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치는 점수화할 수 없다
제 삶을 지배했던 단 하나의 감정은 슬픔이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이 세상과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하지만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서 있는 저는 이제야 알았어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입시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압박, 주변의 시선과 말들...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지" "좋은 대학 가야지 무시 안 당한다" "고등학교까진 졸업해야 사람 된다".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면 묵살당해요. 욕구를 해소하고자 하면 날라리가 돼요. 사실 누군가에겐 아주 작은 일일 수 있어요.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는 이게 축적이 된다는 거예요. 내 가치를 증명하려면 학교에 쓸모가 있어야 해요. 내 쓸모를 증명하려 노력해야 해요. 그리고 그건 자신의 자존감과 직결되어 있어요. 시험이 끝난 날, 시험 결과를 확인할 때 우는 학생들이 많아요. 그건 그 학생들이 성숙하지 못해서가 아니에요. 그게 자신의 가치가 되는 거예요. 내 가치가 점수가 되는 것, 대부분 경험해 보셨을 거예요. 이건 심각한 사회 문제예요. 정말 바뀌어야 해요. 저는 저에게 문제가 없다는 걸 깨닫는 데 태어나서부터 이번년도까지의 시간이 걸렸어요. 제가 이뤄 낸 가장 큰 성과에요 나에겐 문제가 없다. 이 간단한 걸 알아차리기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는 뭘까요? 학교를 다니며 이런 생각을 하는 건 그냥 쓸데없는 일이거든요. ‘당장 시험이 앞에 있는데 복습을 하진 못할망정 다른 생각을 한다고?’라는 생각인거죠. 여기서 제가 하는 말들은 단편적인 제 경험이에요. 이것보다 엄청나게 많고 다양한 슬픔들이 있을 거예요. 제가 하는 말이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한번만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입시제도가 정말 공정하고 모두가 거기에 목을 매달 가치가 있는지. 물론 많은 분들이 수능이란 걸 보기 위해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했을 테고 그 노력이 가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하지만 정말 그렇게 노력을 해서 원하던 결과를 얻었을 때 모든 빈곤과 걱정이 전부 사라지고 앞날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또 수능을 못봤으면 빈곤에 시달려도 괜찮은가요? 제발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앞으로 계속 반복되는 이 일을 다른 이들이 겪게 될 거라는 게 더 두려워요. 제가 스스로 생각해서 표현한 언어들은 ‘말대꾸’가 되었고 차별적인 발언에 문제제기를 하면 ‘유난스러운 아이’가 되었어요. 저에 대한 존중은 기대할 수 없고 권력에 굴복하라는 말을 예의란 말로 포장하여 귀에 박히도록 들어야 했어요. 저는 이런 일들이 학생들의 생각엔 관심이 없고 성적에만 중심을 두는 입시제도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이 구조에 조금의 균열을 내고자, 또 사람 눈재로서 스스로의 가치를 쓸모에 두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입시거부선언을 합니다. 저를 평가당하는 삶을 거부합니다.
2019년 11월 14일
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