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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울
자욱한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우리는 새벽 5시에 정확하게 도착했다. 이 일이 우리에게 이성을 잃을 만큼의 가치가 있었던 것일까? 오늘 빨간 인주에 목도장을 쿡쿡 눌러 찍고 나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잊어야 하겠지? 차의 보닛을 만져보니 여전히 뜨끈뜨끈 했다. 지난 몇 달도, 이차의 보닛도 아직 식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울타리 옆 무궁화 묘목은 바자울처럼 고체화 되어가고 있었다. 시들대로 시들어 스스로 포기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물 한 바가지를 부어 주며 동지애를 느꼈다.
*
옛날 어른들은 발 뻗고 잠잘 방만 있어도 행복하다고 했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아주 작은 땅, 즉 너무 작아 송곳 하나밖에 꽂지 못할, 한 평짜리 밖에 안 되더라도 그저 땅문서를 갖는 게 소원이라고도 했다. 나도 내 이름으로 된 땅문서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바랐다.
1. 송곳을 꽂다.
이명박 대통령이 4대 강 사업을 한다고 한창 온 나라를 파 헤치던 시기였다.
우리는 삼 년 부은 적금을 탔다. 일금 삼천만 원이다. 무엇을 할까? 사실 내 계획은 10년이나 타고 다니고 있는 남편의 낡은 차를 바꿔주려고 살뜰히 모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남편이 땅을 하나 사자고 한다. 땅은 무슨 땅, 땅 살 돈은 어림없다. 그런데도 남편은 땅을 사자고 조른다. 돈이 모자라 안 된다고 해도, 지방으로 가면 작은 것이라도 살 수 있다고, 노래를 부른다. 결국 우리는 송곳 꽂을 땅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아주 작은 땅이라도 말이다. 우리가 살던 용인은 삼천만 원으로는 어림도 없이 땅값이 올랐기에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을 알아봐야만 했다.
<그래! 요즘 제일 저 평가된 지역이 어딜까>
<그런 곳을 사야 해. 그래도 우리 돈으로 살 수 있는 곳이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흥분되어 잠도 오지 않았다.
“여보 컴퍼스 좀 가져와 봐”
“컴퍼스를 뭐 하려고?”
남편은 무작정 가져오라는 듯 눈을 찡그렸다. 남편의 독촉 바람에 나도 모르게 주섬주섬 챙겨다 주었다. 남편은 지도위에 컴퍼스를 돌렸다. 열심히 인터넷으로 땅값을 찾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30킬로미터의 원을 서울시청 중심으로 빨간색 볼펜으로 그렸다. 안산, 광주, 양주, 파주 김포 외곽, 인천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돈으로는 어림도 없다. 우리는 다시 50킬로미터의 원을 그려보았다. 평택, 이천, 남사, 가평, 강화, 영종도, 제부도 뭐 그렇게 나왔다.
“여보 우리 이 돈으로는 살만한 곳이 없고, 섬은 사봤자 발전이 없어. 포기하자”
나는 얼른 기회다 싶어 가전이나 바꾸고, 차나 바꾸자고 했다. 남편은 좋은 꿈을 꾸었다고,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며 완강히 고집을 부린다. 할 수 없이 우리는 50킬로대의 지역을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그중 우리가 사는 용인과 가깝고, 다른 지역보다 훨씬 땅값이 저렴한 남사를 선택했다. 부동산을 주말마다 돌며 땅을 보기 시작했다.
“예산은 얼마나 되시나요? 요즘 땅값이 턱없이 비싸요.”
“얼마나 있어야 하나요? 아주 작아도 괜찮아요?”
우리는 죄인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작은 돈으로 땅을 구하러 다니는 것이 창피했다. 또 알아봐 달라고 하기에는 미안한 마음조차 동시에 들었다. 그래도 몇억은 가지고 있어야 땅땅거리며 부동산에서 큰소리를 칠 텐데 말이다. 결국 돈이 적어 부동산에 가도 시큰둥하였다. 부동산 사장들은 거의 상대도 안 해 주려 했다.
“연락처나 두고 가세요. 좋은 물건 나오면 전화할게요.”
<연락처나? 나? 나?>
속을 부글거려도 웃으면서 나왔다. 부동산 사장들의 심사를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애써 태연한 척했다. 그렇게라도 말하는 사람도 있으니 다행이다.
“요즘 그 돈으로는 여기 땅 못 사요.”
그렇게 말하며 지방을 알아보라고 하는 사람도 꽤 많았다.
일주일 뒤 토요일 또 땅을 보러 가자고 남편은 졸랐다. 나는 또 그런 대접을 부동산에서 받을까 봐 속이 상해,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당신이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그렇지, 더 속상하고 치욕스러울 때도 많아. 우리 회사 박 상무는 그런 사람의 열 배야. 세상이 다 그래. 참아. 웃고 즐겨야 해. 그나마 우린 돈 들고 땅 사러 다니는 건데 뭐 어때?”
그때 남편 전화가 울렸다. 연락처를 남기고 온 까치부동산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그 순간 머리카락이 솟는 느낌일까, “까치가 복을 가져다주려나?”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분명 뭐가 있는 듯 짜릿한 전율이 온몸을 스친다. 우리는 동시에 눈을 마주 보면서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
“사장님. 사장님한테 딱 맞는 물건이 나왔습니다. 바로 오십시오.”
“늦게 오시면 장담 못 합니다. 이런 물건 나오기 쉽지 않습니다.”
부동산 사장 목소리가 한 톤 높게 올라가 있는 걸 느꼈다. 특히 말끝마다 군대식 억양을 붙였다. 촉으로 느끼기에 정말 좋은 땅이 있는 것 같았다.
“네. 지금은 지방에서 올라가는 중이니, 오후 세 시쯤이나 들리겠습니다”
라며 남편이 전화를 끊는다. 나는 물었다.
“왜? 지금 가지?”
“무슨 지방?”
“집에 있으면서, 왜 지방이라고 해?”
나는 남편이 대답할 사이도 없이 숨 가쁘게 다그치고 있었다.
“급한 모습 보이면 땅값 올라가”
남편은 느긋한 모습으로 앉아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다. 나는 안방과 거실을 열 번도 더 왔다가 갔다가 들락거렸다. 3시까지 기다리는 것이 이렇게나 긴 것인 줄을 새삼 느꼈다.
“여보, 내 말 잘 들어. 중요한 말이야. 오늘 가서 절대로 급한 모습 보이면 안 돼. 마음에 들어도 좋은 내색 하지 말고, 한 번은 그냥 나와야 해. 그래야 다음에 가면 얼마라도 깎을 수 있어. 절대 그 자리에서 계약하자고 하면,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나와. 그리고 절대 땅값은 물어보지 마. 관심 없는 척해야 해, 알았지?”
남편은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면서, 다짐까지 받았다. 우리는 세시를 꾸역꾸역 기다렸다가, 까치 부동산에 갔다.
40대 정도의 통통하고 키가 작은 까치 부동산 사장은 약간 흥분하여, 침을 튀겨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개발행위까지 나 있는 땅이 이 가격이면 땡잡는 겁니다”.
“개발행위가 뭔 대요?”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땅이면 다 땅이지, 그런 것도 있나 싶다.
“개발행위란 집을 짓거나, 다른 건물을 지으려면, 토목사무실에서 그 땅에 그 용도가 맞는지 설계해서, 토목 인허가를 먼저 받아야 하는데, 이건 벌써 받아놓은 땅이라, 검증된 것이고, 바로 건축설계만 하면 집도 지을 수 있어요.”
<관심 있는 거 보이지 말랬지?>라는 듯 남편이 쿡쿡 찔렀다.
아차! 궁금한 것을 못 참는 성격이 일을 내고 있었다.
남편은 이내 시큰둥한 표정을 만들더니, 무심한 듯 말을 돌린다.
“글쎄요, 가 보기나 하지요”
우리는 경첩에서 삑 소리가 나는 낡은 알루미늄 문을 밀어 밖으로 나왔다.
<땅을 사고파는, 그래도 큰돈이 오가는 부동산인데 문이라도 고치고 사업을 하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이 갸우뚱거렸다. 주차장에 서 있는 차들을 보니, 낡은 SUV 한 대와 우리 차 한 대뿐이었다. 얼른 부동산 사장이 말을 붙인다.
“아! 죄송한데요, 오늘 아침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요. 사장님. 사장님 차로 가시지요”
“네? 네, 그러세요 ”
남편은 대답하면서 나랑 눈이 딱 마주쳤다. <이것 봐라, 고수네. 기름값도 계약 전에는 안 쓰겠다는 심사구나. 두고 봐라! 우리도 다 작전 짜고 왔어. 쉽게 계약 안 해 준다.> 터덜거리는 비포장도로로 한참을 가서 땅을 보여주었다. 웅덩이가 그 땅 옆에 있는 푹 꺼진 땅이었다. 그 땅은 잡풀이 내 키보다 몇 배는 되어 보이고 크기는 손바닥보다도 작은 듯했다. 꼬불꼬불 십분도 더 가는 것이 읍내에서 만약 출발한다면, 이십 분 거리도 더 되어 보였다.
까치부동산 사장이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흥분해서 설명했다.
“전라도 광주 아줌마가 이 동네 세 들어 살다가, 이 동네가 좋다고, 집 짓고 산다고 샀어요.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 낯선 남자와 다니더니, 갑자기 시흥으로 이사 간다고 내놓은 땅입니다. 향도 남향이라 좋고 길도 있어 사장님 찾으시는 딱 그런 땅입니다”
“얼마나 달랍디까?”
“삼천만 원 달라는데 한 이백 정도 깎아 볼게요.”
남편에게 짜증이 나서 나도 모르게 쿡 찔렀다.
<땅값은 오늘 묻지 않기로 했는데, 왜 묻는 거야?>
<우리 예산이 삼천만 원 정도라고 하니까, 거기에 맞춰서 그렇게 말하는구나. 더 싼 것인데 부풀리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 땅이 1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작전이고 뭐고 아무리 가진 돈이 적지만 이런 땅을 사야 하는지, 차라리 차를 바꾸는 게 훨씬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남편 몰래 보고 온 하얀색 신형 그랜저가 자꾸 눈에 밟힌다. <그냥 나를 사 줘. 예쁘지? 차 바꾸는 게 이 땅보다 훨씬 좋지. >그랜저가 속삭이는 듯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남편이 “어때?”라고 묻는 말에 대답도 안 하고, 눈을 흘겼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서 남편이 말했다.
“그 땅이 가꾸지 않아서 그렇지, 풀도 베고 흙을 돋아 정리해 놓으면 괜찮을 거야. 우리 그 돈으로 그 정도면 훌륭한 거야. 부동산소개비 줄 돈까지 어쩌면 딱 맞지?”
어이가 없다. 등기도 해야 하고 취득세도 내야 하는 줄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안다.
“웅덩이가 있어서 모기도 많을 것 같고, 시장도 멀고 길도 비포장이어서, 그 먼지를 어떻게 할 건데”
마치 당장 집이라도 짓고 들어갈 것처럼 쏘아붙였다. 우습다. 송곳 꽂을 땅! 딱 우리는 그것이 필요했었다. 이사를 하거나 집을 지을 생각은 애초 없었다. 그래도 생각은 기와집을 몇 번은 지은 것 같다.
“그냥 저금한 셈 치고 이십 년쯤 내버려 두면, 적금 넣는 것보다는 나을 테고, 또 우리도 땅을 갖고 있는 거잖아. 송곳 꽂을 땅.”
밤새 남편의 성화에 결국 그러자고 대답하고 말았다.
일사천리로 소유권 이전까지 마쳤다.
“이 땅은 당신 이름으로 해. 땅 있는 여자로 땅땅거리며 살아 봐”
통 크게 남편은 땅을 내 앞으로 해 주며 싱글거린다. 속으로는 그까짓 거 해 주며 꽤 생색낸다고 생각했지만 좋은 척 고맙다고 말했다. 저녁 밥상으로 남편 좋아하는 꽃게 찌개를 끓여 축하주 한잔 마시며 축배를 들었다. <나도 땅 있는 여자야> 이런 생각을 하니 소주의 쓴맛이 사라졌다. 아! 이래서 남자들이 술술 하는 거구나.
2. 매지구름
며칠 후 퇴근한 남편이 말했다.
“신문 좀 봐”
“뭔 대?”
“글쎄 우리 땅 근처 기회리 마을에 군부대가 들어오는데 그것을 막으려고 동네 이장은 삭발까지 하고 매일 데모를 한다고 하네”
“왜?”
“군부대가 들어오면 대대로 살던 터전을 뺏기고, 주변 땅값도 떨어진다는 거야”
“그러면 우리 땅은 어떻게 해?”
“거기까지는 거리가 있는데 무슨 상관이 있을까?”
“아무튼 내일 부동산에 전화해 봐야겠어.”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원래 들어오려던 곳, 즉 기회리 마을 이장은 군부대가 들어오는 것을 거부했다. 날마다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군부대 이전 반대 회의를 했다고 한다. 돼지를 산 채로 잡아서 선홍색 피가 철철 흘리는 것을 제단에 올리며 굿도 했었다고 한다. 동네 사람 중에는 삭발식을 하는 이도 있고, 단식투쟁을 하다가 병원으로 실려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토지 공사 측이나 시청에서는 빨리 결정해야만 했다고 한다. 이전을 와야 하는 군부대와 군부대 있던 곳에 아파트를 지을 개발 사업의 일정 때문이란다. 그래서 몇 배의 비용이 들더라도 연내에 결정이 나야 한다고 했다. 관계자들은 최종회의 끝에 최종 화목리로 변경하기로 정했다고 한다. 워낙 화목리는 땅값이 저렴한 곳이라서 지가의 몇 배를 주더라도 더 이익이라는 이유와 함께 말이다.
며칠이 지났을 때 까치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사모님. 군부대를 원래 이전 하려던 곳이 있었는데, 반대가 너무 심해서 우리가 사놓은 땅 동네로 변경되었어요. 축하해요.”
“네? 축하해요? 왜요? 군부대가 들어오면 안 된다고, 데모가 심하다면서요?”
“축하할 일이면, 기회리 에서는 왜 그렇게 반대를 한 대요? 말이 맞지 않지요”
나는 어이가 없이 앞뒤가 다르게 말하는 부동산 사장이 의심스러웠다.
“원래 지정되었던 곳은 도심과 가깝고, 이미 땅이 개발된 곳이 많아서 동네 분들이 이전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데모하는 거래요.”
“ 우리 땅도 마찬가지지요.”
“ 우리는 집이나 짓고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우습게도 순간적으로 거들먹거리기까지 하며, 머릿속에서는 또르르 또르르 계산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애초 집을 지을 생각은 없었고, 더구나 이런 촌 동네에 살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다.
“사모님, 사모님이 사신 땅은 원래 그 동네보다 훨씬 골짜기이고, 다른 곳보다 발전 가능성은 떨어져요. 보상받으시는 것이 훨씬 이익이에요.”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니 그래! 가끔 친구가 자기 땅에 길이 생기는 바람에 보상을 받았다고 했었다. 시세보다 두 배를 받았다느니 세 배를 받았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우리도 세배는 받겠네. 아니 두 배 만해도 얼마야. 오천이 넘잖아? 피식 입꼬리가 나도 모르게 올라갔다. 머릿속에서는 벌써 뿅뿅 돈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번 참에 내 차도 사야지>
며칠 후, 최숙현이라는 주민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런 경우 대개 이장이 나서는데 벌써 전문가를 뽑았나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름과 번지수까지 정확히 꿰고 있었다. 그 땅을 산 지 며칠 되지도 않은데 말이다.
”이 산골짜기가 발전할 기회는 지금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땅을 내어주고 보상가를 지금 땅값의 세 배 이상 받고, 아파트 입주권도 받을 생각입니다. 물론 대대로 사신 터전을 내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시겠어요. 더구나 남사 시내 30평대 입주권을 조성원가(토지에 대하여 개발 이익금이 없이 원가에 공급하는 것)에 준다고 하니, 얼른 동의해 주세요. 선생님 때문에 일이 지연되면 안 되니, 시간 내어서 남사로 와 주시면, 언제든 뵙고 자세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미 써 놓은 원고를 읽는지, 답변할 사이도 안 주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우리는 주민대표 최 씨를 만나러 갔고,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 데모는 해야 땅값을 더 받아유. 우리들은 세 조로 나누어서 삼 일에 한 번 시청에서 데모해야 해유. 땅값 협상은 LH에서 할 거니까 우리는 최대한 길이 없는 곳은 길을 내고 대지는 집을 지어서 주택 보상도 받아야 해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식당을 하던 최 씨는 이 보상을 받기 위해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보상을 담당했던 사람을 건너 건너 알아서, 바로 술 한잔으로 친구로 삼았다고 한다. 둘은 늘 붙어 다니며 오랜 친구같이 굴더니, 어느 사이 논문보다 더 복잡한 보상방법을 꿰고 다니며 주민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흡사 영화에서 보던 빨간 완장을 찬 조교 같았다. 어쨌든 우리는 사흘에 한 번씩 시청으로 데모를 나갔고, 동네 입구에는 데모 막사가 차려졌다. 불과 한 달 전에는 이런 일이 내게 벌어질 거라는 생각을 하나도 해 본 적이 없는데 <인생사 모를 일이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 생각 할 시간 없이 우리는 주민대표 최 씨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가스라이팅의 일종이었을까?
그날도 최 씨는 언제 봤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형님, 어서 나오슈. 시간이 없시유.”
최 씨는 우리를 시청 근처 이층의 허름한 사무실로 데려갔다. 최 씨는 건축사사무소 소장쯤으로 보이는 대머리가 반짝이는 오십 대 초반쯤의 남자에게 아주 친한 척했다.
“형님, 우리 마을 새로 이사 오신 형님인데, 허가를 빨리 내주셔야 되유. 그래야 공사까지 이달에 마쳐서 주택 보상, 대지 보상을 받을 수 있어유.”
상담 끝에, 그 건축사는 자신도 시내 아파트를 받고 싶다고 은근슬쩍 본색을 드러냈다. 이주자 딱지를 받으려니, 본인 이름으로 작은 집을 지을 수 있게 해 달란다. 결국 건축설계 비용을 공짜로 하기로 하고, 내 땅에 건축사 소유의 집까지 두 채를 짓기로 했다. 시청 앞 사무실을 소위 허가 방이라 부른다더니, 과연 신기하게 일주일도 안 되어 허가까지 마쳤다.
3. 도두 밟는 날들
주택허가를 받고 조립식 주택을 구해다 옮기고 준공을 받기까지 한 달 정도 걸린 듯하다. 그 사이 건축사도 낡은 컨테이너를 겉만 하얀색을 칠해 집처럼 꾸며서 준공을 받았다. 우리는 돈이 없으니 아파트 대출을 받았다. 원가가 얼마나 들어가는지 생각할 겨를없이 밤잠을 설쳐가며 집을 완공 했다. 주민대표 최 씨는 다음 주 보상팀에서 가격을 책정하러 실사를 나온다며 준비하고 있으란다. 시원한 음료수도 사다 놓고 집도 깨끗이 청소해 놓고,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고 간다.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땅값하고 집 지은 돈 등 들어간 돈이 일억은 되니, 삼억은 받아야겠지> 밤마다 그런 꿈을 꾸며, 우리는 땅 사기를 잘했다고, 서로 칭찬하며 “거 봐” 외쳤다. 사람의 욕심은 어디까지일까? 일억을 투자하면 일반 계산으로는 삼천만 원 정도 웃돈 받아 내면 남는 장사라 할 것이다. 한 번도 생각지 못한 행운의 일이라면 그래! 두 배 정도도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슬그머니 마음속에는 세 배 이상이라고 속삭이는 것이 부끄럽지만, 뭔가 신나고 있었다. 내 맘속에 도둑이 들어왔나 자꾸 욕심이 커졌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남편과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세상에나! 온 동네의 논 입구마다 밤에 누가 레미콘을 부어 놓았다. 마무리는커녕 여기저기 그냥 쏟아놓고 갔다고 할까. 무슨 일이라니! 레미콘을 치다 남으면, 차들이 으슥한 곳에 부어 버리고 도망가던 차들이 있었다는데, 요즘은 단속이 하도 심해 못 그러는 줄 알았는데, 누가 이런 거야? 커피를 마시러 들린 뒷집 사는 박 씨한테 물어보니, 길이 있는 논이 보상이 훨씬 더 많이 나온다고 해서, 주민대표가 서둘러서 주민들과 함께 밤에 몰래 레미콘을 부어 길을 내었단다. 한술 더 떠서 나무는 보상은 훨씬 더 많이 나온다고 하며 나무를 좋은 걸로 얼른 심으라고 했다. 주민대표는 우리를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이상한 듯, 불쌍한 듯 쳐다보았다.
우리는 당장 남편의 고등학교 친구인, 이성재를 만나러 갔다. 그 친구는 얼마 전 새로 조경사업을 시작했다. 우리는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성재야. 돈은 없고 보상받으면 반 줄게. 너 가진 나무 몇 그루만 내 집에 심어 줘.”
기꺼이 승낙하는 친구와 순댓국에 소주 한잔을 마시고 돌아왔다. 손바닥만 한 땅에 송곳처럼 단풍나무 세 그루, 백일홍 나무 일곱 그루, 합 열 그루를 심어놓고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이 짓만으로도 이천만 원은 더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저녁을 막 먹으려는데 뒷집 박 씨가 왔다.
“이런 나무는 보상을 많이 못 받아”
“그럼, 뭘 심어야 하는데요?”
“여보게. 무궁화나무를 심어야 한다네. 우리나라 국화가 무엇이여? 무궁화를 심어야 깎지 못하고 보상을 최고로 해 준다네. 평택 사는 내 친구는 한그루 당 삼십만 원이나 받았어.”
남편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여보, 무궁화를 심어야 한 대”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해? 그리고 그 말이 사실일까? 우릴 속이는 거 아닐까? 그냥 지금까지 한 것만 잘 받자.”
“이번이 기회야. 박 씨 친구가 경험이 있다잖아. 그리고 자기는 벌써 만 그루 이상 심었다잖아”
남편은 또다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마이너스 통장까지 털어 내놓았다. 남편은 한 주당 오천 원짜리를 이천 주를 주문했다. 일금 천만 원.
다음 날 저녁, 박 씨가 1톤 트럭으로 한차를 싣고 왔다. 우리는 새끼손가락 굵기도 안 되는 무궁화 묘목을 빽빽이 심었다. 마치 밖이 보이지 않는 바자울 같았다. 뭉텅이로 꾹꾹 묻어 논 무궁화나무는 <숨도 못 쉬겠다.>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나무야. 며칠만 기다려. 보상받고 나면, 넓은 땅 구해 다시 심어 줄게.”
우리는 허리 한 번 못 피고 나무를 삽으로 대충 꽂았다. 힘이 들기는커녕 콧노래가 나왔다.
<시어머니가 시켰으면 이혼하자고 했을 거야> 우리는 킬킬거렸다. 대단한 역적모의를 하는 기분이다. 저녁나절 박 씨가 막걸리를 세 병 사 왔다. 집에 있던 삼겹살을 구워서 맛있게 먹었다. 셋이 무슨 혈맹이라도 맺은 듯, 세상을 다 가지고 노는 듯, 껄껄거리며 행복해했다.
“2,000주*30만 원=6억이야, 원가 천만 원은 새 발의 피야”
셋은 두 눈까지 찡긋거리며, 흥분했으나 아주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박 씨는 남편이 건네주는 묘목값 천만 원을 들고 집으로 갔다. 우리는 6억을 더해서 이럭저럭 10억은 보상받을 거라는 생각에 잠도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앞산에서는 앞집 사는 서 씨가 무언가를 심고 있었다.
“여보. 저 사람은 저기에 뭐를 심는 거야?”
“응. 주민대표가 그러는데 산양삼이래”
“산양삼이 뭐야?”
“삼 종류인데 인삼과 산삼 중간쯤. 그거 있잖아. 장뇌삼인가 하는 거. 그런 거야”
“그것도 보상받아?”
“엄청 많이 받는다는 거야. 한뿌리에 몇만 원씩 받는다고 해. 저 정도 심으면 몇십억은 되는 건가 봐”
나는 산이 없어서 속이 상하기 시작했다. 밭을 사지 말고 산을 살 걸 후회했다. 그랬으면 이십억까지도 벌 기회라고 생각하니 공연히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도 그런 욕심을 남편에게는 들키지 않으려고 마당에 물을 뿌리며 화를 식혔다. 속물이라고 할까 봐.
4. 무궁화, 우리 나라꽃
드디어 실사팀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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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설을 쓰다니 놀랍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주파수는 한 사람 한 사람 제자들을, 생각하고 상상하고 쓰게 하시는 힘이 있으십니다.
열심히 따라 가겠습니다.
제목을 수정했습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제목 아주 좋아요!
축하드립니다~♡
멋져요!
응원 감사합니다
소망의 씨앗, 그리고 '송곳'
“송곳을 꽂다”라는 문장 하나로 시작되는 1장은, ‘한 평도 안 되는 땅’이라도 내 이름으로 등기된 땅을 소유하고 싶은 주인공 부부의 소망을 잘 드러냅니다. 송곳은 바로 ‘작은 땅을 내 것으로 꽂는’ 상징이자, 그 욕망의 시작을 단단히 박는 도구를
내리 꽂으시다니요ᆢ
무궁화 묘목이라는 상징적 이미지가, 결과적으로는 시스템 속 기만과 착취의 상징이 되어, 읽는 이로 하여금 코메디적인 씁쓸한 웃음도 자아냄도 있고요~
"바자울"은 단순히 개인의 땅 욕망을 넘어서, 권력(?)과 체제, 상징과 현실, 관계와 탐욕에 대한 깊이 있는 인문학적 성찰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소설 처음쓰신것 맞나요???
내용도 읽기쉽고 공감도좋고요~
너무 잘쓰셨습니다~박수!!!
와--- 이렇게 멋진 평을 주시다니요. 감사합니다
부족한면도 많은데 ...열심히 쓰라는 재찍으로 알고 정진하겠습니다.
바자울 너무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내땅.등기부등본에~내이름으로 된 한장
역시 모든 이들의 로망이지요
소설을 읽으면서 눈앞에 파노라마가 펼쳐진듯
스토리가 이어지는게 읽기 좋았습니다
대리만족도 주시고 좋은 소설쓰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좋은소설 계속 써주세요!!!
화이팅!입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원고를 제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천지역을 새롭게 비추는 이천문학 31집이 되도록, 열심히 교정, 편집, 정리하여 만들어보겠습니다.
참여해주신 이천문인협회 회원님,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즐감했습니다. 소설 도전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수석부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