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정년퇴임을 앞두고 대광고 이영상 선생님께서 학생들과 마지막 국어 수업을 하셨습니다. 산을 무척 좋아하시는 선생님께서는 평교사로 정년퇴임을 하시고 퇴임 한 해전까지 담임교사를 마다하지 않으셨던 분이십니다.
선생님께서는 마지막 수업시간 역시 산에 대한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주셨습니다.
" 내가 처음 산에 관심을 가진 것은 몸이 좋지 않아서였어요. 사람은 말이에요. 의지가 죽을 때, 그때 새로운 게 보여요. 다 포기하면 그때 길이 보여요. 어쩌면 그것은 신이 인간에게 준 축복이고 동시에 인간들에게는 행운인지도 몰라요. 산이 좋았어요. 속된 말로 미치도록 좋았어요. 그래서 산에 오를 때면 모든 힘을 다 쏟아 부었어요. 100% 힘이 다 빠지고 집에 왔더니 우리 마누라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내가 좋다고, 내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그것에 힘을 다 쏟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음부터는 70%만 힘을 쏟았어요. 30% 남은 힘으로 집에 와서는 내가 입고 갔던 옷을 직접 빨고, 등산장비도 다 손질했어요. 그리고 그날 밤에는 아내를 꼭 껴안고 잤어요. 그랬더니 이젠 우리 마누라도 산을 좋아해요. 그래서 깨달았어요. 산에만 산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 곳곳에 산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내 삶터와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산이란 것을 알았어요. 여러분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아직은 어려서 최선을 다하는 게 최선인 줄 알겠지만 그렇지 않아요.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더 큰 미덕이에요. 그리고 여러분이 먼저 변해야 되요. 그러다보면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여러분이 원하는 것으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될꺼에요."
또 선생님은 수업 끝부분에 혁명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 여러분. 혁명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게 아니에요. 어쩌면 세상은 그냥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을지 몰라요. 진정한 혁명은 나를 변화시키는 거에요. 그런데 그게 힘들어요. 정말 힘들어요. 그래서 울게 되요. 가슴치고, 땅에 뒹굴면서 막 울게 되요.그런데요. 그게 젊음이에요.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좌절하고 절망하는 그 상황을 인정하게 되요. 좌절하고 절망하다보면 내가 변하고 있음을 알게 되요. 그리고 정말 유일한 혁명은 절망과 좌절의 시간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란 것을 알게 되요. 그게 나이가 들었다는 거에요.
아! 아직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주어진 힘겨운 상황을 쉽게 인정하지는 마세요. 난 산에서 내려오는 하산인이에요. 그러니까 인정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뜻이에요. 여러분은 아직 산을 오르는 상산인이에요. 그러니까 세상을 변화시킬까? 세상이 변화될까? 세상이 변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그것이 나와 무슨 관련이 있나? 나를 변화시킨다고? 그게 어려운 일이라고? 그건 무슨 말이야? 내가 나를 왜 변화시켜? 이렇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는 나이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혁명에 실패했을 때 막 분노하고, 울고 그러세요. 그게 젊음의 특권이에요. 세상을 바뀌든, 나 자신이 바뀌든 완성된 혁명은 없고, 혁명을 향해 나가는 과정만이 있다는 것만 말해 주고 싶어요."
어리고, 여린 제자들을 바라보시면서 눈에 눈물을 달고 말씀하시던 선생님의 음성은 떨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창 밖 하늘을 응시하셨습니다. 나를 비롯해서 수업에 참관한 동료 교사들의 눈에도 모두 이슬이 맺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