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장생포에서
조은님
출렁이는 바다, 장생포
갈매기 몇 마리
고래 등을 타고 신난다
성가신 내색 없이
제 등을 내어 준 고래
고래빵고래정식고래원조할매집고래전문식당
눈길 닿는 곳마다 온통 고래다
고래해체장엔
근육질 사내들의 땀냄새가 질펀하고
고래박물관에서 만난
대곡천 암각화 속 고래
대곡천 벽면에서 수천 년 머물다
화석이 된,
살과 뼈의 무덤이 된 바다
저들만의 언어가
고래중심에서 솟구친다
물보라 필 때,
산비탈 작은 교실에선
풍금소리 울리고
산란하는 노을빛 바다 속으로
갈매기 후두둑, 날아가고
5.
신화마을엔 귀신고래가 산다
이성웅
이 마을 골목엔 귀신고래가 산다
담벼락 수면위로 뻐끔뻐끔 숨을 내쉬며 산다
벽화로 출렁이는 물보라 위로
작살 맞은 듯 바다는 신화처럼 끓고
아이들은 할아버지 흉내 내며 고래 떼를 쫓고 있다
고래잡이 금지령이 내려진 후
장생포 포경선보다 먼저 녹슨 황씨 할아버지
이곳 신화마을에 이주해 어언 귀신고래를 닮아 있다
할망구 없이 살아도 고래 없이는 살 수 없다며
밤마다 술고래로 절은 혓바닥은 날렵한 작살이 된다
한때 포경재개 소문에 들뜨게 했던 황씨
가끔 침몰하는 귀신고래에 놀라 잠을 깰 때는
작살대신 하얀 연기로 고래 몰이를 한다
장생포 비릿한 해풍이 불어 올 때면
귀신고래는 신화마을 벽을 타고 출렁인다
6.
바다의 위장
제인자
노르웨이 해역
바다에 몸을 맡긴 민부리고래 한 마리
뱃속에 비닐봉지가 가득 차 있었다하네*
어부가 버리고 간 그물이 사나운 이빨 되어
어선을 깨물었다는 무전을 치기도 하고
깊어가는 속앓이 밤새 움켜쥐고
지친 파도가 말을 걸어오는 바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으깨고 주물러 포말의 겔포스만 생산하는 해변
재갈매기 시위하듯 진종일 몰려다니네
뭍에서 죽고 싶은 포유류의 꿈을 메고
파도가 파도에게 넘겨받은 민부리고래의 장례
서글픈 소식, 귓등으로 스쳐가고
쉼 없이 쓰다듬는 바다는 팽팽하네
가끔 스스로 목숨 바쳐
그물에 걸려드는 고래는 크게 트림 한번 내뿜은 바다의 만성체증
더부룩한 날에도 댕강,
탯줄 잘라 낳아주는 해님을 우리는 아침이라 부르네
7.
바다의 협주곡
이현
깃털 감아올린 입성에 주목해
천적의 표적이 되기 위해
위로 더 위로 날아오른다
컵 모양의 둥지
갈색 세로무늬가 중창을 시작한다
갓 품은 알이 음표를 벗으면
긴 꽁지가 모래바람 속으로 만나를 뿌린다
협곡을 따라 몰려든 부리
먹이를 밀쳐내며 경쟁을 나눈다
타인을 돕는 자만이 최고가 되는 법
아라비안 노래꼬리치레가 사는 바다 사막엔
날개 돋은 가시가 와글거려
얼룩 깃털이 더 뾰족한 나뭇가지를 찾아
오늘도 솟아오른다
빙글 돌던 매가 순식간 날개를 펼치면
꼬리쳐꼬리쳐 숨 가쁜 신호가
바다 사막을 뒤덮는다
날쌘 눈초리로 우두머리가 된 수컷의 짝짓기가
엘크 뿔만큼이나 단단해
와디무집 계곡을 건넌 발톱이 C컵의 유혹을 펼친다
과녁을 품은 바다에게 닫힌 노래란 없지
쉬폰 자락 하늘하늘 램프가 켜지면
꼬리쳐꼬리쳐 함성을 움켜쥔다
8.
고래의 침선법
황지형
통증심한 바다를 구슬리다
제 몸에 실을 꿰고
뚜벅뚜벅 죽음마저 걸어서 넘어간 고래
미역보따리 등에 메고 삼각파도 휘달리면
고래고래 소리 내지르다 귀신같이 사라져간 사람들
날 저물어 정박지도 없이 고래자리별이나
암각화 한쪽 귀퉁이 들어가고 싶은 날
숨구멍에서 바늘땀 한 뜸 한 뜸 쏟아냈구나
끝없이 널브러진 수평선을 후려치고 싶을 때
젖 빨던 새끼들 눈 속으로 스며든다
목청까지 차오르던 숨을 튀려
손 뻗어 배 쓸어주고 무명실로 엄지에 시침하던
침침한 눈동자는 미역귀마냥 말라가고
온 몸으로 헤엄쳐 바다에 놓아버린 몸
박박 문지른 뜨물 같은 파도를 가르고
장생포항서 베링해거쳐 북빙양까지
상침질하듯 바다를 누비던
굵은 주름 패인 얼굴,
이제는
내 옆구리로 들이쉬는
어미고래의 침선법
9.
내 갈비뼈의 바다
김감우
배가 지나간 자리 양팔을 벌려 따라오는 물살, 엑스레이 사진에 인화된 내 갈비뼈 보는 듯 했다 고래 보러 나선 배 위에서 나는 파도와 내기 하는 소년이고 싶었다 바다는 수평선을 화두로 걸어두고 빛 수면에 쫙 깔며 도움닫기 했다 빛이 끝나는 곳에서 바다의 점프를 기다렸다 목이 갈라지듯 말랐다 수면에 쏟아진 빛, 상한 우유의 결정처럼 빛이 빛을 버리고 순식간에 색으로 둥둥 떠다녔다 배의 고물에 연신 내 갈비뼈 인화되었다 점프가 아니어도 좋다고 했다 이제 그만 사진을 읽어다오 갈비뼈 끝없이 내주는 나, 그걸 계속 걸기만 하는 바다, 대책 없긴 마찬가지였다 파도가 가끔 배 흔들어 내 몸 기우뚱거렸을 뿐 나는 바다와 한마디 주고받지 못하고 귀가했다 당신 부인하고 싶었던 그날, 장생포에서.
10.
봄, 장생포
김루
흐드러지게 꽃이 피었다는 말이 아픈 말인 걸
장생포 고래로 125번 길에서 나는 안다
고래 뼈를 묻듯
내 안에 유영하는 귀신 고래
그를 바다로 떠나보낸 뒤 아무렇지 않은 척
잎새처럼 푸르게 웃다
어스름 저녁이면 장생포 앞바다 둑방길에 앉아
항구를 뒤로 하고 사라지는 노을
붉은 눈물 앞에서 어깨를 들썩이고 마는 나는
회유할 수도
회유 되지도 않는 암각화의 화석으로
그대를 기다리는 일이
흐드러지게 핀 꽃마저 명치를 찌를 줄 몰랐던 사월
장생포 가로수의 고래는
종교처럼 환하게
회유를 꿈꾸라 하네 아직은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