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큰굿 "굿, 바람"의 훈령

[길가락]

4월 큰굿 "굿, 바람"의 훈령

김원호(아트코어 굿마을)

이번 큰 굿에 치배들 모두 훈령끈을 달자라는 누군가의 제안의 의미를 저는 이렇게 받아들입니다.

훈령(訓令)의 훈(訓)은 가르칠 훈, 길 순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양도 말씀과 화평함(言)이 흐릅니다(川).  길이지요.

그리고 가르치다는 무엇을 깨닫게 하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민족에게 깨닫는다는 것은 보통 만물의 이치, 세상살이의 근본 차원을 일컫습니다.

령(令)은 하여금의 뜻입니다. ~로 하여금.

일방적으로 흐르는 게 아니라 누구나 영을 낼 수가 있지요.

훈령이라는 원래 뜻은, 세상살이의 근본이 ~로 하여금 흐르는 길이 됩니다. 계급사회(관료, 군대 등)의 위계질서 차원, 즉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명령’이라는 의미로만 협소하게 쓰여지는 시대 때문에 원래의 뜻이 좀 퇴색되어왔습니다.

우리 굿판에서 영를 내릴 때 ‘훈령수~’ 하지 않고 대부분 ‘술령수~ ’하는 이유는, 사투리가 아니라 ‘길 순’의 의미가 강조되는 올바른 표현이라고 여겨집니다. ‘술’은 ‘순’의 음운규칙(유음화)으로 발음되구요.

따라서 굿판에서 술령수, 훈령끈, 영기는 세상 근본이치를 깨닫는 길의 징표가 됩니다. 조선말기 병농일치 사회에서 군악, 군의례 중 뽀대나는 것을 가져와, 당대 굿쟁이들이 구체적 세상살이의 굿판에서 이렇게 승화, 발전시켜놓았습니다. 멋있는 일이지요.

조선검은 심치술(心治術) 정신을 갖고 있습니다. 마주하는 적의 마음을 이미 움직이는 힘이지요. 따라서 조선검은 살인하는 도구를 넘어서서 활인검(活人劍)이라 칭해집니다. 그래서 검도라는 ‘道(길, 이치, 근원)’ 차원으로까지 발전되었고 그에 맞춰 검을 수련(자기 성찰)으로 받아들입니다. 지금도 검도가 수련되지요. 심지어 검무라는 의례예술로도 발전시켜왔습니다. 죽음을 삶으로 정화하고 성찰하려는 춤이 검무의 본질입니다. 기생들이 검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단순히 흥을 돋우는 춤이 아닙니다. 그래서 정재로 의례 연희되었겠지요.

따라서 우리가 굿으로 받아들이는 令(술령수, 훈령끈, 영기)은, 죽음을 부르는 병장기와 전투의 영, 권위가 일방적으로 흐르는 영이 아니라, ‘노래와 춤으로 하여금’이라는 영이 됩니다. 노래와 춤은 태동부터 존재 근원에 대한 그리움이자 의례행위이지요. 게다가 우리 민족은 지독하게도 노래와 춤을 즐겨왔고, 그 것은 자신과 이웃과 모든 생명 있는 것들에 대한 감사행위였습니다. 이것을 굿이라고 하지요. 그 총화가 마을굿이구요. 그 전위가 굿쟁이들입니다. 사제들이지요.

근래 힐링이라는 말이 생활 깊숙히 들어왔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대중들이 스스로 삶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뭔가 지금의 삶이 모자르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힐링이란, 세상살이만 갖고는 안된다라는 표현이자 존재근원에 대한 자기성찰, 그 근원의 힘을 챙기자는 뜻입니다. 근원과 현실이 같이 있는, 즉 성속일여의 시공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점점 더 알아차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스스로 힐링하려 하고 더 나아가 영성으로서의 삶으로 진화하려 합니다. 대중의 감수성과 가치관은 이렇게 영성의 존재로서 보다 빠르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성속일여의 존재라는 것을 점점 더 실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굿이 당대성을 얻기 위해서는, 이런 대중의 존재 차원의 진화 욕구와 만나야 합니다. 이 차원으로 잘 놀아야, 놀아주어야 합니다.

굿쟁이니까.

이번에 치배들이 훈령끈을 달자라는 것은, 근대굿의 군악설 차원에서 영향받은 것을 아무 생각없이 그대로 따라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 삶의 신산고초와 희노애락을 위해 우리가 어떤 ‘노래와 춤의 영’을 내릴지 성찰하고 그 깊이만큼 우렁차게 자임하자는 의미라고 저는 생각됩니다.

그래서, 제안 하나.

아시지요?

마왕 신해철과 세월호 아이들입니다.

모다들 눈물을 버쩍이게 만드는, 당대 페이쏘스로 지극히 아름다운 일러스트입니다.

 이번 저희 굿판도 이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국민 모두가 세월호가 준 여러 가지 상념에 깊숙하게 젖어있습니다. 감수성부터 가치판단 차원까지. 이 시간들을 힘겹게 통과하며 당연히 우리 삶은 한 차원 진화됩니다. 굿쟁이들은 당연히 좋은 통과의례의 시간을 만들어야겠지요. 지금 우리 시대의 마을은 세월호 마을이라 여겨지고 우리는 우리 나름 그런 마을굿을 쳐야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 말고 여러 굿쟁이들이 굿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부터 진도까지 굿치며 걸어가기도 하고, 추모판굿 자체를 만들기도 하고, 팽목항에서 만가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려는 이 4월의 큰 굿은,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늘상 하던 것)으로 우리 식의 마을굿을 하자라는 것입니다. 굿의 원래 속성을 보다 많이 가지고 하자는 것입니다. 즉 굿의 전모를 가지고 당대 세상에 할 바를 한 번 다하자는 것입니다. 노래와 춤의 굿성으로 ‘잘 놀자(근원성찰)’는 것입니다

이것이 ‘큰 굿’입니다. 이것이 굿의 시대정신입니다.

 그래서 제 제안은, ‘노래와 춤의 令’으로서의 훈령끈에 작은 ‘시대 징표’를 달았으면 합니다. 노란 리본 하나.

우리 스스로 우리 큰 굿의 令을 흐르게 하자는 것입니다. 세월호의 아이들을 초대하고 내 몸에 모시고 굿을 했으면 합니다.

아! 물론 겉보기 모양새는 늘 하던대로 우리 굿을 치면 됩니다. 단 하나 ‘우리시대 노래와 춤의 令’을 상념하면 되겠지요.

그리고 ‘기도깃발’도 몇 줄 정도만 현장에 달았으면 해요. 오색깃발 몇 줄, 노란깃발 몇 줄 정도. 기도깃발은 떨림, 울림, 바람, 결을 상징합니다(風流). 영성이 내려오는(영성을 만나러가는) 길이 되어 흐르지요.

아이들도 올겁니다.

       예> 훈령끈                                                      예> 기도깃발

   

참, 제가 제안하는 것은 추모굿으로 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풍물굿으로 하기에 추모는 무겁습니다.

풍물굿판은, 한 같은 것은 이미 절절하게 벼려낸 밝은 신명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밝음'은 세상의 근원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노란 리본 하나의 훈령, 그 상념 정도면 지금 우리의 노래와 춤으로 큰 굿은 충분히 이룰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