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미안해요
황인만
동네 앞 구멍가게
‘명랑핫도그’집
형들도 동생들도
줄지어 앉았다
할아버지는 천 원짜리
명랑만 먹고
형들은 천오백 원짜리
점보치즈 먹고
동생들은 이천 원짜리
도깨비방망이만 먹는다
엄마는 배부르다며
먹지 않더니
집에 와서 벌컥벌컥
물만 마신다
연필과 지우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프십니다
뱃속에 저장한 힘이
다 빠지셨대요
고모들과 삼촌들이
다 빼 가셔서
바나나 껍질같이 물렁합니다
자식들을 키우느라
제 몸 깎아내
닳아버린 연필과 지우개
무릎도 닳고 이도 닳고
눈도 귀도 닳아서
작아진 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가족들 마음속에 사랑을 쓰는
연필과 지우개입니다
신발장
신발장에는
이야기가 산다
꽃밭 속 하늘하늘
햇님이네 고운 이야기
운동장 와글와글
힘찬이네 씩씩한 이야기
동화나라 소근소근
예슬이네 신비로운 이야기
신발장에는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꿈꾸고 있다
지렁이
땅 속에서 나온
지렁이
어떻게 땅을 팠을까요?
나도 꼬챙이로
땅을 파보지만
도무지 파지지 않습니다
지렁이를 보면
아버지도 비켜갑니다
땅 파는 포크레인,
무섭거든요
호기심
아홉 달 아기가
꾸밈모자 썼다
‘소풍을 가려나’
아이, 답답해!
끈이 달린 모자
대롱대롱 흔들어 보고
챙이 넓은 모자
박박 방을 닦는다
아기 고양이가 방울을
얼러대는 꼴
처음 보는 것들이
참, 신기한가 봐
고양이
어둑한 달밤에
애기가 운다
응아, 응아
캄캄한 밤중에
고양이가 운다
야옹, 야옹
은은한 달빛무대
애기 흉내 잘 내는
재주꾼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