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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역사
성경은 역사와 예언의 책이다. 성경이 비록 지구 역사의 전말(顚末)을 담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서 성경은 ‘하나님 백성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간략히 말하자면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 백성의 계보를 잇는 노아, 아브라함, 모세, 이스라엘 백성, 바울과 12제자 그리고 교회(그리스도인)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모두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한 자들이다. 그중에서 최종적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도인들, 즉 교회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한 자들의 영적 공동체를 예수교, 즉 기독교(基督敎)라고 부르는데 신약 성경은 첫 예수교인 초대 교회로부터 마지막 예수교에 이르기까지 전(全) 기독교의 역사를 자세히 진술할 뿐만 아니라 요한 계시록을 통하여 교회의 운명까지 예언하고 있다. 그런데 삼위일체 하나님과 한 성경을 믿는 기독교가 어째서 이토록 수많은 교파로 나뉘게 되었는가? 과연 기독교 안에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가르치고, 성경대로 사는 교회가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 성경은 기독교의 일생과 운명을 어떻게 예언하고 있는가?
사실 초기 기독교의 역사 이외에 신약성경에 언급된 모든 기독교의 일생과 운명은 주로 예언으로 기록되어 있다. 구약의 예언서인 다니엘서와 짝을 이루고 있는 신약의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을 통해 예언으로 기독교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기독교에 대한 모든 예언은 현 시점에서 바라볼 때, 기독교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의 역사를 배우는 과정은 대단히 흥미롭고 가슴 벅찬 탐구가 될 것이다. 특별히 성경의 예언서에 언급된 교회사(敎會史)와 세속사(世俗史)를 비교 연구할 때, 우리는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개인과 나라의 흥망성쇠의 열쇠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흥망성쇠의 열쇠 역시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37. 초대교회의 복음전도
• 예수님의 승천과 두 가지 약속 ―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 최소한 500명 이상에게 나타나셨다. [고전 15:3~8]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비밀리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여러 사람들이 목격한 현실이요 사실이었던 것이다. 부활하신 지 40일 후에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하늘로 올라가셨다. 승천 시에 다음과 같은 약속이 있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두 가지 약속이었다. 이 약속들은 이미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여러 차례 약속한 내용들인데, 승천 시에 재확인된 것이다. 한 가지는 성령께서 임하시겠다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시겠다는 것이다.
• 성령의 임하심과 교회의 탄생 ― [행 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순절(유대력으로 3월 6일)에 제자들에게 약속된 성령이 임하셨다. 오순절은, 첫 수확물을 흔들어 하나님께 바치는 절기인 초실절(혹은 요제절, 1월 16일)로부터 7주일이 지난 50일째 되는 날 백성들이 모두 함께 모여 즐기며 지키는 보리 추수감사 절기이다. 예수님이 1월 16일 초실절에 부활하시어 40일간 이 땅에 계시다가 승천하셨으므로, 오순절(초실절 후 50일) 성령 강림은 예수님 승천 후, 10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리하여 이 땅에 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 복음전파 ― 성령 충만한 제자들이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을 때, 그 결과와 효과는 엄청난 것이었다. [행 2:41,47]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기독교의 이러한 급속한 성장에 대하여 매우 분개하였으며,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과 제자들을 핍박하기 시작하였다. 복음을 전하던 집사 스데반이 공개적으로 돌에 맞아 순교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행 7:59,60]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 복음이 이방으로 전파됨 ― 스데반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의 교회들에게 본격적인 핍박이 시작되어 교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행 8:1]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복음에는 생명력이 있다. 그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행 1:8)하므로 복음은 예루살렘을 넘어 이방으로까지 전파되기 시작하므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의미는 끝이 난 것이다.
• 사울의 개종과 이방인 전도 ― 스데반의 순교 사건에 주동적인 역할을 했던 사울(후에 사도 바울이 됨)의 극적인 개종은 교회 역사에 큰 변화를 가졌 왔다. 그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 교회를 핍박하던 그 열성이 복음을 전하는 정열로 바뀌었을 때, 그 효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로마 전역을 이곳 저곳 다니면서 놀라운 능력으로 복음을 전파하였다. [행 24:5] "우리가 보니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 복음이 마치 전염병처럼 신속히 번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38. 중세교회의 타락과 핍박
•로마 제국의 핍박 ― 복음이 전파될 때마다 가장 크게 긴장하고 분노하는 것은 사단이다. 그는 이 지상의 세력들을 이용하여 복음을 박멸하기 위하여 광분하고 있다. 예루살렘의 핍박에 이어 로마 제국의 핍박이 시작되었다. 이른비 성령의 폭발적인 역사와 함께 시작된 제자들의 선교 활동으로 예루살렘을 벗어난 복음은 순식간에 로마를 불태우며 번져나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단의 전략은 그리스도인들을 모조리 죽여 없애는 것이었다. 원래 사단의 1차적인 공격 대상은 창세기 3:15에 약속된 구원의 주인공인 “여자의 후손”이었다. 바로 그 약속된 후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사단은 그를 없애 버리거나 구속 사업을 실패로 돌아가게 하기 위하여 총력을 다하였다. 그러나 실패하였다. 이제 그가 지구를 차지하기 위하여 취할 수 있었던 마지막 남은 한가지 수단은 이 땅에 구원의 복음을 가진 사람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죽여야 하는 것이었다. 복음의 씨를 말려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 승천 이후 「그리스도인 전멸 작전」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서기 31년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전혀 힘쓰던 제자들에게 임했던 폭발적인 성령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사단은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복음은 신속하게 번져나갔고 사단은 속수무책이었다. 서기 100년경, 그 폭발적인 성령의 역사에 참여했던 제자들이 하나씩 둘씩 죽어가고 이제 고령의 사도 요한만 남게 되자 사단은 로마 제국을 통해 본격적인 박해를 시작하였다. 물론 박해는 그 이전에도 진행되어 왔고 성령의 역사는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지만 서기 100년경을 전후로 하여 시대와 상황이 다른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약 10대에 걸친 로마의 황제들은 매우 조직적인 계획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사정없이 박해하였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를 당하게 된다. 그 황제들의 이름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네로(54~68년) → 베스파시안(69~79년) → 타이터스(?~81년) → 도미시안(81~96년) → 트라얀(98~117년) → 아우렐리우스(161~180년) → 막시미누스(235~238년) → 데시우스(249~251년) → 발레리안(253~260년) → 디오클레시안(284~305년).
이 엄청난 박해 속에서, 기독교 신앙의 부분적인 변질과 타협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는 말씀이 날마다의 삶의 좌우명이었다.
•기독교가 자유를 얻음 ― 육체적인 박해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을 전멸시키려 했던 사단의 전략에 차질이 생겼다. 이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한 역사 교과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일신교(一神敎)는 로마의 다신교(多神敎)와 충돌하여, 280년간 역대 황제들의 사정없는 박해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교도들의 열성과 순교의 붉은 피는 나날이 신도를 늘게 하니, 콘스탄틴 황제는 마침내 그 신앙을 공인하였다(313년).” <이해남, 중등 세계사, p.43> 사단은 그의 전략을 수정하였다. 우선 기독교에 자유를 주고 타락시키고자 하는 것의 그의 작전이었고, 콘스탄틴 황제가 그 일을 대행하였다. 서기 313년 콘스탄틴 황제는 밀란 칙령을 공포하여 기독교를 공인하고 교회에 자유를 선포하게 된다. 그 칙령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와 우리 정부 산하에 살고 있는 모두에게 길조(吉兆:순조롭고 평탄하고 운을 좋게하는)가 되는 종교를 선택하여 따를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하도록 결의함”(Newsweek Book, The Fires of Faith, p.15).
•교회의 세속화 ― 이 칙령과 함께 200여 년 간 계속되었던 그 무서운 핍박은 멈추고 교회 안에 자유의 물결이 들어오게 되었다. 교회는 물질적인 번영도 맛보게 되었다. 로마의 황제가 성직자들에게 여러 가지 특권과 권한도 부여하였다. 이와 함께 교회의 부패와 타락의 분위기도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세속과 타협하는 일이 매우 자연스럽고 타당한 일이 되어 버렸다. 진리는 감추어지고 이방 종교의 풍습과 각종 오류들이 서서히 교회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게 된다. 드디어 서기 321년에는 역시 콘스탄틴 황제가 일요일 휴업령을 발표하게 되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정당한 예배일로 지켜지던 안식일이 훼손당하고 그 자취를 서서히 감추게 된다. 그 당시 일요일(SUNDAY)은 로마인들이 태양신에게 예배하던 경배일이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이교의 풍습이 스며든 것이다. 일요일 휴업령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존경할만한 이 태양의 날에 모든 판사들과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휴업하도록 하라. 그러나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하늘이 마련해 주는 것들을 상실하지 않기 위하여 씨를 뿌리거나 포도나무를 재배함에 그토록 적합한 날이 없는 때가 자주 있으므로 적기를 놓쳐서는 안되기 때문에 이 날에 자유롭게 농경에 종사할 수 있다.” (Codex Justinianus, lib. 3. tit.12,3 ).
•가톨릭의 세력이 자리를 잡기 시작함 ― 이 중대한 예배일의 변경과 함께 교회 안에는 진리의 터가 무너지고 오류의 기둥이 세워지는 불행한 일들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풍토 속에서 당시 로마교회의 감독의 권위와 힘이 점점 커지게 되었고, 서기 330년 콘스탄틴 황제가 로마의 수도를 로마시에서 비잔티움으로 옮기면서 로마 시(市)에서는 로마 교회 감독이 우두머리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장차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게 될 교황권의 모체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사단의 전략을 검토해보면, 무력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작전이 실패하자, 교회를 타락시킨 다음 타락한 교회가 하나님의 참 백성들을 모조리 죽여 없애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교황권의 확립됨 ― 이와 같은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로마 교회 감독은 대단히 큰 권한을 갖게 되었고 아무도 그 흐름을 저항할 수가 없었다. 이미 그것은 사단의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로마 제국은 이미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395년 데오도시우스 대제의 사망과 함께 로마 제국은 동서(東西)로 나누어졌고 특히 서로마는 게르만 민족의 이동으로 시작된 여러 부족들의 침입으로 망해가고 있었다. 서기 351년 알레마니족의 침입을 시작으로 하여 프랑크(351), 불근디안(406), 수에바이(406), 반달(406), 서고트(408), 앵글로색슨(409), 롬바르드(453), 동고트(453)등의 계속적인 침입으로 서로마 제국은 완전히 기울어졌고, 476년 헤룰리족의 용병대장 오토아케르의 반란으로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폐위되고 만다. 로마 제국의 영광이 끝난 것이다. 그러나 아직 로마 교회의 감독, 즉 교황권이 세계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제거되어야 할 장애물이 있었는데 그것은 서로마를 침입하여 점령하고 있던 10개의 부족들 중 아다나시우스파에 속한 교황을 적대하는 아리우스파의 세력들(헤룰리, 반달, 동고트)이었다. 아직 무력의 힘을 소유하지 못했던 교황은 동로마의 세력을 빌려 493년에는 헤룰리를, 534년에는 반달을, 538년에는 동고트를 차례로 멸망시킨다. 538년에는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이탈리아에 증원군을 상륙시켜 티베르 강 밀비안 다리에서 동고트족을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이리하여 교황권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유럽 세계의 나라들을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다음 페이지 도표 참조)
•오류가 만들어짐―이제 교황권은 드디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한다. 우선 성경에 위배되는 수많은 교리와 이교의 제도와 관습을 교회로 끌어들여 교회를 타락시키며 세상과 밀착하여 제정한 몇 가지 대표적인 비성서적 교리와 제도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로마교황권이 확립되어가는 역사적 과정을 간략하게 요약한 도표
⑴ 안식일 계명 변경 ― 태양신 숭배일이었던 일요일을 예배일로 사용하고 있던 이들은 드디어 안식일이 포함되어 있는 하나님의 계명을 변경하기에 이른다. “교회는…유대인의 안식일 혹은 주일 중 일곱째 날에서 그 첫째 날로 쉬는 날을 바꾼 후에 일요일을 주님의 날로 거룩히 지키도록 셋째 계명으로 만들었다.” (Catholic Encyclopedia,Vol.Ⅳ. p.153)
⑵ 연옥설 ― 593년 교황 그레고리 1세가 제정함. 천국과 지옥 사이에 연옥이 존재하며, 그곳에서 죄를 씻으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함.
마리아숭배는 고대의 ‘어머니 여신 숭배’를모방하여 만든 것이다. 좌측의 그림은 바벨론의 여러 기념비에 나타나는 여신 세라미스가 그녀의 아들 담무스를 팔에 안고 있는 모습이다. 바벨론 사람들이 여러 지역에 흩어지면서, 어머니와 어린이 숭배 사상은 세계 도처에 펴졌으며, 그 결과 이러한 그림도 인도를 비롯하여 여러 나라에서 발견된다.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있는 장면(우측)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⑷ 묵주 기도―1090년 피터 헤르밋에 의해 고안된 것으로 염주를 굴려가며 기도.
⑸ 종교 재판소―1184년 베로나 종교회의, 이단 제거용.
⑹ 침례를 세례로―물에 잠그는 성서적인 침례를 물을 붓거나 뿌리는 약식 세례로 바꿈. 12세기 이후 “교회가 이를 자유롭게 시행할 수 있다”는 전제로 중세 로마 교회에 의하여 공식화 됨. (기본스 추기경 著, 교부들의 신앙, 94판, p. 277)
⑺ 면죄부 판매―11세기 남부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나타남. 1040년 베네딕투스 9세에 의하여 정식으로 인가됨. 100년 이상 계속된 로마 성 베드로 성당의 공사가 완공되지 못하자 레오 10세가 성당 완공비 조달을 위해 1506년부터 면죄부를 팔기 시작함.
⑻ 화체설―1215년 제 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승인, 교황 이노센트 3세가 공포.
⑼ 고해성사―1215년 교황 이노센트 3세에 의하여,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는 대신에 신부에게 고백하는 제도가 라테란 종교회의에서 제정됨.
⑽ 평신도 성경 금서―1229년 발렌시아 공의회에서 일반 신도들에게 성경 금지.
⑾ 영혼 불멸설―1513년 교황 레오 10세는 클레멘트 5세에 의하여 채택된 영혼 불멸 사상을 제5차 라테란 종교회의에서 교리로 선포하고 영혼 불멸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이단으로 규정하고 징벌함.
⑿ 교황 「왕중 왕」칭호―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지상권을 의미하는 성경의 모든 명칭들은 교황에게도 해당한다. (Bellamine, On the Authority of Councils, Book,2, ch.17)이와 같은 오류를 따르지 아니하고 거부하는 자들, 성경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재판을 받고 박해를 당하거나 순교를 당하는 일이 오랜 세월동안 계속되었다. 그 당시 진행된 박해의 한 단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스페인에서만도 종교 재판에 의하여 고난당한 사람들은 산 채로 화형당한 사람이 31,912명으로 헤아려졌고 소위 복종하도록 강요된 참회자가 291,450명으로 계산되었다. …알비젠스인들의 대학살에서는 백만명이 죽임을 당했다(교황 이노센트 3세가 1208년 알비젠스와 왈덴스인에 의해 일으킨 십자군 당시). 제수이트 제도가 확립된 지 30년 동안에 90만명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살해당하였다(1540년부터). 네델란드에서는 알바공(가톨릭 신자)의 지시에 따라 36,000명이 보통 집행자들에 의해 신속히 사형에 처해졌는데 알바공은 이러한 행위를 자랑했다. 찰스 5세의 치하에서는 50,000명의 프랑드르인들과 독일 사람들이 교수형과 화형과 산 채로 매장 당했다” (Guinness, Key to the Apocalypse, pp. 92,93., Albert Barnes, Noteson Daniel, p. 328). 그러나 이러한 핍박의 와중에서도 알비젠스인들, 왈덴스 교도들, 죤 위클립, 허쓰, 제롬, 모라비아 교도들, 메소나잇 단체 등 용감한 진리의 수호자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보존되었으며 진리의 등불은 결코 꺼지지 않았다.
39. 종교개혁이 시작됨
•루터의 종교개혁―드디어 1517년 말틴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의 불길이 번져나가기 시작하였다. 루터의 종교 개혁에 대한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508년 위텐부르그의 한 대학에서 신학을 강의하면서 연구를 계속함.
∙1515년 어느 날 로마서 1장 17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발견하고 가톨릭 교회가 가르치고 있는 선행(성사, 금식, 순례 등을 포함)을 통한 구원을 반대하고 오직 믿음에 의한 구원을 강조함. 동시에 교황 레오 10세가 베드로 사원을 수축하기 위해 발행한 면죄부 판매를 비판함. 드디어 10월에는 그 유명한 95개 논제를 위텐부르그 대학 교회 문에 붙여 발표하므로 교황권의 오류들을 지적함. 대표적인 것을 몇 가지 예로 든다.
21조 : 사면부의 옹호자가 말하는 “사람은 교황의 사면에 의해 모든 벌에서 면죄된다”고 하는 것은 틀린다.
27조 : 상자 속에서 동전이 쨍그렁 거리자마자 사람의 영혼이 연옥을 떠나 (천국으로) 간다고 설교하는 것은 황당무계하다.
36조 : 고백하는 마음을 갖는 모든 그리스도교 신도는 사면부를 받지 않아도 벌, 혹은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어야 한다.
∙1520년 자신의 확신을 소책자로 인쇄 발간하여 크게 환영을 받는 등 대담하게 교황측과 맞서서 개혁을 계속함.
∙1521년 신성 로마의 황제가 루터를 웜즈 국회에 소환하므로 생명의 위협을 받게되자 윗즈버르그 성 안에 은거하여 신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 완성하므로 독일 국민에게 가장 중요한 봉사를 함. 이 종교 개혁에 함께 가담하여 천주교회를 반대하며 성경의 진리들을 밝히 드러내고 진리의 기별을 외치던 개혁자들과 교회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쯔윙글리, 칼빈, 낙스, 장로교회(1484~1531)
2) 프랑스 개혁파 위그노 (16세기)
3) 헨리 8세, 위클립, 영국교회 (1558~)
4) 로버트 브라운, 죤 로빈슨, 회중교회 (17세기)
5) 죤 스미스와 침례교회 (1554~1612)
6) 청교도 미국 이주, 회중교회 (1620~)
7) 죠지 폭스와 퀘이커 교회 (1624~1691)
8) 웨슬리 형제와 감리교회 (1703~1791)
9) 그리스도 교회―토마스 캠벨 (1807~)
10) 윌리암 부트와 구세군 (1829~1912)
11) 성결교회―카우만, 길보론 (1904~)
12) 윌리암 밀러 (19세기 초)
40. 제수이트의 출현과 국교주의
•교황권의 반격:제수이트[예수회]―이러한 종교개혁 운동에 대하여 천주교 교황권이 수수방관 할 리가 없는 것이다. 교황권에서는 반(反)종교 개혁의 수단으로 제수이트(예수회)제도를 확립하게 된다. 이 예수회는 1534년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귀족 출신 이그나시우스 로욜라가 6명의 동지들과 함께 창설하였으며, 1540년 교황 바오로 3세가 정식으로 인가하였다. 이 예수회의 주요 임무는 가톨릭 신앙의 방어를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황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이 예수회의 활동으로 종교 개혁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제수이트의 역할과 발전―제수이트는 교황을 신격화하여, 모든 이들이 교황에게 절대 복종하도록 강요하는 역할과, 교황권의 목표를 달성하는 일에 목숨을 걸고 충성한다. 후에 그들은 부도덕한 집단 세력으로 발전하였고, 상업적 이권 다툼에도 개입되었으며, 그들의 영향력은 유럽사회를 넘어 전 세계에 걸쳐 매우 광범위하게 번져나갔다. 지금 그들은 세계의 종교, 정치, 경제각 분야를 배후 조종하는 막강한 힘을 가진 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우측의 풍자 만화는 제수이트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종교개혁이 약화됨―종교개혁은 전 항목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많은 개신 교회가 설립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결과였다. 성경이라고 하는 한가지 기준에 의해서 종교 개혁이 발생되고 진행된 것이라면 성경에 기초한 한 교회로 발전되어 나아가는 것이 마땅한 이치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교황권에 의해서 무너지고 감추어진 성경의 진리들이 새롭게 하나씩 발견될 때마다 새로운 교파가 하나씩 발생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서로가 이질감을 가지고 반목하게 되어 종교 개혁의 세력은 오히려 약화되고 만다.
•영국의 국교주의―이 때 잉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 등지에서는 국교주의를 강화하여 모든 국민들은 엘리자베드 여왕을 교회의 수장(首長)으로 인정하라는 교식통일령(1559년)이 내려졌다. 영국의 이 국교주의에 의한 교식통일령 중에는 가톨릭의 교리와 의식의 잔재들이 개혁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기 때문에 당시 종교 개혁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던 청교도들이 반발하게 되고 국가는 이들에 대하여 탄압을 가하게 된다. 이와 같은 분위기는 당시 종교 개혁의 물결이 더 이상 발전되지 못하고 정체 내지는 침체에 빠지게 되는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었다.
41. 청교도의 미국 이주
•청교도의 미국 이주―영국의 이와 같은 분위기에 견디다 못한 일단의 청교도 무리들이 국교주의를 통한 종교 탄압을 피해 일단 네델란드로 이주해 갔다가, 얼마 후, 1620년 브류스터(William Brewster, 1567~1644)를 지도자로 삼아 배(메이플라워 號)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현재의 미국 플리머스에 상륙하게 된다. 도착하였을 때 남자는 78명, 여자는 24명이었다. 이들은 뉴 잉글랜드를 개척하고 퓨리타니즘의 회중교회를 세워 미국 역사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이들이 바로 “왕 없는 나라, 교황 없는 교회”를 세우는 미국 건국의 기초를 놓게 되고, 미국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거대한 개신교 국가로 번영하게 되었던 것이다. 요한계시록 12장 15,16절(“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에는 이미 이러한 사실이 예언되어 있었다. 강물처럼 몰아닥친 핍박 때문에 쓸어버림을 당할 뻔했던 유럽의 개신 교회가 청교도들의 미국 이주로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되었다. 땅[미국]이 여자[교회]를 도운 것이다.
42. 개신교의 타락과 교황권의 몰락
•개신교의 쇠퇴와 타락―인간의 역사는 어떤 조직이나 구조에 의해서 움직여 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조직이나 자리에 어떤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 형세는 완전히 달라진다. 종교 개혁을 시작한 사람들은 매우 의욕적이고 정의감이 있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그 뒤를 이은 사람들은 개혁자들만큼 진실하거나 유능하지 못했던 것 같다.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떠날 때 불가피한 사정으로 함께 떠나지 못했던 당시 교회 지도자 죤 로빈슨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 개인으로서는 개신교의 상태에 대하여 탄식해 마지않습니다. 그 교회는 한 때 신앙적이었지만 개혁 운동을 일으킨 인물들 이상으로는 한 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한 형편입니다. 루터교도는 루터가 깨달은 것 이상은 더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칼빈파의 신도들 역시 모든 것을 다 깨달았다고 할 수 없고, 그 사람이 남긴 것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탄식할 수밖에 없는 불행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그들이 그 당시에는 밝게 비치는 빛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도리의 전부를 밝히 깨닫지는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오늘날 살아 있다면 그들은 분명히 저희가 처음에 받은 빛 이상의 빛을 받고자 갈망할 것입니다.” 이리하여 개신교회는 진리의 빛을 더욱 확산시키고 발전시켜 나가는 일 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며 인간적 명예와 권위와 재물을 탐하는 일에 빠지게 되었다.
•말세의 징조들이 일어남―1800년대가 가까이 오면서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말세의 징조들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가 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계 6:12,13) “그 날 환란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마 24:29,30) 1755년 11월 1일 오전 9시 30분, 포루투칼의 수도 리스본을 중심으로 하여 발생한 대지진은 약 6,7분간 엄청난 진동을 일으켜 교회당과 큰 건물들, 그리고 12000 채의 가옥들이 파괴되고 6일간의 계속적인 화재가 있었는데 그 범위는 1,120 Km에 미쳤고 초기의 기록에는 10만 명 이상의 희생자가 있었다고 보고되었다. 그 동안 큰 지진을 거의 경험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리스본 대지진은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가져다 주었다. 대지진으로 인한 공포심이 채 가라앉기 전, 1780년 5월 19일에는 미국 동북부 뉴잉글랜드 전 지역에 걸쳐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극심한 암흑 현상이 일어났다. 오전 10시경부터 밤중까지 사람들은 정상적인 작업을 하지 못하고, 낮 시간이지만 가축들은 우리로 돌아가고 닭들은 홰로 올라가고 새들은 제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사람들은 겁에 질린 채 거리로 나와 불안에 떨다가 결국 교회로 모여들었다. 그 날 밤 9시경에 달이 올라 왔으나 완전히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교황권의 몰락―이 두 사건을 통해 사람들은 말세가 되었음을 뼈저리게 절감하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 재림의 임박성을 알리는 재림운동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세 1000년 이상을 지배하던 교황권은 몰락하였다. 1798년 2월 10일 프랑스 나폴레옹의 부하 장군 벌티어가 로마 가톨릭의 251번째 교황 비오 6세를 포로로 잡아감으로 그 지리했던 종교 암흑시대는 일단 막을 내리게 된다. 교황이 잠시 사라진 동안 사단은 프랑스를 이용하여 교회와 성경을 박해하지만 오히려 프랑스는 엄청난 피해를 입고 성경과 신앙의 위력을 목격하게 된다.
•미국의 독립―그런데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1776년에 독립을 선언했던 미국을 마지막까지 국가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던 당시의 최강국 프랑스가 교황권이 몰락한 바로 그 같은 해, 1798년에 미국을 정식 국가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세계 역사의 무대에 미국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연극으로 말하자면, 중세를 지배하던 교황의 세계가 일단 무대 뒤로 물러가고, 한 동안 세계역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미국이 등장한 것이다. 미국이 어떻게 시작되어 무슨 일을 할 것인지는 요한계시록 13장에 예언되어 있다. 예언에 의하면 미국은 주인공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에는, 교황권이 역사의 마지막에 다시 등장할 것이 예언되어 있으며, 미국은 교황권이 추구하는 사업과 목표가 달성되도록 지원하고 돕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2014.7.1
Crossabbath Gospel Ministry
안식일복음 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