이제 트레킹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지난 밤 묵었던 히말라얀 롯지부터 시작되는 페리체 평원을 지난다. 고도가 4000미터가 훌쩍 넘은 이곳에, 사방이 높디높은 산으로 둘러 쌓인 이곳에 대평원이라니, 그것도 끝이 겨우 아스라이 보이는 길고도 긴 평원이 있다니 참 희한하기만 하다. 아침 8시 50분, 페리체 평원의 중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걸을 때마다 숨은 턱밑을 치고 오르고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고도의 위력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한다. 어느새 짙은 개스는 걷히고 맑은 날씨에 수려한 주변의 풍광이 아름답다. 언제부터인지 침엽수마저 사라지고 낮은 관목만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다. 지나온 길을 돌아 보니 대기가 맑아서 인지 모든 사물이 가까이로 보인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지난 밤의 롯지까지의 거리가 무려 1.7 ㎞란다.
오전 10시, 어느덧 평원을 질러 토글라 직전의 된비알길을 올라 가는 중. 현재 고도는 4,500 미터, 기압은 607 밀리바, 평지의 기압이 평균 1,000 밀리바라니 거의 절반수준이다. 호흡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아마다블람의 험한 북측면이 고스란히 보이고 서편으로는 촐라체(Cholatse 6335m)의 급한 설사면이 보인다. 그 바로 밑이 촐라체의 베이스캠프라는 셀파 큰니마의 설명이다. 그림같이 펼쳐진 풍광에 잠시 넋을 놓아두고 한참이나 앉아 있었다.
점심을 먹기로 한 토글라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10분, 토글라는 집이 두어채 있는 작은 마을이다. 메뉴는 라면정식. 트레킹 중에 처음으로 먹는 라면이 그야말로 꿀맛이다. 댓 명의 쿡이 준비하는 식단은 실로 놀랍고도 다채롭다. 매끼마다 다른 식단으로 식사를 준비하는데 늘 네댓 가지의 밑반찬과 함께 북어국이 나오는가 하면 비빔밥도 나오고 오무라이스, 닭도리탕 등등 모두의 입을 다물게 하지 못하게 차려 내온다. 간맞춤도 얼마나 기막힌지 서울의 여느 식당 못지 않다.
날씨는 다시 나빠지고 있다. 밑으로부터 스멀스멀 올라온 산무가 삽시간에 사위를 가득 채우더니 이내 가시거리가 100미터도 안될 만큼이나 나빠졌다. 갈수록 추위가 더해져 우모복을 꺼내 입었다. 오후 1시 30분, 드디어 된비알길 정상에 도착했다. 점심 이후부터 내리던 진눈깨비는 가는눈으로 변하여 배낭에 하얗게 쌓이고 있다. 날이 맑았으면 장관이었을 터, 가시거리는 50미터로 줄어 주위의 풍광을 둘러 볼 수가 없다. 높이 쌓은 마니석탑 중앙 솟대로부터 사방으로 뻗은 줄에 룽다 만이 펄럭이고 있다. 이곳부터 목적지인 로부체까지는 비교적 평판한 길, 가쁜 숨을 겨우겨우 달래며 오후 2시 45분에 로부체의 롯지에 도착했다. 롯지의 팻말이 새롭게 눈에 와 닿는다. “ABOVE THE CLOUDE, 4930 M” 말 그대로 구름 위에 있는 롯지, 고도 4930미터란다. 벌써 엄청 올라 왔군. 이미 가는눈이 함박눈으로 바뀐 지 오래고 이렇게 쌓이면 내일 칼라파타르 정상 등반이 걱정이 된다 그러나 셀파는 오늘 눈이 내리면 다음날 하늘은 개인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3시 55분, 방배정을 마치고 홀의 따뜻한 난로 주위에 대원들이 모여 앉는다. 그러나 야박한(?) 주인이 난로에 더 이상 땔감을 넣지 않아 난로는 싸늘하게 식어만 가고 모두가 아쉬워할 때, 누군가 셀파를 통해 주인과 협상을 했다. 그리고 나온 고함소리.
[대원 1] : “ 조남직 선배님께서 똥을 쐈습니다~!!”
하이고, 우습고 망측한 소리지만 알고 보면 재미있는 표현이다. 사연은 이렇다. 나무가 없는 이곳에는 땔감이 없어 야크똥을 말려 연료로 쓰는데 그 귀한 연료를 때려면 돈을 내야 한다. 야크똥을 빈대떡처럼 반죽을 하여 잘 말린 야크똥 석장의 값은 3달러. 이곳에서는 제법 큰 돈인데 15회 조남직 선배님께서 똥값을 쏘신 것이다. 대원 모두는 그렇게 우스개 소리를 하며 추위를 이기고 있었다.
내일은 정상에 오르는 날, 줄어든 일정으로 새벽 3시에 기상해서 4시에 산행을 시작하기로 했다.예상 온도는 영하 20도, 매우 춥고도 힘든 산행이 될 것이다. 더구나 나를 포함한 몇몇 대원들이 가벼운 두통 등 고소증 초기 증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이춘식(23회) 선배님은 식욕부진과 가벼운 구토증세를 보이고 있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내일이면 정상에 오르는데, 내일만 넘기면 되는데, 제발 모두가 별탈이 없었으면.
** 마니석탑 : 넓적한 돌판에 티벳불교 경전을 양각하여 쌓아 놓는다. 한번 지나갈 때마다 경전 한 번을 읽는 것과 같다고 하며
그래서인지 탑을 보고 왼쪽으로 지나가야 한다.
** 룽다(Lungdar 風馬) : 청.백.적.녹.황의 다섯 가지 색의 천을 이어 긴 장대 끝으로부터 사방으로 걸어 놓는다. 각각의 천에는
가족의 소망과 안녕을 기원하는 글귀를 적어 놓는다. 바람에 한 번 펄럭일 때마다 신에게 기도가 전해진다고 믿는다.
다섯 가지의 색은 각각 공간.물.불.바람.땅을 의미한다.
페리체의 아침 - 뒤로 아마다블람이 보인다.
페리체 평원을 지나며
토글라 부근의 계곡을 건너고 있다.
제 10 일 : 10월 17일(일) : 기상변화가 심함
(로부체 4910 – 칼라파타르 5550 – 토글라 4620)
등반고도차 : 640 m, 하산 : -930 m 등반거리 : 17.9 ㎞, 등반시간 :16시간
셀파들은 매일 아침 기상시간에 맞춰 더운 차를 갖고 방문을 두드린다. 귀족대우를 받는 것 같은 우아한 모닝콜이다. 셀파들의 모닝콜에 졸린 눈을 겨우 뜨고 일어난 시간이 새벽 3시. 오늘의 긴 산행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4시부터 산행을 시작해야 한다. 간밤에 심한 두통으로 진통제 두 알을 먹은 것이 효과가 좋다. 밖에 나가 보니 주위는 캄캄한데 눈이 소복이 쌓였지만 오늘 전대원 정상 등정은 별 무리가 없을 듯 보인다. 미역국으로 이른 아침을 달래는데 새벽잠이 덜 깼음인가, 아니면 고소증 때문인지 아침식사 분위기가 전과 달리 침울하다. 이춘식 선배님이 보이지 않는다. 룸메이트인 김석 선배님(23회)이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한다. 이춘식 선배님이 밤사이 고소증세가 악화되었다고 한다. 이런, 드디어 우려했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급히 방문을 하여 보니 도저히 등반을 계속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전원등정을 이루고 싶었는데 아쉽기만 하다. 어쩔 수 없다. 셀파 한 명을 선배님 곁에 붙여 놓고는 나머지 대원들은 모두가 해드랜턴을 켜고 새벽을 뚫으며 예정대로 산행을 시작한다.
오전 6시 30분, 길은 계속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이제 내리던 눈도 그치고 벌써 주위는 밝아졌다.이쯤이면 고도 5000미터는 족히 되리라. 멀리 뒤에서 천천히 오시던 단장님(24회 함기영) 내외분을 따르던 셀파가 갑자기 잰걸음으로 내게로 온다. 어? 또 뭔 일이? 수신호로 교신을 해보니 고소증 발병이란다. 오던 길을 되돌아 단장님에게 다가가 증세를 진단하니 역시 고소증이다. 로부체에 남아 있는 셀파에게 핸드폰으로 상황을 물어보니, 이춘식 선배님은 아직도 주무시고 계시단다. 두 명이 추가로 하산을 하니 일단 우리가 하산할 때까지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대기하고 상태가 위중해지면 바로 페리체까지 하산할 것을 지시하고는 단장님 내외분을 셀파 한 명과 함께 오늘 묵을 토글라까지 하산하도록 조치를 하였다. 또 두 명의 등정포기. 이제부터 본격적인 고소증 시작의 신호탄인가? 과연 몇 명이나 끝까지 버틸까 갖가지 걱정이 태산이다.
누군가 산의 날씨는 아가씨마음과 같다고 했다. 수시로 변하는 날씨. 진눈깨비가 내리더니 금방 날씨가 개이고 다시 개스가 무겁게 끼더니 다시 눈으로 변하고, 이제 배낭커버는 아예 씌운 채로 산행을 계속한다. 길은 계속 오르막으로 치닫는다. 속속 변하는 날씨 속으로 눕체(Nuptse 7864m)가 보였다가 사라지더니 다시 로체(Lhotse 8516m)가 나타나고, 까마득한 아래로 크고 작은 빙하호가 보였다가 이내 사라진다. 아, 날씨. 날씨만 좋다면 얼마나 장관일까?
아침 9시, 드디어 마지막 마을 고락셉에 도착을 하였다. 아침식사를 너무 일찍해서인지 시장기가 느껴진다. 여기부터 칼라파타르 정상까지는 고도차 400미터, 약 2시간 30분 정도의 거리. 중간에 요기할 곳은 없다. 지치지 않으려면 뭐든지 먹고는 뱃심을 길러야 한다. 등반대장 39회 조유동군이 모두에게 밀크티와 비스켓을 쏜다. 나와 몇 명은 밀가루전병 같은 짜파띠를 추가로 시켜 먹었다. 비로소 배가 다소나마 든든해진다. 30분 남짓 휴식을 취하고는 물병에 따또바니(뜨거운 물)도 보충을 하며 모두는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마지막 오름짓을 시작한다. 짙은 산무로 시계가 엉망이다. 정상에 오르면 하늘이 활짝 열려 에베레스트를 자세히 볼 수 있기를 빌며 무거운 걸음을 뗀다. 아직 모두의 컨디션은 좋은 듯 보인다.
칼라파타르 초입까지는 마치 너른 축구장 같은 평평한 모래밭이 수백 미터 이어지고 곧바로 시작되는 가파른 오르막길. 정상까지는 풀 한 포기 없는 온통 바위투성이의 험한 오르막길이다. 한 걸음 떼고 한 숨 쉬고, 길은 멀기만 한데 오르는 걸음이 한없이 무겁고 느려지기만 한다. 다시 절감하는 고도의 위력. 이미 칠순을 훌쩍 넘기신 임우빈(15회), 이완석(16회) 두 선배님의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워 보이고 호흡이 거칠어지신다. 임우빈 선배님은 이번 트레킹을 결정하기 전, 주치의를 비롯한 주위의 많은 만류가 있었단다. 그런 선배님을 마지막까지 동행해주겠노라며 꼬드긴 분이 바로 20회의 염일순, 오상필 두 분이시다.
[15임우빈] : “ 어이, 송회장~ 자네 나한테 거짓말 했어~!”
[27송기훈] : “ 네? 네?? 멀뚱멀뚱~??”
[15임우빈] : “ 청계산 갈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자너, 근데 그게 아냐~!”
하긴 나도 힘들어 죽을 판인데 오죽하실까? 마지막 깔딱고개에 힘들어 하시는 선배님께 그저 죄송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20회의 두 분은 선배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거짓말을 한 벌로 임우빈 선배님(15회)과 이완석 선배님(16회)의 곁을 떠나지 않기로 했다. 오르는 길은 계속 가파르기만 하고 바위길을 걷자니 힘이 몇 배가 더 든다. 높아지는 고도에 희박한 산소는 우리의 인내심을 끈질기게 테스트하고 있다. 선두 그룹과의 간격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이완석 선배님이 걸음을 멈추신다. 창백해진 안색이시다. 어이쿠, 무슨 일이십니까? 선배님은 아무 말없이 배낭을 벗고는 약을 꺼내 드신다. 지병인 부정맥 치료약이란다. 갑자기 혈류가 불안정해지고 현기증이 나셨단다. 물론 주치의는 이번 트레킹 산행을 극구 말렸단다. 아아, 선배님, 선배님들… 누구나 이번 트레킹에 참가한 저마다의 사연이 있겠지. 그러나 칠순을 넘기신 선배님들의 사연은 후배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를 터이고 그 열정과 각오가 남다를 것임에 나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며 목이 메어버렸다.
드디어 정상이 가까이 보인다. 5550 미터 정상에는 룽다가 세찬 바람에 찢어지듯 펄럭이고 있었다. 진눈깨비가 펄펄 휘날리는 가운데 우리는 모두가 정상에 모였다. 지금 시각 정오, 새벽 4시에 산행을 시작한지 8시간 만에 우리는 드디어 정상을 딛고 선 것이다. 고산전문등반가에게는 하찮게 보일지도 모를 칼라파타르 정상, 그러나 수많은 장애를 넘고 우여곡절 끝에 선 5550미터의 정상은 우리 모두에게는 큰 감격일 수 밖에 없다. 어쩌면 포기했을지도 모를 꼬여버린 등반여정, 동문들의 산행이었기에 그 모든 어렵고 힘든 상황들을 극복하고 이루어낸 값진 산행이다. 내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결국 해냈다는 커다란 성취감을 어떻게 말로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짙은 구름 뒤로 꼭꼭 숨어 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에베레스트가 야속하지만 간간이 그 거대한 몸집을 바로 눈 앞으로 내미는 눕체를, 그리고는 멀리 발치 아래로 보이는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를 보며 위로를 받는다. 잘왔다, 그래 잘왔어~! 준비해간 동창회기, 산악회기 그리고 현수막을 앞에 들고 모두 경동 파이팅을 외친다.
강한 바람과 추위에 모두가 하산을 서두르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좀체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언제 다시 와볼 수 있을까? 정하선 선배님(23회)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을 머물다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누가 물었다. 산에 왜 가는가라고. 그리고 누가 답했다. 산이 거기 있으므로. 그러나 나는 그러한 멋진 말은 잘 모른다. 내게 산은, 운동의 도구가 아니며 더구나 내게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내게 산은 다만 수행의 대상일 뿐이다.
오후 2시, 다시 고락셉으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들고 토그라까지 강행군이다. 셀파의 핸드폰으로 확인해보니 고소증으로 하산한 세 명의 대원은 토글라 롯지에 도착해서 잘 쉬고 있단다. 다만 이춘식 선배님의 증세가 크게 호전이 되지 않아 걱정이다. 하산길은 모두를 더욱 지치게 한다. 열 시간이 넘게 계속되는 힘든 산행과 목적을 달성한 후에 긴장감이 풀어져서인지 하산길이 무척이나 지리하고 힘이 든다. 올랐던 길을 되돌아 내려 오는 산길은 이미 감상했던 풍광이라 그다지 새로운 감흥도 없고 지친 몸에 빨리 숙소에 도착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모두가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산행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맞다, 아무리 산이 좋다 한들 이렇게 힘이 들어서야 어찌 다시 올 생각이 나겠는가. 갑자기 히말 원정에 경험이 많은 후배의 말이 생각난다. 한번 가면 그 고생 때문에 다시는 오고 싶지 않고 한 여섯 달 정도 지나면 슬슬 히말의 생각이 나다가 일년이 지나면 미치도록 다시 가고 싶어진다는 경험담이었다.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지금은 다시 오고 싶지 않은 지독한 고생길이다.
오후 7시 55분, 이미 날이 어두워져 모두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하여 휘날리는 진눈깨비를 온몸으로 받으며 어렵사리 하산을 한 끝에 겨우 토글라의 롯지에 도착을 했다. 장장 16시간에 걸친 죽음의 행군에 온몸이 파김치가 되었다. 저녁식사로는 보기에도 군침이 도는 짜장밥이 차려졌지만 한술도 뜰 기력이 없다. 피로 회복을 위해 내일은 678시스템 대신에 789시스템으로 운행하기로 하고 하루를 마친다. 양치도 못하고 그대로 침낭 속으로 몸을 구겨 넣는다.
** 24회 함기영 단장님 내외는 하산 직후 고소증으로부터 회복이 되었지만 23회 이춘식 선배님은 증세가 호전이 되지 않았다.
식사를 하지 못함은 물론이거니와 물도 마시지 못하는 극한 상황이었지만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만약 약한 사람이었다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 했을 것이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칼라파타르 오르는 길
드디어 정상, 우리는 해냈다~!!!
- 계속 -
첫댓글 '엑셀시오" 다시한번 축하를 드립니다...
노익장ㅡ동인랑의 쾌거를 경하드립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어려운 산행을 무사이 이루어낸 선배님들의 투혼과, 이렇게 생생하게 그 상황들을 글로 남기셔서 후배들에게 전해주는 세심함에 고개를 숙입니다. 경동 홧~~팅
오늘은 사진만 눈에 들어오네요 다음주 야영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