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경포대
Ⅰ. 詩文과 풍류의 仙鄕
고도(古都) 강릉은 본디 예국(蘂(濊)國)으로 신라 경덕왕 16년에
명주(溟州)라 하였고, 고려 공양왕 원년에 대도호부(大都護府)가 되
었다. 임영(臨瀛)은 봉영(蓬瀛)과 함께 선향(仙鄕)이란 뜻이니 강릉의
별칭(別稱)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경포대는 1326년(고려 충숙왕 13) 안무사 박
숙정(朴淑貞)이 현 방해정 북쪽에 세웠었는데, 1506년(조선 중종 3)
부사 한급(韓汲)이 현 위치로 옮겼다 하며, 누대의 전자체(篆字體)
현판[篆字額]은 유한지(兪漢芝)가, 정자체(正字體) 현판[正字額]은 이
익회(李翊會)가 썼다하며, 제일강산(第一江山) 현판은 중국인 주지번
(朱之蕃)이 썼다하나 ʻ第一ʼ 2자와 ʻ江山ʼ 2자의 자체가 다른 것은 판
액의 손괴로 ʻ江山ʼ 2자를 후인이 써 맞췄다 하며, 현재 강원도 유
형문화재 제6호로 등재되어 있다.
산수가 아무리 맑고 빼어나다[淸秀] 해도 고인의 숨결이 서린 누
정(樓亭)이나, 시문(詩文)이 없으면 스산하기 그지없는 터인데, 경포
는 호반의 경포대를 위시하여, 오래된 누정으로는 해운정을 비롯
하여 금란정・방해정・취영정 등이 있어, 아직도 그 고색을 창연히
지니고 있다. 근래에 지어진 것으로는 석란정・창랑정 등이 있어
호수와 푸른 솔과 누정이 조화되어 자연과 역사와 인공이 한데
아우른 승지(勝地)로서의 면모를 한결 더 빛내고 있다. 따라서 경
포호와 경포대는 관동팔경(關東八景) 중 제일강산(第一江山)으로 손꼽
혀 왔고, 중국의 서호(西湖)와 악양루(岳陽樓)에 곧잘 비유되었다.
<특집> 강릉 경포대와 경포호(鏡浦湖) - 국가 명승 제108호 지정
26 강릉 가는 길
예컨대 계곡(溪谷) 장유(張維)의 「경포대중수기(鏡浦臺重修記)」에 ʻʻ강
릉에 경포 있음은 중국의 명승 전당(錢塘)이 서호에 있음과 같고,
경포에 경포대 있음은 마치 중국 동정호(洞庭湖)에 악양루(岳陽樓)
있음과 같다.ʼʼ라 함이 그것이다.
이 같은 승지에 인걸(人傑)이 나고 모임은 지극히 당연하고, 인
걸이 나고 모이면 누정과 시문으로 무늬 지는 풍류 있음이 필연
이어서, 일찍이 신사임당(申師任堂)과 율곡(栗谷) 모자는 물론, 초당
(草堂) 허문(許門)의 다섯 보배(五寶樹)[父 曄, 子 筬・篈・筠, 女 蘭雪軒]의
시문이 낳는가 하면, 신라사선(四仙)의 선유(仙遊)와 제왕(帝王) 문사
의 해타(咳唾)가 고도(古都)의 풍기를 새삼케 하는 바 있다. 곧 세조
(世祖)와 숙종(肅宗)의 제왕문력(文力)이 있는가 하면, 고려의 문장
안축(安軸)의 「기(記)」와, 김인존(金仁存)・김극기(金克己)・권적(權迪)・이
색(李穡)의 시, 조선의 사가(四家)인 장유(張維)와 서거정(徐居正)의 「기
(記)」 및 세종(世宗) 조에 강원 관찰사를 지낸 황희(黃喜), 영조(英祖)
대의 영상(領相) 조현명(趙顯命), 강릉부사로 경포대를 중수하고, 그
상량문으로 문명을 드날린 조하망(曺夏望), 영조(英祖) 때 우상(右相)
민백상(閔百祥) 등 유・무명의 시문이 전해 있으니, 실로 강릉의 경
포대야말로 누정과 시문으로 무니 진 풍류의 선향임에 틀림없다.
이 많은 문사들의 숱한 제영(題詠) 중에서 몇 수를 가려 우리 고
장 명승의 진가를 함께 이해하고, 가꾸는 문화인의 슬기를 고양
키로 하자.
워낙 제영시(題詠詩)란 경물(景物)을 소재로 한 서경이되, 그 가시
적, 혹은 상상의 공간에로까지 유추하는 결구(結句)의 다양성은 제
강릉 경포대 27
영시를 단순한 서경시만이 아니게 하는 신이한 매력을 지닌다.
이른바 지식층으로서의 문예 담당자, 수기문학(隨記文學)으로서의
제영시는 그 지사(指事) 진실(陳實)이 일률적일 수 없어서, 혹은 영
사(詠史)・회고(懷古)・탁의(托意)・상정(傷情)이 다양한 감정이입으로 상
상의 공간은 확대되게 마련이다. 환언하면, 동일 사상(事象)도 작
자의 선험적 인식에 따라 전혀 다른 현실 수용과 미래 공간을 형
성할 수 있거니와, 이질적 배경은 또 자못 옷을 갈아입은 자연만
큼 달리 노래될 수 있다.
관동의 8경 중 제일강산 경포대를 소재로 한 예시를 살피기 위
해 먼저 안축의 「기(記)」를 보면,
담연하게 한가롭고 넓게 트이어, 기괴한 형상으로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하는 것이 없고, 다만 멀고 가까운 산과 들이 있을 뿐이다.
앉아서 사방을 둘러보니 먼 데의 물은 푸른 바다가 넓고 질펀한데
아득한 물결이 찰랑거리고, 가까운 데의 물은 경포가 깨끗하고 맑
아서 바람 따라 일렁거린다.
<동국여지승・44>
라고, 그 전경을 묘사했다. 아울러 ʻʻ천하의 물건이 무릇 형체가
있는 것은 모두 이치가 있다…대저 형체가 기이한 것은 외면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눈으로 구경하게 되는 바이며, 이치는 미묘한
데 숨겨 있어 마음으로 얻는 것ʼʼ <仝上>이라 하여 범인(凡人)과 군
자(君子)의 상자연(賞自然)하는 요체를 밝히기도 했다. 곧 기이한 형
체와 미묘한 이치까지를 터득하는 것이 진정한 요산요수(樂山樂水),
<특집> 강릉 경포대와 경포호(鏡浦湖) - 국가 명승 제108호 지정
28 강릉 가는 길
이른바 인의(仁義)와 예지(禮智)적 친화자연(親和自然)인가 한다.
선인들의 이 같은 대자연관 및 거기에 담겨진 심상의 유형, 나
아가 미래지향적인 상징 공간으로서의 경포대, 그 가능한 미적
유추가 오늘의 전통문화재로서의 경포대와 어떤 공간 액자를 형
성할 수 있을까를 비교하므로 온고지신, 혹은 문화재의 전통성은
얼마만큼 보존되어야 할 것인가를 숙고하는 계기로 삼기로 한다.
Ⅱ. 仙昧
서거정의 「기」에 ʻʻ지역이 바닷가라 기이하고 훌륭한 경치가 많
으며, 가끔 신선들이 남긴 자취가 있다ʼʼ <여지승람・44>라든가,
고려의 산수시인 김극기의 ʻʻ아지 못케라, 옛 사선의 마음. 지금과
옛 적이 서로 통할런가[未知四仙心 今古相照否].ʼʼ <仝上>는 물론, 심언
광(沈彦光)의 ʻʻ신선의 이별은 취흥뿐인가, 영랑 선인 노닌 바위 주
흔뿐일세[仙訣未求醒醉外 永郎殘石酒痕明].ʼʼ <仝上> 및 함기홍(咸基鴻)의
ʻʻ누대 가운데 노니신 자리 어딘가, 신선 피리 불던 곳, 흰 구름만
떠도네[臺裏遊仙何處在 鸞笙千載白雲空].ʼʼ <仝上> 등은 모두 신라사선의
고사와 무관하지 않다. 더구나 부윤(府尹) 조운흘(趙云仡)의
新신
羅라
聖성
代대
老노 安안
祥상
신라 성대의 그 옛날 안상 선인 놀던 곳
千천
載재 風풍
流류
尙상
未미
忘망
천 년 전 그 풍류 아직도 잊지 못하네.
聞문
說설
使사
華화
遊유
鏡경
浦포
안렴사 박신이 경포 유람 즐긴다기에
강릉 경포대 29
蘭란
舟주
聊료
復부
載재
紅홍
粧장
。 고운 배에 홍장을 다시 싣고 왔네.
<동국여지승람・44>
는 안렴사(接廉便) 박신(朴信)과 강릉의 해어화(解語花) 홍장과의 로맨
스를 선유(仙遊)에 빗댄 풍류장이다. 박신과 홍장의 열애에 담긴
고사의 기록이야
寒松亭 달 밝은 밤에 鏡浦臺에 물결잔제
有信한 백 구는 오락가락 하건마는
엇더타 우리의 王孫은 가고 아니 오는가
로 귀에 익은 가락인 채, 장진산(張晋山)의 한역가로 전해 있거니
와, 율곡의 「경포대부」에도 ʻʻ죽계의 웅장한 필력을 보며, 석간의
청화한 시를 읊조린다[覽竹溪之雄筆 吟石澗之淸華].ʼʼ 하여 주지번의 ʻ
제일강산ʼ이란 판액과, 조운흘의 청화한 시구를 칭송하고 있다.
濊예
國국
爲위
州주
不불
記기
年년
그 언제런가, 예국이 명주로 된지,
濊예
城성
樓루
館관
又우
秋추
天천
강릉의 누관은 어느새 가을이라오.
海해
山산
盡진
是시
桃도
源원
裏리 산수가 온전히 도원경인데
不불
用용
區구
區구
學학 得득
仙선
어찌 구차히 선 수양하리오.
<여지승람 44>
는 절구시 작법의 전형을 맞췄다. 곧 1구는 고도 강릉의 연혁으
<특집> 강릉 경포대와 경포호(鏡浦湖) - 국가 명승 제108호 지정
30 강릉 가는 길
로 평담하게 시상을 일으키고[平直敍起], 2구는 수국(水國)의 선기(仙
氣)를 드세운 서경으로 부연했으며, 3구에선 ʻ도원ʼ으로 완전하여,
4구에서 ʻ선수양[學仙]ʼ의 구차함을 유추한 ʻ선미(仙味)ʼ는 그러므로
순류(順流)에 완완히 예는 조각배처럼 절로 얻어졌다.
더욱 율곡의 문인이며 시・서・화에 능했던 양포(場浦) 최전(崔澱)
의 시참(詩讖)이기도 한
蓬봉
壺호
一일
入입
三삼
千천
年년
봉래의 선경에 신선 든 지 3천년
銀은
海해
茫망
茫망
水수
淸청
淺천
망망한 경포 호 맑고도 얕구려.
驂
참
鸞란
今금
日일
獨독
飛비
來래
내 오늘 仙鳥처럼 홀로 살짝 와보니
碧벽
桃도
花화
下하
無무
人인
見견
벽도화 피는 신선 땅에 인적 없구나.
<八道名勝古蹟>
는 현실 공간을 상상의 공간[이상향]으로 환치한 선성(仙聲)이다. 예
컨대 경포를 ʻ도화 핀 마을ʼ[仙鄕]로 승화시킨 상징의 과정에서 얻
어진 표현공간이 형성해 놓은 동격이요, ʻ독비래ʼ'한 작가는 그러
므로 ʻ신선[仙客]ʼ이다. 이 밖에도 이인복(李仁復)이 ʻʻ경포와 송정이
나를 머물게 한다면, 다시는 봉래섬에서 신선을 찾지 않으리[鏡浦
松亭容我住 不須蓬島更求仙].ʼʼ<여지승람 44>라고 한 것은 모두 임영의 선
미(仙味)를 노래한 절창이다. 그러니 송강 정철의
羽우蓋개之지輪륜이 鏡경浦포로 려니
강릉 경포대 31
十십里리求빙紈환을 다리고 고터 다려
長댱松숑 울 소개 슬장 펴뎌시니
물결도 자도 잘샤 모래 혜리로다
孤고舟쥬鮮纜야 亭뎡子 우 올라가니
江강門문橋교 너믄 겨 大洋이 거기로다
從둉容용다 이 氣긔像샹 濶활遠원댜 뎌 境경界계
이도곤 어듸 잇단말고
<관동별곡>
가 그것이요, 산수가 명미(明媚)하면 풍속의 순속은 물론, 충신효
자 열부가 나는 법이니, 홍귀달(洪貴達)의 강릉 향교 중수기<여지승
람・44>가 그 예증이요, 송강 정철의
紅홍粧쟝故고事 현타 리로다
江강陵릉大대都도護호 風풍俗속이 됴흘시고
節졀孝효旌정門문이 골골이 버러시니
比비屋옥可가封봉이 이제도 잇다다.
<仝上>
는 민풍을 목도하여 재치로운 말결로 엮어 성률(聲律)에 얹은 가락
임을 알겠다.
Ⅲ. 閑味
선향에서의 자연 완상은 그 자체가 탈속한 한정(閑情)이다. 친화
<특집> 강릉 경포대와 경포호(鏡浦湖) - 국가 명승 제108호 지정
32 강릉 가는 길
하고 동화함이 의지 이전의 인력(引力)에 의함이고 보면 자못 속세
의 번사(煩事)조차 대수일 수 없어
十십
二이
欄난
干간
碧벽
玉옥
臺대
열두 난간 벽욕 같은 대에 오르니,
大대
瀛영
春춘
色색
鏡경
中중
開개
강릉의 봄빛이 거울 호수에 펼쳤네.
綠록
波파
澹담
澹담
無무
深심
淺천
해맑은 물결 깊지도 얕지도 않고
白백
鳥조
雙쌍
雙쌍
自자
去거
來래
쌍쌍한 백조 절로 왔다 절로 가네.
萬만
里리
歸귀
仙선
雲운
外외
笛적
가고 오지 않는 신선 구름 밖에서 놀고
四사
時시
遊유
子자
月월
中중
盃배
철따라 노니는 객은 잔속의 달을 마시네.
東동
飛비
黃황
鶴학
知지
吾오
意의
동으로 비껴 나는 황학이 내 뜻을 알고
湖호
山산
徘배
徊회
故고
不불
催최
호반이랑 산자락 맴돌며 짐짓 한가롭네.
<심영경: 임영문화・8>
라고 배회하는 황학과 바쁠 것 없는[不催] 가만한 심사도 ʻ푸른 파
도[緣波]ʼ와 ʻ백조ʼ를 더불어 ʻ만리귀선ʼ의 풍류를 따라 있다.
워낙 율시는 ʻ제 2구에서 시상을 열어 7구에서 시상을 닫음(二開
七闔)ʼ이 그 작시원리다. 이른바, 1구의 ʻ춘색ʼ은 선향이기에 서둘
지 않는 ʻ내 뜻[吾意]ʼ, 곧 한미를 유추하는 파제격(破題格)의 詩想
automorphism이다. 곧 통사론적 층위로서의 ʻ녹파 : 백조ʼ는 ʻ담
담 : 쌍쌍ʼ으로 대응구조적 동위소를, ʻ귀선 : 유자ʼ는 ʻ운외적 :
월중배ʼ라는 대응구조적 동위소를 견지하며 율시의 생명인 비잠동
강릉 경포대 33
치(飛潛動植)라는 대장(對杖)을 이룬다. 이러한 통사적 층위는 결국
↓ ↓
澹澹 綠波‖ 無深淺 萬里 歸仙‖ 雲外笛
↓ ↓
雙雙 白鳥‖ 自去來 四時 遊子‖ 月中盃
라는 정서적 동위소가 무리 없이 ʻ귀선ʼ의 풍류를 따르는 행위적
동위소로 전이되므로, 그 의미의 층위를 이룬다. 이 같은 정서와
행위를 아우르는 더 큰 동위소는 이를 바 없이 ʻ배회하며・서두름
이 없는ʼ ʻ한미ʼ임을 알 수 있다.
안축(安軸)의 다음 시 역시 동일 작품이다. 예컨대,
雨우
晴청
秋추
氣기
滿만
江강
城성
비 개자 가을 색 강마을에 자욱한데
來내
泛범
扁편
舟주
放방
野야
情정
조각배 띄워두고 자연의 정취 즐기네.
地지
入입
壺호
中중
塵진
不부
到도
선경에 터 잡아 맑아한 고장
人인
遊유
鏡경
裏리
畫
화
難난
成성
거울 호수에 노니니 그림인들 그리랴.
煙연
波파
白백
鷗구
時시
時시
過과
내 낀 물가에 흰 갈매기 수시로 날고
沙사
路로
靑청
驢려
緩완
緩완 行행
모랫길엔 푸른 나귀 느릿느릿 가네.
爲위
恨한
長장 安안
休휴
疾질
棹도
속세의 일 걱정스럽다 서둘지 말라
待대 看간
孤고
月월
夜야
探탐
明명
깊은 밤 밝은 달 아니 볼 것인가.
<동국여지승람・44>
<특집> 강릉 경포대와 경포호(鏡浦湖) - 국가 명승 제108호 지정
34 강릉 가는 길
에서 파제격의 시상은 ʻ야정ʼ이니, ʻ휴질도ʼ하고 ʻ대간명월ʼ의 한미
를 유추한다. 물론 그 통사론적 층위는 진부도한 선계의 터[地]와
ʻ화난성ʼ 할 맑아한 경포호에 노니는 사람[人]이요, ʻ시시과ʼ 하는
ʻ백구ʼ와 ʻ완완행ʼ 하는 ʻ청려함ʼ이다. 그러므로 물아가 일체하고 색
채가 아울려 가이없는 ʻ자연의 정취[野情]에 탐닉한 작자의 한정이
전 펀에 흐르는 시정으로 녹아 있다.
Ⅳ. 繪畵性
시를 촉물진정(觸物陳情)이라 할 때, 대경(對景)에서 얻어진 지적・
감각적 체험을 보다 참스럽게 시각적으로 표상하므로 그 미학적
공감대는 확대된다. 이러한 시각적 이미지를 회화성이라 하며,
이는 한시문학의 구성원리인 허실상배(虛責相配), 혹은 비잠동치(飛
潛動植)라는 입체성과 영활성 때문에도 화법의 원근・농담・발묵・생
략법 등이 쓰인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ʻ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
림 속에 시가 있어야 함[詩中有畫・畫中有詩]ʼ을 일러왔고, 유득공(柳得
恭)도 ʻʻ시에 그림이 없으면 메말라 운치가 없고, 그림에 시가 없으
면 어둡고 무늬가 없다[不詩之畵 枯而無韻, 不畵之詩 闇而無章].ʼʼ했다. 더
구나 명산대천의 승경(勝景)을 소재로 하는 제영시임에랴.
鑑감
湖호 淨정
似사
鏡경
湖호
明명
감호와 경포호 밝음을 다투는 듯
形형
勝승
關관
東동
獨독
檀단
名명
관동의 형승이 홀로 우뚝하여라.
강릉 경포대 35
落낙
日일
誠성
登등
臺대
上상
望망
석양에 홀로 대에 올라 바라보니
橋교
頭두
人인
影영
畫
화
中중
行행
물 아래 그림자 그림 속을 가누나.
<임영문화・8>
선조 때의 공신이며, 율곡이 찬수청(纂修廳)을 세우고 문사를 모
을 때 뽑혀 장악정(掌樂正)이 되었던 사류거사(四留居士) 이정암(李廷
馣)의 작이다. ʻ감호ʼ는 중국에서 가장 맑고 큰 호수니, 경포호수와
밝음을 ʻ다투는 듯ʼ으로 동격화 해 관동의 ʻ제일강산ʼ으로 이어 놓
고, ʻ성등(誠登)ʼ으로 전구(轉句)하여서는 외나무다리[獨木橋]를 걸쳐
행인을 세워 두고, 시상은 또 그 물 아래서 건졌으니 ʻ인영ʼ이 그
것이요, ʻ행ʼ 한 자는 정중동으로서의 영활이니, 7절의 소품은 진
작 원근과 농담, 그리고 발묵이 지천인 채 황혼의 여백이 액자를
붉게 물들인 시중유화다. 그러니 송정리로 접어드는 강문교임에
분명하고, 송강의 ʻʻ물 아래 그림재 디니 다리 우희 듕[僧]이 간다.ʼʼ
와 일맥한다.
다음은 강릉인 창우(蒼愚) 함기홍(咸基鴻)의 제영이다.
森삼
羅라
萬만
景경
畫
화
圖도
中중
온갖 풍경 한 폭의 그림 같은데
漁어
笛적
菱릉
歌가
四사
面면 通통
고깃배 나물 캐는 노래 사방에 퍼지네.
十십
里리
人인
來래 芳방
荷하
雨우
십리에 이은 상춘객 단비는 내리고
層층
欄난 客객
上상
綠녹
樣양
風풍
난간에 오르니 버들은 바람에 나부끼네.
平평
湖호
渟정
滀
축
波파
心심
碧벽
치렁한 경포 호 푸르기만 한데
<특집> 강릉 경포대와 경포호(鏡浦湖) - 국가 명승 제108호 지정
36 강릉 가는 길
大대
海해
汪왕
洋양
日일
色색
紅홍
양양한 대해엔 석양이 붉고나.
臺대
裏리
遊유
仙선
何하
處처
在재
누대에 놀던 신선 어디로 갔나
鸞난
笙생
千천
載재
白백
雲운
空공
친년 전 仙鳥 예던 하늘엔 구름만 두둥실.
<임영문화・8>
경포대에서 굽어본 사상(事象)을 시화해서 캔바스에 담은 시화
일지(詩畵一旨)의 예다. 시각과 청각이 공감각화 하므로 입체적 공
간을 구축했고, 함련과 경련의 다사한 답청과 시간적 서술은 춘
흥을 눈앞에 재현케 하는 사설성이 있다. 한편 고려조 산수시인
김극기의 시
雁안
外외
邊변
雲운
暗암
기러기 나는 밖 변성의 구름 어둡고
鷄계
前전
曉효
日일
月월
첫 닭 울기도 전에 날이 먼저 밝네.
水수
鋪포
寒한
鑑감
色색
호수 물 싸늘쿠나, 유리처럼 맑은데
松송
碎쇄
怒노
濤도
聲성
송뢰는 사오납다. 파도소리 얹혔네.
<동국여지등람 44>
라는 대련이 있어 사뭇 석도(石濤)의 제화시(畵題詩)를 대한 듯하다.
모름지기 강릉의 만추거나 초겨울이리라. 그러니 이색(李穡)의 시
구처럼 ʻʻ산은 백두에 연해 여름에도 오히려 서늘한[山連長白夏猶寒]ʼʼ
<仝上> 터이고 보면 ʻʻ세모의 대관령은 사시가 암운이요, 땅이 부
상에 가까우니 날이 새기 쉽다ʼʼ 함은 지극히 당연하다. 경포호의
강릉 경포대 37
싸늘한 물색과 송정리에 이는 송뢰는 사뭇 동해의 사나운 파도소
리를 되받아 뇌이듯 하다니, 그 리얼한 터치는 진작 임영의 ʻ일부
여지(一部輿誌)랄까ʼ? 실로 실경을 대한 듯 공감이 앞선다. 뿐만 아
니라, 이재(李縡)의 ʻʻ갈매기 꿈 사장에 의지해 고요하고, 솔 소리
언덕을 사이해 돌아오네[鷗夢依沙靜 松聲隔岸廻].ʼʼ <仝上> 역시 동정
(動靜)이 아우른 회화적 영물시이자, 동양화의 한 폭들이다.
Ⅴ. 用事
용사란 작시의 한 방법으로 내처(來處)를 중시하던 한시문학의
원류론적(源流論的) 비평의 빌미이자, 워낙은 한문화권의 공통된 특
징이니, 환골탈태(換骨奪胎)・점화(點化) 등은 그 비평 용어다. 먼저
김세필(金世弼)의 제영을 보면
登등
舟주
半반
日일
復부
登등
臺대
한나절 뱃놀이 후 다시 대에 오르니,
湖호
上상
奇기
觀관
別별
樣양
來래
호수의 기이한 경치 사뭇 달리 뵈네.
黃황
鶴학
岳악
陽양
誰수
看간
句구
황학・악양 양 루의 시구 그 뉘 봤던고
無무
若약
崔최
杜두
也야
駑노 才재
최호 두보 없었으면 대수였으랴.
<임영문화・8>
와 같다. 무시로 순간마다 바뀌고, 바뀔 때마다 새로운 장관, 대
저 경포의 8경이 있으니, 초당의 저녁연기(草堂夕煙)・홍장암의 밤
<특집> 강릉 경포대와 경포호(鏡浦湖) - 국가 명승 제108호 지정
38 강릉 가는 길
비(紅粧岩夜雨)・도암의 낚시 불(島岩觀魚)・강문의 집어등(江門漁火)・죽
도의 월출(竹島明月)・한송사의 저녁 종(寒松寺暮鐘)・동해의 달기둥(暮
鏡月注)・동해 일출(東海日出)이 그것이란다. 물론 기호에 따라 다소
다르겠으나, 이 장관들을 수시로, 한번 올라 조망하여 모두 굽어
볼 수 있는 경포대다. 그러니 ʻ기관별양ʼ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우선 경포대의 월출 하나만 하더라도 그 기호의 양태에 따라 만
감이 유희한다. 먼저 동해에서 달이 뜨자면 대양의 무진한 물이
랑은 황금이 들끓는 밤바다로 뒤누이고, 수삼 척 수면을 떠나면
곧장 경포호수에 월주(月柱)로 무늬 내려 호・해(湖海)는 일시에 월
궁의 생황소리로 더불어 온전히 황홀의 경을 극한다. 이즈음이면
경포대 위의 선객들은 시주풍월이 없을 수 없다. 이른바 ʻ4월의
더불음ʼ이니 ʻ바다의 달・호수에 비친 달・솔가지에 걸린 달・술잔에
잠긴 달ʼ이 그것이다. 앞에서 본 심영경(沈英慶)의 ʻʻ사시의 나그네
잔속의 달을 마시네[四時遊子月中盃]ʼʼ 그대로다. 그러나 필자는 마주
앉은 님의 ʻʻ눈 속에 어린 달ʼ 하나를 첨가하여 오월(五月)을 더불고
자 한다. 이것이 8경의 ʻ날 저문 경포호수의 달기둥ʼ에 얽힌 작은
예다. 그러니 8경에 다시 ʻ수 삼경ʼ을 더하면 문자 그대로 ʻ기관별
양ʼ이랄 밖에 달리 할 말이 없으리라. 아무튼 이상의 기・승구가
조용히 시상을 불러 일으켜, 부연되었다면 3・4구는 완전에 이은
주제에의 접근이니 그 작법은 용사다.
1구의 ʻ등무・등대ʼ가 그 별양(別樣)의 기관(奇觀)을 유추키 위함임
은 물론이요, 이는 다시 황학루와 악양루에 못지않은 승경임을
웅변하렴이며, 최호・두보를 넘 짚을 자신을 과함이다. 곧 최호의
강릉 경포대 39
「등황학루」와 두보의 「등악양루」 시를 말함이며, 그 두 누대를
주변한 두 제영이 있어 유명해졌듯이 자신의 시로써 동열에 놓으
렴인 것이다. 그러기에 이완(李琓)은
休휴
說설
岳악
陽양
天천
下하
勝승
악양루가 천하장관이란 말을 마시게.
海해
東동
還환
有유
此차
名명
亭정
동해에 오히려 이름난 누정이 있다네.
若약
把파
洞동
庭정
較교
其기
大대
동정호를 들어 크기를 말할 작이면
鏡경
湖호
之지
畔반
是시
滄창
溟명
경포호반에 출렁이는 대해는 어이할꼬.
<임영문화・8>
라고 자못 기염을 토한다. 이는 전혀 두시 「등악양루」의
昔석
聞문
洞동
廷정
水수
예전부터 들어온 동정호의 장관
今금
上상
岳악
陽양
樓루
이제사 올라 본 악양루로세.
吳오
楚초
東동
南남
坼탁
오와 초는 동과 남으로 갈렸고
乾건
坤곤
日일
夜야
浮부
건곤은 밤낮으로 호수에 떠도네.
- 下 略 - - -- 하 략 ---
를 환골탈태해서 작신(作新)한 점화라 하겠다. 그러니 두보는 천하
의 장관이라고 일찍이 말로만 듣던 동정호의 장관을, 더구나 장
안 서북 출신의 그가 - 강남의 동정은 이상경이었으리라 - 죽
기 2년 전인 57세(대력 3년 768) 때에야 비로소 올라 바라보는 감격
<특집> 강릉 경포대와 경포호(鏡浦湖) - 국가 명승 제108호 지정
40 강릉 가는 길
의 일성이다. 따라서 그 규모의 장엄・웅장함을 우주의 문자로 풀
었다. 곧 동정호와 악양루의 조화 속에 ʻ천하의 아름다움ʼ을 함축
한 것이다. 그러기에 이완의 기구 ʻ휴설ʼ 2자의 자긍이 넘난다. 우
리의 대호와 경포대의 조화, 게다가 실은 악양루에 두보의 「등악
양루」시가 있어 유명하듯 경포대에 자신의 「등경포대」시 있어 동
격일 것임을 과한 자부 또한 멋지다. 이 밖에도 수많은 시편이 있
으나 지면을 아끼기 위해 생략한다.
경포대를 주변한 내용상의 선미(仙味)・한미(閒味), 작시 방법상의
ʻ회화성・용사ʼ 외에도 ʻ회고・탁의ʼ 등 시편이 있어 서경시로서만의
제영이 아닌 수기적 다양성을 볼 수 있다. 특히 강릉의 향현(鄕賢)
12人 중 한 사람인 박수량(朴遂良)은
鏡경
面면
磨마
平평
水수
府부
深심
잘 갈무린 유리호수 그윽도 한데,
只지
鑑감
形형
影영
未미
盡진
心심
다만 당 외형만 비출 뿐 마음은 못 비춰.
若약
敎교
肝간
臟장
俱구
明명
照조
저 물로 하여금 마음까지 비치게 한다면
臺대
上상
應응
知지
客객
罕한
臨임
알게라, 아마도 대에 오를 사람 몇 안 될 걸.
<임영문화・8>
라고 도학자적인 감계시(鑑形詩)를 남기고 있다. 이는 전혀 작자에
따른 물사(物事)의 가변적 수용성을 예증해 있다. 따라서 제영시는
사상의 역사성과, 그 역사의 반증인 시대상, 아울러 진정(陳情)의
주체자인 작가론적 검토가 아울러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강릉 경포대 41
이상에서 귀한 지면을 지나치게 탐했다. 끝으로 강릉에 경포와
경포대가 있어 강릉이 천하 제1강산이듯, 우리의 고향이 강릉이
어서 자랑스런 우리가 되도록 우리의 문화재를 갈고 닦기에 솔선
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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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기(金甲起) 문학박사. 전 동국대학교 교수
강릉상고 제 23회 졸업.
동국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 및 동 박사학위취득.
청주대학교 사범대학 한문학과 교수, 학장.
동국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2004, 3∼2011, 8).
저서 漢詩로 읽는 우리 文學史(새문사).
漢文學史[공저(새문사)].
우리 古典詩歌 바로 읽기(지식과 교양).
譯註 三韓詩龜鑑(서예문인화)외 다수.
E-mail: kgk0011@hanmail.net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