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 인사말>
내가 공무원 현직에 있을 때, 향토사에 취미가 있어서 얕은 식견이지만 스스로 발굴하고 기록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내공이 쌓였는지 한때는 공무원 교육원 향토사 전문 강사로서 강의를 하였다. 향토사 발굴의 벽이 언제나 고문서라는 벽에 부딪치는데, 평생직장이었던 공직 퇴직 후에 뒤늦게 독 학으로 고문서 번역을 연습하고 있던 중, 우연한 기회에 전남대학교 한문고전번역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고, 2015년 7월말에 수료하였다. 이제 남은 과정은 학위 논문을 쓰는 마지막 고비만 남았습니다.
이 이제유고(泥亝遺稿)는 대학원에 들어오기 전에 재야(在野)에서 독학으로 번역 연습을 해본 작품인데, 또 우연하게 본 유고를 나주목 향토문화 연구회에서 발간하는데, 이재홍 회장님으로부터 번역을 의뢰를 받아, 다시 재벌번역 해보니, 대학원에서 번역 연마를 한 후에 다시 보니, 초벌 번역의 많은 곳에서 오역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제유고는 나주나씨 21세 남간파(南磵派) 나학신(羅學慎)의 문집으로, 후손들이 선조 나학신 현창사업의 일환으로 재원을 지원하였기에, 나학신 인물평전은 다만 이제유고 번역으로는 스토리텔링이 되지 않아, 제1편은 이제유고 해제(解題)를 넣었고, 제2편은 이제유고 번역과 해설을 곁들여 넣었으며, 제3편은 이제유고의 주요 내용인 나학신 조모 수직(壽職)과 관련하여 세 사람의 효자, 효부가 탄생하고 또한 철종(哲宗) 때에 정려문(旌閭門)을 세우도록 나라에서 허락하였는데, 그 정려문의 초창과 중수 그리고 재중수 과정의 기록물을 발견하였고, 복호 은전과 관련하여 암행어사가 직접 나주에 내려와 처결한 암행어사 완문(完文)도 발견되어, 이러한 내용을 스토리텔링의 마무리글로 넣었습니다.
오늘날 한자로 써진 고문헌을 일반인들에게는 별로 관심 밖에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한자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해방 후 한글 전용세대가 되면서 갑자기 옛 한자 기록을 마치 외국어인양 배척한 것이 한자를 배척하는 촉매제가 된 듯합니다. 그렇다고 우리 선대가 창작하고 기록한 우리의 문학과 역사가 모두 한자로 써진 고문헌이라고, 우리 것이 아니고, 중국의 것이란 말입니까?
여기에서 한글 전용세대들이 갈등하고 있다고 봅니다. 대학원에서 한문고전 번역학을 공부해보니, 생산된 모든 논문들이 한글전용 세대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형식으로 만들어 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 역자(譯者)는 한자를 모르는 한글 전용 세대를 위하여 한글과 한자를 병기하여 우선 읽을 수 있도록 하였고, 중간 중간 해설과 역주(譯註)를 충실히 넣었기에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또 한글 중심으로 읽다 보면 한자를 배울 수 있는 교과서가 됨은 물론 가정에서의 충효를 간접적으로 익히는 기회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자부 합니다.
나주 세지면 죽두리에 서 있는 삼효문(三孝門)을 겉만 보아서는 그 속에 담겨진 끈끈한 효사랑 이야기와 슬픈 인간사가 어찌 보이겠습니까? 옛 문집에는 이러한 사연들이 대체로 꼼꼼히 기록되어 있지만, 한자였기에 알지 못하다가, 드디어 번역함으로 일반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였으니 역자 또한 뿌듯합니다.
필자가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후 첫 작품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두려운 것은 혹여 오역(誤譯)하지 않았나 하는 노파심이지만, 아직도 학인(學人)의 과정이기에 혹여 지적을 해주시면 인쇄된 책이야 곧바로 수정할 수 없지만 인터넷에 올린 글은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孝는 孝를 말한다고 해서 孝가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孝는 곧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이제유고가 번역이 되도록 앞장서 문중 의견을 규합하고 원고 교정을 보아준 故孝子 羅環洙의 제2자 나상철과 이제공의 직계 후손으로 출가외인인 羅東任님의 노고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15년 10월 일 나주 錦溪里 書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