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3095]李白(이백)-山中問答(산중문답)
山中問答(산중문답)
-李白(이백, 701~762)
問余何事棲碧山(문여하사서벽산)
왜 산에 사냐고 나에게 물었더니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
대답 없이 웃을 뿐 마음 절로 한가로워
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
복사꽃 물에 떠서 아득히 흘러가니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여기는 별천지 인간 세상 아닐세
問余何事栖碧山 [문여하사서벽산]
왜 산에 사느냐고 내게 묻기에
笑而不答心自閑 [소이부답심자한]
말없이 웃으니 마음 절로 한가로워
桃花流水杳然去 [도화유수묘연거]
복숭아꽃 물에 떠서 아득히 가고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이곳은 별천지 인간세상 아니어라
중국의 대표적인 시인을 들라면 보통 李白(이백)을 꼽는다.
이백의 대표작을 뽑으라면 이 시를 들 수 있다.
그래서 이 시는 중국한시의 대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구에서는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오’라는
시의 끝부분 ‘왜 사냐건 웃지요’가 떠오른다.
神仙(신선)이 사는 세상이든 俗世(속세)든 따져서 뭐하나.
그저 빙그레 웃으며 속마음이 편하고 한가로우면
그곳이 仙界(선계)이거늘.
시 속의 주인공이 다른 사람에게 묻거나,
다른 사람이 이 시의 주인공에게 묻거나,
또는 스스로 묻거나 이는 중요치 않다.
마음 편한(心自閑) 신선세상(非人間)이 중요하다.
余(여)는 나, 자신.
棲=살 서, 깃들일 서. 栖와 棲는 同字,
杳然= ‘묘연하다’의 어근. 杳 =아득할 묘
問余何事栖碧山(문여하사서벽산)
'여(余)'는 '나',
'하사(何事)'는 '무슨 일' 또는 '무엇 때문',
'서(栖)'는 '산다'는 뜻입니다.
'벽산(碧山)'은 중국 호북성의 안륙에 있는 산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푸른(碧) 산(山)'으로 새깁니다.
이를 연결하면 이런 문장이 됩니다.
누가 나에게 묻네요, 무엇 때문에 이 푸른 산에 사느냐고.
사람 많고 즐길 것 많은 드넓은 세상에 나와 살지 않고
왜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물었다고 하네요.
실제로 누가 그렇게 물었을 수도 있고,
'누가 묻는다면'이라는 가정일 수도 있겠습니다.
즐길거리도 없고 불편하기 그지없는 산 구석에 처박혀
무얼 하느냐는 물음입니다.
그대라면 이 때 어떤 대답을 했을까요?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
여기서 이 시의 유명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소이부답(笑而不答)'. 웃을 '소(笑)', 대답할 '답(答)'.
웃으며 대답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심자한(心自閑)'하다고 하네요.
여유로울 '한(閑)'. 마음이 스스로 한가롭고 여유롭다는 말이네요.
여기서 '자(自)'는 '스스로'보다 '저절로'의 뜻으로 새겨봅니다.
웃으며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이 저절로 한가롭네.
이 구절은 과연 무슨 뜻일까요?
왜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을까요?
말해주어도 소용없다는 뜻일까요?
세속에 사는 사람에게 산에 살아서
좋은 점을 말해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속에 사는 이의 마음이 머무는 곳과 산에 사는
'나'의 마음이 머무는 곳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말해주어도
산에 사는 이의 마음의 지경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음이 머물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는 문장이 떠오르네요.
말해주어도 고개를 끄덕거릴 뿐,
참으로 산에 사는 이의 마음의 즐거움을 이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笑而不答(소이부답)'이 명답이네요.
그래야 마음이 휘달리지 않고 편하겠네요.
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
'桃花流水(도화유수)'는 도연명의 '도화원기'에서 인용된 말입니다.
물에 떠내려오는 복사꽃을 보고 그 물을 따라 위로 올라가 보니
도원(桃園)이 있었다는 문장입니다.
'杳(묘)'는 '아득하다' '어둡다' '희미하다' '멀다' '아득히 먼 모양'의 뜻.
'묘연(杳然)'은 그윽하고 멀어서 눈에 아물아물한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이렇게 새깁니다.
복사꽃 물결 타고 아득히 아물아물 흘러가니,
'桃花流水(도화유수)'는 산속의 경치가 그만큼 아름답다는 말이네요.
시의 화자는 그렇게 아름다운 경치 속에 살며
그 아름다움을 느끼며 유유자적하며 삽니다.
그런데 마음이 속세에 머무는 사람,
이런저런 세상사에 얽혀 마음이 번잡한 사람에게
그 신묘한 아름다움이 느껴질 리 없습니다.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이 구절도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인간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만큼 경치나 분위기가 좋은 장소를 만나면
우리는 이 말을 감탄사처럼 쓰곤 합니다. 별유천지비인간이라!
그래서 위의 구절, 시의 전후맥락을 이어 이렇게 새깁니다.
여기는 다른 세상 바로 별천지지, 인간 속세가 아니라네.
이백의 시 '산중문답(山中問答)'은 마음에 대한 시로 읽힙니다.
그윽하고 여유로운 마음의 경지 말입니다.
그런 마음의 경지에 있는 사람이 사는 세상이
바로 '별유천지비인간'의 세상일 것입니다.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이에게 왜 이런 산에 사느냐고 물었으니
'笑而不答(소이부답)'이었을 수밖에요.
이백(李白)의 〈산중답인(山中答人)〉 시에,
“나더러 무슨 일로 청산에 사느냐고 묻기에,
웃고 대답 않으니 마음 절로 한가롭네.
복사꽃 그림자 잠긴 물이 아득히 흘러가니,
새로운 세계가 있어 인간 세상이 아니로세.
問余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한 데서 온 말로,
선경(仙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