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회고와 새해 전망도
1991년 남북불교교류 행사 평가, 뉴욕불교인의 밤 행사, 그리고 사찰 개원
1991 년도 미주에서 있었던 가장 큰 행사는 나성에서 있었던" 조국 평화통일기원 합동법회"였다. 10월 29, 30일 이틀에 걸쳐 본국 종단협의회 주최로 나성관음사에서 열린 이 행사는 미주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집중시킨 큰 행사였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과 해외동포불교인들이 함께 모인 이 행사는
첫째, 그동안 북부조국의 불교와 스님들의 존재에 대한 불신과 오해를 없앴으며,
둘째, 남북 그리고 해외불교단체들의 통일에 대한 자세와 입장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남, 북, 일본,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나는 첫번째 국제행사를 미국에서 준비한 한불협은 준비, 진행, 보도등 행사전반에 걸쳐 미숙함 을 노출시켰으며 남북의 사이에서 중개자 역할도 충실하게 하지 못했다. 또한 다음의 만남을 약속하는 합의서도 나오지 못했다. 더구나 합의서가 나오지 못한 이유가 이 모임을 맨 처음 제안하고 추진하여 많은 준비를 했던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미주불교인협의회’가 남.북.해외불교단체협의체에 참가하는 것을 남부조국과 미국불자들이 반대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 국제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이며 나성과 더불어 미주한인 사회의 양대기둥인 뉴욕에서 대중법회조차 가지지 못하고 북부조국의 대표단을 단순관광차원에 머무르게 한것도 한불협측의 역량부족과 실수였다.
미국과 외교관계도 없는 북부조국의 평양에서 박태호 조불련 위원 장, 심상련 서기장, 홍화두 불교학원 고문등 거물급등이 어려운 발걸 음을 했는데 어떤 형태의 합의서가 도출되지 못한 것과 뉴욕에서 단순관광에 머문것은 이번 모임 성과의 한계였다.
뉴욕에서의 법회문제는 급기야 미주최대 사찰인 뉴욕원각사가 북미사암연합회를 탈퇴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사태로 발전하여 북미사암연합회를 기능정지시키는 사태로까지 확대되었다. 이 사건도 동부 뉴욕의 법회는 이 모임을 맨 처음 구상제안한 사람들이 주최하기로 맨처음부터 약속되어 있었고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뉴욕의 불교인들의 모임에서까지 설명을 했으며 언론에 보도까지 된 상태에서 이 들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북미사암연합회에 일방적으로 행사 주최권을 넘긴 한불협에 책임이 있다.
미주현대불교는 작년 이 모임의 성과를 교훈삼아 뉴욕불교인들의 뜻을 모아 미주불교계 역량에 맞는 남북 불교인들 의 모임을 현재 추진중에 있음을 밝혀둔다.
미주한국불교계에서의 두번째 큰 행사는 뉴욕지역의 '연합봉축행사였다.
1990년에 이어 두번째로 가진 이 행사는 입장권 1장에 50달러를 하는 "불교인의 밤"행사에 300여명이 모여들어 성황을 이루었다. 1991년도 뉴욕연합봉축행사는 '퀸즈칼리지 골든센터'에서 있었으며 대법회에는 약 2 천명이 운집하는 등 성공적인 행사였다. 그러나 미주지역에서의 새 역사를 창조한 금번 “1991년도 연합봉축행사"는 몇가지 문제점을 남겼다. 준비위원장 문정민 거사와 준비위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우리 불교도 동포사회에 뭔가를 보여주자는 불교인들의 마음이 일치하여 노력한 결과로 성황을 이루었으나 이런 결과가 나오기까지에는 준비위원들의 노력뿐 아니라 6만불에 가까운 돈이 투여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6만불이 들어간 행사가 포교라는 구체적인 성과와 어떻게 연결되었을까? 눈에 보이는 성과를 측정하려면 이 행사로 인해 절에 나오지 않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나오는가를 측정해야 하고 봉축행 사뒤에 이와 관련된 어떤 움직임이 있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런면에서 볼때 행사전과 별로 달라진게 없어 보인다. 이것은 행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런 대규모행사를 하고 난 후의 열기와 분위기를 뉴욕불교계가 유지하고 보존하여 성과물로 만들어내야 하는데 현재 뉴욕의 객관적 조건은 그런 역량이 모자란 듯 보인다. 따라서 올해의 행사는 이런 점을 잘 파악하여 적정규모를 정해야 할 것이다. 이 외에도 작년 행사에서 준비위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인정하면서 관중동원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불교행사를 떳떳이 내세우지 않은 일부광고, 또 젊은 승려들과 청년들에게 심한 거부감이 있어 뉴욕 강연직후 사무실에서 쫓겨난 일도 있는 박완일 씨의 강사선정에 최상의 선정이었는가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1991년도 미주한국사찰이 5개 개원을 했다. 현 단계 미주한국불교계에 있어서 신앙활동의 거처로서 사찰의 개원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작년에 미주에 개원한 사찰은 5개다. 동남부 지역의 화덕사(구 금강사), 시카고와 오하이오 주의 한마음선원, 나성지역의 법화홍통원과 대각사이다. 이중에서 화덕사는 본지가 일정한 역할을 했다.
반면 미주한국불고계가 안고있는 문제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시도했던 나성의 불교학당은 신법타스님, 신원경법사, 신상철 이사 세 사람이 헤어져 각기 자기의 길을 가고 있어 사실상 기능 정지상태가 되었다. 이외에도 샌디에이고와 오레곤주 포틀랜드가 현재 스님이 없어 사찰이 문제가 있다. 사찰이 한 곳밖에 없는 지역에서 어떤 사건과 문제가 생겨 스님이 절을 떠나면 그 파급효과가 불교에 미치는 악영향은 너무도 크다.
이점을 고려하여 앞으로는 현재 사찰이 없는 지역의 사찰 개원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또한 사찰 개원을 하는 장소와 사찰을 담당할 스님의 선정에 있어 사전에 조정할 제도적인 장치의 개발도 필요하다.
1992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