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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 영과 혼
- 영 -
믿는 이들 자신에게 영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잠시 후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의 모든 관계가 다 이 영 안에 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만일 믿는 이들이 자기의 영을 모른다면 영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할 줄 모르고 또한 생각이나 감정의 혼에 속한 부분으로 영의 일을 대치하게 된다. 결국 줄곧 혼에 속하기만 하고 영적인 영역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
고린도전서 2장 11절은 “사람 속에 영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고린도전서 5장 4절은 “나의 영”을 말한다.
로마서 14장 14절 또한 “나의 영”을 말한다.
고린도전서 14장 32절은 “예언하는 자들의 영”을 말한다.
잠언 25장 28절은 “자기의 영”을 말한다.
히브리서 12장 23절은 “의인의 영” 을 말한다.
스가랴 12장 1절은 “여호와께서 사람 속에 영을 지으셨다”고 말한다.
이 몇 구절들은 우리에게 사람의 영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이 영은 우리의 혼이 아니요 성령도 아니다. 우리는 이 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경배한다.
성경의 가르침과 믿는 이들의 체험에 따라 볼 때, 사람의 영은 세 부분 또는 세 가지 기능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세 가지는 곧 사람의 양심과 직감과 교통이다(이것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가리키며 곧 경배이다).
양심은 분별하는 기관이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양심은 생각 안에 지식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발적이고 직접적인 판단의 영향을 받는다. 많은 때 비록 일리가 있어도 많은 일에서 양심의 판단은 다를 수가 있다. 양심의 일은 대부분 단독적이고 직접적인 것이다. 이것은 외적인 설득에 영향 받지 않는다. 사람의 행위가 잘못되었을 때 양심은 참소의 소리를 발한다. 직감은 사람의 영 안에 있는 지각이다. 이것은 몸의 지각의 혼의 느낌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것을 직감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러한 지각이 직접적이고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생각과 감정과 의지의 도움이 없이 생긴 지식은 직감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은 직감을 통해 한 가지 일을 참으로 ‘알 수 있다’, 사람의 생각은 단지 그것을 ‘깨닫게 할 뿐이다.’ 믿는 이들은 이 직감으로 하나님의 모든 계시와 성령의 모든 움직임을 아는 것이다. 양심의 소리와 직감의 가르침은 믿는 이들이 응당 따라야 할 것들이다. 교통은 곧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생각과 감정과 의지 - 이것들은 다 혼에 속한 기관들임 - 는 하나님을 경배할 줄 모른다. 하나님은 생각으로 얻을 수 없고 감정이나 욕망으로도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은 영 안에서 직접 아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경배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왕래는 다 직접적으로 영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은 혼이나 겉 사람 안에서 진행되지 않고 ‘속사람’ 안에서 진행된다.
이것들을 본 후 우리는 양심과 직감과 교통의 이 세 부분이 어떻게 긴밀한 연합을 갖고 있고 서로 영향을 주는가를 알 수 있다. 양심과 직감은 서로 연결되었는데, 이것은 양심이 직감을 통해 판단하기 때문이다. 양심은 직감에 따라 행하지 않은 행위를 그른 것으로 판단한다. 직감과 교통 혹은 경배도 서로 연결된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직감 안에서 사람에게 알려주시고 직감 안에서 그분 자신과 그분의 뜻을 계시하시기 때문이다. 원함과 추측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앞으로도 이에 대해 많이 언급할 것이기 때문에 이 정도로만 말하겠다.
영은 양심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영이 곧 양심이라는 뜻은 아님). 다음 성경 구절을 보기로 하자.
/ 하나님이 … 그 영을 강퍅케 하셨느니라(신 2:30)
/ 영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18)
/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
/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영에 민망하여(요 13:21)
/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그 영에 분하여(행 17:16)
/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롬 8:15)
/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6)
/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고전 5:3)
/ 내 영이 편치 못하여(고후 2:13)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영이 아니요(딤후 1:7)
영의 직감(혹은 지각)의 기능에 대해 다음 구절들을 보기로 하자.
/ 영에는 원이로되(마 26:41)
/ 예수께서 곧 영에 아시고(막 2:8)
/ 예수께서 영 속에 깊이 탄식하시며(막 8:12)
/ 예수께서 … 영에 통분히 여기시고(요11:33)
/ 바울이 하나님이 영에 붙잡혀(행 18:5, 원문 참조)
/ 영 안에서 불타서(행 18:25, 원문 참조)
/ 이제 나는 영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행 20:22)
/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고전 2:11)
/ 저희가 나와 너희 영을 시원케 하였으니(고전 16:18)
/ 그의 영이 너희 무리를 인하여 시원함을 얻었음이니라(고후 7:13, 원문 참조)
영 안에서의 교통(혹은 경배)의 기능에 대한 다음 구절들을 보자.
/ 내 영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눅 1:47)
/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요 4:23)
/ 내 영으로 섬기는 하나님(롬 1:9)
/ 우리가 친히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롬 7;6)
/ 아들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
/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6)
/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저 14:15)
/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고전 14:16)
/ 영 안에서 나를 데리고(게 21:10)
이 구절들을 읽고서 우리는 영 안에 적어도 양심과 직감과 교통의 세 부분이 포함된 것을 알 수 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아직 영생을 얻지 못했지만 그들에게도 양심과 직감과 경배가 있다(그때 그들이 경배하는 것은 악한 영이다). 단지 영의 나타남이 남보다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거듭나기 전에 허물과 죄로 죽어 있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신약 성경은 양심이 살아 있고 직감이 민감하거나 영적인 성향이 있고 취미가 있는 사람을 구원받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한 것들은 사람에게 영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데, 즉 혼의 이성과 감정과 이성과 감정과 의지 외에 따라 영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사람이 아직 거듭나기 전 그의 영은 하나님의 생명과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거듭난 후 비로소 하나님의 생명과 성령께서 그의 영 안에 거하시게 되어 그를 살리며 영으로 성령의 도구가 되게 한다.
우리가 영의 요점을 살필 때, 우리는 믿는 이들이 사람에게 독립된 영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이 영은 생각과 의지와 감정이 아니다. 영 안에는 양심과 직감과 교통의 기능이 내포되어 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영역 안에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를 가르치시며 그분의 안식 안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믿는 이들은 이미 오랫동안 영의 지배를 받았으나 영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 빈약하다. 우리는 마땅히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 앞에서 간구하여 체험 안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영에 속한 것이 무엇이고 혼에 속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믿는 이가 거듭나기 전, 그의 영은 혼 안으로 타락하여 혼으로 포위되고 조성되어 혼과 하나가 되었다. 결국 영의 기능과 지각과 혼과 섞여서 무엇이 혼에서 나온 것이고 무엇이 영에서 나온 것인지 분별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향한 영의 주된 기능은 상실되고 이미 죽었다. 그러므로 영은 혼의 부속품같이 돠어 버렸다. 혼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강해질 때 자연히 영의 기능은 사람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믿는 이가 거듭난 후에도 혼과 영이 분리될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가 성경을 상고하고 읽어보면,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영은 그의 혼의 일과 같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뒤에서 이것을 보게 될 것임).
다음 구절들은 이것을 우리에게 증명해 준다.
/ 그 영이 번민하여(창 41:8)
/ 그들의 노가 풀리니라(삿 8:3)
/ 영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 14:29)
/ 영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 어리석은 자는 그 노한 영을 다 드러내어도(잠 29:11)
/ 영이 혼미하던 자도(사 29:24)
/ 영이 상하므로 통곡할 것이며(사 65:14)
/ 너희 영에서 일어나는 것을 내가 다 아느니라(게 11:5)
/ 너희 영에 품은 것을(겔 20;32)
/ 그가 … 영이 강팍하여(단 5:20)
이 몇 구절들은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의 영의 기능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우리는 영의 기능이 혼의 기능과 얼마나 유사한가를 볼 수 있다. 여기서 그의 혼이 어떠하다고 말하지 않고 그의 영이 어떠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 ‘사람’의 가장 깊은 것이 어떠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이럴 때 사람의 영은 그의 혼의 지배를 받고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영이 혼의 기능을 나타낸 것이다. 이럴지라도 그의 영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것들은 여전히 영에서 나온 것들이다. 사람의 혼이 다스린다고 해서 결코 영의 기관이 잃어버린 바 되거나 영이 무(無)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 혼 -
사람에게는 하나님과 왕래하는 영 외에도 또한 혼이 있다. 이 혼은 곧 사람의 자각(自覺)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느끼는 것은 바로 혼의 일이다. 혼은 우리의 인격적인 기관이다. 우리 인격에 포함된 모든 것 곧 우리로 사람이 되게 한 요소들은 다 혼에 속한 것들이다. 우리의 지력과 생각과 이상과 애정과 자극과 판단력과 의지 등은 혼의 각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영과 몸, 이 두 가지에 대해 말했다. 본래 이 둘은 혼 안에 융화되었기 때문에 혼은 사람의 개성이자 인격의 중심이 되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성경은 마치 사람에게 혼만 있는 것처럼 단순히 사람을 ‘혼’이라고 칭했다. 예컨데 창세기 12장 5절에서 ‘사람’은 원문에서 ‘혼’으로 되어 있다. 야곱이 온 가족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갔을 때, 성경은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의 도합이 칠십 혼이었더라”(창 46:27)고 말했다. 원문 성경에서 사람을 ‘혼’으로 대치한 곳은 무수히 많다. 이것은 다름이 아닌 혼이 곧 인격이요 인격 안에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어떠함은 그의 인격에서 볼 수 있다. 사람의 존재와 특성과 생명 등은 다 혼 때문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사람을 혼이라고 칭했다.
우리 사람의 인격에 포함된 3대 요소는 바로 우리의 의지와 생각과 감정이다. 의지는 우리가 어떤 주장을 내세우는 기관이고, 또한 우리의 판단력으로써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치 않으며 무엇을 받고 무엇을 거절 하는가 등을 표명한다. 이러한 의지가 없다면 사람은 기계가 된다. 생각은 사상을 내는 기관으로써 이는 곧 우리의 지력(智力)이다. 우리의 총명과 지식 그리고 추리하는 것 등은 다 이 생각에서 나온다. 생각이 없을 때 사람은 완전히 어리석은 자가 된다. 감정은 우리가 사랑하고 미워하며 느끼는 기관이다. 우리가 사람들을 사랑하고 미워하며 희로애락을 느끼는 것은 모두 우리의 감정을 통해서이다. 감정이 없다면 목석과 같이 무감각하게 된다. 만일 우리가 성격을 자세히 상고한다면, 인격의 3대 요소가 다 혼에 속한 것임을 알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혼의 부분들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 구절이 너무 많은 고로 몇 구절만 예로 들겠다.
혼은 의지의 부분을 포함한다.
/ 내 생명을 내 대적의 뜻(혼)에 맡기지 마소서(시27:12)
/ 주여 저를 그 원수의 뜻(혼)에 맡기지 마소서(시41:2)
/ 너를 미워하는 블레셋 여자 곧 네 더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자에게 너를 붙여 임의(혼)로 하게 하였거늘(겔16:27)
/ 그 마음(혼)대로 가게 하고(신21:14)
/ 아하 소원(혼) 성취하였다(시35:25)
/ 사람이 여호와께 서우너하였거나 마음(혼)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민30:2)
/ 이제 너희는 마음과 정신(혼)을 진정으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고(대상22:19)
/ 이제 너희는 마음과 정신(혼)을 진정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고(대상 22:19)
/ 그들이 사모하여 그들의 혼을 들어 돌아와서 거하려 하는(렘44:14, 확대역)
/ 이러한 괴로움을 내 마음(혼)이 만지기도 싫어하나니(욥 6:7, 원문 참조)
/ 이러므로 내 마음(혼)에 숨이 막히기를 원하오니 뼈보다도 죽는 것이 나으니이다(욥 7:15)
여기의 ‘뜻’이나 ‘마음’이나 ‘정신’은 사람의 의지를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마음을 정하여’나 ‘혼을 들어’, ‘싫어하나니’, ‘택하나이다’는 모두 의지의 활동으로써 혼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혼 안에 의지의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혼의 지력(智力) 혹은 생각의 부분을 포함한다.
에스겔 24장 25절은 ‘그 마음(혼) 간절히 생각하는 자녀’를 말한다.
에스겔 36장 5절은 ‘멸시하는 심령(혼)을 품는다’고 말한다.
잠언 19장2절은 ‘지식 없는 혼은 선치 못하다’고 말한다.
시편 13편 2절은 ‘내가 내 혼에 경영한다’고 말한다.
시편 139편 14절은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혼이 잘 안다’고 말한다.
예레미야가 3장 20절은 ‘내 혼이 줄곧 그것을 생각한다’고 말한다.
잠언 3장 21절부터 22절은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 그리하면 그것이 네 혼의 생명이 된다’고 말한다.
잠언 24장 14절은 ‘지혜와 네 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 ‘경영’, ‘생각함’, ‘품는다’ 등등은 모두 사람의 생각 혹은 지력의 기능이다. 성경은 이 모든 것을 혼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 안에 사람의 지력 혹은 생각의 부분이 내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혼 안에는 감정의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혼 안에는 애정이 있다.
신명기 6장 5절은 “마음(혼)을 …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사무엘상 20장 4절은 “네 혼의 소원이 무엇이든지”라고 말한다.
시편 84편 2절은 “내 혼이 주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했다”고 말한다.
에스겔 24장 21절은 “너희 혼에 아낌이 된다”고 말한다.
시편 42편 1절은 “내 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다”고 말한다.
이사야 26장 9절은 밤에 “내 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혼이 주를 간절히 구한다”고 말한다.
마태복음 12장 18절은 “내 혼에 기뻐하는 바”를 말한다.
누가복음 1장 46절은 “내 혼이 주를 찬양한다”고 말한다.
누구복음 2장 35절은 “또 칼이 네 혼을 찌르듯 하리라”고 말한다.
이 구절들은 혼에 사모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무엇을 사모하는 사람의 행위는 혼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람의 감정은 혼의 일부분이다.
혼은 미워할 줄도 안다.
욥기 33장 20절은 “혼이 별미를 싫어한다”고 말한다.
사무엘하 5장 8절은 “다윗의 혼에 미워하는 절뚝발이”라고 말한다.
스가랴 11장 8절은 “내 혼에 그들을 싫어하였다”고 말한다.
욥기 10장 1절은 “내 혼이 살기에 곤비하다”고 말한다.
시편 107편 18절은 “혼이 식물을 싫어한다”고 말한다.
여기 구절들은 미워하는 것이 혼의 활동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혼은 또한 자극을 받는다.
사무엘상 30장 6절은 “백성의 혼이 슬프다”고 말한다.
열욍기하 4장 27절은 “혼에 괴로움이 있다” 고 말한다.
사사기 10장16절은 “혼이 근심한다”고 말한다.
욥기 19장 2절은 “내 혼을 번뇌케 하였다”고 말한다.
이사야 61장 10절은 “내 혼이 나의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한다고 말한다.
시편 86편 4절은 “주의 종의 혼을 기쁘게 하소서”라고 말한다.
시편 107편 5절은 “혼이 낙망한다”라고 말한다.
시편 42편 5절은 “내 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느냐”고 말한다.
시편 116편 7절은 “내 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가라”고 말한다.
시편 119편 20절은 “혼이 상한다”고 말한다.
시편 119 편 28절은 “나의 혼이 눌림을 인하여 녹는다”고 말한다.
잠언 16장 24절은 “혼이 달다”고 말한다.
이사야 55장 2절은 “혼이 즐거움을 얻는다”고 말한다.
요나서 2장 7절은 “내 혼이 내 속에서 피곤하다”고 말한다.
마태복음 26장 38절은 “내 혼은 심히 고민한다”고 말한다.
요한복음12장 27절은 “내 혼이 민망(근심)하다”고 말한다.
베드로후서 2장 8절은 “의인이 그 외로운 혼을 상한다”고 말한다.
이 성경 구절들은 혼이 어떻게 자극을 받는 지를 우리에게 말해 준다. 자극은 혼에서 나온 것이다.
이상에서 말한 것을 볼 때에 우리는 감정의 모든 일, 즉 애정과 ‘자극’과 ‘감각’ 등은 다 혼에서 나온 것이댜. 이것은 우리의 감정도 혼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한다.
- 혼과 사람의 자아 -
우리가 혼이 어떻게 해서 사람의 인격이며 주장하는 기관이며 생명인가를 보았기 때문에, 이 혼이 우리의 ‘참 나’요 우리 ‘자아’라고 단정할 수 있다. 이것에 대해서도 성경에 명확한 증거가 있다.
민수기 30장에서는 ‘스스로 제어한다’라는 말이 열 번이나 언급되었는데, 원문에서는 이것이 ‘혼을 제어한다’이다. 이것은 혼이 바로 우리 자신 임을 깨닫게 해 준다. 성경에는 혼을 ‘자아’(자신)라고 한 곳이 많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레위기 11장 43절은 스스로(자신을) 더렵혀 부정하게 된다고 말한다.
레위기 11장 44절은 “스스로(자신을) 더럽히지 말라”고 말한다.
에스더 9장 31절은 “자기와 자기 자손을 위한다”는 말이 있다.
욥기 18장 4절은 “스스로(자신을) 찢는 자”라고 말한다.
이사야 46장 2절은 “자기도 잡혀갔다”고 말한다.
이뿐 아니라 출애굽기 12장 16절의 “각인의 식물만 너희가 갖출 것이니라”는 말에서 각인은 원문에서 각 혼으로 되어 있다. 민수기 35장 11절과 15절의 “본의 아니게 사람을 죽인 자”는 원문에서 “본의 아니게 혼을 죽인 자”로 되어 있다. 민수기 23장 10절의 “나는 의인의 죽음같이 죽기를 원하며”에서 ‘나는’ 은 원문에서 ‘나의 혼’으로 되어 있다. 레위기 2장 1절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에서 “누구든지“는 원문에서 ‘어느 혼이든지’고 되어 있다. 에스더 4장 13절의 “너는 왕궁에 있으니 …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는 원문에서 “혼은 왕궁에 있으니 …”로 되어 있다. 아모스 6장 8절의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였노라” 의 원문에서 “혼을 가리켜 맹세하였노라”로 되어 있다. 이 몇 구절들은 여러 가지 말로 혼이 사람의 자아라는 것을 우리에게 지적해 준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베드로전서 3장 20절의 ‘여덟 명’과 사도행전 27장 37절의 ‘이백칠십육 인’ 은 원문에서 모두 ‘혼’이라는 단어이다. 로마서 2장 9절의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원문은 ‘악을 행하는 각 혼’이다. 누가복음 12장 19절에서는 어리석은 부자가 자기 혼에 위로의 말을 하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과 동일시하여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이 사람의 혼 혹은 사람의 혼 생명을 사람의 자아로 여긴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만일 앞에서 인용한 몇 가지 예를 ‘혼’이나 ‘생명’ 으로 직역한다면 무의미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으로 번역해야 한다. 이것은 성령께서 사람의 혼이나 생명을 곧 사람의 자아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 예수님의 말씀을 볼 때 이것이 확증된다.
마태복음 16장 26절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프쉬케)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프시켸)을 바꾸겠느냐”라고 말한다.
반면에 누가복음 9장 25절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말하고 하나는 자신이라고 말한다. 이로써 우리는 성령께서 마태복음을 사용하여 누가복음의 ‘자기’를 설명하고 누가복음을 사용하여 마태복음의 ‘생명’을 설명한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의 혼 혹은 생명은 바로 사람의 자아이고 사람의 자아는 곧 사람의 혹은 생명이다.
우리가 성경에서 혼을 언급한 곳을 읽어 볼 때 우리는 사람의 혼이 바로 사람의 생명이고 사람의 자아와 인격이며, 인격 안에 포함된 의지와 생각과 감정 등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조사를 통해 우리는 사람의 혼 안에 포홤된 것이 바로 모든 사람이 ‘사람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모든 육체에 혼과 혼 안에 포함된 모든 것이 있다. 혼은 모든 육신적인 사람이 공통적으로 소유한 생명이다. 거듭나기 전, 사람의 생명 안에 포함된 모든 것 - 그것이 자아이든 생명이든 기력이든 능력이든 생각이든 뜻이든, 사랑이든 감정이든 - 은 다 혼에 속한 것이다. 바꾸어 말해서 혼 생명은 바로 모태로부터 얻은 인간의 생명이다. 이 생명 안에서 본래부터(주님을 믿기 전) 소유한 모든 것과 취할 수 있는 모든 것과 능한 모든 것은 다 혼 생명애 속한다. 만약 우리가 혼에 속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보았다면 이후로 우리가 다룰 영에 속한 것이 무엇인지를 쉽게 이해하게 되고 영에 속한 것과 혼에 속한 것을 구분할 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