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베개
임창철
수천 년을 너를 살붙이로 의지하던 때는
너에 대해 가림이 조금도 없고
고마움마저 쉬 변해
목침에게 너의 전부를 궁색히도 넘겨주곤 했지
수없는 해들을 그렇게 보냈고
지금도 너에 대한 기억은 다르지 않아
어머니 품 같이
귀를 대면 새새 잠이 들곤 하던 밤들은
송두리째 천덕꾸러기가 되었지
그래도 너는
짚들과의 온정이 남아
발기발기 더쳐지고
낱낱이 속살들을 헤집어서라도
희디희어 도리어 민망한
캐시미론들을 이겨냈고
목침이 단명을 재촉한다는 말에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었지
그렇게 너는 돌아와
잠을 잊은 누군가에게
카탈리아제, 디페놀 옥시디아제, 프로테아제
유익한 효소와 미네랄...........
누군가에게도 생소한 말들이 뭐라 해도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 곁에서 지켰지
짓궂은 비
개솔 같은 바람에도
소리 하나 귀담지 않고
다시 수천 년을
돌려줄 거야
누군가에게
잊은 잠을
넉넉히
한결같이
임창철
60년하고도 5년을
그렇게 살았어
다른 할방이들처럼
소주잔에 수없는 주검들을 담아내고
담뱃재로 실없이 시름들을 태웠을
그런 삶들을 말야
그렇지만
나에게
하고 가야 할 일이 또 있음을 알게 된 건
그리 오래진 않아
수십 년을 황토와 살면서
결코 변하지 않는 그들에게서조차
깨닫지 못했을 지도 모를 일이지
언제부턴가
아이들의 눈이 내게로 왔어
그저 거짓이 없다고만 말할 수 없는
그래서 더욱
나를 애달프게 했을 그 아이들의 눈
황토 같이만
황토 같이만
그렇게
살게 해줘요
눈짓이었어
그 아이들에게만 처음부터 있었을
황토 미생물 같은 심성들이
지켜져야 한다는
한결같은
눈짓이었어.
좀 들어봐
임창철
좀 들어봐
가만히
사랑방 구들장에 켜켜이 얹히었던
할아버지 곰방대 소리들을
처음에는 기침 소리만 같았지
컥컥 하는 울림이 거슬러 몸서릴 치기도 했어
막무가내로 집을 나가기도 했지
그러면
그 소리들은 어느새 내 정수리를 밟았어
얼굴이 화끈거려
감당 못할 일들이
저질러지곤 했어
새끼를 먹은 암퇘지들이
게걸스레 그 소리들을 삼켜댔고
시뻘건 독을 토해낸 살모사가
그 소리들을 또아리 틀었던 거야
그런데 말야
그 소리는 삼년을 울어낸 어머니 장맛 같아
쉽게 우리에게서 잊히진 않았어
서툰 잠에서 깬
내가
비로소 그 소리들을
하나씩 매어두기 시작했어
그게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이듯이
그러니 좀 들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