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에는 지성과 감정이라는 두 기능이 있으며 조나단 에드워즈는 지성을 인식, 분별, 판단과 같은 것으로 감정은 이것을 넘어 인식한 대상에 대해 끌리거나 반감을 가지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예를 들면, 맛있는 냄새가 나는 갓 구운 빵을 본 순간 그것을 먹고 싶은 끌림이 있습니다. 그러나 쓰레기 더미를 본 순간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악취는 반감이 생깁니다. 이런 끌림과 반감은 인정하거나 거절하게 하게 하는 행동을 결정하고 지배하기 때문에 의지라 불리기도 하고 마음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마음이 싫어 혹은 좋아, 그렇게 결정하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끌리는 것과 반감의 경향이 그 정도에 있어 다양할 수 있습니다. 영혼은 의지와 성향을 지니고 있고 감정은 이 의지와 성향이 어떤 정도인지 감지할 수 있는 활기찬 활동입니다. 그러니까 조나단 에드워즈는 이 감정을 통해 영혼이 어떠한지 그 본질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언가에 끌리고 결정하는 모든 것이 감정을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배가 고플때 빵 냄새는 더욱 먹고 싶은 성향이 되게 하고 의지로 먹게 할 것인데 이때 모든 것이 감정의 정도에 따릅니다.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는 어떤 의미에서 영혼의 감정은 의지와 성향과 다르지 않고 의지는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는 만큼 행사된다고 말합니다.
끌림과 끌리지 않음, 좋아함과 싫어함의 성향은 의지와 성향이고 이것은 곧 감정입니다. 그런데 이 점이 중요한 것은 이 끌림과 좋아함의 정도가 높고 왕성할 때 그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끌림과 좋아함의 반대의 성향은 영혼에 불쾌감을 일으킵니다. 그것은 괴로움과 슬픔이라는 감정이 됩니다. 이런 감정의 상태는 몸과 본성에 영향을 행사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전인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감정은 육신이 아닌 정신에 거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이 말이 쉽게 납득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감정이 마음에 거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마음은 영혼을 감각하는 기관으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감정이 의지와 성향에 대한 활기찬 활동이라면 그것은 감정이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 영혼을 감각하는 것은 마음이며 그 마음의 상태는 감정으로 확인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의 견해입니다.
그리고 조나단 에드워즈는 감정에 육신이 어떤 식으로든 반응하지만 그것은 감정의 본질이 아니고 분명히 구별된다고 말합니다. 감정과 격정도 구별해야 합니다. 감정은 격정보다 더 포괄적이고 의지와 성향을 감각합니다. 그러나 격정은 본능에 미치는 효과가 격렬하고 충동적이고 통제되지 않습니다. 이 점들은 부흥의 시기에 사람들이 겪었던 격정과 육신적인 어떤 반응을 성령의 역사로 보았던 것을 바로 잡는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신앙감정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감정 자체가 무엇인지 탐구합니다. 영혼의 기능에는 지성과 감정이 있다. 감정은 성향의 정도를 감지하며 의지의 결정을 이끌어낸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살펴야 합니다. 그 감정의 정도에 따라 우리가 무엇에 끌리고 있고 우리 영혼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