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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일간문예뉴스 문학iN News
[맨발인터뷰] <한국문화분권연구소>와 부설 <대구인문예술대학> 이사장 김용락 시인 | ||||||
이소리 글꾼(lsr21@naver.com) | ||||||
시인 김용락. 그 이름 앞이나 뒤에 붙는 낱말은 너무 많다. 문학평론가, 문예운동가, 교사, 교수, 신문기자, 프리랜서 PD, 칼럼리스트, 정치인 등등… 이는 그만큼 시인 김용락이 걷는 길이 바다처럼 넓고, 우물처럼 깊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대구에서 살아보면 정치를 하지 않고 견디기 어렵다”며 중국 문학가 노신이 쓴 ‘눌함’이라는 글을 떠올리는 시인. 시인은 “무쇠로 된 어두운 방에 갇혀 자신도 모르게 죽어가는 민중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는 글이 ‘눌함’이라며 “대구가 그런 곳”이라고 잘라 말한다. 시인 김용락, 그는 왜 그렇게 바쁘게 살고 있을까. 그가 생각하는 시는 무엇이며, 그가 꿈꾸는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시인 김용락은 1958년 5월 22일(호적상 1959년)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세촌리 825~2에서 태어나 대학 4학년 때인 1982년 개인시화전을 열고, 소시집 <송사리떼를 몰고 하늘로>(흐름사)를 펴냈다. 1983년에는 ‘예각’ 동인시집 <다시금 그리움 하나로 선다면>(그루)을 펴내고, 이것을 주춧돌로 삼아 1984년 창작과비평사 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그 이름을 처음으로 내민다. -어릴 때 환경은 어땠으며, 언제부터 문학을 하려고 했는가? 첫 소시집을 냈을 때 소감은? “어릴 때는 소심한 시골 어린이 정도였다. 중학생 때부터는 소설가가 꿈이었다. 아마 책을 좋아한 게 그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첫 소시집 이야기를 하자면 길다. 지면상 짧게 이야기하면 대학 재학 때 은사이신 신동집 시인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등단하게 돼 있었는데… 그때 현대문학 주간이던 조연현 선생이 갑자기 작고하면서 현대문학 추천규정이 바뀌어 불발되었다. 그 때문에 대구 시내에 있는 ‘사랑마당’이라는 갤러리에서 개인시화전을 하게 되었고, 그때 출품한 시를 묶어 작은 소시집을 냈다. 그게 <송사리떼를 몰고 하늘로>인데 시 20여 편이 실렸다.” 소시집, 500원 씩 받고 판 뒤 술을 마셨다 시인 김용락은 그 소시집을 시화전 기간에 500원 씩 받고 판 뒤 술을 마셨다. 그때 남은 시집 몇 권은 시인이 좋아하던 시인에게 보냈다. 이때 신경림, 박재삼, 이동순 같은 시인이 그 소시집을 “잘 봤다”며 편지와 엽서를 보냈다. 그때 “감격했다”고 되짚는 시인 김용락. 시인은 “무엇보다 대구 영남대에 재직하던, 그때까지 저와 일면식도 없던 염무웅 선생님께서 대구 <매일신문> 월평에 그때 잘 나가던 이성복, 황지우, 최승자 등과 함께 제가 펴낸 그 시집을 호평해 진짜 기뻤다”고 되짚는다. “벌써 30년도 지난 일”이라며 활짝 웃는 시인 모습이 천상 시인이다. -1984년에는 김창규, 도종환, 배창환 등과 함께 <분단시대>를 만들었다. 그 목적은 “문학을 통하여 민주화를 이룩하고 통일의 길을 가자”는 거였다고 알고 있다. 정치에 발을 내딛고 싶은 때가 이때부터였는가? “<분단시대> 동인은 1984년 초에 만들어졌다. 배창환, 도종환, 김창규 형들이 주로 이끌었다. 저는 몇 살 어린 탓에 특별한 일이 아니면 그냥 선배들을 따라갔다.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서는 장유유서와 같은 정서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저는 의성에서 태어나 안동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웃어른들을 잘 모시고 배려하는 정서가 있었다. 분단극복이나 통일에 대한 담론도 그 형들이 주로 이끌었다. 그때 정치는 전혀 생각도 안 해봤다. 그저 불의한 군사독재현실과 모순된 사회계급구조와 같은 현실문제에 대한 공분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구에서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소외감이나 스트레스는 타 지역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이런 생각을 갖는 순간 완전 왕따가 되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민중문학, 민족시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모순된 현실에 대한 의분과 책을 통해 익힌 정의감 같은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백성을 생각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다 -1984년 1월 창작과비평사 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에 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때 어떤 시를 쓰고 싶었는가? “^^ 좋은 시.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부터 시에 수사가 많은 것을 멀리했다. 이미지나 음악성보다는 내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를 좋아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농촌정서나 사회 하층계급이 지닌 정서를 주로 쓰고 싶었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백성을 생각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다’라고 말 한 바 있는 데 저도 시를 그렇게 이해하고 썼다.” -1984년부터 안동공업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일했고, 고려대, 계명대, 영남대 등에서 시간 강사를 하다 경북외국어대학교에서 교수를 맡았다. 시인으로서 우리나라 교육정책을 어떻게 보는가? “우리나라 교육정책이라? 전문가가 아니어서 잘 모르지만 일반인 입장에서 이해하는 정도다. 지나친 경쟁체제, 서열위주, 패자부활전이 없는 시스템 등 참 문제가 많다고 본다. 2010년에 대구시 교육감에 출마했다. 그때 생각은 학생들이 학교 성적이 다가 아니라 인간에 대해 관심을 갖는 교육, 학교 성적이 나빠도 자기 자신에게 자긍심을 갖는 교육, 타인에 대해 연민을 가질 줄 아는 교육을 펼쳐보려고 했다. 독서교육을 강조하고, 무상급식 무상교육뿐 아니라 학교 교장도 반드시 교사 출신으로 교장 자격증 소지자가 아니라 농부나 공장 노동자 출신도 일정한 능력을 가지면 학교 교장으로 일 할 수 있는 공약을 내걸었다. 말 그대로 다양성을 지닌 교육방법에 주목했다. 그게 참 쉽지가 않았다. 선거 초기에는 여론도 매우 높았다. 지역 언론사가 전문가를 위촉해서 실시한 공약 검증 평가에서 가장 창의적이며 독창적인 공약이라는 최우수 평가를 받았다. 이와는 달리 실제 시민들 득표에는 실패했다.” 지금 우리 언론에 문제가 참 많다 -시인으로서 왜 언론계에 그리 깊숙이 뛰어들었으며, 지금 우리 언론을 어떻게 보는지? 우리 언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대구일보> 등 여러 신문사에서 기자, 부장, 논설위원을 10년 정도 했다. 대구 MBC, CBS, 불교방송, TBC 등 라디오, 티비 방송에서도 10년 간 프리랜서 시사프로, 문화프로 진행을 맡았다. 언론은 고등학교 교사 3년 뒤 자연스레 갖게 된 직업이었다. 아마 글 쓰는 시인이라서 여러 신문사에서 스카웃 표적인 된 거 같다.”^^ 지금 우리 언론에 문제가 참 많다고 생각하는 시인 김용락. 시인은 몇몇 언론에 대해 정치인 유시민 씨가 ‘독극물’이란 표현을 한 것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특히 요즘 종편은 그 저질성이나 선정성을 보면 언론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몇몇 언론과 종편은 “어떻게든 개혁이나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고 못 박는 시인 김용락. 그가 생각하는 언론은 “기본적으로 정론직필해야 하고, 사회적 약자 편에서 문제를 보는 것”이다. 시인 김용락은 2004년 총선에서 경북 의성(군위, 청송)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2004년에는 시민단체 당선지지 국민후보 여야 54명 가운데 전국에서 무소속으로 유일하게 뽑혀 정책능력, 도덕성, 리더십 등도 검증받았다. 그 뒤 대구시 교육감에 출마했고, 지난 2012년 4. 12 총선에서도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왜 정치를 하려고 하는가? “왜 정치를 하려고 하나? 이 질문 많이 받았다. 특히 내가 시인이자 학교 선생이라서 더욱 그런 것 같다. 내가 정치에 뛰어든 것에 대해 내 스승인 권정생 선생은 ‘정치와 전쟁은 악마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편을 거꾸러뜨리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너는 선하기만 하지 그런 야심이 없다’고 극단적으로 말하면서 말리기도 했다. 염무웅 선생님은 ‘용락이처럼 맑고 깨끗한 인물이 정치권에 유입돼야 그나마 정치권의 탁한 물이 맑아질 수 있다.’(사실 나는 맑고 깨끗한 사람도 아니지만…)면서 정치에 뛰어드는 것을 찬성해 주시기도 했다.” 대구에서 살면 정치를 하지 않고 견디기 어렵다 -대구는 어떤 성향을 지닌 도시이며,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는가? “대구에서 살아보면 정치를 하지 않고 견디기 어렵다. 중국 문학가 노신이 쓴 <눌함>이라는 글에 보면 무쇠로 된 어두운 방에 갇혀 자신도 모르게 죽어가는 민중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대구가 그런 곳이다. 정치적으로 30년을 보수, 수구 일변도로 고정돼 있는 곳이 대구다. 보수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뭐든 오랜 기간 일색은 문제가 있지 않나? 그러다 보니 누군가는 외쳐야 하고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세상이 있다고… 주변에서 평론가처럼 말로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처절하게 패할지라도 마침내 무쇠로 된 공간을 열어 생명이 가득한, 다양성이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당대를 사는 지식인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제 정치의식은 이런 지역문제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이것이 확대되면 한국 정치가 지닌 고질적인 문제인 동서, 남북 갈등과 같은 지역문제나 부패, 반칙, 특권 문제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1991년 계간문예지 <사람의 문학>을 창간하여 편집위원, 주간, 발행인을 거쳤다. <사람의 문학>을 창간한 까닭과 어떤 분들이 필진으로 참여하는가? “계간 <사람의 문학>은 90년 초에 분단시대 동인활동이 힘을 잃어가던 때 분단시대 동인 가운데 대구에 사는 사람들이 편집위원이 되어 창간했다. 배창환, 김종인, 정만진, 정대호, 윤일현, 김용락 등으로 출발했다. 요즘은 권오현, 신기훈, 박경조, 박선주 등 후배들이 많이 가세해서 내고 있다. 지금 정대호 시인이 발행인이다. 지역문학 활성화에 보탬이 되고자 시작했는데 지역에서 문예지 내는 게 어려움이 많다. 이 문제는 결국 ‘문화분권’ 문제와 직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이 문화분권, 지역분권 문제다.
시인 도종환 의원, 시인 김영환 의원... 두 분 다 훌륭한 분이다 시인 김용락은 요즈음 들어 여러 가지 불교경전과 기독교 서적 등을 자주 읽고 있다. “플라톤 류의 고전도 많이 읽고… 어제 읽은 책이 베트남 출신 틱 낫한 스님이 쓴 <중도란 무엇인가?>다”라고 말하는 시인. 시인은 무비 스님이 쓴 <직지강설>과 다른 글쟁이가 쓴 <유식학> 등도 읽었다. 그가 최근에 읽은 책은 소설가 김동리가 쓴 <예수의 생애>와 중국대사가 쓴 <하나님의 대사>다. 시인이 주로 읽는 책은 <창작과 비평>, <녹색평론>이다. 그가 좋아하는 글쟁이는 염무웅, 백낙청, 김종철, 재일교포 서경식 교수다. -이번에 국회의원이 된 시인 도종환과 4선 의원인 시인 김영환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두 분 다 훌륭한 분이다. 도종환 의원은 개인적으로 동인활동도 같이 하고 해서 좀 아는 편인데 참 훌륭한 분이다. 실력과 덕망이 있고 겸손한 분이다. 초선이지만 문학과 문화예술에 대한 풍부한 경륜과 지식, 그리고 특유의 성실함으로 우리 문화예술계를 위해 많은 일을 할 분이다. 4선이라는 선수가 말해주듯이 김영환 의원 역시 대단한 분이다. 이런 분들이 문화예술분야와 나라 전체를 위해 큰일을 할 수 있도록 주변에서부터 밀어주고 지지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사소한 정치적인 견해차나 의견 차이는 묻어두고 대승적인 차원에서 가까운 문화예술인들이 적극 밀어줘야 한다. 어떨 때는 가까운 곳에서 안티가 더 많이 발생하는 경우가 없잖아 있는데 이런 경우에도 멀리 대승적으로 봐야 한다. 문화예술계에서도 큰 인물을 키워야 하지 않겠는가. -더 하고 싶은 이야기와 앞으로 계획은? “일간문예뉴스 <문학iN>에서 좋은 기회 주어 고맙다. 앞으로도 여전히 지역(대구)에 살면서 지역 문제를 연구하고 싶다. 우선 ‘문화분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부해서 이 문제를 우리 사회의 주 의제로 설정하는 일에 매달리고 싶다. 요즘 독서에 관한 책 <맑은 영혼을 깨우는 독서>(가제)를 가을 쯤 펴낼 예정이다. 10월쯤에는 다섯 번째 시집도 펴낼 예정이다. 고맙다.<끝> 시인 김용락은 1959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계명대 영문과와 같은 대학원 국문학 석, 박사(1995)를 마쳤다. 1984년에는 <창작과 비평> 신작시집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뒤 시집 <푸른별>, <기차소리를 듣고 싶다>, <시간의 흰 길>,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를 펴냈다. 평론집으로는 <민족문학논쟁사연구>가 있고, 대담집 <나의 스승 시대의 스승> 등 12권이 있다. <대구일보> <경북일보> 등 신문사에서 기자, 부장, 논설위원(10년)과 대구 MBC, CBS, 불교방송, TBC 대구방송 등에서 시사 문화프로 진행자(10년), 계명대, 영남대, 고려대 강사(15년)를 거쳐 경북외국어대학교 교수, 교무, 학생처장(9년) 등을 맡았다. 지금은 <한국문화분권연구소>와 부설 <대구인문예술대학> 이사장을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