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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석: 약속과 시련과 축복. 벧전1:3-9
지금부터 27년 전, 1977년도에 하나님께서 이 응암동에 신생교회를 세우시고 오늘까지 인도해 오셨습니다. 역사는 꽤 오래 되었지만 교회규모나 교인들 수효로는 정말로 보잘것없습니다. 저 자신 여러분 앞에 얼굴 들기가 민망스러울 정도입니다. 저는 신생교회를 개척하여 오늘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많은 시련과 연단을 받으며 많은 고생도 겪었지만 아직까지 적은 교인들을 데리고 신생교회를 지키며 목회 해 온 일에 대해 후회해 본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나름대로의 사명을 주셔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도하신 일에 감사할 따름이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남은 생애를 주의 뜻대로 인도해 주실 것을 생각할 때 감사와 기쁨이 넘칩니다. 큰 교회라고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더 드러내거나 성도들이 더 축복 받는 것이 아니며 작은 교회라고 하나님께서 보잘것없는 교회로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임재하셔서 진리의 말씀이 끊임없이 전파되고 주님의 재림의 소망과 하늘에 간직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고 일사불란하게 자라 가는 성도들의 교회가 정말로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복된 교회입니다.
1. 신생교회의 비전
하나님은 교인의 수효를 보시지 않습니다. ‘작은 자여 두려워 말라’고 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화려하게 장식된 대형 건물에서 우렁찬 찬양과 세계적인 명 설교로 성도들에게 감동을 주는 교회에 주님이 참석하시어 그 예배를 받으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문은 협착하고 험하다고 하셨습니다. 찾는 이가 많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노아의 시대에 그 많은 인류 가운데서 노아와 함께 생명의 길을 걷기를 원했던 사람은 노아와 그의 가족뿐이었습니다. 롯의 시대에 불이 하늘에서 내리는 심판에서 건짐을 받은 사람은 다섯 손가락에도 미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우리 신생교회는 굉장한 비전을 가지고 출발한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비전을 이루시기 위해 27년 전에 이곳 응암동에 우리 신생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외로운 가운데서 신앙 생활을 한 하나님의 종입니다. 아마 요한은 복음을 전하다가 유배된 몇 명의 죄수들과 함께 이 밧모섬에서 주의 날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사도 요한은 펴 놓인 작은 책인 요한계시록을 받았고 그는 자기가 받은 종말의 계시를 편지로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는 것으로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훌륭히 치렀습니다.
저는 아직 사도 요한과 같은 고령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저의 남은 목회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입니다. 힘이 빠져 설교에 능력이 없다고 여러분들이 싫어하시면 더 있고 싶어도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간 하나님께서는 패역하고 세속적인 이 세상을 향하여 펴 놓인 작은 책,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심판을 무려 120년간에 걸쳐 외쳤습니다. 아마 우리 주님이 오실 날은 120년까지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몇 년 안에 곧 오실 는 지 모릅니다. 우리 신생교회는 그때를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셨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지금 이모저모로 연단하고 계십니다.
이런 사명은 해를 입은 촛대 교회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도 저와 같은 사명이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신생교회는 아직 세워지는 중에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차근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세워져 나갈 것이며 그때가 오면 우리 신생교회는 종말적인 그 위대한 사명을 이룰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 비록 겉으로 보기에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여러분들에 의해 자랑스럽게 이 교회가 지켜져 오고 있습니다. 우리 신생교회가 가물거리는 등불처럼 위태위태한 가운데서도 오늘까지 용케도 버텨오고 있는 것은 신생교회의 버팀목이 되어오신 여러분들이 이 교회의 뿌리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여러분들은 저와 함께 신생교회를 이루게 하신 종말의 사명 자들이라고 확신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내 피를 여러분을 위해 다 쏟아도 아깝지 않고 내 살을 여러분들을 위해 다 찢겨도 두려울 바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 보시기에 위대한 교회입니다. 장차 우리 앞에 닥쳐 올 주의 날에 여러분들은 흰옷 입은 무리들 중에 맨 앞장에 서서 각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나오실 분들입니다. 아니 그것보다 더 놀라운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신생교회가 온 세계에서 그리스도의 신부들을 이끌어 내는 촛대 교회의 사명을 이룰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2. 그리스도인에게 오는 시련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본문 말씀을 따라 “약속과 시련과 축복”이란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시련보다는 평안한 일을 바라고 환난보다는 기쁨을 원하고 가난보다는 부요를 좋아하며 어려움보다는 축복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 사이에는 하나의 건너야 할 과정이 있습니다. 이 과정이 곧 시련입니다. 어느 경우에도 시련이 없이 우리에게 찾아온 축복은 참된 축복이 아니며 그 같은 축복은 우리의 생애에 오히려 결과적으로 해독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에는 하나의 공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약속이 곧 축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에는 약속이 있고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시련이 있고 그리고 그 다음에 약속하신 축복이 따르는 공식입니다.
(1) 축복만 바라고 자기 생애를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 실패를 자초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시련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축복만을 바랐습니다. 그러므로 그들 앞에 홍해가 가로막혔을 때 그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고 마라의 쓴물 앞에서 불평했으며 만나에 실증을 느끼자 또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만을 기대하고 시련에 대하여 아무 것도 원치 아니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의 생활 가운데 시련이 찾아오면 불평이 나오게 되며 원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사람들,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축복을 받아 누린 사람들은 약속을 받은 후,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주시는 하나님의 시련을 잘 참고 견디어 내어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가 그러했고 야곱의 경우도 그러했으며 요셉의 경우, 노아의 경우, 다윗의 경우 등이 다 그러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의 약속을 받았다면 그 약속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들에게 반드시 시련의 일정한 과정이 뒤따르고 그 시련을 잘 이겨 낼 때 약속하신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임한다고 하는 진리를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오는 시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아는 사람들은 그 시련을 피하지 않으며 자기에게 오는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8:18절에서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신 말씀을 보면 믿음의 시련이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축복에 대하여 “너희의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모든 관계는 약속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지 않고서는 하나님과의 그 어떤 관계도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주시기를 열망하시는 인생의 축복이 무엇인가? 이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아내야 합니다. 마13장에서 보화를 찾아 나선 한 나그네의 생애를 보게 됩니다. 그는 밭에서 보화를 발견하고는 기뻐한 나머지 자신의 모든 가산을 팔아 보화가 감취인 밭을 샀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재물보다도 더욱 귀한 인생의 참 보화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기쁨을 나타낸 밀입니다.
하나님은 영생을 가장 귀한 축복으로 여기시고 이 축복을 그 아들 안에서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들에게 물질의 축복이나 받게 하시려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결코 아니십니다. 또한 아들을 믿고 그 믿음의 대가로 물질의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은 그 아들을 믿고 그 아들 안에서 영생을 얻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물질을 무시하고 물질에 초연한 생활을 하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까? 절대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문제에 대하여 산상보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몸이 건강해야 할 것도 우리 하나님은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병자들을 고쳐 주신 이유는 우리들의 몸을 건강케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가정에 화평이 있고 사랑이 있어야 할 것도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이 잘 되어야 할 것도 알고 계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모든 축복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은 어떤 것이든 귀한 것임으로 그것을 받을 만한 그릇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는 날부터 하나님께서 그 축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들에게 나타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시는 시련입니다.
시련이란 말이 성경에서는 연단, 환난, 혹은 시험이란 말로도 쓰여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후에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개조하는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 들어오면 누구든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으로 옷 입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옛 사람을 벗어버리게 하시고 새 사람으로 옷 입히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무조건 축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애 중에 시련을 주심으로 그 같은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아직까지 육신의 사람으로 살아온 자신들이 이제 영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 위해 하나님의 처리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롬8:5절에서 이르시기를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육신의 사람을 죽이고 영의 사람을 성장시켜야 우리의 믿음이 자라며 예수를 닮아 가는 생애를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변화야말로 그리스도 안에서 참 축복된 생애를 이루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 같은 복을 주시기 위해 우리의 생애에 끊임없이 시련이나 환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참 축복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그 축복에 소망을 둘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우리가 왜 시련을 당해야 하며 연단 가운데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3절 하반 절에 나와 있는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망은 산 소망입니다. 산 소망이란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물질이나 명예와 구별시킨 말로 세상 것이 아닌 새로운 소망, 살아있는 소망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이런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났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산 소망이란 어떤 소망을 가리킨 것입니까? 이에 대하여 4절에 나온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늘에 간직한 우리의 소망이 무엇이라고 믿으십니까?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참 우리의 소망은 하늘에 간직한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이란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을 이루시기 위해 예비해 두신 하나님 나라의 복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는 시련은 그것이 가난으로 오는 것이든, 질병으로 오는 것이든, 어떤 예기치 아니했던 사고로 오든, 그런 시련에 대해 우리는 아직까지 생각했던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찾아오는 시련과 시험과 환난과 질병이 우리의 인생을 넘어지게 하는 것인 줄로 인식해 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우리가 당하는 시련에 대해 그런 것이 아니라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시련과 환난과 가난과 질고에 대하여 ‘믿음의 시련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믿음의 시련으로 우리에게 오는 유익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축복과는 좀 거리가 있어서 어떤 사람은 실망할지 모르지만 그 시련과 환난과 가난과 질고를 당장에 없애주시고 그 가운데서 건져주시며 우리의 육신의 생활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런 연단은 우리에게 참으로 귀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이런 연단과 시련의 기회를 많이 주시며 그렇게 하심으로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을 주셔서 주님이 오시는 날,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시려는 그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
만약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리고 그 어려움으로 여러분의 생애가 비참하고 어렵고 견디기 힘든 시련을 겪는다면 여러분은 결코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것이 헛되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의 상급으로 돌려 받는다는 사실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시련을 받을 때에 그 시련으로 인하여 내가 망하게 될 것 같고 내 인생이 그것으로 끝장날 것 같고 나는 이제 이 이상 더 아무런 소망이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들을 망하는 곳에 두지 아니하시고 그곳에서 오히려 여러분을 연단하시고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씌워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시련을 받으며 살아가십니까? 낙심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의뢰하시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시련으로 오는 근심은 잠깐이요 시련에서 얻는 축복은 영원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비록 신생교회에서 어려운 생애를 살아오시고 시련과 질고와 환난 중에서 그 생애를 지내 오셨다고 해도 나는 내 인생을 헛되게 살았다고 낙심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아름다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으로 주시기 위해 여러분의 생애를 오늘까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주장해 오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그 하나님께 감사하실 수 있는 성도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신생교회에 부르심을 받으셔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이 주시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저 하늘에 간직해 두신 일을 확실히 믿고 남은 생애를 더욱 아름다운 믿음으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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