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은 기후와 재배환경이 적당치 않고 도정법이 까다로와서는 옛부터 우리나라에서는 귀한 식재료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빵 같은 것은 엄두도 못냈고 국수로는 행사나 잔치 때에나 맛 보던 존귀한 분이셨기에 밀을 사용한 음식의 종류도 꽤나 적은 편이었죠.
그러다 해방을 맞으며 미국으로 부터 엄청난 양의 구호물자로 희디 흰 밀가루가 마구 쏟아져 들어 와서는 대중적인 저가음식의 상징화가 된 일대 격변기를 맞이 합니다. 식량난이 심했던 육칠십년대에는 혼분식을 강제화 하는 여러 제도 시행 덕에 서민들 식생활 곳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의외로 밀가루 국수를 잘 하는 집을 찾기가 슆지 않은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겠죠.
일산 정발산동에 개념 있게 밀가루 국수 음식을 낸다는 집이 있어서 찾아가 봤습니다.
주차는 가게 앞에 서너대가 가능하고 실내는 깔끔합니다.
가격대는 저렴한 편이라고는 할 수 없고 그렇다고 크게 비싸다 느껴질 수준도 아닌..
김치가 시원하니 먹을만 하네요. 국수에는 양념 질퍽한 종류보다는 이렇게 깔끔한게 저는 더 좋습니다.
보통 김치도 나옵니다. 나쁘지 않은 수준.
후추와 소금통.
공기밥. 곰국수를 주문하면 따라 나옵니다.
수라곰국수라는 이름의 팔천원 짜리 국수인데 국수가 뭐 그리 비싼가 하고 생각했었지만 받아 들고는 첫 수저를 뜨고 나니 생각이 바뀝니다.
대부분의 설렁탕들을 누르고 올라 설 수준의 짙고 구수한 사골 국물입니다. 잡내도 없고 프림/유제품 등을 탔다는 느낌도 별로 들지 않는군요.
국수도 적당히 삶겨졌습니다.
공기밥도 따라 나오니 한 끼 식사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맛나 비빔국수'라는 이름.
과일을 많이 갈아 넣은 듯한 양념장이 텁텁하지 않고 깔끔하게 입안에 감깁니다.
참기름맛도 강하지 않고 당도도 크게 높지 않고.. 편히 한 그릇 비울 수 있는 비빔국수로군요.
곁들여 나오는 유부 조각 띄운 멸치국물.
비빔국수는 아주 달콤새콤매콤함에 먹는다는 분이라면 몰라도 강한 자극성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분이라면 마음에 드실 듯. 저는 후자 쪽.
'전통 온국수'라는 메뉴. 잔치국수 스타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면 좋고 국물도 나쁘지 않으나 마른멸치를 우려낸게 아닌 갈아 넣은 국물인지라 진한 풍미가 취향에 따라서는 약간 갈릴 듯. 저는 천연조리료라고 해서 해초/어패/버섯 등을 말려 가루내서 국물에 타 넣는 식의 조리법(자칫 텁텁씁쓸하게 만드는)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취향인지라 개인적으로는 다시 또 먹고 싶어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갈지 않고 통으로 우려내서 만든 국물이라면 충분히 다시 먹어줄만 하겠습니다만... 뭐 개인 취향이니...
후식으로 주신 식혜였을겁니다. 많이 달지 않아서 좋았다는 기억이...
여러 모로 이태원의 [깡통만두]와 비교케 되는데 깔끔한 실내와 음식의 차림새도 그렇고 특히나 주인분의 강한 프라이드가 느껴지는게 그렇습니다.
자신이 만드는 음식에의 열정과 자긍심은 클 수록 좋겠죠. 고깃집 명월집 처럼 손님에게 불편을 주는 수준으로 까지만 뻗치지 않으면 말이죠.
깔끔한 분위기에 자신감 있게 만들어 내는 국수들이 일산의 맛집으로 꼽을만한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봅니다.
Good : 믿음이 가고 개념 확실한 국수 만들기. Bad : 자긍심의 표출이 좀 아슬아슬한 수준. 국물내기 재료를 갈아 쓴다는 점. Don't miss : 사골국수는 간이 상당량 미리 되어 있으니 함부로 소금 추가투입 말 것. Me? : 밀국수를 일부러는 잘 사먹지는 않는 편인데 그럴 기회가 일산에서 생기면 우선적으로 선택하게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