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록도 결혼-소록도 강선봉3
강선봉은 여덟 살이었던 1946년에 한센병 환자였던 어머니가 소록도에 강제수용 되면서 함께 들어왔다. 처음에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지만 소학교를 다니면서부터 남자들과 섞여 살았다. 배고팠던 시절이라서 초등학생 때는 토끼와 닭을 길렀고, 어른들과 어울려 고구마 농사를 하며 양식을 얻었다.
엄동설한에는 견디기 어려운 추위에 솔방울을 모아다가 어머니 방에 불을 지펴드렸다. 중학생 때, 한센인들이 통과의례로 겪는 자통이 찾아왔다. 좋은 약이 없었던 때라서 어머니는 약초를 달여 먹이고, 인분 끓인 물도 마시게 했다. 견디기 어려워 죽고 싶었다. 여러 달을 괴롭히던 자통은 불편한 후유증을 남기고 지나갔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아들까지 한센병을 겪었다.
그래도 삶의 소망,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 세상에 다시 나가 떳떳하게 살리라 다짐했다. 어른들을 돕는 일도 하고, 교회생활도 열심이어서 학생회장을 맡았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의학강습소에 들어갔다. 소록도 6천 명 가족을 돌보는 치료실 주임이나 수간호가 되는 섬김의 사람이 되는 과정이었다.
의학강습소에 들어간 청년 선봉이 교회에서 만난 자매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결혼을 하려 했지만 고민이 많았다. 남자가 단종수술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자식을 못 낳게 해서 혈육을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한센병이 부모와 자식 간의 유전도 아니고 문제가 없는데도 그 때 사람들의 무지였다.
어머니는 단종수술을 거부하며 결혼을 반대했다. “네가 죽을 고비 넘기고 원하는 의학강습소 들어갔으니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세상에 나가 너만은 이 더러운 삶을 면해야지… 금쪽같은 내 새끼 몸에 칼 대면서 단송수술 시킬 수는 없다.” 하였다. 장차 밖으로 나가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라는 말씀이었다.
선봉은 갈등이었다. ‘아버지께서 병들어 이 섬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다가 목숨을 걸고 탈출해서 어머니를 만났다. 나는 그렇게 태어난 목숨이다. 내 아버지가 버리고 도망 간 이곳에 어머니와 함께 다시 부려졌다. 어머니는 부흥사경회 끝 날까지 예배당에 자리를 잡고 자고 먹으면서 이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생각하며 실명한 어머니를 혼자 두고 소록도를 떠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섬에 갇혀 억압과 멸시와 고통으로 살았지만 앞으로도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갈등이었다.
그 때 단종수술을 하더라도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봉이는 어머니를 설득해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그들 결혼은 온 동네 잔치였다. 장로님을 주례로 모시고 예배당에서 결혼식을 가졌다. 신랑은 양복을 갖춰 입고, 신부는 멋진 드레스를 입었다. 가족과 고향을 떠난 사람들, 세상과 모든 것이 단절된 사회, 그런 형편에서 부부의 만남은 꿈이요 행복이었다. 두 아이가 꽃가루를 날리며 앞서고, 찬양대의 축가가 불려졌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노인들을 잘 섬겨서 칭찬을 받고,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고, 교회 일에 열심인 그들은 뜨거운 축하를 받았다. 돼지도 한 마리 잡아 푸짐한 잔치를 벌였다. 어머니와 한 방에 사는 부인들이 옆방으로 분산하고 신혼부부에게 방을 내주었다. 소록도 가족들의 사랑이 가득한 축하였다.
선봉은 단종대(수술대)에 누어 탄식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축복은 거부하고 단종 수술을 받는 자신이 너무 비참했다. 자식을 낳은 것이 순리요 행복이요 즐거움인데 이 잔인한 단종, 우리들의 인권은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서러움과 분노의 눈물을 삼켜야했다.
그들 부부는 장안리로 이사하여 살림을 차렸다. 집사로 임명 받으면서 청년회장, 성가대장, 그리고 예배당 종치기가 되었다. 이들의 삶은 교회를 중심으로 예수 믿고 사는 신앙생활이었다.
1962년, 소록도를 나왔다. 밖에 나온 선봉은 인생 밑바닥을 딛고 일어났다. 열심히, 보람되게 살았다. 어머니는 이미 천국으로 가셨다. 마지막으로 할 일을 찾아 소록도에 들어왔다. 그는 75세 고령에도 어머니 이야기에 눈시울을 적신다. 지금은 화장장 봉사자로 나섰다. 한 많은 인생을 마감하고 영원한 천국으로 떠나는 분들을 내 어머니 섬기듯 모셔드리는 것이다.
소록도를 찾아온 수원제일교회(이규왕 목사) 미용봉사팀
|
|
첫댓글 그런 삶이 머잖은 곳에 있었군요....얼마나 값진 삶을 사시는 건지 위로와 존경을 보냅니다.
삶의 이야기가 어쩌면 장편 소설 같은 것.
누구 이야기는 처음부터 눈물이고, 분노이고, 애가 끓음이고...
지나고 보니 손을 마주 잡고 위로함 뿐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