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조경이 중요한 몇 가지 이유
아모레퍼시픽 뷰티사업장
일을 하지 않아도 생계에 문제가 없다면, 일터도 그 의미를 잃는다. 그러나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은 일을 놓을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일터라는 공간은 집 과 동격이거나 그 이상으로 중요할 수 있다. 적어도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근로자들에게 하루 중 9시간을, 그러니까 해가 떠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일터의 형태는 다양하다. 복잡한 도심 속 오피스 건물일 수 있고, 한적한 교외의 공장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주거용 건물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건물에는 생계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곳이 그들의 일터이니, 오늘날 도시 공간은 수많은 종류의 일터로 가득 채워진 셈이다. 최근에 일터에 만들어지는 조경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일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근로환경이 무척 중요해 졌다. 이는 일에 대한 만족도 뿐 아니라 작업능률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사업주의 입장에서 보면 쾌적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회사의 이익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기업의 이미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조경공간은 대부분 옥외공간에 조성되고 바깥으로 드러난다. 잘 조성된 조경공간은 유해한 도시환경과 반대되는 지점에 서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고 좋게 관리하는 행위는 기업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된다. 세 번째는 이러한 일들이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지라도 공공의 도시경관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일터에 만들어지는 조경공간은 단순히 일정한 면적의 녹지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된 디자이너와 정교한 예산이 투입되는 창의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라도 일정 수준의 경관개선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네 번째는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공공정원 혹은 공원과 같은 활동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법으로 강제된 공개공지 뿐 아니라 비록 담으로 경계가 둘러쳐진 공간이라 할지라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개방하여 제한적으로나마 공원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사회적 합의만 이루어진다면 마치 대학의 캠퍼스가 공원과 같이 사용되는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면 소극적으로 개방된 공원이 아니라, 적극적인 문화활동을 생산하고 소통하는 장소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기업의 홍보를 겸하면서, 또 직원들의 휴식공간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지역의 주민들과 시민들에게 고품질의 문화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오산시 가장산업단지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뷰티사업장. 여러 브랜드의 화장품을 만들고 유통시키는 핵심시설이다. 조경설계 서안과 디자인스튜디오 loci가 설계하여 2012년 준공된 이곳은 대규모 제조공장과 물류시설들이 중심을 이루는 한편에 화장품 제조에 사용되는 식물들을 사용해서 만든 ‘아모레퍼시픽 원료 식물원’이 있다. 이 공간은 단순한 ‘공장조경’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 활동을 창출해 내는 기능을 담당한다. 직원들은 매일 아침 통근버스에서 내린 후 길게 뻗은 정원을 따라 각자의 일터로 이동하고, 날씨가 좋은 점심시간에는 야외에서 회사가 제공한 맛있는 도시락을 삼삼오오 즐길 수 있다. 생산라인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작업장 창밖으로 보이는 단풍나무를 감상할 수 도 있다. 식물원에는 두 개의 전시공간이 있는데, 여기에서 국내외 유명작가의 작품을 직접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재배온실에서는 원예취미를 공유하는 동아리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회사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은 정원이중심이 된다. 밀도 높은 소사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으며, 완만한 경사의 잔디구릉에서 뛰어 놀 수 있다.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출근하고 퇴근한다.
작년 가을에는 이곳에서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APMAP 2013 OsanREVERSCAPE”라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국내의 주목 받는 미술가와 건축가 14개팀이 참여했으며, 사업장의 조경공간에 설치작품들이 공간의 특성에 맞게 배치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2016년까지 릴레이식으로 이어지는데 올해는 제주 오설록 서광다원, 2015년에는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2016년에는 신사옥 현장에서 펼쳐진다고 한다. 모두 일터 조경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의미있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일반인들이 아무 제약 없이 자유롭게 공원처럼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일터조경이 더 이상 그 일터에 관계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닌, 공원처럼 확산되는 현장인 셈이다.
출처
(사)한국조경학회 Landscape Review
박승진 디자인스튜디오 loci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