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3:1-39,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24.11.27, 박홍섭 목사
사울이 죽은 후 이스라엘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다스리는 북이스라엘 11 지파의 왕국과 유다 지파의 왕이 된 다윗 왕국으로 나뉘어 서로 경쟁했습니다. 삼하 3:1은 이 두 왕국이 다윗은 점점 강성하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해갔다고 설명합니다. 2-5은 다윗이 점점 강성해진 외적인 표지로 다윗이 헤브론에서 6명의 아내에게 낳은 6명의 아들을 제시하고, 6-11은 사울의 집인 이스보셋 왕국의 쇠락을 그를 왕으로 추대한 아브넬이 실권자로 권력을 확장하고 이에 반발한 이스보셋의 갈등과 대립으로 설명합니다(6-11).
아브넬은 이스보셋을 꼭두각시 왕으로 세워놓고 권력을 휘두르는데 사울의 첩 리스바와 동침하기까지 합니다. 당시 왕의 아내나 첩과의 동침은 왕권에 대한 모욕과 도전으로 간주 되었습니다. 이스보셋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죽은 아버지 사울의 첩이라 해도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리스바와의 동침은 그냥 넘길 사안이 아닙니다. 그래서 항의합니다. 그러자 아브넬은 크게 분노하면서 “내가 너를 사울의 후계자로 세워 이 나라를 너에게 주고 다윗에게 넘겨주지 않았는데 너는 나에게 여자의 죄를 물으니 말이 되느냐? 지금이라도 내가 너의 나라를 빼앗아 다윗에게 주면 이스라엘과 유다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다윗의 보좌가 되는 줄 알지 못하느냐?”라고 이스보셋을 위협합니다. 이에 이스보셋은 실권자인 아브넬을 두려워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아브넬의 행동은 이스보셋을 향한 협박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다윗에게 전령을 보내어 이스보셋의 왕국을 다윗에게 넘기겠으니 나와 언약을 맺자는 제안으로 이어집니다. 다윗은 이런 아브넬의 제안에 한때 자신의 아내였던 사울의 딸, 미갈을 데려오라는 조건을 붙여서 응합니다. 미갈을 정말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정치적인 이유가 더 큽니다. 사울 집안의 이스보셋 왕국을 갖다 바치겠다는 아브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해도 유다 지파를 제외한 열한 지파 백성의 지지를 얻어야 합니다. 그 지지를 위해서는 사울의 딸 미갈이 필요합니다.
삼상 25:44을 보면 다윗이 사울을 피해 광야로 도망갔을 때 사울은 미갈을 다른 남자, 발디엘에게 시집 보내었습니다. 미갈은 그렇게 발디엘과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미갈을 데려오라고 합니다. 이에 이스보셋은 다윗과 아브넬의 압력으로 이미 남편과 결혼하여 잘살고 있는 미갈을 남편 발디엘에게 빼앗아 다윗에게 보냅니다. 그 과정에서 발디엘은 울면서 미갈과 함께 바후림까지 따라갔지만 아브넬의 제지로 아내를 빼앗긴 체 돌아갑니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다윗과 사울의 집을 대조하면서 다윗은 점점 강성해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쇠락해져 갔다고 했는데 그 과정에서 다윗의 행동을 보면 그가 강성할 만한 신앙적인 이유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권을 얻고 나서 그 전의 도망자 시절의 광야의 경건함과 신앙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일단 헤브론에서 6명의 아내에게 6명의 자녀를 낳았다고 소개했는데 신 17;14-17의 왕에게 주신 말씀에 어긋납니다. 보시죠. “내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왕에게 세 가지를 금지시켰습니다. 첫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군사력을 의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둘째는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당시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정략결혼을 많이 했습니다.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말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도 인본적인 정치 외교로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셋째는 은금을 많이 쌓아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재력을 의지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이 시점에서 다윗은 벌써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말씀을 어기고 있습니다. 미갈 대신 아내로 취한 아비가일은 헤브론 지방의 유력한 집안이었고, 압살롬의 어머니도 그술왕 달매의 딸 마아가였습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맞이한 아내일 가능성이 큽니다. 나머지 아내들도 자세한 설명이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다윗은 사울 집안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사울의 딸 미갈을 발디엘에게 빼앗아 데려옵니다. 그 때문에 발디엘과 미갈의 가정은 산산조각이 났으며 그의 남편은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이 사울의 집보다 점점 강성해가며 통일 왕국을 향하여 진전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다윗의 믿음이나 다윗의 잘난 점 때문이 아닙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언약을 지키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다윗을 통일왕국의 왕으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다윗의 불순종과 잘못된 행동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나중에 아내를 많이 둔 결과로 그들에게서 난 자식들이 다윗에게 큰 고통을 주고 나라에도 큰 근심거리를 안겨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집안을 점점 강성하게 하셔서 당신의 약속을 이루어가십니다. 은혜입니다. 반대로 사울의 집안이 점점 쇠락해가는 것은 전적으로 이미 죽은 사울의 불 신앙과 그 왕권을 이어받은 유약한 아들 이스보셋과 자신의 권력에만 마음이 있는 아브넬의 교만과 불 신앙에 전적으로 그 책임이 있습니다.
아브넬은 자신의 권력과 정치력으로 이스보셋의 왕국을 다윗에게 넘겨주기로 거래한 뒤 다윗이 내건 조건대로 미갈까지 빼앗아 다윗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베냐민 사람들을 설득한 뒤 헤브론의 다윗을 찾아가 이스라엘과 베냐민이 원하는 바를 들려주고 다윗에게 온 이스라엘을 통치할 수 있도록 자신이 돕겠다고 언약을 맺고 돌아옵니다. 이제 다윗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통일왕국의 왕이 되는 모든 정치적인 작업이 끝이 났습니다. 아브넬도 이스보셋에서 다윗으로 왕을 갈아타고 자신은 새로운 다윗 왕국의 2인자가 되는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넬에게 억하심정을 갖고 있는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을 통해 그 둘의 협약에 제동을 거십니다. 요압은 전쟁에 나갔다가 돌아온 뒤 다윗이 찾아온 아브넬을 그냥 보냈음을 알고 부하들을 보내어 아브넬을 잡아오게 합니다. 요압에게 아브넬은 자신의 동생 아사헬을 죽인 원수입니다. 그는 부하들이 데려온 아브넬을 성문 가운데서 죽여 동생의 복수를 갚습니다. 이로써 다윗과 아브넬이 맺은 정치동맹에 의한 다윗의 왕위 등극은 허무하게 끝이 나고 다윗은 오히려 아브넬의 죽음에 정치적인 책임이 없음을 밝히기 위해 뒷수습을 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는 아브넬의 죽음을 국장으로 치르고 아브넬을 죽인 요압을 공개적으로 저주하며 자신은 금식하고 애통하는 모습을 보여 이스라엘과 베냐민 지파 백성들에게 아브넬의 죽음에 자신이 연관이 없음을 인정받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39절을 보십시오.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 대로 갚으실지로다 하니라” 요압의 악행을 여호와가 갚아주기를 원한다며 자신은 요압을 통제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다윗의 탄식으로 끝이 납니다. 요압이 하나님이 주신 다윗의 가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윗이 이렇게 정치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아도 사울의 집안은 하나님에 의해 쇠락해져 갈 것인데 굳이 미갈을 빼앗아오는 방법까지 사용하자 하나님은 제어하기 힘든 요압을 다윗의 가시로 주어서 그를 다시 연단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거나 완벽하지 않음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여 은혜를 베풀어주셨기에 다윗의 집이 점점 강성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왕은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다윗은 아브넬과 정치적인 거래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헤어진 뒤 발디엘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미갈의 가정을 무참히 파괴하고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이룬 다윗의 죄를 봅니다. 이런 다윗의 집이 점점 강성해지는 것은 다윗의 신앙에 대한 보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완전하고 연약한 다윗을 통하여 당신의 약속과 뜻을 신실하게 이루고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도 그 은혜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없이는 다윗도 아무것도 아닌 인생에 불과합니다. 우리도 주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하심이 없다면 사울처럼, 이스보셋처럼, 아브넬과 요압처럼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의 욕망만 펼치다가 끝나는 헛된 인생이 될 뿐입니다. 다윗과 함께하셨던 주의 은혜와 사랑이 저와 여러분에게도 함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는 저녁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