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보는 교육격차
유네스코의 ‘모두를 위한 교육(EFA)’이라는 화두는 새삼스럽지 않다. 소수가 독점하거나 소수가 낙오되는 교육을 넘어 모두에게 의미 있는 교육 실현은 인류의 오래된 미래이기 때문이다. 초연결 사회, 지능정보화 사회의 도래라는 호들갑도 ‘모두를 위한 교육’에서는 맥을 못춘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분배 정의에 있고, 기술의 진보가 모두에게 공평한 혜택으로 실현될 수 없는 현실 때문이다.
(사진 출처)2015 세계교육포럼 자료집 캡쳐
학력격차는 또 어떤가?
코로나로 인해 중간층이 사라지고 학력격차가 심해졌다고 우려하지만 ‘학력’이 學力인가. 學歷인가? 學歷이라면 코로나 이전에도 이후에도 바뀔 것은 없다. 수험생 중 일정한 비율의 학생들이 주요 상위권 대학, 인기 학과에 진학하는 현실은 그대로다. 學力이라면 무엇을 학력으로 볼 것인지 먼저 합의해야 한다. 수능 점수를 學力으로 볼 것인지, 현재의 지능정보 사회를 살아갈 능력을 學力으로 볼 것인지, 우린 이조차도 합의하지 못하면서 ‘학력격차’ 담론에 휩쓸린다.
새 시대를 담지할 새로운 학력으로 ‘참학력’에 대한 재정의 시도가 진보 교육감의 약진 이후 십 년 넘게 지속되었지만 각자 경험하는 수준에서 학력 논쟁을 벌이는 것은 여전하다. 이런 편향을 줄이기 위해 사회를 구성하는 집단(성, 지역, 계층) 간에 나타나는 교육 결과의 차이와 그러한 교육 결과에 이르게 되는 과정의 차이를 뜻하는 ‘교육격차’라는 개념을 사용하고자 한다.
교육격차는 모두를 위한 교육이 실패했다는 반증인가?
대부분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계적 평등주의에 머물지 않고 우리 교실을 구성하고 있는 학생들의 다양한 배경과 맥락, 차이를 고려한다면 ‘교육격차’는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격차가 성에 따라, 출신 지역에 따라, 경제적 계층에 따라 고착화되어, 성이나 지역, 계층의 영향력이 어떤 변수에도 꿈쩍하지 않는 상수가 된다면 모를까, 격차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늘 존재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격차의 정도와 범위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경제적 양극화로 인한 거주지 분화, 그에 따른 여러 부수 현상들이 점차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교육에서의 격차 역시 마찬가지다. 지역(거주지)이나 계층 간 교육 결과의 차이는 코로나 이전부터 심해지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오히려 더 부각된 측면이 강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월 128만원과 1천15만원의 소득 격차만큼이나 미래세대가 경험하는 가정의 경제적‧문화적 차이는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소득에 따른 거주지 분화에 따라 다양한 환경에 있는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상호작용하면서 서로 배울 수 있는 기회조차 보장할 수 없는 사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의미한 자극과 정보를 주면서 서로의 이질성을 중요한 배움의 자원으로 만들 기회가 없는 동질적 구성의 교실이야말로 ‘모두를 위한 교육’의 실패를 보여주는 지표일지도 모른다.
격차보다는 기본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
코로나가 보여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은 아동청소년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미래세대의 현실에 대한 직면이다. 어려운 지역에 근무하는 많은 교사들이 학생들이 처한 삶의 환경을 통해 ‘무엇’을 해야 하나, 번민했다. 동시에 교실의 작은 책상과 딱딱한 의자가 아이들에게는 어쩌면 가장 평등한 공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격차를 없앨 수는 없지만 모든 아동청소년에게 ‘기본’을 보장해주는 사회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 기본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에서 시작하면 된다. 적정한 생활수준을 누리고 안전한 주거지에서 살아갈 권리, 충분한 영향을 섭취하고, 기본적인 보건 서비스를 받을 권리, 바로 생존의 권리다. 모든 형태의 학대와 방임, 차별, 폭력, 고문, 징집, 부당한 형사 처벌, 과도한 노동, 약물과 성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바로 보호의 권리다.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받을 권리, 여기를 즐기고 문화생활을 하며 정보를 얻을 권리, 생각과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 바로 발달의 권리다.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일에 의견을 말하고 존중받을 권리, 표현의 자유와 양심과 종교의 자유, 평화로운 방법으로 모일 수 있는 권리,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 유익한 정보를 얻을 권리, 바로 참여의 권리다.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권리 보장은 어떻게?
유네스코의 ‘모두를 위한 교육’은 바로 이런 아동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해주자는 보편적인 요구에서 출발한다. 이 협약에 가입, 비준한 우리나라에서 ‘기본’을 보장받지 못하는 아동청소년이 여전히 많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방법을 차근차근 찾아가는 2022년이 되면 좋겠다. 그 하나의 방법으로 ‘한 아이를 중심에 둔 지원체제’의 주춧돌이 되는 케이스 워커(Case Manager, 사례 관리자)에 대해 알아보는 공부를 시작한다.
원글 링크: https://www.koreateachers.org/news/articleView.html?idxno=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