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스틱야자 외 1편
진혜진
립스틱은 야자나무에서 태어났다
나는 숨기고 싶을 때 립스틱을 바른다
그 안에 숨은 잎맥 같은 수많은 주름들
파리한 보라색, 병든 심장
립스틱 색깔이 짙어질수록 거짓은 깊어진다
립스틱야자 몸통이 붉다
붉은 몸통에서 뻗어나간 거짓말은 열대성
진실의 줄기도 있다
응 불안해
그 언어에 피가 흘러 립스틱이 자란다
그는 유리한 귀로 듣고 나는 유리한 입으로 말하고
불현듯 진담이 튀어나온다
냉온에서 살 수 없는
진담은 저온성 품종
립스틱야자가 공존할 수 있을까
줄기가 입안에서서 빠져나간다
불완전함이란 겉면만 붉은 것
초록 줄기와 이파리의 의심을 전화가 확인한다
가장의 진원지는 말레이반도
립스틱야자와 그가 아닌 그의 종자를 젖은 수건에 펼쳐 놓고도
거짓과 참을 가려낼 수 없다
15°C, 에어컨이 켜진 방,
진실하지 않아서 야자가 살 수 없는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사랑받는 우리의 거짓말
블랙홀
무용수가 턴을 돌고 있어 격렬한 바람개비별 스텝. 회전에 몰입하
는 그는 안개. 빨아들이는 안개, 방위를 모르는.
거부할 수 없는 노선, 회오리가 무용수를 휘감는다. 자력에는 중력
이 없다 저 무저갱, 있는 듯 없는 안개 에너지, 가장 끝까지 그가 흔
들린다. 흩어지며 들리는 천상의 소리. 나의 안개는 무굴 제국의 왕.
둥둥 북소리의 회전, 뜨겁거나 혹은 차갑게 태어나는 안개,
사라지는 바람개비별, 음계의 죽음으로 밤하늘은 오로라.
이 순간, 수천 억겁이 흐르고 음악이 끊기고 수런거리는 안개
가 없고… HD 197345 천구 좌표계 목록에 실체가 없는 무용수
가 산다.
다시 바람개비별 스텝으로. 나의 무용수가 뛰어든다. 출구를
모르는 회전문 속으로.
시 전문 무크지 모멘트 2017. 1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