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들 모두 안녕하시지요?
첫 아홉 시간의 산행을 선배님들 덕택으로 무사히 잘 마친 임수연입니다.
아직 아무도 지난 주 산행 후기를 올리시지 않으셨기에, 감히 막내가 몇 자 적습니다. ^^
4시 3분에 정확히 버스 안에 불은 켜지고, 선잠에서 깬 몇 몇 분들이 버스에서 내려 바삐 어디론가 향하시고, 저도 분덕 언니와 순영 언니를 따라 갔죠. 별이 환히 뜬 밤에 죄의식없이, 아니 입산전 통과의례처럼 행해진 노상방뇨를 시작으로 이렇게 저의 첫 산행은 시작되었습니다.
생각보다 그리 춥지 않은 날씨 덕에 가뿐히 시작한 동트기 전 산행은, 몇 개의 고개를 넘어 구티재에서 잠깐 숨을 돌린뒤, 또, 몇 개의 고개를 오르락 나리락 하더니, 기어이 밤의 자락 속에 숨어 있던 (달력 속에서만 보았던) 설산들을 아침 해가 살려내어 우유빛 속살을 다 보여주고도 한참이 지나야 아침 먹을 시간을 주더군요. 염치 좋게 떡국이며, 밥이며, 김치며, 주는 대로 다 받아 먹었더니 그제야 다시 따라나설 엄두가 났습니다.
그런데, 끝없이 펼쳐진 바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끝이 없이 펼쳐진 설산이 있더이다. 왜? 가히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는 몇 부류의 인간은 이렇게 살까요? 뜨뜻한 온돌에 원앙금침은 아니더라도 보송보송한 극세사 원단에, 날아갈 것 같은 양털 이불 이딴거 다 놔두고, 버스에서 한 데잠을 자며, 보이는 건 앞 사람의 발자국과 표지기를 찾는 렌턴 불빛을 좇아, 손 끝 아리게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양볼을 얼리고, 길 끊어진 곳은 미끄러져 굴러가며 길을 내고, 다시 내려올 봉우리들을 왜? 오르는 것일까요? 이걸로 박사 논문을 써 볼까요? 산을 오르는 행위 속에 숨어 있는 인간의 속성. 산이 있어 오른다는 조지 말로리 의 답보다 더 멋진 답을 낸다면 새벽을 갈라 꾸역꾸역 산을 오르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셀 수 없이 언덕을 오르고 내리며 아래 위 무릎 뼈가 닿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를 느낄 때 쯤, 이제 1.1 km 남았다는 희망의 메시지. 아! 그러나 그것이 내 생애 가장 긴 1.1 km가 될 줄이야. 버스에서 간식을 먹겠다는 의지 하나로 배고픔을 버티며, 눈 앞의 저 봉우리가 마지막 봉우리일 거라 수 없이 기대하며, 걸었던 마지막 3 km. 내 의지가 아닌 무엇이 끝까지 갈 수 있게 해 준 것인지는 지금도 의문이지만 어쨌든, 나는 그 영원한 1.1 km를 마침내 끝내고 그리 반가울 수 없는 버스로 돌아왔습니다.
백두 산우회는 정말 좋은 곳입니다. 1. 산행 후 목욕을 한다. 땀으로 척척한 옷 다 벗어 버리고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그 때의 기쁨을 어찌 감격없이 말할 수 있겠는가? 2. 맛있는 것을 아주 많이 먹는다. 정말 많이 먹는다. 혹시 이 모임이 식욕을 돋우기 위해 산행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아주 잘 먹는다. 3. 사람들이 좋다. 아직 남성분들과는 긴 말을 나눠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여성 동지들은 매우 좋은 것이 분명하다. 어떤 모임의 여성분들이 좋다면 그 모임은 정말 좋은 사람들로 구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사회 심리학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나의 경험이 말해주는 믿을 만한 가설이다 정설이라고 봐도 좋을...ㅋㅋㅋ
여하튼 나의 첫 산행이 무사히 끝났습니다. 일요일 하루 온 종일, 무의식에서 나온 신음 소리를 동반하며 나의 몸들이 근육통으로 몸서리를 치더니, 월요일에는 씻은 듯이 나아서 합기도에서 열심히 잘 굴렀습니다.
친구가 물었습니다. 어느 산에 다녀왔냐고? 몰라 ~ 보은 근처의 산들이었는 것 같은데, 암튼 무지 많은 봉우리들 속에 있었다고. 그 중에 구지봉도 있었다고,,, ㅋㅋㅋ
다음 주 산행에서는 좀 더 많은 이름들을 기억하길 바라며, 나는 왜 인간은 산에 오르는지를 좀 더 알기 위해서 또 따라 나설까 합니다.
첫댓글 반가웠습니다 산행 실력도 대단하십니다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부끄부끄 *^^*
늦게나마 다시한번 환영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산행실력은 이미 보았고.. 산행기까지 이렇게 올려주시니 더욱 고맙기 그지없네요.
동안 산행기 올려주시는 분이 없어서 내심 아쉬웠는데...
생생한 산행의 분위기를 이렇게 느낄 수 있어서 더욱 감사드립니다.
다음 산행기도 꼭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그 다음 산행기도.. 그리고 쭈~욱 !!!
그게 그러니까 ,,, 쭈~욱은 참 좋은 말이지만, 참,,,^^ 노력하겠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