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니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꽤 오랜 시간을 살아 왔다.
내 뜻을 펴려 했다기 보다
니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며 같이 부등켜 울고,
기쁨을 즐겁게 함께 누리기도 하고,
니들에게 태어난 아기들을 감격으로 함께 품고 누리며,
니들과 나는 함께 바뀌고,
자라고,
영글어 가며,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영혼이 풍성해지는 삶을
참으로 맛보며 한 없이 감사한다.
나 혼자 였으면 이런 바뀜, 자람, 성숙은 불가능한 것임이 확실하다.
이렇게 나와 함께 한 니들의 바뀜, 자람, 영글어 감도 볼 수 있어
늘 우리를 굽어 살피시는 하늘에 계신 분께 늘 감사한다.
한 없이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높은 뜻을 펴는 일에 조그만 도구가 될 수 있어
매순간의 삶을 누리게 하시는 것에 그지없이 감사한다.
우리 누구나 남 다른 품을 지니고 태어났기에
그 품을 살리고 키우며 귀한 뜻에 맞추어 살면
우리 누구나 이런 감사의 삶을 누릴 수 있음을 믿는다.
그런데 빼 놓을 수 없는 조건이 있다.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혼자 버텨야 한다는 듯 생각하기 쉽다.
자신과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
혼자 하는 생각에 멈추고 주저 앉아 있지 말아야 한다.
아픈 상처가 있을 때,
그 상처의 두꺼운 딱지 속에 웅크리고 있어서는
상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상처를 받았다고 하는 자리에만 주저 앉아 있지 말아야 한다.
우리 서로 다 다른 사람들이라 의도하지 않게,
자기 중심으로 상처를 줄 수도,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면 내가 아프듯이 내 이웃도 내게 상처 받았다는 것에 멈추어 있게 한다.
상처주고 받은 이의 아픔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아픔을 함께 아파해야 한다.
서로 알아주고,
서로 미안해 하고,
서로 다시 반복하지 않게 자신을 일깨워야 한다.
상처에 머물어
꼼짝 없이 그 자리에 멈추어 서 있지 말자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늘 터 놓을 수 있어야 한다.
서로의 아픔을 알아주고,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서로의 모자른 것과 한계를 알아주고,
공감하며 소통해야 한다.
시험 답안의 결과인 점수로
교사가 학생을 평가하기만 해서는
소통이 아주 부족하다.
기계로 진단한 사진과 검사 결과만으로
의사가 환자를 치유할 수 없다.
의사와 아픈 이가 서로 소통해야 한다.
부모와 아이들 사이에도,
법조인과 시민 사이에도,
언론인들과 시민 사이에도,
종교인과 평신도 사이에도
서로 존중하며
서로 소통해야 한다.
힘으로 억지 다스리려 해서는 안 된다.
(의사와 정치가 서로 존중하지 않아 생긴 문제를 우리는 잘 보고있지 않은가?)
아내와 남편 사이에도,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도,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형제 자매 사이에도...
남자와 여자 사이,
늙은이와 젊은이,
영남과 호남 사이,
모든 이름의 이웃 사이에 소통이 필요하다.
이렇게 이웃 사이에 서로 알아주면서,
함께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니
서로 앙심 먹고,
미워하고,
원망하며,
패가 갈리고,
원수 되어 싸움이 벌어진다.
서로 알아주면,
마음이 풀리고,
아픔을 누구러뜨릴 수 있게 되고,
사랑을 키워갈 수 있게 된다.
스무해 넘게 이야기를 나눈 아우가
오래 먹고 있던 앙심을 풀게 되니,
스스로 맘 편히 순한 얼굴이 되는 걸 본다.
앙심 먹었던 이와만 풀리는 것이 아니고,
뭇 이웃들에게 모두 너그러워지고,
마음의 평안을 찾아 간다.
자기가 바뀌는 것,
그것도 혼자 바꿀 수 있는 게 아닌 것을!
하나님 하늘에 계시고,
온 세상 평화로다!
ㅁㅇ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