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한북천마지맥 종주기3
*지맥구간:과라리고개-천마산-마치고개
*산행일자:2007. 5. 20일
*소재지 :경기 남양주
*산높이 :813미터
*산행코스:내방리가양초교-과라리고개-676봉-천마산-마치고개
*산행시간:11시05분-18시15분(7시간10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 5명
(이규성, 이성종, 유한준, 정병기, 우명길)
시간을 미분하면 순간이 되고, 순간을 적분하면 세월이 됩니다.
계절의 여왕 5월에 산을 오르면 순간을 다투며 푸르게 변해가는 신록의 숲에 발을 들이게 되고, 억겁의 세월이 정성들여 만든 바위도 오르게 됩니다. 순간과 세월이 모두 시간의 함수라면 5월의 산에 올라 시간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실체를 만져볼 수 없다고 시간의 존재를 잊어버린다면 삶의 자취를 점찍어 나갈 시공의 좌표면도 같이 잊게 되어 살아나가기가 엄청 당혹스러울 것입니다. 삶의 현주소가 확인 안 되어 언제 어디에서 온 누구인가를 새까맣게 잊게 될 것이고 앞으로도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잡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계를 만들어 오관으로 확인 할 수 없는 시간을 측정하고 기록해두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제가 즐겨하는 산행도 결국은 그때그때 남기고 싶은 순간을 기록하고 쌓아가 세월을 만들어가는 삶의 한 과정이기에 이 또한 시간의 함수입니다.
어제는 경동고교 동문들과 함께 천마산 구간의 한북천마지맥을 종주했습니다.
천마산의 산줄기를 타면서 계절의 여왕으로 널리 알려진 5월이 명불허전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하루 산행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어제의 천마산 산행만 같기를 바라는 것은 5월이 준비해 놓은 신록과 바람 덕분입니다. 두 달 전 수원산 줄기에서 한북천마지맥 종주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 지맥의 산줄기에 겨울의 잔재가 하나도 가시지 않았는데, 어제 오른 천마산에는 파릇파릇 돋아난 새싹들이 어느새 크게 자라 온 산이 푸르렀으며 산줄기로 올라선 골바람이 적절한 세기로 불어주어 얼마고 걸어도 더운 줄 모르고 한참을 쉬어도 써늘하지 않은 최적의 기온이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길섶의 야생화도 저희들에 곁을 주어 천마산이 마치 천국처럼 느껴졌습니다. 쉴 새 없이 하늘거리는 야생화의 청아하고도 아름다운 한 순간을 포착해 카메라에 담는 민첩성이 돋보인 한 후배의 재빠른 손놀림이나, 오랜만의 장시간 산행으로 지쳐 마지막 얼마동안 다리를 끄는 또 다른 후배의 느린 발걸음 모두 5월의 산줄기가 준비한 시간놀음이었습니다.
아침11시5분 남양주시 수동면의 가양초교 앞에서 하차하여 길 건너 시멘트도로로 들어섰습니다. 지난 4월에 빼먹은 금단이고개-철마산-과라리고개의 두 번째 구간과 이번 과라리고개-천마산-마치고개의 세 번째 구간을 한번에 종주하는 이규성 회장을 12시 반에 과라리고개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터라 다른 때보다 늦은 9시50분경에 청량리를 출발했습니다. 마석에서 왼쪽으로 꺾어 몽골촌으로 가는 좌석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넘겨 달려 도착한 내방리의 가양초교에서 수산천 오른 쪽으로 나란히 나있는 시멘트도로를 따라 반시간 넘게 걸었습니다. 모내기를 막 끝낸 논과 쓰레질을 해놓고 모내기를 기다리는 논들 모두 전날 내린 비로 물이 가득 차있어 보기에도 좋았습니다. 수산천을 건너 왼쪽 산길로 들어선 후 4-5분을 오르자 산소를 끝으로 길이 끊겨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오른 쪽 산등성을 타고 내려가 수산천과 만나는 작은 계곡을 건넜습니다. 합수점에서 남쪽의 산길로 다시 들어서 계곡과 나란히 걸어 오르다가 또 다시 합수점을 만나 오른 쪽 계곡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얼마고 걸었습니다. 이내 길이 끊어지고 없어져 오른쪽 산등성을 타고 무조건 지능선으로 올랐습니다.
13시 과라리고개에 도착해 금단이고개에서 출발한 이 회장을 만났습니다.
지능선에 오르자 왼쪽위로 희미한 길이 나있어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지맥의 주능선에 오를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했습니다. 얼마 후 만난 묘지에서 몇 분간 쉬다가 약속한 시간보다 반시간 먼저 도착한 이 회장의 전화로 이내 자리를 떴습니다. 12시50분 경 주 능선의 한 봉우리에 올라 지난번에 내려선 과라리고개가 어느 쪽에 자리했는지 잠시 가늠한 후 왼쪽으로 내려서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과라리고개에서 이회장과 해후했습니다. 유한준사장과 이 번에 처음으로 지맥종주에 합류한 이성종사장이 마련한 식단으로 풍요롭게 점심상을 차려 긴 시간 식사를 함께하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고개도착 30분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비알 길을 20분 가까이 올라 양지봉에 도착했습니다.
15시18분 오른 쪽으로 보광사 길이 갈리는 삼거리안부에 도착했습니다.
양지봉에서 내려서 잠시 구릉길이 이어지다가 다시 된비알 길이 시작됐습니다. 신록의 풋풋한 나뭇잎들이 햇빛을 가려주고 골바람이 불어와 능선 길은 더 할 수 없이 선선했습니다. 다소곳이 고개 숙인 야생화를 카메라에 옮겨 담고자 하늘거리는 꽃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바람이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해 셔터를 누르는 정병기 사장의 모습이 진지해보였습니다. 왼쪽으로 갈라진 지능선에 길이 나있는 해발 676미터의 둥글봉(?)에 오르자 발음이 비슷한 제 별명 “둥굴씨”가 생각났습니다. 용인에서 서울을 출퇴근하느라 녹초가 다 된 1980년대의 주말이면 방안에서 빈둥대는 저를 보고 집사람이 “둥굴씨”라고 놀려댔는데 그 후 애들이 다 커서도 계속되어 “여보”를 밀쳐내고 완전한 제 호칭으로 굳어져버렸습니다. 잠시 둥글봉에서 퍼지고 쉬었다가 다시 일어나 꽤 깊숙이 보이는 삼거리안부에 내려서자 괄아리고개로 표기한 긴급구조 표지판이 서있었습니다. 안부를 넘는 골바람이 시원해 잠시 호흡을 고른 후 천마산으로 향했습니다.
16시6분 해발812미터의 천마산 정수리에 올라섰습니다.
괄아리고개에서 10분을 걸어 보구니바위 옆 능선길에 오르는 동안 땅바닥에 떨어진 철쭉 꽃을 보았습니다. 지리산에서 막 꽃망울을 터뜨리는 철쭉꽃을 본 것이 지난 주였는데 고위도지방의 천마산에서 벌써 꽃이 진 것은 해발고도가 지리산보다 1,100미터나 낮아서입니다. 보구니바위에서 돌핀샘바위와 전망바위를 지나서 천마산정상까지 이어지는 능선 길은 이제껏 걸어온 육산의 흙길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오르락내리락도 급했고 대부분 암릉 길이어서 로프를 잡고 내려서는 등 조심해야할 곳도 있었습니다. 능선 길을 조심스럽게 오르내리는 산객들의 눈길을 끈 것은 나뭇가지에 남아 있는 연분홍 꽃의 또 다른 산객이었으니 이 산객은 철쭉꽃의 또 다른 이름으로 진달래와 구별해 연달래로 부르기도 합니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암봉의 정상에 오르자 다른 분들이 먼저 와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분이 저희 일행 5명의 기뻐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옮겨 담아 주었는데 사진을 찍으며 “들어갑니다”하고 시그널 한마디를 보냈습니다. 이제껏 피사체가 카메라 안으로 들어간 다고 믿어온 제게 거꾸로 카메라가 피사체 안으로 들어간다고 일러준 그 분의 한마디에서 저의 세상 보는 눈이 너무 고답적임을 알았습니다. 거대한 산줄기가 카메라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속상해하는 제가 작은 카메라를 웅장한 산속으로 들이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을 바꾸게 한 것은 촌철살인과 같은 “들어갑니다.” 한마디였습니다.
북쪽 멀리로 주금산의 독바위가 보였고 그 앞으로 철마산도 보였습니다.
남쪽 가까이는 다음에 오를 백봉이 마치고개 건너에 자리하고 있었고 동쪽으로 축령산-서리산 산줄기가 흐릿해 보였으며 서쪽 까마득히 한강의 물줄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손이 석자만 더 길었어도 손끝이 하늘에 닿을 수 있다하여 천마산으로 불린다는 이 암봉에 석자가 훨씬 넘는 깃봉이 세워졌어도 하늘은 여전히 높아보였습니다. 어차피 손끝에 닿지 못할 하늘이라면 깃발을 세워 소리 없는 아우성을 전하는 편이 옳겠다는 판단에서 이 암봉에 깃봉을 세우고 태극기를 매달았다면 같은 뜻으로 깃봉을 세웠을 주금산, 철마산과 천마산 정상봉을 묶어 한북천마지맥의 국기봉 삼형제로 불러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정상에서 참외를 까먹은 후 마치고개로 향했습니다. 천마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지맥 길은 경사가 급한 내림 길이 각시붓꽃이 수줍어하는 헬기장까지 이어졌습니다. 헬기장을 지나서 얼마 후 가느다란 나일론 줄이 쳐있는 오른 쪽의 안전한 우회 길을 놔두고 로프를 잡고 절벽을 내려서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18시15분 마치고개로 내려서서 한북천마지맥의 3구간 종주를 마쳤습니다.
절벽의 바위에서 조금 내려서 고도차가 별로 없는 편안한 구릉 길에 발을 들이면서 남은 지맥길이 더도 덜도 말고 이 길만 같으라고 빌었습니다. 더할 수 없이 안온한 이 순간을 적분해 세월 수준으로 끌고 갈 수 있다면 남은 지맥 길이 이 길과 같아 최고의 양탄자 길이 될 수 있을 것을 하면서 이 순간의 스러짐을 아쉬워했습니다. 나무의자 쉼터에서 잠시 쉬었다가 스키장 위 전망지에서 천마산의 점잖은 자태를 카메라에 실은 후 구도로가 지나는 터널 위 마치고개에 이르렀습니다. 길 건너 백봉의 들머리를 확인 한 후 왼쪽의 마석 쪽으로 내려가 아파트 단지 정류장에서 청량리행 버스에 올라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일년 열두 달 중 산행하기 가장 좋은 달은 누가 뭐라 해도 계절의 여왕인 5월임에 틀림없습니다. 이틀 동안 내린 비로 마냥 싱그러워진 신록의 산속에서 7시간여 동문들과 같이 보낸 어제의 천마산 산행은 걸으면서 시간이 멈춰서기를 바라는 아름다운 순간이 꽤 여러 번 있었던 그냥 보내기 아쉬운 산행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순간은 포말처럼 사라지기에 그새 세월 속으로 숨어버린 아쉬운 순간들을 끄집어 내 산행기를 쓰느라 많이 힘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