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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를 안 사는 건 나쁜 일입니다
로또를 안 사는 건 나쁘다
최금진
로또가 얼마나 끔찍한 악몽인지
로또방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끝자리를 분석하거나 홀수 짝수를 조합하는 일은
어느 사무직과 다르지 않다
왜 사느냐,를 왜 로또를 사느냐,로 이해해도 무관하다
이 늦은 밤에 왜 또 여기로 왔는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질문을 쓰레기통에 구겨넣으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찍는다
로또를 사지 않는 10%의 고소득층은 얼마나 좋을까
로또를 사지 않아도 천사가 지켜주니까
왜 사느냐,를 묻지 않아도 되니까
오십이 넘은 사내는 누가 볼까봐 손을 가리고 찍는다
술냄새에 절어 들어온 사내는 앉자마자 묵상을 한다
갓 스물을 넘은 청년은 줄을 서지 않는 자들을 무섭게 흘겨본다
순서를 어기는 것은, 누군가 자신을 앞서가는 것은
견딜 수 없이 우울한 일
집착은 때 묻지 않은 종이와 같아서
싸인펜을 쥐고 있으면 또 한번 막막해진다
예수님을 부르고, 조상님께 기도하고, 아이 생일을 떠올리며
답할 수 없는 질문에 답이라도 달 듯
쩔쩔매며, 굽실거리며
두툼한 돈 뭉치를 한 번이라도
멱살처럼 움켜잡아보고 싶은 자들에게
왜 사는가, 왜 로또를 사는가, 묻지 말자
로또를 안 사는 사람들은 심각하게 죄질이 나쁘다
그게 비록 종잇조각에 불과할지라도
뭔가를 간절히 빌어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꼭 당첨되세요, 주인 남자의 빈말은 그 어떤 복지정책보다 낫고
코미디 프로는 복권 추첨 프로와 같은 시간에 나오며
주말이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로또방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절망을 배당받는다
주위를 흘끗거리며, 헛기침을 하며, 창밖 사람들을 노려보며
최금진 시인은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한 이후 누구보다도 가난과 소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시인이다. 그래서 그의 발간되는 시집 서문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글이 바로 가난과 소외의 문제다. 가난과 소외는 어디서 오는가? 시인은 사회구조와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시인의 시는 자본주의 병폐와 현실을 무섭도록 냉정하게 보여준다.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최금진 시인의 시 ‘로또를 안사는 건 나쁘다’를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나라에서 로또를 안사는 나쁜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10%도 안 되는 사람들, 그렇게 로또를 안사도 되는(로또가 본인의 삶, 경제적인 부분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10% 나쁜 사람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우린 살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 말이다. 물론 시인이 제시한 로또를 안사는 사람들의 정확한 수치가 10%인가 하는 점은 별도의 문제다. 부언하자면 시인은 대체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90%의 국민과 10%의 상위(특권층)계층으로 나뉘어 있다는 점을 시에서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로또를 안사는 그 10%의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인가 하는 점이다. 나쁘다면 대체 왜 나쁜 것인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 지점에 이 시가 이야기 하는 현실, 현재가 있기 때문이다.
로또에 대한 이야기 중 서양에서는 로또는 월요일에 구매하는 비율이 높은 반면 우리나라는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에 구매율이 높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로또에 대한 접근 방식,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다.
로또가 일확천금의 행운이라는 정의로 표현될 수 있다면 서양에서는 행운이라는 것에 중심을 두고, 우리나라에서는 일확천금에 중심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주일 동안 토요일 저녁에 가져올 행운을 도모할 것인가? 아니면 토요일 밤에 발표되는 일확천금을 기대할 것인가? 언제 로또를 구매하는가 하는 선택의 문제는 같은 로또를 보고 다른 생각을 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닌 삶의 방향과 질의 지표를 나타내는 문화로 확대 해석될 수 있다.
로또는 서민들에게 일주일의 행복을 주는 여러 영양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로또가 영양제가 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기대감, 희망, 계획에 있다. 만약이라는 단서가 붙긴 하지만, 우리는 로또에 당첨된다는 가정 하에 세우는 계획들로 잠시나마 상상이 주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누구는 대출을 갚고, 누구는 집을 사고, 누구는 여행 계획을 세우고 말이다. 호기롭게 당첨금의 절반을 사회에 기탁해서 어려운 이웃에게 줄 것이란 공약도 발표한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현실은 다시 근로현장이고, 업무의 연속이며, 대출금은 그대로다. 로또 한 장이 주는 행복감은 정서적 안식처, 일시적 해방구의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로또에 대한 찬반양론은 여전하다.
반대론자들은 정부에서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것을 가장 두드러진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일반 국민들, 그 중에서도 저소득층의 호주머니를 털어 사회복지 재정을 충당한다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찬성 쪽의 입장은 다르다. 적은 돈으로 일정액 이상의 당첨금을 마련할 수 있는 일종의 오락거리며, 수익금을 사회복지현장에 사용하고 있음으로 내가 사는 로또가 우리사회의 복지를 향상시키는데 일조한다고도 생각한다. 모두 맞는 이야기다. 분명 정부가 사행성을 조장하는 측면도 있고, 로또 구입으로 자연스럽게 사회복지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잠시 중국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는 2014년 지금의 직장에서 중국 산동성 동영시에 파견근무를 다녀 온 적이 있다. 6개월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근무하는 동안 그곳의 공무원들과 자주 식사를 했고, 때때로 현지에서 행운을 시험 삼아 로또를 구매한 적이 있다.
한 장에 2원.(2014년 당시 환율이 1원에 우리 돈 160원 정도 되니 2원이면 320원 정도 되는 돈이다) 이 2원 주고 산 로또가 당첨됐다. 큰돈의 당첨은 아니었지만 중국 돈 2원을 투자해서 무려 100원에 당첨되었으니 수익률로만 따진다면 50배의 고수익률인 것이다.
환산해보니 우리 돈 5,000원짜리 로또 한 장을 사서 250,000원을 당첨금으로 받은 것과 같은 것이었다. 내가 중국에 파견 근무할 당시 간단한 점심 한 끼 식사비용이 10원에서 15원정도로 일주일치 점심값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아주 고액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가볍게 무시할만한 돈은 아니었다. 외국인인 내가 그 수익금을 받기 어려워 친구 한명이 수령하고 다 같이 식사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 식사자리에서 우리는 로또에 대해,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로또가 가지는 의미와 수익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나라의 로또의 수익금은 복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략 50%가 넘는 수익금을 당첨금으로 지불하고, 나머지 50% 중에서 35% 정도의 수익금을 복지관련 분야에 지원한다. 나머지 10% 조금 넘는 정도가 운영비와 관리비 등으로 소모된다고 알려져 있다. 모든 것은 국가에서 관리하고 국가(대통령)가 정한 복지 관련 사업에 지원된다. 이른바 로또기금사업이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식사자리에서 중국 공무원 친구에게 들었던 내용은 우리나라의 운영방식과는 조금 달랐다. 중국의 경우엔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로또를 발행하고 그 수익금을 지자체의 복지사업에 전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중국 같은 경우 땅이 워낙 넓고, 인구도 많아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도 도입하면 어떨까 싶었다. 당첨금도 큰 당첨을 바라기도 하지만 내가 있던 동영시의 경우 작은 금액이라도 당첨을 통해 기쁨을 나누는 소소한 일상의 취미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특히, 대다수의 국민들은 본인이 사는 로또를 통해 저소득층을 지원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수많은 복권 및 사행사업을 확실하게 규제하기 위해 권역별 지자체에서만 하나의 복권을 발행하고 자체적으로 지역 내 복지재원으로 사용하는 것. 부족분에 대한 국가지원을 보완하고 다른 복권들은 발행을 중지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지금 발행되고 있는 복권의 수가 몇 가지인지 정확히 아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로또와 연금복권을 포함해 12가지의 복권이 판매되고 있다. 여기에 스포츠 토토, 경마, 경륜, 경정 등 사행성으로 불리는 이런 게임까지 포함한다면 그 가짓수가 훨씬 많아진다. 많아도 유지가 되고 성행하는 건 수요가 꾸준하다는 이야기다. 정선의 강원랜드가 불야성일수록 보고 있는 시선의 마음은 무거워진다.
로또의 열풍이 불수록, 로또의 당첨금이 커질수록 우리는 지금 무언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왜 사는가, 왜 로또를 사는가, 묻지 말자
로또를 안사는 사람들은 심각하게 죄질이 나쁘다
그게 비록 종잇조각에 불과할지라도
뭔가를 간절히 빌어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꼭 당첨되세요, 주인 남자의 빈말은 그 어떤 복지정책보다 낫고
시인의 시처럼 삶을 왜 사는가와 로또를 왜 사는가라는 말이 같이 들리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세상. 로또를 안사는 사람들은 간절함이 없기에, 그런 마음을 모르기에 나쁘다는 시인의 이야기 이야기가 쓸쓸하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정부는 수차례 복권은 담배와 달리 소득이 적을수록 많이 내는 역진세(逆進稅) 성격이 적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 같은 주장은 사실과 다를 수 있다고 밝혔다. 2008년~2016년 조사대상 4만 3000여 가구 중 단 한 번이라도 복권을 산 경험이 있는 가구는 14.6%에 이른다. 이 가구들의 평균 복권 구입액은 연간 22만4000원으로 매월 평균 2만 원 정도를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소득 1분위(소득 최하위 20%)는 월평균 1만1000원, 소득 3분위는 4만1000원을 복권 구입에 쓴다. 복권 구입액 자체는 소득과 비례하는 경향을 보이는 셈이다. 하지만 소득 대비 복권 구입액을 분석하면 1분위는 소득의 0.21%를 복권 구입에 쓰는 반면 5분위(소득 최고위 20%)는 0.05%에 불과하다. 저소득층일수록 복권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돈을 쓴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복권은 정부에 의해 독점적으로 공급되고, 복권 기대수익이 판매 가격보다 낮아 구매자가 항상 손해를 보는 구조이기 때문에 '자발적 준조세' 성격을 지닌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처럼 이제 복권은 준조세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물론 자발적이라는 단서가 붙지만 이를 관리, 감독하는 것은 엄연히 정부다. 그럼에도 세금에 따른 수익사용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정부는 공익광고처럼 복권이 저소득에게 도움을 준다는 식의 논리만 강조하고 있다.
그 어떤 복지정책보다 당첨이라는 두 글자가 더한 복지가 되지만 현실에서 그런 말은 얼마만큼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그래도 우리는 로또를 산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로또의 꿈을 밑천삼아 사회적 합의도 없이 선심 쓰듯 복지 재원으로 사용하는 정부의 정책이 바뀌었으면 한다. 복지국가에서 저소득층이 사는 로또의 수익금의 재분배를 통해서 복지사업을 한다면 그 한계는 분명하다. 또한 복지사업을 한다면 충분한 사회적 동의를 얻고 판매되는 지역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지역에 다시 환원해야 한다고 본다. 지역민을 위한 복지를 위해 지역의 합의하에 사용하는 것, 그것이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선심 쓰듯, 여기저기 쪼개 놓은 복지예산에 로또기금이 당당하게 자리 잡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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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권상진 시인님이 지난번 모임 뒤에 만원을 주고 제가 로또를 샀습니다. 만원이 복지기금으로 적립되었습니다. ㅎ
권시인님... 복받으실겁니다. 번호를 고른 저도 조금의 지분은 있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