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도시를 기억하다. “동구”
성을 제외한 인천시 내 8개 구 중 인구와 면적이 가장 적은 동구는 옛 도시의 모습을 품고 있는 이른바 원도심이다. 중구 개항장과 함께 근대화의 물결을 온몸으로 체험한 도시이자 아날로그의 기억이 여전히 골목 곳곳에 서려 있는 동네, 그래서 낡은 골목과 오래된 추억, 아주 약간의 도시 풍경이 어우러진 곳,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들려주었던, 가난했지만 정겨운 그 시절 이야기가 이곳 동구에 있다.
1. 산책코스 : 천천히 옛 시간을 오르다. 쇠뿔고개길
개항장 중구가 120년 전 외국인들의 거주지였다면 원래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밀려났을까? 바로 인천항에서 좀 더 멀리 떨어진 동구다. 동구는 개항장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이었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자연스럽게 드나들며 중구와 함께 서구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근대사의 이정표가 될 만한 건물이 쇠뿔고개길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쇠뿔고개길은 평범해 보이는 낡은 골목이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초등학교인 영화초등학교, 인천 최초 공립 보통학교인 창영초등학교, 감리교 선교사들의 기숙사 등 소박한 동네 언저리에 100년의 역사가 담겨있다.
쇠뿔고개길은 쇠뿔을 닮았다는 뜻인 우각로의 순우리말이다. 지금은 차도 잘 다니지 않는 평범한 골목이지만 1920년대 이전까지 이 길은 인천에서 서울로 가는 가장 넓고 빠른 길이다. 이 거리에 벽화 사업이 진행되면서 칙칙했던 동네 분위기가 밝아졌다. 거리가 예뻐지니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늘었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2. 산책코스.. 오래된 책 향기 배다리
다리도 없고 배도 없는데 배다리? 인천 사람들 중에서도 배다리라는 이름의 유래를 모르는 이가 많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수로가 있던 시절, 배가 닿는 다리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어물전 상인들이 수로 주변에 장을 형성했고 배다리 갯골로 작은 어선이 드나들며 생선을 팔았다. 100년도 훨씬 넘는 이름이지만 이 같은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이 않다. 대신 배다리는 헌책방 거리로 제2의 유명세를 치렀다. 하굣길 헌책방에 들르는 일이 일상인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보물을 뺏길세라 상태가 좋고 귀한 책이 눈에 보이면 앞다투어 지갑을 열었다. 그때는 가게 앞마다 책을 잔뜩 쌓아놓고 발에 차일 정도였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몇 군데 나아있지가 않다. 대신 아날로그의 향수를 느끼러 찾아오는 여행객을 위한 문화예술의 거리로 변화했다. 공예가들이 모여들면서 헌책과 함께 공예 거리가 형성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3. 산책코스. 가난했던 그 시절,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위태롭게 어깨를 맞댄 판잣집은 1990년대 재개발로 사라졌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던 수도국산도 마찬가지였다. 달이 보이는 동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온 사람들은 산비탈이나 개천가에 집을 짓고 살았다. 개항 후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거주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산꼭대기에 배수지를 만들었고 송림산은 수도국산으로 불렀다.
비탈만큼 거칠고 어두운 밤하늘처럼 서러웠던 달동네 사람들의 애환은 이제 박물관에 남아있다. 쫓겨나듯 마을을 떠났던 사람들이 두고 간 생활용품과 손수 못을 박고 톱질을 했을 대문과 창문을 그 모습 그대로 재현해놓았다. 값비싼 골동품도 역사적인 유물도 아니지만 가난하고 치열했던 삶의 현장은 그 자체만드로 가치있는 보물이다. 이곳에서 아무리 시절이 좋아져 잘살게 되었어도 “그 때가 좋았지”라고 말하는 어르신들의 그때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4. 산책코스. 애물단지가 쉼터로 되살아나다.
지역의 애물단지였던 지하보도가 일본 국영방송에 소개되는 싱그러운 녹색쉼터로 탈바꿈했다. 북 카페와 식물전시관, 갤러리로 단장한 도심 속 지하도는 머물고 싶어지는 휴식공간이 되었다. 송림 아뜨렛길이라는 이름 또한 지하보도의 이미지를 밝게 만들어준다.
커피 향 가득한 북 카페에서는 교복차림의 여고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재잘거리며 잡지를 읽고 갤러리는 매번 테마를 바꿔가며 관람객을 찾는다. 식물전시관에는 텃밭에서나 보던 상추와 케일, 청경채 등 녹색 채소가 가득한데 햇빛이 없는 지하에서 자랄 수 있는 것은 LED조명 덕분,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빛을 내는 실내조명 덕분에 지하보도에서 도시형 식물농장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도 건강과 자연의 테마를 입혔다. 가던 길이든 일부러 찾아오는 길이든 생태와 문화, 휴식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송림 아뜨렛길을 걷는 걸음이 저절로 가벼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