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28. 01:25
단 이틀동안 한국 대중음악계는 정성조라는 거장에 이어 신해철이라는 소중한 뮤지션을 잃었다. 지난 22일 심장 이상으로 쓰러진 마왕 신해철이 27일 오후 8시께 저산소 허혈성 뇌 손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신해철은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쓰러지기 전 그는 '넥스트' 컴백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더욱 안타깝다.
신문기자시절 생전의 신해철을 몇 차례 사진으로 담은 적이 있다. 볼 때마다 그는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신해철은 반세기 음악여정 동안 무수한 음악실험을 했다. 멈추지 않고 실험적 음악에 몰두하며 늘 새로운 음악적 변화를 추구한 것은 그의 도전정신 때문이다. 1988년 MBC대학가요제 본선에서 밴드 '무한궤도'의 리드보컬로 대상을 받았던 '그대에게'를 부르는 신해철은 풋풋했다. 대학생 밴드가 들려주는 사운드라 믿기 힘들 정도로 웅장한 스케일의 곡이었다.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조용필의 지원으로 발표한 첫 솔로 앨범 수록곡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수록곡 '안녕'은 파격적인 영어 랩을 삽입했던 문제작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재즈 카페' '나에게 쓰는 편지' 등이 수록된 '마이셀프(Myself)'는 국내 최초의 미디 음반으로 회자된다.
윤상과 함께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노댄스'는 테크노댄스 음악 열풍 속에 오히려 테크노의 서정성을 다뤄 장르의 본질을 일깨워 준 수작이었다. 밴드 '넥스트'는 꺼져가던 한국 록에 회생의 기운을 수혈했던 신해철의 대표적 정체성이다. 그는 넥스트를 통해 대중적인 히트곡뿐만 아니라 실험정신이 투철한 곡들을 쏟아냈다. '인형의 기사' '먼 훗날 언젠가' '해에게서 소년에게' '날아라 병아리' 등 장르적 진폭이 큰 히트곡들이 넥스트의 음악적 아우라를 웅변한다. 넥스트 2집 '더 리턴 오브 넥스트 파트 1: 더 비잉(The Return of N.EX.T Part 2: The Being)'은 명반으로 손색이 없다. 수록곡 '더 디스트럭션 오브 더 셸(The Destruction Of The Shell)'은 러닝 타임이 10분에 달하는 대곡으로 감탄을 불러 일으켰다.
1996년 발표한 넥스트 3집 '더 리턴 오브 넥스트 파트 2: 월드'는 국내외적으로 호평을 이끌어냈다. 당시 일본의 한 음악평론가는 ‘올해 나온 음반 중 최고'라로 추켜세웠고 일본에서 정식 음반이 아닌 해적반으로 수만 장이 팔려나갔다는 전설을 낳았다. 1997년 넥스트의 전반기를 마감한 4집 '라젠카 어 스페이스 록 오페라(Lazenca A Space Rock Opera)'는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록 음악의 접목을 시도한 앨범이다. '먼 훗날 언젠가' '해에게서 소년에게' 등 대중적인 히트곡 등도 냈다. 밴드 해체 이후, 신해철은 '크롬' '모노크롬' '비트겐슈타인' 등을 통해 음악적 실험을 이어갔다.
서강대 철학과를 자퇴한 신해철은 작사가로서도 탁월했다. 특히 '넥스트'의 정규 2집 '더 리턴 오브 넥스트 파트 1: 더 비잉'은 철학적인 언어를 가요에 접목한 긍정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사회 비판적인 내용의 가사도 거침없이 다뤘다. 한일월드컵 당시에는 싸이와 함께 파격적인 무대를 펼친 것도 기억에 남는다. 2004년 재결성된 넥스트로 펴낸 5집 '더 리턴 오브 넥스트 파트 3: 개한민국'은 정치, 종교, 이라크 전쟁 파병반대, 세대갈등, 노숙자, 집창촌 등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대한 가사를 담아 대부분의 수록곡이 방송을 타지 못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노무현대통령의 선거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
파워풀한 노래 뿐 아니라 감성을 자극하는 발라드 곡에서도 그의 가사는 빛났다. '날아라 병아리'는 병아리의 죽음을 마주한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묵직한 울림을 줬고,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Here I Stand For You)'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한 다짐을 진지하게 풀어냈다. '절망에 관하여' '해에게서 소년에게' 등도 수작이었다. 자신의 짧은 삶을 예견한 것일까?! 생전의 그는 이별의 아픔을 다독이는 가사를 많이 남겼다. '내 마음 깊은 곳에 너'가 대표적이다.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긴 시간을 스쳐가는 순간인 것을/ 영원히 함께할 내일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기다림도 기쁨이 되어."
적어도 19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이들은 그의 갑작스런 부고소식에 마음이 아릴 것 같다. 얼마나 많은 그의 노래들과 거침없는 언변으로 위로 받고 감탄하고 때론 통쾌했던가. 신해철이 지난 6월 발표한 미니앨범 '리부트 마이셀프(REBOOT MYSELF Part.1) 수록곡 '아따(A.D.D.a)'는 네오솔, 펑크, 포스트 디스코, 라틴, 재즈 등 5가지 장르를 혼합한 '원맨 아카펠라' 곡이다. 1000개의 녹음 트랙에 자신의 목소리를 중복 녹음하는 방식으로 작업한 이 괴벽에 가까운 실험적 곡은 오직 그만이 해낼 수 있는 작업이었다. 그는 비통하게도 음악적으로 정당한 평가도 받지 못하고 가버렸다.
가수 신해철이 2011년 7월 한 방송에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남긴 유언 영상이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남편이 되고 싶고 당신의 아들, 엄마, 오빠, 강아지 그 무엇으로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 가슴이 용광로처럼 뜨거웠던 그는 필터링되지 않은 직설적이고 과격한 언어와 도발적 메시지로 만든 호감과 비호감으로 극렬하게 양분된 ‘마왕’이란 별명을 얻었지만 그의 가슴 속엔 따뜻한 인간미가 공존했던 사람이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그의 회복을 기도했건만 뭐가 그리 바빠 이리 황망하게 먼저 가는 것인가. 비통한 마음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마음이 너무 아플 따름이다. 이렇게 보내기엔 그의 재능이 너무 아깝고 무엇보다 너무 젊은 나이가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