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만난 시집 서평
당당하고 솔직함이 주는 울림
정지윤 『전달의 기술』
공화순
작가 정지윤은 멀티 시인이다. 자유시와 시조를 넘나들며 동시까지 다양하게 시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동시집은 『어쩌면 정말 새인지도 물라요』에 이어 두 번째 출간한 동시집이다. 시인 스스로 동시는 전혀 부담 없이 행복한 마음으로 쓴다고 했듯이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 것이 그녀의 동시집이 갖는 특징이다. 무심한 듯 툭 던지는 말 속에서 우리의 마음속 깊이 감춰둔 진심을 보게 한다. 이것은 다른 시를 쓸 때와 달리 시대를 날카롭게 바라보는 그녀의 시각에서 비판의식을 벗어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를 꼬집고 비틀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여 담담하게 펼쳐 보이는 솔직함과 당당함에서 느낄 수 있는 담백함이다. 그래서 그럴까. 천진스러움 속에서도 톡톡 걸리는 재치를 발견하게 된다.
이번 시집에선 그리 과하지 않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46편의 시에 두드러지지 않고 순하게 닿는 그림을 보탰다. 시집 전반에 흐르는 동심에서 세상을 향해 전달하는 행복한 향기를 한 아름 받아 앉는다.
보도블록 사이에
피어난 작은 꽃 한 송이
누가 밟으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아슬아슬해
어쩌다가 여기에 피었니?
옮겨줄 수도 없는데……
지나가던 아이 하나
쭈그리고 앉아 말을 걸어
괜찮아
당당하게 피어 있으니
사람들이 다 피해 가잖아!
꽃이 피면 꽃길이 되는 거야
- 「당당한 향기」 전문
이 시의 전달하는 방식에서 무심한 척, 툭 내미는 다정함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작가 정지윤이 살아가는 방식과 닮은 듯도 하다. “보도블록 사이에” 핀 “작은 꽃”이지만 “당당하게” 피어 있어 사람들이 다 피해서 가는 것처럼 시인 역시 심각하지도 진지하지도 않은 것처럼 세상을 담백하게 바라보면서도 살아가는 이치를 알고 가는 품이 그렇다. 게다가 “꽃이 피면 꽃길이 되는 거야”의 마지막 한 문장은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최근 읽은 몇 권의 동시집은 그리워하는 마음을 크게 달래주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정지윤의 두 번째 동시집은 나의 아쉬웠던 마음을 위로하기에 충분하다. 그림을 그린 작가의 과하지 않은 색감과 표현에서도 시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동시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대상을 그대로 그리는 아이들의 마음이 나타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도 이 동시집은 아이의 마음이 충분하게 녹아 있다. 그러면서도 어른인 나 자신을 바라보게 만든다. 「나도 궁금해」와 「엄마는 야근 중」이 그랬다. 아이들에게 너무 큰 희망을 품은 우리는 어쩌면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래서 아이들은 참 많이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우리의 언어생활( 「비와 바람과 주스의 나이」, 「좋은 말 훈련소」)과 사회의 문제(「싱글맘」, 「숲속의 집」)와 환경의 문제(「서바이벌」, 「멸치의 경고」,「캔」)까지 무심히 툭 던진 시어 속에서 고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린 그리기 대회에서
친구만 상을 받았을 때
기분 나쁘지?
화났어?
괜찮아
다음에 타면 되지, 뭐
다들 내 눈치를 보며
한마디씩 하는 거야
이상하다
난 친구가 상을 타서
기분이 좋았는데
왜냐하면
친구는 나를
주인공으로 그렸거든!
- 「오늘의 주인공」 전문
아이들의 마음은 아이들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우리도 아이를 거쳐 지금 어른이 되었음에도 아이의 마음을 전부 이해하기는 어렵다. 위의 시에서 나타난 아이의 마음은 꼭 본받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는 왜 최고가 되려고만 할까. 그리고 언제나 아이들에게 최고가 되라고 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부끄러워진다. 이 시를 읽으며 아이들이 진짜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어쩌면 최고가 아니라 “괜찮아요,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파이팅!”이 아닐까. “좋은 말 훈련소”가 있다면 꼭 가서 좋은 말을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정지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힘을 많이 빼고 있다. 그래서 “힘들어 주저앉아 있을 때”라도 가까이 다가와 “그냥 가만히” 들어줄 것만 같은 친근함을 시를 읽는 동안 줄곧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한 번쯤 짚고 넘어갈 큼직한 문제를 아주 가볍게 건드려주고 있다.
너는 꿈이 뭐야?
뭐가 되고 싶어?
제발, 물어보지 마세요
엄마 아빠는
꿈이 뭐예요?
뭐가 되고 싶어요?
저도 묻고 싶어요
- 「나도 궁금해」 전문
이 시를 읽으며 아이들에게 너무 쉽게 장래희망을 물어보던 습관을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일은 절대 강요가 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꿈을 묻는 대신 내 꿈은 무엇이었는지 알려주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힘들지만 그 꿈을 오래 간직하고 지켜온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선 효과 면에서 유용할 것이다. 아니 좋은 효과를 기대하거나 아이들에게 무엇을 바라고 질문하는 일조차 이제부터 버려야만 할 것 같다.
시인은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아이들에게 물어보는 일이 많아진 것을 꼬집는다. 새롭게 변화하는 과학기술을 다 따라잡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컴퓨터, 휴대폰의 새로운 기능뿐만 아니라 신박한 물건들이 새로 나오면 사용방법조차 모르는 일이 많다. 그럴 때마다 반대로 우리는 아이들에게 물어야 한다. 그럴 때 아이들의 반응은 “어떻게 이걸 모를 수가 있지?” 하며 되묻는 것만 같아 무안해지기도 한다. 「이게 뭐야」에서 할머니의 궁금증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화장실연구소」에 달려가는 아이들을 한 번쯤 기쁘게 눈감아줘도 좋을 성 싶다.
다음
탈락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다들 조마조마
……
지켜보는 북극곰들
빙하가
눈물을 흘리며
심사하고 있어요
- 「서바이벌」 전문
연일 환경문제가 이슈화되는 현 사태에서 우리의 대책이라는 것조차 명쾌하게 해결의 실마리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 환경문제의 현실이다. 일회용 제품을 줄여 쓰레기를 줄여가는 것이 목표라지만, 지금까지 인류가 걸어온 편리한 시스템을 단번에 뒤바꿀 대안도 마땅히 없다. 이제 겨우 심각성을 인식한 환경단체와 소수의 사람으로 시작의 길에 들어선 수준이다.
얼마 전에 TV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환경에 관한 특집을 시청하며 북극곰들이 빙하를 잃어버리고 설 자리가 없어 꽃잎을 뜯어먹는 것을 보았다. 평생 얼음 위에서 먹이를 사냥하던 곰들이 빙하가 녹은 물속을 헤엄치면서 물개들을 번번이 놓치고 허기를 달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편리함에 익숙한 우리들의 게으름과 나태함을 꾸짖는 것만 같다. 위의 시에서 북극곰의 서바이벌 게임은 곧 우리 인류의 생존게임이란 것을 알기에 더 이상 경고를 무시할 수도 없다.
정지윤 시인의 46편의 동시를 통해 아이들의 천진무구한 세계를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 인간 본성의 회복을 통해 아이들의 순수한 세계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깨닫는다.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놓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시인의 시편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랑의 향기를 널리 전달하고 싶어진다.
이 동시집의 제목이 꼭 『전달의 기술』이어야 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제목만 보면 동시집이 “전달의 기술”이라고? 의아해할 수도 있고 혹은 동시집엔 왠지 안 어울리는 제목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집을 다 읽고 나면 이 동시집의 역할을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다. 사람과 사람과의 소통은 말의 전달이든 표정의 전달이든 어떤 물건의 전달이든, 전달을 통해 느끼고 알고 나누는 것이다. 이 동시집의 해설에서도 김제곤 평론가가 언급했듯이 “타자의 유대”가 정지윤 동시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산 없이 거리낌 없이 마음을 나누는 세계가 동심의 세계일 터이다.
우리는 그러한 동심을 찾아야 한다. “폐타이어 화단”에 핀 팬지꽃처럼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피어나는 생명의 강인함을 정지윤의 시에서 퍼 나르고 그 생명력을 얻고 싶다. 누군가의 눈길을 사로잡고 달리는 동력이 바로 동심의 힘일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시인이 이 동시집에서 꼭 전달하고 싶은 선물이 아닐까.
공화순 kgdosa@hanmail.net
2005년 《창작수필》 수필 등단, 2016년 《시조문학》 시조 등단. 수필집 『지금도, 나는 흔들리고 있다』, 시조집 『모퉁이에서 놓친 분홍』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