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산박씨(龜山朴氏)
시조 박 천(朴蕆)은 신라 54대 경명왕(景明王)의 장자인 밀성대군 박언침의 14대손(15세손)이다. 자는 석보(碩輔)로써 고려 말에 정승을 지냈다.
조선 태조 5년(1396년)에는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으로 공신에 녹훈되었다. 또한 형인 정국군(靖國君) 박 위(朴威)와 함께 대마도 대첩에 공을 세워 구산군(龜山君)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구산으로 하였다.
박 천은 의흥현(義興縣)을 중심으로 한 동북 4개 면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다스렸다. 구산은 의흥의 옛 이름이다. 의흥은 경상북도 군위군 의흥면의 지명이다.
박경장은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망우당 곽재우와함께 화왕성 전투에서 공을세웠다. 이외에도 박처화, 박상소, 박상화, 박래삼, 박래봉, 박봉상 등이 임란 때 이름이 남아 있다. 박 전은 자가 공근, 호는 명계로 성균 생원이었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오로지 학업에만 힘써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항렬자는 17世 재(在), 18世 조(祖), 19世 태(泰), 20世 식(植), 21世 만(晩), 22世 왕(王)이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구산박씨는 1985년에는 총 1,099가구 4,297명, 2000년에는 총 1,699가구 5,27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930년 경 경북 군위군 우보면 미성리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오늘날에는 경북 군위군 의흥면 수북리, 경북 군위군 우보면 이화리, 경북 군위군 부계면 가호리, 경산군 진량읍 대원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대구와 경북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주요파는 판관공파, 사과공파, 사맹공파, 생원공파, 교위공파, 좌랑공파, 참의공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