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와 유교경전 안에 내재된
한국문화의 정체성 재발견해야
'왜 주역이고 공자인가' 서문
일제 식민지 해방이후 지난 60년간 통용되어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만 달성하면 정당화된다’는 명제는 옳은 말인가? 틀린 말인가? 교과서상으로는 틀리지만 현실에서는 옳다. 쿠데타를 통한 집권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후 정치권력은 공공연히 이를 퍼뜨리고 조장해왔다. 서구 사회와 달리 우리나라의 정치권력은 모든 분야에서 편법을 넘어 초법적으로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또다른 사례는 부적격자의 당당한 복귀이다. 부적격자라 해서 국회의원 공천에서 탈락한 낙천자가 무소속으로 당선해서는 그 정당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다.
심지어 당대표, 원내대표도 된다. 부적격자라고 공표해놓고는 나중에 자기 당의 대표 자리에 앉히는 행태는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민주화 운동권 출신의 대학교수가 한나라당에서 15년이 넘는 동안 국회의원 장관 도지사까지 하고는 반대 정당인 민주당에 가서는 당대표로 선출되는 등의 정치행태야말로 한국사회의 정체성 혼란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격렬하게 벌어진 정당 간의 이념공세가 단지 이익집단의 포장술에 지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 달성하는 한국사회
제주도가 2011년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을 위해 관제 동원한 전화 투표 건수가 1억 8천만통이 넘고 행정전화 요금이 4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문제는 이 요금을 선정기관인 뉴세븐원더스재단에 납부하여야 제주도가 최종적으로 ‘세계 7대 자연경관지’로 결정된다고 한다는 점이다.
제주도가 공정한 평가가 아니라 수백 억 원이라는 돈을 들여 ‘세계 7대 자연경관지’ 선정을 샀다는 뜻이다. 이 모두 해방이래 한국사회에 만연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행태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사례들이 오랜 세월 누적되다 보니 이제는 모두들 ‘으레 그러려니’ 한다. 불감증 내지 마비 증상이다. 당사자는 부끄러움을 못 느끼며(民免而無恥: 논어), 사법정의를 실현해야 할 법조계는 여전히 전관 예우가 건재하고, 이를 감시ㆍ감독하고 문제 제기해야 할 지식인이나 언론은 이익집단 또는 파벌집단으로 전락했다.
전 세계가 찬탄해 마지 않는 대한민국 성공신화 역시 이 명제를 배경으로 가능했다. 자기 집에서 자기 아이들 보고는 대놓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서라도 목적을 달성해야 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자신은 ‘우리 사회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만 달성하면 정당화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자신도 가능하면 그렇게 할 의사가 있다. 이에 우리 국민은 성공신화를 부러워는 할지언정 결코 존경하지는 않는다. 이 사회에 공정한 잣대나 규범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하면 충신이요, 실패하면 역적이다’라는 말이나, ‘사촌이 땅사면 배 아프다’나 ‘배 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속담이 횡행하는 배경이다. 우리 사회에 승복과 합의 문화가 잘 정착되지 않는 이유이다.
대한민국 성공신화에 가려진 가치관의 전도현상
더 큰 문제는 이 성공신화에 가려진 부작용과 후휴증을 고쳐 보려는 의지나 의사가 없다는 점이다. 많은 국민들이 성공신화의 수혜자로서 자기 삶에 만족하기보다는 사회적 약자로 전락하여 상대적 박탈감 속에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국민행복지수 국제비교에서 우리나라가 100위권에 불과한 것이 이를 잘 반증해준다.
의식주(衣食住)는 인간 생존에 없어서는 안되지만, 생존만으로 살 수 없는 존재가 또한 인간이다. 인간은 가족이라는 혈연(血緣) 관계에서부터 시작하여 지연(地緣), 학연(學緣) 등을 비롯한 사회적 관계에 이르기까지 온통 관계망(연고)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관계망이 어떠하냐에 따라 인간의 삶과 행ㆍ불행이 결정되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관계망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으로 다양하게 얽혀 있다. 이 관계망에 대한 동서양의 규범이 완전히 다르다. 크게 서구의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그리고 동양의 공동체 평등주의와 집단주의로 대별된다.
서구만을 쫓아가다 정체성 혼란에 빠진 한국사회
서구문화의 토대인 기독교는 유일 神이자 절대 神인 하나님과의 1:1 관계 즉 인격적 요소가 강한 종교이다. 생활은 밀재배와 목축을 중심으로 하는 유목문화였으며 사회체제는 독립 분산된 도시국가를 기반으로 조직되었다.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발달하였다.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은 특정 神이나 유일신 개념이 아니라 천지자연에 모두 신이 있다고 믿었다. 생활은 가족 노동력과 정전제(井田制)에 의한 공동체 중심의 농경문화이며, 사회체제는 농경사회의 관리에 효율적인 중앙집권적 국가로 조직되었다. 공동체 평등주의 또는 집단주의 문화가 발달하였다. 이 두 가지 삶의 방식은 오랜 세월 유지되어온 문화로서 동서양을 규정짓는 핵심적 요소이다.
지난 1세기 동안 과학기술, 산업화, 근대화, 대의제 민주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기독교 등으로 대표되는 서구 문화가 동양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히 서구식 사회체제로 변모하였다. 기독교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종교가 되었으며, 영어는 성공의 언어이며, 미국 유학은 최고의 목표가 되었다.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을 비롯해 다수의 대통령이 기독교 출신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서울시장 재임시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奉獻)한다고 할 정도로 그 정점에 섰다.
문제는 우리의 행동 양식과 의식 문화는 서구식이 아니라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이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기독교는 본래의 서구식 종교가 결코 아니다. 한국의 뿌리깊은 무속(巫俗)문화에 내재된 기복(祈福)신앙을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벽기도회나, 성령대회, 수능시험 100일 기도회 등이 그것이다.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연고에 의한 관계망 중심의 유교문화가 강력히 유지되고 있는 것도 그렇다.
이러다 보니 서구식과 전통적 방식이 뒤섞여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앞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만 달성하면 정당화된다’는 명제로 인한 현실과 교과서의 괴리로 인한 정체성의 혼란도 겪고 있다.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갈수록 이익집단화되어 가고 있다.
한자와 유학경전의 의식과 문화는 뿌리 깊다
오죽하면 신문에 반 평생동안 사설과 칼럼을 써온 어느 언론인은 우리 사회를 ‘만인 대 만인의 투쟁사회’라고 하겠는가! 사회적 쟁점이 발생할 때마다 충돌과 대립이 해소되기보다는 더욱 격화되는 양상이다.
첨단 과학기술 시대에도 불구하고 마치 중국 고대의 춘추ㆍ전국시대(BC 770~221)를 보는 것과 같다. 그 당시 각 제후국의 최고 목표가 부국강병(富國强兵)이었듯이 지금은 경제성장만이 최고 목표이다. 당시 臣弑其君 子弑其父(신하가 군주를 시해하고, 자식이 아비를 죽이는)하면서 까지(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쟁탈전을 벌였듯이, 지금은 돈 때문에 패륜행위가 저질러지고 있다.
법치주의를 토대로 부국강병과 권력쟁탈전에 가장 앞섰던 진(秦)나라가 마침내 천하 통일을 이룩하지만, 진나라는 2대를 못 채운 채 14년만에 무너졌다. 통일국가를 다시 세운 漢나라는 유학 경전을 바탕으로 하는 유교를 국교로 삼아 왕도정치를 표방하였다. 이후 유교는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통치 이데올로기 또는 사회규범으로서 2천년을 이어 왔다.
유교는 기본적으로 조화와 통합,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정치사상이자 철학이다. 기독교에 바탕한 서구 문명은 공격성이 강하여 분열과 대결이 더 두드러진다. 이는 서구가 기독교와 과학기술과 총칼을 앞세워 아시아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은 데서도 잘 나타난다.
그 정점에 서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정점에 오르면 그 다음 내리막길로 가야 하는 것이 천지자연의 법칙이다. 인류 역사로 볼 때 인간사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한 중국이 불과 몇 십 년만에 미국 뒤를 바짝 쫓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중국이 멸실시킬 듯이 탄압하던 공자를 전면적으로 부활시키고 있다.
중국은 서구식 법치주의, 자유주의, 대의제 민주주의, 기독교로 상징되는 미국의 방식을 결코 중국의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이 향후 유교문화를 사회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중국 내부는 이미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외국의 전문학자들도 저서를 통해 그렇게 진단하고 있다.
식민지 해방이래 지난 60년간 한국은 타고난 저력을 바탕으로 미국식만을 좇아 오늘의 대한민국 성공신화를 이루었다. 문제는 그 성공신화가 계속 이어질 것이냐이다. 우리 사회의 정체성의 혼란으로 보아 순탄하게 진행될 것 같지 않다. ‘한국, 新 위험사회’가 그와 관련된 글들이다.
중국의 공자와 유교부활은 남의 일이 아니다
중국의 공자와 유교부활이 강 건너 불 구경처럼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책을 기획하였다. 한자가 결코 중국만의 문자가 아닌 우리 문화의 토대임을 밝힌 글들이 ‘음양오행 원리로 만든 한자와 한글’이다. 한자와 유교문화가 우리 문화의 바탕이라는 주장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글들이 ‘주역으로 풀이하는 유학경전’과 ‘휴비담론’이다. 우리나라는 오래 유학전통에도 불구하고 학맥(學脈)이 끊어지다시피 하였는데 이 불씨를 살리고자 한 글들이다. 한편 공자 또한 우리 민족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는 점을 밝힌 글들이 ‘공자의 부활’과 ‘동이족과 한자문화’이다.
2009년 11월 동북아역사재단과 동아시아사연구포럼이 주최한 ”역사적 관점에서 본 동아시아 세계의 정체성과 다양성”이라는 주제의 국제학술회의에서 기조발표자인 보평(步平)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 소장은 ”동아시아에 유럽과 같은 정체성을 구성하는 역사적 기반이 있는가에 대해서 대체로 일치된 인식이 있다. 한자 문화와 유교 문화가 그것이다.“라고 하였다.
한중일 세 나라가 이를 토대로 공동 번영을 추구하면서 국제평화를 실현하는 새로운 국제질서 확립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이 책은 먼저 우리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여야 한다고 본다.
2010.7
첫댓글 주역 공부를 하고 싶어서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행운을.
현시대의 정신문명을 리드할 수 있는 사상은 동양고전속에 있지않나 생각됩니다!
선생님의 귀중하신 가르침 잘 받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_()()_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