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다른 방법이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일본은 비용을 핑계로 온 인류의 바다를 더럽히려고 합니다.
국제사회가 마음과 힘을 모아 일본을 막아내고 제재한다면 어떻게 일본이 저렇게 나올 수 있을까요?
편가르고 전쟁을 하면서도
인류에 해악을 끼치는 오염수 방류는 못 본 척 방치하고 문제 없다는 듯 수수방관하고서
인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요?
지구 생태계는 어떤 미래를 마주하고 있는 걸까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는 해양투기 외에 다른 방안이 없었던 걸까. 그렇지 않다. 전문가들도 포함된 일본 원자력시민위원회가 2019년 두 가지 처리 방안을 내놨다. 첫째, 10만㎥급 초대형 탱크를 지어 오염수를 장기 저장하는 방안이다. 핵종(방사성물질)의 독성이 충분히 줄어들도록 수십년 보관한 뒤 방류 여부는 다음 세대 결정에 맡기자는 것이다. 일본의 뛰어난 토목기술이라면 튼튼한 초대형 탱크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원전 북측 토사처분 예정지를 부지로 활용할 수 있다.
둘째, 오염수를 건축재료인 모르타르처럼 굳히는 방안이다. 원전 부지에 반지하 콘크리트 용기를 만들고 그 안에 오염수·시멘트·모래를 개어 굳히면 방사성물질 유출 위험을 반영구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이미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 리버 핵시설 오염수 처분에 활용되고 있다. 둘 다 1~2년이면 실행할 수 있다. 경제산업성 자문기관인 알프스소위원회가 제시한 수증기방출, 수소방출, 지하매설, 지층주입, 지하매설보다 현실성이 있다.
문제는 비용인데 대형 탱크는 10기에 많게는 3000억원, 모르타르화는 1조원으로 추계된다. 바다에 버리는 비용이 340억원으로 가장 적다. 해양투기를 선택한 것에 비용이 핵심 고려 사항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돈 문제로 일을 그르친 적이 있다. 원전 사고 초기 일본 정부는 원전으로 흘러드는 지하수가 핵연료에 닿으면서 오염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자 차수벽을 짓기로 했다. 총리실 원전사고담당관이 2011년 6월 이 계획을 확정했는데 그달 말 주주총회를 앞둔 도쿄전력이 발표 연기를 요청했다. 막대한 비용의 사업계획이 주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그 담당관이 도쿄전력 주총이 열리던 날 어떤 이유에선지 전격 해임됐다. 이런 사정으로 차수벽은 4년 뒤인 2015년에야 설치됐다. 차수벽을 조기에 설치했더라면 ‘호미로 막을 수 있던’ 오염수가 가래로도 막기 힘들게 됐다.
오염수 문제에서 도쿄전력은 총체적인 불신을 받고 있다. 사고 직후부터 오염수를 번번이 바다로 유출시켜 지탄받았다. 2013년 가동을 시작한 오염수 정화장치 알프스(ALPS)가 핵종인 탄소14(반감기 5730년)를 제거할 수 없는 사실을 2020년까지 감춰왔다. 다른 핵종의 제거율도 불량하다. 알프스를 여러 차례 돌리면 기준치 이내로 정화할 수 있다지만, 그간의 경과로 미뤄보면 알프스가 위험한 스트론튬90이나 세슘137을 제대로 제거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비호에 기대 해양투기를 결정했다. 후쿠시마 어민이나 국제사회 우려를 아랑곳하지 않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울리히 벡이 말한 ‘조직화된 무책임’의 전형이다.
방사성물질은 인위적 제거가 불가능해 반감기가 지나길 기다리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마을의 주택과 도로를 제염해도 숲에 쌓인 방사성물질은 비나 바람을 타고 다시 마을에 날아든다. 제염(除染)이 아니라 이염(移染)일 뿐이다. 방사선량 측정기 일대를 집중 제염하면 수치는 낮아지지만 눈속임이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2021년 후쿠시마에서 도쿄 올림픽 예선경기를 치렀고, 이를 비판하면 “아픈 상처를 헤집는 괴담”이라고 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에 쌓아둔 방사능 제염토를 일본 각지로 보내 재활용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저준위 방사능은 확산해도 괜찮다’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가 오염수 해양투기에도 작용한 것 같다. 원전 사고로 생긴 뒤틀린 ‘피해자 의식’도 배경에 깔렸을 것이다.
일본 쓰쿠바대학 교수를 지낸 태가트 머피는 <일본의 굴레>에서 메이지유신 주역들이 형식적인 천황제도와 의회 뒤에서 실권을 행사했고, 이들이 사라진 뒤 일본 정치는 최종 책임 없는 관료에게 휘둘리게 됐다고 분석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뒤 일본 전범들이 ‘원치 않는 재난에 마지못해 끌려들어간 피해자’처럼 행동한 데는 이런 ‘무책임 구조’가 있다. 그나마 침략전쟁 전범들은 처벌됐지만, 인류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를 책임지는 이는 없다.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도쿄전력 경영진 3명은 올 초 항소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일본인들이 대지진과 원전 사고로 겪은 피해와 고통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컸다. 그렇다고 무른 땅에 원전을 짓고, 재난 대비에 소홀해 사고를 키운 책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재난이 과오의 면죄부가 되면서 ‘무책임이 구조화’되는 일본의 지금 모습에 유감을 감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