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는 도마> 카라바조 1601~1602년 경, 캔버스에 유채, 107 x 146 cm, 포츠담 신궁전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자신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의심 많은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다. 이 후 제자들이 그에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뵈었다고 일러주었으나 그는 믿지 못하였다. 그리고 “내 눈으로 그 분의 손에 난 못 자국을 보고 손가락을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다.” 라고 하였다. 여드레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라고 인사하신 후 도마에게 말씀하시길 “네 손으로 내 손을 만져 보아라. 그리고 네 손으로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라고 말씀하셨다. 화가는 이 순간을 포착했다. 요한복음 20장 24절에 등장하는 믿음에 관한 일화이다. 성경에 도마가 예수그리스도의 옆구리에 손가락을 직접 넣어보았다고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화가는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의심많은 도마라면 그랬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화면을 보자.
도마는 정말 예수그리스도의 상처에 자신의 손가락을 깊게 넣어본다. 그 뿐인가? 자신의 손가락을 직접 넣어보고도 못 믿겠다는 듯 그리스도의 상처부위를 뚫어져라 쳐다보기까지 한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옷깃을 들쳐 상처를 내보이면서 도마의 손을 자신의 상처로 이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에 너무 깊게 들어온 도마의 손가락에 극심한 통증을 느낀 듯 얼굴의 표정이 고통스럽다. 심지어 도마의 곁에 있는 다른 두 사도마저 도마를 말리지 않고 십자가 고통에 의한 상처인지 아닌지 자신들도 재차 확인하겠다는 듯 그리스도의 상처자국을 유심히 관찰한다. 세 사람의 제자들은 모두 주름이 잔뜩 진 표정, 대머리에 찢어진 옷깃 등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등장시켜 의심하는 행동과 이들을 동일시했다. 이윽고 도마는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하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었다. 이때 그리스도는 도마를 향해 말씀하시길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라고 가르치셨다.
작품의 구성을 보자. 네 사람의 등장인물이 화면을 꽉 채우고 있는 가운데 화면은 둘로 나뉘어 있다. 왼편에는 그리스도가 오른편에는 세 사람의 사도가 배치되었다. 네 사람의 머리는 마치 다이아몬드 형태로 배치된 점도 흥미롭다. 화면 중간을 가르는 수직축을 형성한 두 사도를 중심으로 그리스도와 오른편 붉은 옷을 입은 다른 사도는 대칭적으로 배치된다. 화면을 수직으로 가르는 두 사도는 같은 방향으로 시선과 자세가 형성되어 있고 예수 그리스도와 반대편의 사도 역시 대칭적인 자세이지만 같은 포즈로써 시선은 동일한 곳을 향한다. 이런 구도를 통해 우리는 화면의 중심에 배치된 인물들의 얼굴보다 그들이 따라가는 시선에 자연스레 눈길이 머무는 것이다.
사건이 벌어진 장소를 암시할만한 장치가 전혀 없는 것도 특징적이다. 사건의 장소보다는 사건 그 자체를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특정장소를 배제한 것이다. 한편 화가는 우리의 시선을 그리스도의 상처로 유도하기 위해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모두 한곳으로 집중시켰다. 그리고 이것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들을 화면 구성에 두루 삽입했다. 두 사람의 제자들은 아예 손을 그리지 않았던 것도 예수그리스도와 도마 두 사람의 행위가 더욱 강조되는 효과를 발휘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장치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상처자국에 손을 넣어보는 부분을 제외한 화면의 대부분을 어두움에 가둬 두고 가장 강렬한 빛을 주제부분에 쏟아놓은 것에서 완성되는 셈이다.
그런데 왜 화가는 작품에서 당시의 관행대로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에게 신성을 표현하는 후광등의 장치들을 그리지 않았던 것일까? 고작 해봐야 예수의 신성함은 다른 사도들에 비해 다소 고상하게 묘사된 얼굴과 의상으로만 절제해서 표현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한 영혼이 아닌 인간 그 자체의 모습으로 발현했지만 제자들에게조차 고통 받는 ‘인간의 모습’ 그 자체를 그려내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그려냄으로써 ‘부활의 기적’이라는 실제적 효과를 강조하면서 도마를 통해 의심을 걷어내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함을 외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 작품은 미술사에서 많은 화가들이 그린 동일한 주제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며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당대의 사람들에겐 매우 충격적이고 놀라운 작품이었다. 성서의 내용보다 더욱 강조된 구성, 신성함의 결여, 구도의 파격 등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화가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 화가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였다. 1573년경 밀라노에서 태어났으며 우리가 아는 미켈란젤로와 구별하기 위해 후일 그의 고향마을 이름인 ‘카라바조’라고 불렀다. 서른아홉 해를 살다 간 그의 짧은 생애는 그의 작품만큼이나 격랑과 파란으로 점철되었다. 그는 르네상스와 매너리즘의 경계에서 길을 잃고 있던 혼돈의 시대에 명료한 예술의 빛을 비춰주었다. 그가 화가로 첫발을 내딛던 당시는 복잡한 구성과 난해한 상징으로 가득한 마니에리슴 회화가 유행했는데, 그의 그림은 메시지가 훨씬 직접적이고 조형 요소도 단순하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거리에서 막 데려온 듯 너무나 현실적인 복장과 표정을 하고 있어 사람들을 놀래키곤 했다. 한마디로 군더더기가 없이 단순성을 동반한 파격의 예술이라 할 수 있겠다. 이후 17세기 바로크 회화의 역사는 그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당대와 후대의 화가들에게 강한 영향을 끼쳤다. 렘브란트, 루벤스, 벨라스케스, 베르메르조차도 그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젊은 나이인 스무 살 즈음 고향을 떠나 예술의 심장부인 로마로 왔을 때는 이미 고아였고 빚을 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재능을 뽐내며 후원자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곧 선도적인 예술가 그룹에 진입한다.
그는 평생 각종 범죄에 연루되며 도피와 열 번이 넘는 투옥생활을 했고 심지어 살인을 저질러 몇 년동안이나 현상금이 걸린 수배범으로 도피생활을 했을만큼 거칠었다. 죽는 순간까지 필사적으로 사면을 구하다 병사했다. 이러한 성격은 예술로 담아 낸 그의 천재성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애초부터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찾아 천상의 신비를 담아내는 회화에는 관심이 없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천상의 세계를 마치 본 것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은 이 반항적이고 격정적인 예술가에겐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예술적 영감을 준 것은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었다. 그의 작품에 거리의 부랑아, 매춘부, 도박꾼, 타락한 병사, 곡예사, 악사 등과 같은 뒷골목 사람들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 당시 하층민들의 막막했던 삶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언젠가 카라바조에 대해서 쓴 칼럼을 본 적이 있는데,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카라바조는 세속에서 신성함을 찾았고 성스러움 속에서 세속을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그 어떤 수사보다도 카라바조를 잘 표현한 말이라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고,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 데 길잡이가 되었다.
화면 구성 역시 마찬가지다. 화가의 기질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면면히 이어온 서사적인 구성을 과감히 생략했다. 주제 부분의 극적인 한 순간만을 포착하는 단순한 구도속에 주인공들을 과감하게 어둠 속에 밀어 넣은 뒤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중심 부분에만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명암대비 즉, ‘테네브리즘’을 채용했다. 이러한 표현방식은 당대의 많은 북유럽 화가들을 매료시켜 그를 추종하는 수많은 카라바지안을 잉태했고 그들을 통해 바로크 회화는 전 유럽 미술시장의 새로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카라바조는 자신의 파격적인 화풍을 부담스러워 할 교회의 작품 의뢰는 과감히 거부했고,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격렬한 비난과 끊임없는 시비에 휘말렸지만, 미술의 역사에서는 후대의 화가들을 통해 그의 진가를 증명했다. 분명 그는 시대가 요구했던 선한 천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범죄와 도피로 얼룩진 그의 난폭한 생애마저 어쩌면 신이 그에게만 허락한 비범한 재능을 싹 틔우기 위한 험난한 투쟁의 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윤 운 중
첫댓글 운중님의 그림 해석 참으로 감사합니다.
의심많았던 도마사도는... 그림에서 처럼 예수님의 늑방상처를 보면서도 의심의 눈을 가지고 있네요.
다른 제자들도... 그리고는 직접 손으로 넣어 보고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는 그 유명한 토마사도의 신앙고백이 탄생했지요.
와!!! 멋진 설명 감사합니다~~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성경에서만 읽었던 너무나 실질적으로 묘사된 예수님과 도마의 모습을 보면서,
또 이 성화를 그린 화가에 대하여도 많은것을 깨닫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다음 시간 기다림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