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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6월8일~9일(土日)晴
▲낙동정맥종주3구간(석개재~진조산~답운치)*사진7컷
해봉(28명)
♠참 고
삼척시(三陟市)
1986년 1월 1일 삼척읍이 삼척시로 승격되며 설치되었다.
1995년 1월 1일 삼척시와 삼척군이 통합되었고, 2003년 2월 현재
도계읍과 원덕읍 등 2읍 6면 4동을 관할구역 으로 한다.
기구는 시장과 부시장이 있고, 기획감사실 등 2실 2국 14과로 이루어져 있다.
보건소·농업기술센터 등의 직속기관과 상하수도사업소·대이동굴관리사업소 ·
문예회관·내수면개발사업소·여성회관 등의 사업소가 있다.
중앙 정부와 광역자 치단체로부터 위임받은 업무와 삼척시 고유의 행정 및
민원업무를 수행한다.
주요 업무는 행정구역을 관리하고 조례와 규칙을 제정하며, 지방세 부과와 징수,
예산의 편성 집행, 국가 재산의 관리, 호적과 주민등록 관리, 복지사업과 위생사업,
각종 산업 진흥, 지역개발과 생활환경 개선, 체육과 문화예술 진흥 등이 있다.
시의 고유 사업으로는 삼척세계동굴박람회 개최와 해안관광명소 벨트화, 초당관광지
개발, 장호어촌 체험관광마을 조성, 폐광지역 진흥지구 개발, 7번국도 4차선 확장포장,
산촌종합개발 등이 있다.
'200만 동굴관광 삼척시대 개막'을 시정구호로 삼고, 소외계층 우선 행정, 특성 살린
지역개발 등을 시정방침으로 삼고 있다.
삼척시의 삼(三)과 일출을 형상화시킨 심벌 마크가 있으며, 삼척동자라는 마스코트도 있다.
시를 대표하는 동식물은 철쭉(꽃)과 느티나무(나무)·갈매기(새)이다.
청사는 강원도 삼척시 교동 592번지에 있다.
♣울진군[蔚珍郡]
경상북도 북동쪽 끝에 있는 군.
면적 989.05㎢
인구 6만 3511명(2003)
인구밀도 64명/㎢(2003)
가구수 2만 4115세대(2003)
행정구분 2읍 8면
군청 소재지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464
군의 꽃 매화
군의 나무 적송
군의 새 갈매기
동경 129°4'~129°29', 북위 36°38'~37°8'의 경상북도 최동북단에 있다.
북쪽은 갈령산을 경계로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과 접하고, 서쪽은 봉화군 낙동강 조항천을
경계로 소천면과 접하며, 남서쪽은 일월산맥과 고초령 백암산을 경계로 영양군 수비면·
일월면과 접한다.
남쪽은 등운산을 경계로 영덕군 병곡면과 접하며, 동쪽은동해와 맞닿 는다.
행정구역은 2읍 8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울진읍 읍내리 464번지이다.
군의 서쪽 반은 태백산맥의 주령에 해당하며, 백암산(1,004m)·통고산(1,067m)· 통길산(1,007m)·
오미산(1071m) 등 1,000m 이상의 높은 산이 많다.
반면에 동반부는 200m 전후의 구릉지대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바다까지 이른다.
군의 남부지방에는 울진-영덕 간 구조곡이 남북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매화천이
이 구조곡을 따라 흐르며, 백암온천도 이 구조곡에 있다.
하천은 대체로 서부산지(태백산맥)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유입되는 작은 규모이다.
북에서부터 부구천·남대천·왕피천과, 그 지류인 광천·매화천·평해천이 흐른다.
이들 하천은 심하게 천입곡류하면서 협곡을 이루나 중하류 지역에 이르러서는 좁은
곡저평야를 형성하여 농경지와 취락이 주로 이 곡저평야에 입지해 있다.
지질은 주로 선캄브리아대에 형성된 화강편마암·수성편마암이며, 왕피천 하구에서
매화리에 이르는 지역과, 후포면에서 학곡리에 이르는 지역에 석회암(조선계)이 좁고
길게 분포해 석회암 동굴(성류굴·영천굴)을 형성해 놓았다.
기후는 남부 동해안형 기후로, 연평균기온 12.8℃, 1월 평균기온 -0.1℃, 8월 평균기온
25.5℃로 내륙지방보다 겨울이 따뜻하며, 위도상으로약간 남쪽 내륙에 있는 영주의 1월
평균기온 -4.1℃보다 4℃나 높다.
이는 태백산맥이 북서계절풍을 막아 주고, 동해난류가 높새바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연강수량은 974.9mm로 적은 편이나 겨울철에는 북동 기류형 기압배치로 인해 강설량이
약간 많은 편이다.
♣지명유래 문의에 대한 삼척시의 답변입니다.
삼척시 관광홍보과의 답변(2002.6.5.)
안녕하십니까? 삿갓재, 묘봉, 석개재는 모두 우리시 가곡면 풍곡리와 경북 봉화군 석포면의
경계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삿갓재는 해발 1,119m이며 옛날 큰 홍수로 침수되어 정상을
삿갓 모양 만큼 남겨 놓고 인근 모두가 물에 잠겼다 하여 이 봉우리를 삿갓봉이라 명명하였고
재의 이름 도 삿갓재라 하였습니다.
묘봉은 풍곡리 쪽의 문지골에 고양이가 많이 살았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문지골 막 장에는
고양이 형상의 바위가 있어 묘(猫)봉으로 불리운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석개재는 석포면과의 경계를 이룬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봉화군 석포면 쪽으로 석계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자료가 불충분하여 매우 죄송합니다.
더 필요한 자료가 있으시면 봉화군청으로 문의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산행 코스(3구간)
04:00=석개재
06:05=용인등봉
07:17=삿갓재
08:27=임도삼거리
->1137봉
12:30=한나무재
->진조산
-->굴전재
15:20=답운치
총 11시간20분
참여 대원
대장 : 김성수, 정영길, 하종관(후미담당)
대원 : 신철호(회장) 강형태, 구덕관, 김형태, 김두호 부부, 김윤근, 김영철. 마광선,
박종문, 백운기, 송태섭, 오지호, 이혜연, 이승우, 이진복, 이종원, 이 근, 이형동,
조숙희, 최금영, 최철식, 최영보, 남상기, 일일회원(28명)
☞☞☞월드컵 첫 승의 열기속의 늦은 밤 시민회관, 크라운 호텔정문 앞.
안승태 대원 부녀가 아버님 제사 때문에 참여 못한다며 무사히 다녀오라고
전송 나와 있습니다.
밤 10시 정각, 월드컵 이야기로 부산한 가운데 출발합니다.
김 대장이 일정안내 끝에 24km의 긴 구간이기 때문에 B조를 운영, 한나무재에서
마을에 교섭하여 트럭을 준비하겠다고 안내방송 합니다.
제2구간 종주 비디오를 시청하며 달리다 언양휴게소를 거쳐 경주I/C로 빠져
7번 국도를 달리다
01시19분, 망양휴게소에서 안전운전을 위해 1시간 취침합니다.
산행기점 석개재 도착이 03시50분.
석개재(石開)는 "돌문이 열린다"는 뜻으로 석포(石浦)의 옛 이름으로써, 돌이 많은
산으로 사방이 막혀 있는데 이 돌문이 열리면 이 곳에 1 만 가구 이상 살게 될 것이
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경상북도 봉화군석포면’경계간판이 어둠 속에서 마지해주고 캐넌은 하종관에게
맡기고 여분의 캠코더는 정대장에게, 다시 사용법을 설명합니다.
04시 플래시 불빛 속에 왼편 완만한 능선을 따라 사전답사 왔든 이종원대원이 선두,
후미 하종관으로 출발합니다.
김 대장이 신 회장을 비롯해 5명을 임도로 안내.
왼쪽능선을 끼고 속보로 가다
04시20분, 왼편비탈에 시그널이 매달려 있는 곳에 짙은 풀숲을 해치고 올라 가게하고
트럭교섭을 위해 답운치로 먼저 간다며 석개재로 되돌아갑니다.
04시37분,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 치고 가다 능선에 올라섭니다.
이제 오른편의 봉화군과 왼편의 삼척시의 경계선을 따라갑니다.
동쪽, 잡목가지사이로 여명이 트이지만 발아래는 가시넝쿨, 욱어진 잡목과 풀숲,
돌과 뿌리의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어 긴장을 풀 수가 없습니다.
맨 앞, 신 회장이 헤드램프를 비추며 가다 잡목이 가로막는 곳에 시그널을 달고 동쪽이
연청색으로 밝아오는 가운데 이름을 알 수 없는 영롱한 새소리가 들려오고, 싱그럽게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뒤따라오든 강대원이 소리쳐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이 맑은 공기! 야~ 저 광경 안본사람이 누가 이 산에 대해 감히 말할 수 있노!“
04시45분, 능선을 따라 가파르게 올라가는데 동편의 나뭇가지 사이로 황금빛으로
물드는데 뒤에서 강대원의 목소리가 다시 들립니다.
“야~ 진복이! 날고 기도 나보다 늦네!”
석개재에서 능선으로 출발했든 팀이 벌써 추적해왔습니다.
가파른 오르막에서 선두가 가픈 숨을 쉬며 올라오고 곧 일출할 모양이지만 나뭇가지와
잎으로 일출촬영은 힘들 것 같습니다.
04시57분, 비탈을 오르며 잡목가지 사이로 보이는 황금햇살을 캠코더에 담습니다.
05시7분, 선두그룹이 추월해가고 신회장 일행이 작은 구능 위에서 휴식하다 출발.
산죽, 조릿대 군락지를 지나 완만한 무명봉을 넘습니다.
05시30분, 바위사이 내리막을 거쳐 오른쪽으로 즐비한 금강송 군락지가 도열해 있고
기묘하게 꼬인 연리지(連理枝) 노송이 시선을 끕니다.
# 참조 [백과사전] 연리지 유래
후한서(後漢書) 채옹전(蔡邕傳)에 나오는 이야기. 후한 말의 문인인 채옹(蔡邕)은 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채옹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삼년 동안 옷을 벗지 못하고 간호해드렸다. 마지막에 병세가 악화되자 백일 동안이
나 잠자리에 들지 않고 보살피다가 돌아가시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시묘(侍墓)살이를 했다.
그 후 옹의 방앞에 두 그루의 싹이 나더니 점점 자라서 가지가 서로 붙어 성장하더니 결(理)이 이어지더니 마침내 한그루
처럼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채옹의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와 자식이 한 몸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당현종과 양귀비의 뜨거운 사랑을 읊은 시
‘장한가(長恨歌)’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
칠월칠일장생전(七月七日長生殿7월 7일 장생전에서)
야반무인사어시(夜半無人私語時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약속)
재천원작비익조(在天願作比翼鳥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재지원위연리지(在地願爲連理枝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천장지구유시진(天長地久有時盡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가 있건만)
차한면면무절기(此恨綿綿無絶期이 한은 끝없이 계속되네.)
위 시의 비익조는 날개가 한쪽 뿐이어서 암컷과 수컷의 날개가 결합되어야만 날 수 있다는 새로서 연리지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
좌우 숲이 가려 경관은 미쳐 보지 못했는데 뒤에 안일이지만 후미담당 하대장이
소나무 가지에 올라 산 지세가 고양이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의 묘봉과
그 뒤편으로 깔려있는 운해를 여러 장면 촬영하였다고 합니다.
등산로 가운데 고사목이 가로누워있는데 오랜 세월에 새 생명을 위해 부식 중입니다.
정 대장이 앞에서 캠코더로 촬영하며 오는 저 모습을 촬영하고 있습니다.
좌로 삼척 가곡면으로 떨어지는 갈림길을 지나고
6시10분, 다시 산죽 조릿대 군락지를 통과하면서 산새소리와 특이한 크낙새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처음 들어보는 새소리를 녹음하겠다고 한동안 대기.
하지만 녀석이 낌새를 알았는지 조용하기만 합니다.
가로누운 고사목을 넘고, 낮은 잡목 속에 우뚝 선 금강송 두 그루.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에 위치하고 있는 해발 1124m인 용인등봉(龍仁登峰)은
언제 지나쳤는지 알 수 없는데
풍곡리 덕풍마을에서 볼 때 문지골과 괭이골 사이에 솟아 오른 산릉의 최고봉으로
"착한(어진)용"이란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산은 멀리서 보면 힘들게 보이지만 가까이서 다가서면 이렇게 순한 길도 있는 모양입니다.
6시47분, 바위길이 시작되고
6시57분, 내리막길이 열리고 아무른 조망도 없이 오름과 내림을 거듭합니다.
그러다 왼편으로 높이 2m 정도에 크낙새 집이 다세대로 구멍 뚫어 마련해 놓았는데
아무래도 시행착오로 짓다 그만 둔 건지 등산객들의 소음으로 폐가를 시켰는지 알 수
없습니다.
무심코 걸어가다 이마와 부딪치기 적당한 높이로 가로누운 나무 밑을 거쳐
7시17분, ‘국유림사용허가지’라는 흰 말뚝이 서있는 삿갓재 임도에 내려섭니다.
오른쪽으로 완만한 오름을 따라 임도변에 시그널이 보이고 한참 올라가니 왼편 잡목
한그루가 임도 쪽으로 쓸어져 누워있습니다.
7시37분, 임도와 등산로고 겹치는 공터에 중간 그룹이 식사를 끝내고 출발준비 중입니다.
지도상에 삿갓봉이 왼편으로 있을 것 같은데 보이지 않고 여기서부터 지금까지 강원도와
경상북도 경계선을 타고 왔는데 이제 강원도와 헤어져야 합니다.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후미담당 하 군이 임도를 따라 뛰어오고 있습니다.
캐넌을 받아 점검해보니 촬영을 얼마나 했는지 잔여 필름이 겨우 2,3매.
뒤따라 이근과 이혜연 대원이 손을 흔들며 도착합니다.
이근대원은 완주한다며 시간 없다고 식사도 않고 그냥 갑니다.
하 군등 후미가 식사하는걸 보며 단독으로 임도를 두고 등산로를 따라 출발합니다.
8시7분, 약 10분 만에 다시 임도에 내려섭니다. 그리고 멀리 지나가야할 능선을 조망하며
내려갑니다. 왼편으로 멋진 금강송이 보이고 계속 임도를 따라 내려가는데 임도 굴착 작업
으로 좌우 비탈의 수목들의 뿌리가 그대로 노출되어 안타깝습니다.
도중에 무얼 통제 하겠다는 건 지 체인으로 차단시켜놓았습니다.
공사를 하다 그만 둔지 오래되었는지 곳곳에 사태가 나서 삭막합니다.
8시27분, 임도삼거리에 올라섭니다.
‘96, 국유임도 위치 경북울진군서면소광리 2.28km’라고 쓰 놓은 석비가
풀 속에 누워 있고 석비에 방향표시에다 ‘소광-석포-전곡’이라고 쓰 놓았습니다.
그리고 좌우로 차단기가 내려져 있습니다.
소광 능선 쪽으로 시그널이 매달려있어 올라갑니다. 얼마나 갔을까.
왼쪽임도 쪽에서 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려 능선으로 올라오라고 했더니 후미담당
하 군이 능선 길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내려오라고 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촬영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할 수 없이
흙 사태가 난 비탈을 타고 내려갑니다.
완만한 내림의 임도 길에 이혜연 대원이 내어놓는 살얼음이 떠있는 차가운 오렌지 주스와
롱다리 조대원이 내어놓는 냉장 파인애플로 목을 축입니다.
숲 속 능선 길은 시원했지만 조망이 없어 답답했는데
임도는 사방이 터여 종주능선인 1137봉과 주변의 금강송, 작은 암봉까지
시원한 경관으로 즐기며 산행 하지만 반면에 임도개설에 따른 환경파괴가 너무 참혹합니다.
그래서 이래저래 촬영소재가 너무 많아 촬영하기가 무척 바쁩니다.
문제는 임도개설을 해 놓고 시행착오를 뒤늦게 깨달았는지 공사중지를 하였고
보강공사를 않고 방치해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 대장이 짙푸른 정맥자락과 작은 암봉을 배경으로 기념촬영 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임도를 따라 내려갈수록 자연파괴현장은 더욱 처참합니다.
벼랑으로 잘려 나간 곳에 금강송등 온갖 수목들이 뿌리를 들어낸 체 간신히 서있는가 하면
아예 뿌리를 하늘에 두고 벼랑에 매달려있기도 합니다.
그런 환경 가운데 임도아래는 거수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울진군수에게 쓴 소리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하 대장이 소리칩니다.
“야~따~ 음개나무 하고 드룹나무 쎄었네 쎄었어!”
컨디션이 안 좋은지 강 대원은 뙤약볕 임도변에서 머리를 떨구고 앉았고
우측으로 1137봉이 무심히 내려다보고만 있습니다.
9시46분, 임도와 등산로가 마주치는 곳에 신 회장이 대기하고 있다 출발하고
뒤따라 시그널이 달려있는 시원한 숲 속 등산로로 접어듭니다.
10시14분, 가벼운 오르막을 시작하여 옛날, 큰 산불이 있었는지 곳곳에 불탄 거목의
잔해가 보이고 오르내림을 반복하다
10시28분, 한가운데 소나무가 자라는 헬기장을 통과합니다.
2분 간격으로 다시 폐기된 헬기장을 지나 오금통이 온다는 중년대원이 등로변에서
더덕을 케고, 이 근대원이 가픈 숨을 몰아쉬며 앞질러 올라갑니다.
수평으로 가지 친 고목에 혹부리마냥 기생식물이 자라고
11시18분, 산불 잔해가 있는 지점에 많은 대원들이 휴식하며 간식합니다.
김윤근 대원이 능숙한 산행에 그사이 온갖 산나물을 배낭 가득 채취하였다며 자랑하고
출발합니다.
11시35분, 표지석만 있는, 나무사이로 겨우 조망되는 934봉을 넘어 엄청난 금강송 한그루
옆을 지나
11시45분, 콘크리트헬기장을 통과합니다.
내리막을 거쳐
12시5분, 빠끔히 한나무재가 조망되는 시계가 트이는 곳에 이릅니다.
잠시 주변을 살피다 등산로 우측으로 꺾어져 비탈을 오르는데 이건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정글지대입니다.
잡목가지에 캠코더와 얼굴이 할퀴며 그냥 가픈 숨을 몰아쉬며 급 비탈을 올라서니
바로 헬기장입니다.
잠시 숨을 고루고 다시 풀숲터널을 지나 임도 절개 공사로, 된 비알이 된 잡목가지를
잡고 쩔래 쩔래를 외치며
12시30분, 잔걸음으로 내려선 임도가 한나무재 입니다.
석개재를 출발하여 8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어느 나라인지 알 수 없는 안일왕이 피난 중에 피곤하고 목이 말라
이 고개에 있는 자작나무 물을 받아 먹었다하여 한나무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국립지리원에서 밝혔습니다.
정 대장도 안질로 산행을 포기하였기 때문에 하 대장에게 대신 필름 한 장 남은
캐넌을 넘겨받고 정 대장이 갖고 있던 캠코더를 받아 꽁지로 출발한 이 대원을
추적하라는 특명?과 내 캠코더로 완주 촬영하기로 해 다시 조작법과 촬영법을 설명 받고
12시40분, 답운치를 향해 가볍게 비탈길을 뛰듯이 올라갑니다.
선두와 한 시간 이상 시차가 난다며 신 회장을 비롯, 9명이 김 대장이 교섭해 온다는
트럭을 기다립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하 대장으로부터 캠코더 화면이 희미하게
보인다는 무전이 오고 몇 번 교신으로 줌을 교정하여 보인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한데 트럭이 길을 잘못 들어 해매다 올라온다는 소리를 듣고 벌나비를 유인하기 위해
흰 잎으로 변신한다는 개다래나무와 백목련을 촬영하며 임도를 따라 내려오다
14시5분에 트럭을 만나 승차, 울퉁불퉁한 임도를 뒤뚱되며 달리다 36번 지방도를 거쳐
14시25분,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고개가 높아 구름을 밟는다하여 붙여진 이름의
해발 619m의 답운치(踏雲峙)에 당도합니다.
곧 캐넌으로 마지막 한 컷 촬영을 마치 고 집행부에서 준비한 술과 안주로 뒤풀이를
마치고 이 근대원을 추적하고 있는 하 군을 기다리며 김 대장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15시20분, 하대장 일행이 도착하여 11시간 20분의 종주가 끝납니다.
대기하고 있든 버스가 내려와 곧 출발합니다.
석포와 소광리, 전곡리로 연결시켜 얻는 경제적 소득은커녕 삿갓재 임도에서 시작하여
무분별한 임도개발로 망가져 가는 자연을 생각하고 삼척시와 울진군 홈피에 들려 쓴 소리
해야겠다며 한숨쉽니다.
16시20분, 굽이굽이 구슬구슬 구주령(九珠嶺)을 넘어 백암온천에 들려 피로를 풀고
17시50분, 출발.
20시54분, 부산T/G를 무사히 빠져 나왔습니다.
이건 부산으로 돌아와 이튼 날, 캠코더 촬영을 확인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촬영된 화면은 마구 흔들리고 진조산을 넘고 굴전고개를 지나서인가 어느 순간 화면이
까맣게 변하면서 하 대장의 목소리만 들립니다.
잠시 촬영을 마치고 중지 버튼을 눌루지 않은 모양입니다.
“근이 형님~!”
“이근이 형님~!”
“해봉~!”
“에~이!......... 해봉~!”
“낭패네~”
“갈수록 미치겠네!......에잇!”
진조산에서 이 대원을 따라잡고 함께 가다 잠시 사람을 놓였는지 당황하는 하 대장의
목소리가 한동안 이어져 갑니다.
신 회장에게 무전으로 보고하려 했으나 통신 불량으로 단절되기만 하고 그리고 긴
시간이 흐른 뒤...
“답을 좀 해주든가 뭉디야 !”
“형 찾는다고 얼마나 해맸는지 아나 !”
이 근대원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나는 니가 먼저 간줄 안 알았나!”
“나는 니가 보이면 잡아 먹을라고 했다!...물이나 한 빠울 주라!”
이 근대원이 하 대장에게 이야기도 않고 먼저 출발한 탓인가.
다시 화면이 나타나며 얼굴에 일회반창고를 붙인 이 근대원이 옷맵시를 고치며
“이러면 됐나? 가까?”
“응~~ 지친 모습이 역역하네~~”
하며 촬영합니다.
그 와중에 캠코더로 촬영하고픈 생각이 있었든 모양입니다.
그 소동에 십원짜리가 수십 번 나왔을법한데 겨우 뭉둥이 소리만 한번 외친
하 종관 대장의 인품이 엿보입니다.
이런 총각을 두고 이 땅의 아가씨들은 모두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이런 어려운 우여곡절과 사정이 있은 줄도 모르고 김 대장으로부터 트럭교섭의
고충담을 듣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수고가 많은 하 대장의 하산하는 모습을
담겠다고 하산 지점 건너편에서 김 대장과 스탠바이하고 있었습니다.
무전교신으로 하산 위치를 확인한 김 대장이 도로를 건너 올라가고 곧 하 대장과
이 근, 김 대장이 뒤따라 무사히 내려옵니다.
산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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