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곡>
『만석꾼 장자 이야기』
- 양산 상북 장제마을 자라바위
靑山 손병흥
나오는 사람
장자
시자
며느리
몸종
머슴
장수
동네사람들
- 무대
옛스런 시골풍경을 배경으로 하여 설치한 으리으리한 어느 만석꾼 기와집을 무대로 하여 툇마루와 부엌 및 아담한 장독대 등을 배치하되, 한적한 시골 농촌의 장면을 자연스레 연출하기 위해 멀리서 부터 개짖는 소리와 함께 닭소리 등의 효과음을 통해 서서히 먼동이 터 오는 새벽을 표현한다.
암전 속에서 막이 천천히 열리는 동안에 그 동안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오래된 가요중 하나인 <양산가>의 구성진 노래소리에 맞춰 마치 날이 밝아오는 것처럼 조명도 점차 서서히 밝아진다.
이때 구성진 내레이터의 음성으로 이 이야기는 경남 양산시 상북면 장제마을에 전해져내려오는 만석꾼 장자와, 재산 욕심에 눈이 먼 며느리와 자라바위에 얽힌 전설을 배경으로 하여 만들어 졌음을 알린다
양산을 가세
양산을 가요
모림이 돌아서
양산을 가세
난들 가서 배잡아 타고
양산을 가세 양산을 가요
잉어가 논다
양산 창포장에 잉어가 논다
양산을 가세
양산을 가요
자라가 논다
자라가 논다
양산 백사장에 금자라가 논다.
1. 아침풍경(어둠 속에서 서서히 조금씩 여명이 터오면서 영창문에도 등불이 켜진 뒤 잠시 후 날이 점차 밝아져 재차 밝은 조명으로 꼭두새벽이 되었음을 표현하되, 이내 잠시 이곳저곳을 다니며 마당을 쓸고 있던 머슴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다시 효과음을 통해 담장 밖에서 대문짝을 두드리며 주인장인 장자를 다급하게 부르는 시자의 목소리를 들려 준 뒤에, 다소 남루한 옷매무새와 용모의 사내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빈 자루를 든 채로 대나무 빗자루를 든 머슴과 함께 그 부잣집 마당 안으로 들어선다.)
(조금 지나서 며느리가 퉁명스럽게 부엌에서 나와 커다란 양재기에다 쌀을 가득 담아서 나올 즈음에 이미 큰 스님 탁발 심부름을 나온 시자는 빈 자루를 들고 먼저 그 자리에 서 있는다.)
머슴(빗자루를 든 채로 대문쪽을 바라보며) 거 밖에 누구시오?
시자(목소리로만 들려줌) 저기 저 앞산에서 원효대사를 시봉하고 있는 시자이온데, 주인어른께 심부름을 나왔으니 어서 대문 쫌 열어주시오.
머슴(달갑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좀 주춤거리다가 대문을 열어줌) 그만 알아 들었으니 좀 잠자코 기다리기나 하시오.
며느리(시자를 보자마자 다소 거칠고 투박한 음성으로) 아니 꼭두새벽부터 이 무슨 날린 교? 도대체 사람이 좀 염치가 있어야지.
시자(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워낙 큰스님이 밤새 재촉을 하는 바람에 무슨 염치고 체면이고 차릴 새도 없이 이만 무례를 범하게 되었으니 이렇게 용서를 구합니다요. 아무튼 송구스럽기 짝이 없구만요.
며느리( 더욱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마당에다 침을 퉤 뱉으며) 그래도 그렇지 무슨 난리가 난 것도 아닌데 너무 한 것 아니요. 왠 새벽부터 온 동네 개들이 제다 왕왕 짖어대더니만 에이 재수가 없어. 퉤~ 퉤~
장자(조금 열린 방문 틈으로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채 며느리를 향해) 아침부터 어디 웬 소란이람. 이보거래이 며늘애야! 그러지 말고 얼른 쌀자루를 채워서 보내거라. 잘 모르긴 해도 아마 큰스님이 하도 사정이 급해서 닥달을 하여 심부름을 시켰겠지.
며느리(그때까지도 혼자 씩씩 거리듯 뿌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마치 동냥을 주듯이 비아냥거리는 투로 몇 번 씩이나 부엌을 들락거리며) 오늘처럼 이리 성가시게 굴면 다음엔 국물도 없을 줄이나 아시요. 그런데 이놈의 자루는 도대체 새는 곳도 없는데 와 이리 안 채워지노.(이 때 조명이 더욱 더 밝아짐과 동시에 가까이서 여러 마리 동네 개들의 몹시 요란스레 짖는 소리가 들린다.)
(이내 암전이 되면서 장막을 내린다.)
(이윽고 굵고 나직한 목소리를 갖춘 내레이터의 음성으로 다음과 같은 줄거리를 들려준다.)
신라 선덕왕 시절. 지금의 경남 양산시 상북면 장제마을에 장자라고 하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 장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많은 농토뿐 만 아니라, 인근의 쓸모없는 땅들도 쉴 새 없이 부지런히 개간하여 옥토로 만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장자는 얼마가지 않아 인근에서 제일가는 크게 소문난 만석꾼이 되었습니다. 참 인심이 좋았던 장자는 자신의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신분을 차별하지 않고 지극 정성으로 넉넉하게 대접했습니다.
그런 소문이 돌다보니 장자의 집에는 말 그대로 문턱이 아주 닳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성시를 이뤘습니다. 한편 그 무렵, 장제마을 맞은편 천성 산 에는 원효대사가 무려 1,000명의 제자들을 이끌고 수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원효대사는 뜻하지 않은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그 많은 제자들을 공양하다보니 식량이 아주 바닥이 나버린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원효대사는 시자를 불러 낡은 무명 자루를 건네주며 산 아래 마을에 살고 있는 만석꾼 장자를 찾아가서 매일 탁발을 해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자루의 반만 채워가지고 와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자루를 받아든 시자는 무척이나 의아해 했습니다. 자루가 너무 작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작은 자루에다 가득도 아닌 반만 채워오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시자는 도대체 원효대사의 말을 잘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동안 수많은 기행을 보았던 터라 무슨 연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산을 내려왔던 것이었습니다.
장자는 며느리를 불러 심부름을 온 시자에게 곡식을 내어 드리라고 말하고는 자리를 떠났습니다. 며느리는 다소 짜증 난 태도로 시자에게 얼마나 드리면 되냐고 물었습니다. 시자는 낡은 무명 자루를 꺼내 보이며 이 자루의 반만 채워주시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며느리는 장자와는 달리 남들에게 퍼 주는 것을 매우 아깝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시자가 내민 자루에 곡식을 넣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무리 봐도 한 말 정도의 자루인데, 무려 세 섬이나 들어갔는데도 그 반도 채워지지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자루는 곡식 다섯 섬이 들어가고 나서야 반이 되었습니다. 며느리는 다섯 섬이나 내어줬으니 다시는 안 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며느리의 바람과는 달리 시자는 매일같이 찾아와 시주를 받아갔습니다. 며느리는 마치 자신의 재산이 축 난 것처럼 아까워했습니다. 장자에게는 아들이 한 명 밖에 없었기 때문에 장자가 죽으면 그 막대한 재산은 모두 며느리의 차지나 진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며느리는 재산을 지키기 위해 몸종에게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이를 찾아오라고 시켰습니다. 몸종은 즉시 알고 있던 지관을 찾아갔습니다.
지관은 마침 선약이 있으니 내일 찾아가겠노라 말하고는 그 길로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지관이 찾아 간 곳은 다름 아닌 원효대사가 기거하고 있던 암자였습니다. 지관이 원효대사에게 예를 갖춘 후 말씀대로 며느리가 사람을 보냈다고 전하자 원효는 일전에 일러준 대로 하라고 말했습니다. 지관은 그러면 장자는 망하게 되는데 그 집 며느리야 욕심 때문에 죄를 받아야하지만 장자는 무슨 죄가 있냐며 원효대사에게 되물었습니다.
원효대사는 인자하게 웃으시며 장자는 이미 이승에서의 재산은 모두 부질없는 것을 알고 있으며, 게다가 장자는 이미 부처님 땅에 많은 재산을 쌓아놨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그제 서야 지관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다음 날 장자의 집을 찾아간 지관은 며느리에게 집 앞 냇가에 있는 푸른 자라바위의 목을 치면 고민이 모두 해결 될 것이라고 일전에 원효대사가 일러준 대로 비책을 알려주었습니다. 지관이 물러가자, 며느리는 몸종에게 장수 한 사람을 데려 오도록 해 지관이 일러준 자라바위로 향했습니다.
2. 자라바위
(다시금 막이 오르면 양산 천 가운데 위치한 커다란 자라바위를 배경으로 며느리와 몸종과 힘센 장수가 나란히 서있다.)
며느리(아주 귀찮아 죽겠다는 듯이) 이보시게. 내 품삯은 아주 넉넉하게 쳐줄 터이니 당장 저 자라바위의 목을 쳐주시게나.)
장수(의기양양한 자세와 목소리로) 아유 그럼요. 어디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제가 누굽니까요?! 단칼에 목을 잘라버리겠습니다요.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장수는 푸른 자라바위 등에 올라 목 부분으로 다가가서 자리를 잡은 장수가 커다란 칼로 자라바위의 목을 두 손으로 힘껏 내리치자, 너무나 놀랍게도 커다란 바위가 마치 박이 갈라지듯 잘리더니 그 곳에서 그만 새빨간 선홍빛 피가 마구 솟구쳐 오른다.)
며느리(몹시 놀라 기절초풍하는 표정으로) 아이고 엄마야. 도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인고.
장수(한손으로 자기 목을 감싸며 숨이 넘어 갈 듯 아주 괴로운 표정으로 발버둥을 치면서) 아이고 숨막혀 나 죽네. 사람 살려~.
몸종(어쩔 줄 몰라서 안절부절 하는 얼굴표정을 지으며) 아이고 놀래라. 이기 무슨 일이람.
동네사람1(마구 손가락질을 해대면서) 아이고~ 무슨 저런 변이 다있노. 세상에 내사마 그동안 육십평생이나 살아오면서 온갖 험한 꼴들을 다 보았네만, 이번과 같은 일은 딱 처음 겪어 본다카이.
동네사람2(고개를 앞뒤로 끄떡거리며) 와 누가 아이라카노. 원 세상에 살다 살다가 무슨 이런 일을 다보노. 당체 어쩌다가 저리 된는감?!
동네사람3(두손으로 큰 원을 그리며) 욕심이 이만큼이나 많은 저 부잣집 며느리가, 그만 눈이 멀어서 저 영험한 자라바위 목을 삯을 주고 장수를 사서 치라고 시켰다고들 하더라만.
동네사람4(몹시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그러고보니 심보가 고약한 저 부잣집 며느리 땜에, 허우대가 멀쩡한 장수 한사람만 그만 죽어 나가게 됐네그려. 쯧쯧….
동네사람5(손바닥을 마주치며) 암 그렇고 말고. 하여튼 모진놈 옆에 있다가 그만 벼락맞은 꼴이됐지 뭐.
동네사람6(공감하는 표정으로) 그려 그려. 허~그것참 그래도 좀 안됐기는 하네만.
(모두들 모여서 한마디씩 거들며 웅성거리던 소리가 서서히 줄어들 즈음에 다시금 굵고 듬직한 내레이터의 해설이 시작되며, 조금씩 조명을 이용하여 멘트가 거의 끝남과 동시에 완전히 암전을 시키게끔 적절히 잘 조절하면서 서서히 막을 내린다.)
며느리와 장수는 혼비백산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멀쩡하던 장수가 갑자기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가 싶더니 그만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며느리는 두려운 마음이 가득 했지만 앞으로 재산이 축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한편으로 안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날 이후부터 장자의 집안에는 크고 작은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해 며느리를 괴롭히기 시작하였습니다. 집안에 우환이 가득하자 장자의 집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은 완전히 끊기고야 말았고, 그것과 때를 같이하여 장자의 집안 재산 역시도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장자의 집은 완전히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장제마을의 장제는 장자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곳에 장자가 살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장제마을 북쪽 양산 천에는 자라바위가 북쪽을 향해 헤엄치는 형국을 한 채로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에는 최근에 마을 사람들이 잘려진 목을 붙이기 위해 시멘트를 발라놓았던 흔적이 아직 까지도 역력히 남아있다고 합니다.
첫댓글 재미 있어요...좋은 글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메르스' 잘 대비하시고
늘 건강한 나날보내시며
행운과 행복도 가득하시길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손원장님!
방문하심과 댓글 남겨주심에 대해 감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