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
서예는 모필(毛筆)을 사용하는 특수한 예술이기 때문에 먼저 이것을 잡는 방법을 정확히 알아야 한는 것이 급선무다. 붓을 잡는 방법에 관하여 역대 서예가들이 많은 이론을 제시하였는데 초학자들은 오직 붓 잡는 방법을 이해하고 오랜 숙련을 하여 자유자재로 붓을 운용할 수 있으면 글씨는 좋아 지게 된다. 붓을 잡는 방법에 대하여 옛날부터 많은 이론들이 전해져 내려왔다. 예를 들면 '오지집필 법'(五脂執筆法), '사지집필법'(四指執筆法), '삼지집필법'(三指執筆法), '악권집필법'(握拳執筆 法) 이외에 소동파(蘇東坡)의 집필무정법(執筆無定法)등이 그것이다.
이중에서 '오지집필법'(五脂執筆法)이 비교적 가장 유행하고 있는 집필법이다. 이 방법은 다섯 손가락을 합리적으로 배합하여 엽( ), 압(壓), 구(구), 게(揭), 저(抵), 도(導), 송(送) 등 으로 진행시키는 방법을 말한다. 이것이 이른바 '발등법(撥등法)'이라고 하는 집필법이다. 발 이라고 하는 것은붓대에 나타난 셋째와 넷째 손가락이 둥글고 활동적이어서 움직이기가 원 활한 것을 말한다. 등이라고 하는 것은 말을 탈 때 디디고 올라가는 등자를 말하는 것으로 호구(虎口)가 둥글고 텅빈 것이 마치 등자와 같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등자를 얕은 데 서 디디고 올라 가면 쉬운 것과 마찬가지로 붓도 아래로 잡을수록 움직이기가 쉬워진다. 그 러면 이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엽( ) : 첫째 손가락의 끝마디로 붓대의 아랫부분을 잡고 힘써 곧게 한다.압(壓) : 둘째 손가락으로 첫째 손가락과 힘을 균등히한다.구(구) : 셋째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하여 붓대의 아랫쪽을 향하게 한다.게(揭) : 넷째 손가락으로는 붓을 올리는 듯하게 하여 셋째 손가락과 부닥뜨리게 한다.저(抵) : 셋째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한 것을 손가락으로 막는 역할을 한다.도(導) : 다섯째 손가락으로 넷째 손가락을 당겨 오른쪽으로 지나가게 한다.송(送) : 다섯째 손가락으로 넷째 손가락을 보내어 왼쪽으로 지나가게 한다.이상 소개한 것은 붓을 잡는 방법의 요령을 설명한 것이다.
다섯 손가락들의 간격을 조밀하게 할면 손바닥은 비게 하면서 세워야 하고, 팔목은 평평 하게 하며, 붓대는 곧바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둘째 손가락과 셋째 손가락의 사이를 자연스럽게 서로 의지하면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만약 둘째와 셋째 손가 락 사이가 떨어지게 되면 다섯 손가락의 힘은 균등하지 않게 된다. 이것은 초학자들이 범하 기 쉬운 결점이니 특별히 유의하여야 한다.
붓을 잡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의 종류가 있어 획일화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떠한 방법 을 막론하고 꼭 지켤야 할 것은 손가락 사이는 조밀하여야 하며, 손바닥은 비게 하여야 하 며, 팔목은 평평하게 하여야 한다. 붓 끝은 세우되 편안하고 자연스러우면서 힘을 쓸 수 있 도록 하여야 한다. 긴장을 억지로 하면 안되며, 활발하게 하되 헝클어져서는 안된다. 이것은 붓을 잡을 때 꼭지켜야 하는 법칙이다. 그리고 붓을 잡는 위치는 글자의 크고 작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난다.
2-1執筆은 어떻게 해야 옳은가? -<東坡集> 讀書筆記(梁 山)
中國北宋의 문학가이며 서화가인 蘇軾은 字는 子瞻이요, 호는 東坡居士, 眉州眉山(지금의 사 천성 경내) 사람이였는데 중국 역사상 大文豪로 널리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書法에서도 宋四家 ─ 蘇, 黃, 米, 蔡의 맨 첫번째를 차지하며 그의 書論도 상당한 이론적 가치를 가지 고 있다. 아래에 <東坡集>에서 논술된 執筆에 관한 대목을 읽은 나의 독서 필기를 공개하 면서 서예계 동인들의 가르침을 기대한다. 蘇軾은 <東坡集>에서 執筆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獻之少時學書, 逸少從後取其筆而不可, 知其長大必能名世. 個以爲知書不在於筆牢, 浩然聽筆 之所之, 而不失法度, 乃爲得之. 然逸少所以重其不可取者, 獨以其小兒子用意精至, 猝然俺之, 而 意未始不在筆. 不然, 則天下有力者, 莫不能書也.” 원문을 차례로 해석하여 보기로 한다. “獻之少時學書, 逸少從後取其筆而不可, 知其長大必能名世.” [譯文] 헌지(注:왕희지의 아들 왕헌지)가 어렸을때 붓글씨를 배우는데 逸少(注:왕희지의 字) 가 뒤에서 가만히 뽑으려 하니 뽑히지 않았다. 하여 그가 크면 꼭 세상에 이름을 남기리라 생각하였다. [注釋] 이 고사는 南朝·虞D의 <論書表>에서 나오는데 原文은 “羲之爲會稽, 子敬七八歲學 書, 羲之從後製其筆不脫, 嘆曰, 此見書, 後當有大名”이다. 7~8세 밖에 안되는 어린이가 붓글 씨를 연습하는데 뒤에서 몰래 붓을 당겨도 빠지지 아니하니 아버지가 감탄하여 이 애가 크 면 꼭 서법에 큰 이름을 남기리라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데 꽤 많 은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곡해하고 붓글씨를 잘 쓰려면 반드시 붓을 힘주어 꽉 잡아야 한다 고 생각하면서 후학을 그렇게 가르치는 폐단도 있다한다. 그러면 아래에 蘇東坡의 고견을 들어보자. “個以爲知書不在於筆牢, 浩然聽筆之所之, 而不失法度, 乃爲得之.” 譯文 : “내(“個”는 작자가 자신을 自謙하여 이르는 말) 생각엔 붓글씨를 잘 씀에 붓을 튼튼히 잡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호연히 붓을 닿는(“之”는 닿다, 이르다의 뜻) 대로 놔 두면서도 법도를 잃지 않았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注釋] 참 옳은 말이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탈 줄 아는 사람은 처음 배울 때의 정경을 연 상해 보노라면 이 문제가 자명해질 것 같다. 제가 아무리 핸들을 꽉 움켜 잡는다고 해서 넘 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초보자일수록 핸들을 꽉 잡고 운전에 익숙할수록 손이 핸들에 닿 는듯 마는듯 하는 정도의 힘으로도 충분히 방향을 잡을 수 있으며 심지어 한 손을 놓고도 탈 수 있으며 두손을 다놓고 타는 교예인들도 있지 않는가? 또 자전거가 나가는 방향을 따르면서 타야 평형이 유지되지 그와 상관없이 주관적으로 내 몬다면 필연코 넘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소동파가 말한 붓이 닿는 대로 나가면서 붓 글씨를 쓰라는 말과 같은 도리인 것 같다. 그리고 속도에도 연관이 있다. 천천히 몰면서 곧게 가기는 힘들고 세워 놓고 평형을 유 지하기도 힘들다. 붓들씨도 마찬가지이다. 느린 속도로 곧게 쓰자면 아무리 곧게 쓴다고 해 도 찬찬히 들여다 보면 삐뚤거린 흔적이 남게 된다. 그렇지만 이것이 핸들이나 붓을 어느 정도로 꽉 잡는가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빠른 속도에서 더 작은 힘으로 방 향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큰 글을 쓰는가 작은 글을 쓰는가에 따라 손목과 손가 락의 힘받는 부위가 달라지게 된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렇게 보면 왕희지가 자기 아들이 붓을 힘있게 잡았다고 천재로 취급하는데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왕희지의 이 전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소동파의 하문 을 보기로 하자. “然逸少所以重其不可取者, 獨以其小兒子用意精至, 猝然俺之, 而意未始不在筆.” [譯文] 그런데 逸少가 그토록 붓을 앗을 수 없다는 점을 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린 아들의 용의가 기특한데서 감싸는 것이지 붓과 상관없는 것이다. [注釋] 하긴 그렇다. 글씨를 쓴다는 사람이 붓을 명심해 잡지 않고서야 어찌 붓글씨를 운운 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7~8세의 어린 나이에 그처럼 명심할 수 있다는 것은 기특해 할 만 도 한 일이라 하겠다. “不然, 則天下有力者, 莫不能書也.” [譯文] “그렇지 않다면 천하에 힘있는 사람은 글씨를 못쓰는 사람이 없지 않겠는가.” [注釋]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붓글씨를 잘 써보려 했는데 붓글씨 는 힘있게 써야 한다는 말을 듣고 그 힘을 키우려고 팔에 모래주머니를 매달고 몇년 연습했 다는 것이다.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붓글씨의 힘이 어디에서 체현되고 어떻 게 표현되는가? 이는 절대 쓰는자의 팔에 얼마만한 力學적 힘을 소유했는가에 있지 않으며 역시 붓을 얼마나 꽉 잡았는가에 있지 않다. 사람의 힘은 손가락을 통해 붓과 닿게 되고 나 중에는 筆毫에 의해 종이에 닿게 된다. 붓과 손의 마찰력을 우리가 늘 하는 악수와 비교해 보자.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감격하여 손을 꽉 쥐는 것은 “감격”하였기 때문에 理志가 어 느 정도 상실되여 손의 힘을 가늠 못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꽉 잡는 것은 실례 가 될 뿐만 아니라 상대방(특히 여성일 경우)의 오해를 자아낼 수 있고 너무 슬쩍 힘주는 것은 냉정한 느낌을 주게 된다. 붓잡는 것도 아마 이와 같은 도리가 아닐가 싶다. 붓글씨의 힘(力度)은 기하학적 형태로 표현될 때가 많다. 만약 활을 든 사람이 앞에 있다 고 하자. 그가 가장 위엄있어 보이고 가장 두려워 보일 때가 어느 때인가? 바로 화살에 시 위를 먹여 당신을 겨냥하고 있을 때이다. 활을 쏟 다음이나 활을 쏘기 전에는 그다지 위엄 이 없는데 이것을 彎弓待發이라고 한다. 화살에 시위를 먹였을 때의 기하현상은 활의 탄성 한계를 넘지 않은 상태에서의 최대의 폭발력을 과시하는데 이런 기하학적 도형은 사람들에 게 힘을 상징하여 준다. 간단한 예로 “元”字의 마지막 필획을 보기로 하자. “D”로 쓸 때와 “D”로 쓸 때 전자는 탄성한계를 넘은 감을 주지만 후자는 포만된 탄성을 과시한다. 물론 이 때 후자는 더욱 힘있어 보이게 된다. 그러므로 이 때의 힘이란 인체 근육에 의해 강압적으로 전달된 力學的 힘이 아니라 기하학적 審美眼에서 형성된 힘이다. “入木三分”이란 말이 있는데 붓글씨를 나무에 썼는데 어찌 힘있게 썼는지 목공이 대패 로 三分정도로 밀어 버려서야 먹의 흔적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 때의 힘은 어떻게 체현되는가? 이는 함묵량이 같은 정황에서 두가지 요소와 연관된다. 하나는 筆毫가 널려졌 는가 아니면 모여졌는가에 따라서 같은 軌跡을 지나는 筆毫의 수량에 관계된다. 다른 하나 는 속도의 완급에 관계된다. 속도가 늦으면 당연히 종이와 접촉하는 시간이 길어져 아래로 침투되는 먹의 수량도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 역시 사람이 근육이 붓과 종이 에 가한 압력과는 관계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붓글씨를 쓰는 사람이 “팔에 힘이 올랐다.” 는 말을 종종 쓰게 되는데 이는 무슨 뜻인가? 그림에서 보다시피 硬筆로 글을 쓸 때에는 硬筆의 上下운동이 체현되지 않고 그저 평면에 서 前後, 左右로 운동하므로 h가 기본상 常數로 된다. 그러나 붓글씨를 쓸 때에는 筆毫의 탄성한계 내에서 前後, 左右운동 외 上下運動으로 提按動作을 하므로써 글자의 굵기를 변화 시키므로 이 때의 h는 변화하게 된다. 이 때의 이 변화를 순식간에 적응할 수 있는 힘, 바 로 이것이 筆力이라는 말이다. 이 筆力은 被動的인 일면과 主動的인 일면이 있다. 被動的인 일면은 지면의 不平, 紙張의 不均, 심리상태의 돌변 등에 부득불 적응해야 된다는 말이고 主 動的(능동적이라고도 할 수 있음) 일면은 작가의 흥분상태에 따라 이런 동작이 주동적으로 가해진다는 말이다. 즉 被動 상태에서는 외부로부터 오는 변화를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고 주동상태에서는 내부로부터 가해진 명령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힘이 오른 사람 은 그가 휘호하는 과정에 △h가 외계의 영향과 거의 상관없이 자유로이 변화를 완성하게 되는데 이때 옆에서 그의 글쓰는 팔을 다쳐도 그 팔은 즉시 원상태로 회복되는 정도의 힘을 갖게 된다. 알 수 있는바 이런 힘은 그 무슨 力學的 힘이 아니다. 따라서 붓을 힘주어 잡는 것과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소동파는 오래동안 내려오면서 붓을 꽉 잡아야 글씨를 잘 쓸 수 있다는 틀린 관점을 바로 잡아 놓은 것이다. 그러면 執筆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아래에 소동파의 다른 한구절을 보기로 하자. “把筆無定法, 要使虛]而寬. 歐陽文忠公謂余 `當使指運而腕不知', 此語最妙” [譯文] 붓을 쥐는 데는 고정된 법이 없이 虛하고 (掌虛를 말하는데 손바닥안이 비어 있어야 한다는 뜻) 寬해야 한다.(긴장하지 말고 느슨하게 해야 한다는 말) 구양문충공(歐陽修를 가 리킴)은 나에게 “손가락이 움직임을 손목이 몰라야 한다”고 말하였는데 이는 가장 묘한 말이다. [注釋] 여기에서 소동파는 왕헌지처럼 붓을 힘주어 쥐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손가락은 유 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으며 그 움직임은 손목이 감각할 수 없는 정도라고 말하고 있다. 여 기에서 알 수 있는 바 붓글씨를 쓰는 우리의 손은 로봇의 손이 아니라 손목, 팔, 온 몸과 유 기체로 배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서예학원을 돌아 보노라면 어떤 이들은 붓잡은 손이 로봇의 손일 뿐만 아니라 팔 과 손목도 로봇이 되여 한 획을 그을때 손팔이 고정되고 온 몸이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움직이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인 움직임을 제창하는 것이다. 예를들면 탁구운동선수가 볼을 깍을 때 오른손이 위로, 또 좀 왼쪽으로 운동하는데 운동선 수의 상신은 그와 반대편으로 유기적인 움직임을 해야 할 것이다. 행진하는 사람이 오른 발 을 앞으로 내디딜 때 오른 손은 유기적으로 뒤로 움직여야지 같이 앞으로 나간다면 실상 우 스깡스러운 것이 아닌가. 소동파의 말대로 정상적인 사람은 오른 발이 앞으로 나갈때 오른 손이 뒤로 간다는 것을 감각하지 못할 정도 자연스러운 것이니 우리가 붓글씨를 쓸 때 손가 락의 움직임은 손목이 못느낀다는 말도 묘한 말이라고 봐야 하겠다. 여기에서 일부 한국인 들이 붓글씨를 쓸 때 손가락은 움직이지 못하며 捻管(붓대를 유기적으로 돌리는 것)은 불가 하다고 하는 것도 좀더 생각해 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아래에 소동파의 말을 한마디 더 들어보자. “方其運也, 左右前後, 却不免歡側, 及其定也, 上下如引繩, 此之謂`筆正', 柳誠懸之言良 是.” [譯文] 운필할 때 좌우전후로 (붓이) 경사지게 됨을 면할 수는 없으나 그것을 上下로 볼 때 마치 끈을 드리운 것처럼 (수직되게) 하는 것이 `筆正'이라고 할 것이니 柳誠懸(柳公權의 字가 誠懸임)의 말이 매우 옳은 것이다. [注釋] 운필하는 과정에 붓이 좌우전후로 넘어질 수는 있지만 총적으로 그 중심선은 수직되 여야 만이 中鋒運行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偏鋒運筆을 현대에 와서는 용허하고 있는 상태이지만 中鋒할 줄을 모르고 편봉을 쓴다는 것은 안 될말이라 하겠다. 붓을 연필 쥐는 식으로 경사지게 쥐고 쓴다면 筆腹이 아래에 닿고 붓끝이 위에 닿아서 한 획의 윗쪽은 곧게 나가지만 아랫쪽은 파도를 이루게 되니 이것이 집필을 잘못할 때 생기는 폐단이라 하겠다. 소동파의 말대로 집필엔 고정된 법이 없다지만 그래도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집필법이 있을 것이 아닌가? 아래에 沈尹默이 쓴 <書法論>에서 執筆에 관한 부분만을 적어 놓기로 한다. “書家는 집필법에 대해 종래로 각기 부동한 주장을 갖고 있지만 나는 그 중의 한가지만은 정확하다고 승인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二王으로부터 전해 져 내려오고 당나라 陸希聲에 의해 서술되었던 把, 壓, 鉤, 格, 抵의 五字法이다. 筆管은 다섯손가락으로 쥐게 된다. 매 손가락마다 각기 자기의 쓸모가 있는데 선인들이 把, 押, 鉤, 格, 抵 다섯자로 그를 설명하는 것은 퍽 의의가 있는 것이다. 다섯 손가락이 각기 다 섯 글자가 내포한 뜻대로 할 때에야 筆管을 온당하게 잡을 수 있고 잘 운용할 수 있을 것이 다. 나는 여기에서 이 다섯글자의 의의에 대해 하나씩 설명하고자 한다. 把자는 엄지손가락의 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엄지손가락의 배 쪽으로 힘주어 筆管의 안 쪽 에 바싹 대는데 마치 피리를 불때 피리 구멍을 막아주는 것과 같지만 좀 경사지게 위로 향 한다는 데서 이 글자로 설명하게 된다. 壓(=押)자는 식지의 작용을 설명한다. 押字는 구속한다는 뜻이 있다. 식지의 첫마디로 경사 지게 아래로 筆管의 바깥측을 힘주어 대여 주는데 엄지 손가락과 내외로 맞대이면서 서로 배합하여 筆管을 잡아준다. 이렇게하여 筆管은 이미 온당하게 잡혀졌지만 그래도 기타 세 손가락의 도움으로 執筆을 완성해야 한다. 鉤자는 중지의 작용을 말한다. 엄지, 식지가 이미 筆管을 잡았으므로 중지의 첫번째와 두번 째 마디를 구부려서 마치 갈고리처럼 筆管의 외면을 걸어준다. 格자는 무명지의 작용을 말한다. 格字는 막는다는 뜻인데 揭자를 쓸 때도 있다. 揭자는 막는 다는 뜻 외에 밖으로 민다는 뜻도 있다. 무명지는 손톱과 살이 이어지는 곳으로 筆管에 바 싹 대이고 힘있게 中指가 안으로 걸어 당기는 筆管을 막아주며 밖으로 밀어준다. 抵자는 새끼손가락의 쓸모를 말한다. 抵자는 바쳐준다는 뜻을 갖고 있다. 무명지의 힘이 작 아 단독으로 中指가 안으로 걸어주는 筆管을 막아 주고 밀어 줄 수 없으므로 새끼손가락으 로 무명지 밑에 바쳐서 힘을 더해 주어야 그 작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 손가락이 이렇게 결합되여 筆管을 긴밀하게 싸 쥔다. 새끼 손가락이 무명지 아래에 대 여 있는 외에 기타 네손가락은 모두 筆管에 직접 대여 있게 된다.” 소동파의 논술은 형상적으로 執筆을 말했다면 沈尹默의 논술은 구체적으로 執筆을 말했다고 본다. 붓을 쥐는 데는 고정된 법이 없다. 하지만 붓을 어떻게 쥐는가에 따라 글씨의 풍격도 변할 수 있고 힘드는 정도도 달라질 수 있다. 소동파(1037~1101)는 지금부터 약 천년전의 사람이다. 虞◑는 南朝·宋·泰始年間의 書法家 인데 <論書表>를 쓸 때는 明帝泰始六年이니 公元470年이다. 그 때로부터 근700년 후에야 소동파에 의해 執筆에 관한 오류적인 견해를 시정하게 되었다면 소동파로부터 또 천년이 지 난 오늘까지 그런 오류적인 견해를 고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꽤나 놀랄만한 일이 라 하겠다. 옛날에는 인쇄술이 발달 못됐고 서법의 전파가 가족이나 師承관계에 의해 실현 되었으므로 그 관점이 아무리 오류적이라 할 지라도 봉폐된 전파매체로 뿌리깊게 계승되어 나올 수 있었다면 오늘의 한국 현실에서는 왜 이런 오류가 있을 수 있는가? 분산되고 고립 적인 서예학원은 학원지간의 교류를 거의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학원내에서 스승은 거의 신 성한 존재로서 그 어떤 견해든지 무자비하게 注入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의 원인이 라면 다른 하나의 원인은 배우는 사람이 듣는데만(스승의 가르침) 그치고 (책을) 보지 않는 데 있다. 총명이란 말은 耳聰目明에서 나오는데 귀로 듣는데 총기가 있고 눈으로 보는데 밝 다는 말이니 듣기도 해야 하겠지만 많이 봐야 한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특히 현시대의 문명 이 정보시대로 돌입하는 이 때에 책을 많이 보는 것은 縱적으로나 橫적으로 지식을 습득하 는 좋은 도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름없이 쓴 독서필의라 부당한 점이 많으리라 생각되니 서예동인들의 가르침을 정중히 기 다리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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