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황후 奇皇后는 칭기스칸이 세운 대원제국을 37년간 뒤흔든 '철의 여인' 으로, 중국 원(元)나라 순제(順帝)의 황후이며, 북원(北元) 소종(昭宗)의 생모이다.
본관은 행주. 아버지는 자오(子敖)이며, 철(轍)의 누이이다. 1333년(충숙왕 복위 2)에 원의 휘정원(徽政院)에 있던 고려 출신의 환관 고용보(高龍普)의 추천으로 궁녀가 되어 순제의 총애를 받았다. 1335년 순제의 정후(正后)인 다라시니[笞納失里]의 일족이 축출되자 황후로 책봉될 기회를 맞았으나 바얀[伯顔] 등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339년 황자 아이유시리다라[愛猶識理達獵]를 낳았다. 반대세력인 바얀 세력이 물러나게 되자 1340년 4월에 순제의 제2황후로 책봉되었다. 황후가 된 뒤 곧바로 반대세력을 몰아내고 휘정원을 자정원(資政院)으로 개편하는 등 전권을 행사했다. 기황후의 세력이 강력해짐에 따라 고려에서도 오빠 기철을 중심으로 한 기씨 일족이 강력한 세력을 행사했다. 이로인하여 고려측에서는 공민왕이 기씨족 일가를 처단한 사례가 있듯이 미움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 고려와 원나라의 위세를 볼때 고려인으로서 원나라의 궁녀를 거쳐, 1365년에 전례를 깨고 정후에 오르기까지 하였다. 1368년 원나라가 멸망한 뒤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MBC드라마 4월 29일 방송된 ‘기황후’ 마지막회 말미 스토리 ~~~
원나라의‘기황후’는 반란군과의 전쟁에서 대승상 탈탈이 패배했고, 기황후 승냥은 병을 앓는 황제 타환에는 거짓 승리 소식을 전하는 안타까운 장면을 담았다. 결국 타환이 승냥의 품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이후 ‘기황후’는 자막을 통해 ’1368년, 기황후는 주원장에게 대도를 정복당하고 북쪽 초원지대로 물러나 북원을 건국했다. 기황후의 아들 아유시리다라는 북원의 황제가 되었다’는 자막이 등장했다. 대도를 버리고 몽골초원으로 돌아간 원나라는 북원을 세웠다. 기황후 역시 원 황실을 따라 몽골초원으로 들어갔다. 이후 기황후의 행방은 묘연한다. 몽골로 들어간 북원 이후 기황후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선 기록이 없다. 실제 중국 명(明)나라의 초대 황제(재위 1368∼1398)인 주원장은 1351년 발생한 홍건적의 난에서 크게 활약을 펼치며 명나라를 세웠다. 동시에 북벌군을 일으켜 원나라를 몽골로 몰아내고 중국의 통일을 완성해 한족 왕조를 회복시키며 중앙집권적 독재체재의 확립을 성공시켰다.
당시 한 여자로서 조국이 지켜주지 못했던 삶을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 가는 힘은 시사하는 바가 큰 것이다.
( * 본 카페는 어떠한 상업적 목적이 없음을 고지하며, 단순 역사 교육적 차원의 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