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2001.7.11)
언론사 세무조사
- 이 재 창 <지역사회부장>
채근담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제나라 왕이 들에 놀러 갔다가 옛 성터를 보고는 그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이 성터는 무엇이냐?이것은 예전에 있었던 괵나라의 성터입니다.아니, 괵나라의 성터가 어찌 이리 폐허로 변하게 되었느냐?그 이유는 괵나라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했기 때문입니다.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은 잘한 일이 아니냐. 그런데 그런 연유로 망하여 폐허가 되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선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악을 미워하기는 했지만 악을 없애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패망하고 만 것입니다.그렇구나하고 왕은 많은 것을 깨닫고 궁궐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지금 국내에서는 언론사 세무조사로 무척 시끄럽다. 중앙언론사는 언론사대로, 정치권에서는 정치권대로 서로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공방이 한창이다. 그리고 지식인들은 지식인대로 곡학아세(曲學阿世)가 한창이다.
그러나 정치권이나 중앙언론사나 자기 주장만을 내세울 것만은 아니다. 정치권이나 언론사나 국민이 없다면 모두다 소용없는 일이다.
잘못을 했다면 응당 그에 대한 처벌은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언론사도 세금을 탈루했으면 세금을 내야 하고, 조세범처벌법을 위반했으면 그에 대한 처벌을 받아야 하고, 불공정 거래행위가 드러났으면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국세청과 공정위의 조사결과가 조금이라도 사실로 밝혀졌다면 반성하고 국민 앞에 사죄도 해야 한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남의 부정과 비리를 고발하고 비판하려면 먼저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언론의 직업윤리가 강조되는 이유다. 언론사라고 해서 치외법권적인 성역이 될 수 없다.
언론사의 세금 탈루, 외화도피 등의 혐의는 언론사들이 자신의 얼굴에 가면을 쓰고 국민 앞에서 선을 빙자해 악을 행하는 어불성설의 행위와도 같다. 그런 가운데 조사의 목적과 동기를 왜곡시키며 강변하는 비판언론 탄압의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그들은 법에 의한 정기조사를 빙자한 탄압의 정치적 저의를 의심하지만 이제까지 누릴 것 다 누리고 외나무다리에 서 있는 그들이 무슨 소린들 못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한다.
여기에 일부 지식인들까지 가세해 치기어린 홍위병으로 날뛰는 것은 두 눈을 똑똑이 뜨고 바라보는 국민을 우롱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진정한 언론이라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한 나라의 여론을 좌지우지 하는 중앙신문들이 세금과의 전쟁을 한다는 것은 그들의 도덕성에 커다란 흠집으로 남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전문 인터넷 사이트 베스트리서치(www.bestresearch.co.kr)가 최근 전국의 네티즌 회원 2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더라도언론개혁은 필요하다라는 응답자가 95.3%로 나타났고, 결과 공개에도 95.4%가 찬성하는 등 언론개혁 필요성을 지지하는 비율 95.3%는 지난달 언론사 기자 4백2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와도 일치하는 수치다.
이처럼 국민을 의식하지 못하는 행위는 국민과 법 위에 군림하려는 마지막 특권층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행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첫 대목에 인용한 채근담의 이야기처럼 이번 세무조사가 선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악을 미워하기는 했지만 악을 없애지 못했기 때문에 패망하고 마는 그런 오류는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