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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주최씨 가문의 역사가 유구(悠久)하다거나, 훌륭한 조상이 많다고 자랑하기 위해 저술하지 않았다. 역사가 유구하고, 기라성(綺羅星)같은 조상을 가진 명문거족(名門巨族)을 누가 마다하리오 만은, “못난 놈이 제 조상 자랑하고, 못된 놈이 남의 조상 뫼 파헤친다”는 속담처럼 없었던 일을 지어내고, 근거(根據) 없는 조상을 발굴(發掘)하여 선양(宣揚)하다 보면 자칫 환부역조(換父易祖) 패륜(悖倫)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더러운 넝마를 걸치고 움막에 의지하여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초라하게 살았던 내 조상이, 비단옷을 걸치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산해진미만 먹으면서 떵떵거리고 살았던 남의 조상보다 고귀한 것은, 그분 DNA를 내가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비루(鄙陋)한 조상이 부끄러워 화려한 남을 끌어다가 조상을 창조하는 행위는 패륜에 앞서 자신의 정체성(正體性) 부정이다.
서양에서도 지금 한창 족보(族譜) 만들기가 유행하는데, 연구자들 사이에 “메이플라워호(Mayflower)는 항공모함이다.” 또는 “미국 건국사(建國史)는 선박건조기술사 연구에서 시작해야 한다.” 같은 농담이 나돈다고 한다. 미국인들이 족보에 모두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청교도(Puritan, 淸敎徒) 후손이라 적으니 항공모함이 아니면 그렇게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없고, 항공모함처럼 큰 배를 건조할 기술이 없었으면 미국이 건국되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나라나 문명권을 불문하고 거의 모든 씨족사(氏族史)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다. 도망친 범죄자 스미스(Smith) 후손이 스미스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왔다고 족보에 적었을 때, 탑승자 명단에 스미스가 없으면 단순히 거짓말을 한 것에서 끝나지만, 탑승자 명단에 있으면 청교도 스미스가 범죄자 스미스를 밀쳐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환부역조 패륜이 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성씨 역사가 오래고 거기에다 기록문화가 발달하여 많은 사적(私的) 기록이 전해오고 있을 뿐 아니라 가장 늦게까지 노비(奴婢)와 부곡인[1]을 차별하는 제도가 유지되어왔으므로 혈통(血統) 논란을 일으키기 매우 좋은 환경이다.
유튜브(youtube) 등 매체를 통해 아는체하는 사람들이 족보를 폄하(貶下)하고, 한국 성씨는 모두 엉터리라고 비하(卑下)하는데,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적지 않은 현실이다. 당연히 한국 성씨는 엉터리가 아니며, 족보 또한 모두 믿을 것이 못 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조선 인구 절반 이상이 노비(奴婢)였는데, 노비에게 무슨 족보가 있으며, 그 많은 노비 후손은 다 어디로 갔느냐?” 소리친다. 하지만 그들은 노비와 노예(奴隸)가 같다고 오해할 뿐만 아니라, 먼 윗대 조상이 한 번 양반이면 모든 후손이 전부 양반이라 오해하고 단순 논리로 양반 후손, 노비 후손을 나눈다. 그들이 착각하는 부류에 서자(庶子)와 얼자(孼子)가 있다. 서자는 양첩[2]이 낳은 아들이고 얼자는 천첩[3]이 낳은 아들인데, 얼자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 양인 여성이 왜 남의 첩(妾)이 되겠는가? 가난하여 돈을 위해 첩이 되었다면 그 순간 저절로 자매노비[4]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흔히 말하는 서자는 대부분 얼자다. 종모법[5]에 따르면 얼자 즉 서자는 모두 다 노비 신분인 것이다.
서자가 그러하듯 노비는 노예가 아니다. 상전(上典) 소유물로 매매(賣買) 대상인 점을 제외하면 지금 개념으로 취업한 노동자와 비슷하다. 노비 신분은 세습(世襲)되지만 잦은 기근(饑饉)으로 스스로 몸을 판 자매노비도 많았다. 또 부곡인 등 잡척[6]도 천민(賤民)인데, 기근이 들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스스로 부곡으로 들어가 부곡인이 된 사람도 매우 많았다. 그런데 어찌 문성공 후손만 기근이 피해 가서 자매노비나 부곡인으로 전락(轉落)한 사람이 없겠는가? 양반인 문성공 후손 중에는 양반, 중인[7], 양인, 부곡인, 노비가 모두 섞여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다.
이런 오해를 불식(拂拭)시키기 위해서는 올바른 지식 전파가 필요하다. 문성공 후손에는 한때 높은 벼슬에 올랐던 사람도 있고, 일찍 평민(良人)이 된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한때 높은 벼슬에 올랐더라도 세대가 내려가면서 벼슬에 못 오르면 평민이 되고, 가난을 견디지 못해 남에게 몸을 팔아 노비가 되거나, 부곡으로 들어가 부곡인이 된 사람이 없을 수는 없는 것이다.
갑오개혁(1894) 이후 반상[8]이 사라지고 노비 제도가 폐지되어 법률적으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되었다. 하지만 해방(1945) 이후까지도 관습적으로 천민과 노비는 상존(尙存)했다. 그 과정에서 일부 재주가 좋은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종중[9]에 끼어들기도 하고, 일제강점기 유행한 사보[10]를 만들기도 했는데, 그런 행동을 투탁[11]이라 한다. 그들은 기왕이면 명문거족에 투탁했으므로 추정컨대 명문거족 족보에는 투탁인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유튜브 등에서 떠드는 사람들 주장이 전혀 거짓은 아니다.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첫째 우리나라 족보는 여말선초(麗末鮮初)에 시작되었는데, 자기 조상을 삼국시대는 물론 단군조선, 심지어 중국 삼황오제(三皇五帝)까지 끌어다가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데, 모든 김씨는 김알지(金閼智)나 김수로(金首露), 모든 박씨는 박혁거세(朴赫居世) 후손이라는 식이다. 『삼국사기』<열전 김유신(상)>에도 “김유신은 서울 사람이다. 12대조 수로는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12] ~중략~ “자손이 대대로 이어져 9대손 구해[혹은 구차휴라 한다]에 이르렀는데, 김유신의 증조부다. 신라 왕실은 자기들이 소호금천씨[13] 후예라 여겨 성을 김이라 했고, 김유신 비문에도 ‘헌원[14]의 후예로, 소호의 자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남가야 시조 김수로도 신라 왕실과 성이 같다.”[15] 신라 왕실(경주김씨)이 소호금천씨(少昊金川氏) 후손인데, 김유신(김해김씨)도 소호김천씨 후손이면 성본(姓本)이 같다. 김씨가 소호금천씨 후손인 근거는 성으로 사용하는 김(金)자가 금천씨 금(金)자와 같은 것이 전부다.
또 <고구려본기 광개토왕 17년(408)>에는 “모용운의 조부 고화는 고구려 방계 혈족인데, 자칭 고양씨[16] 후손이라 하여 고를 성으로 삼았다.”[17] 했는데 마찬가지로 고양씨 고(高)와 글자가 같아서다. 즉 무언가 핑계만 있으면 자기 성씨와 연결하여, 가문의 역사를 유구(悠久)하게 만들려고 애를 많이 쓴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현대 족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대표적 사례로 최씨대동경주기원설[18]이 여기에 해당한다.
자기 가문 역사를 정보(情報)가 없는 아득히 먼 옛날로 끌어 올리려다 보니, 전설 속 인물을 끌어다가 자기 조상으로 만든다. 중국에는 전설 속 실존 인물 강태공(姜太公) 후손으로 자그마치 102개 성씨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강태공 여상(呂尙)은 성씨가 강씨인지 여씨인지도 불분명하다. 생물학적(生物學的)으로 강태공 후손 아닌 사람이 강태공을 자기 조상이라 하면, 강태공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진짜 조상은 어떻게 되는가? 내가 지금 현재를 살 수 있게 된 원인은 강태공과 같은 시대에 함께 살았던 조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조상은 자신이 비루(鄙陋)하게 살았던 일생만 생각해도 원통한데, 하물며 피를 물려 준 후손에게까지 비루하다는 이유로 버림받게 된다면 그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둘째 전주최씨는 문성공계, 문열공계, 사도공계, 문충공계로 나누어진다. 현재 전주최씨 인구는 약 50만인데 4대 계열 비조가 살았던 1300년 무렵에는 전주최씨가 4명에 불과했을까? 누구라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 할 것이다. 당연한 것이 찬성사공 최선능(崔善能)은 문성공(文成公) 최아(崔阿)의 사위고, 문정공(文貞公) 최재(崔宰), 완산군(完山君) 최사검(崔思儉)도 촌수(寸數)가 멀어서 문성공과 같은 문중[19]은 아니므로, 문성공, 문정공, 완산군 모두 형제, 사촌, 육촌, 팔촌 등 수없이 많은 일가붙이가 함께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50만 전주최씨가 모두 4분 후손이라면, 수많은 일가붙이 후손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가?
내용이 복잡하므로 문성공 후손만 검토해보면, 문성공 형제 등 일가붙이 후손 중에서 문정공과 완산군 후손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주최씨에서 제외되었다. 같은 이유로 제외된 사람이 더 있으니, 문성공 후손이지만 부곡인, 노비 등으로 격하(格下)된 사람들이다. 그들도 생물학적으로 문성공 혈통이지만 부곡인이나 노비로 살 때는 전주최씨 족보에 수록될 수 없었다. 갑오개혁 이후 4대 계열 어딘가에 끼어들거나, 사보(私譜)를 만들거나, 새로운 본관으로 창성[20]하기도 했을 것이다. 문성공계 투탁인을 분류하면, 생물학적 문성공 후손, 문성공 일가붙이(문열공계, 사도공계 포함) 후손, 타성인{他姓人, 문충공계, 속현성(우주최씨 등) 포함} 후손이 있다. 얼핏 생물학적 문성공 후손은 투탁이 아닌 것 같으나, 세월이 오래되어 떨어져 나간 자리를 찾아서 연결할 수 없어서 새로 세계(世系)를 만들어 붙여야 하므로 환부역조는 불가피하다. 대표적 사례로 전주최씨에서 문성공을 문열공 후손으로 억지로 이어 붙이려는 시도 또한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 거의 모든 족보에 조상이 어떤 벼슬을 했다고 적혀 있는데 군수, 현감 등 지방관도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 중앙조정 관직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광주, 전남, 전북, 제주, 금산(충청도)을 합한 전라도 전체 관원(官員) 숫자가 겨우 200여 명에 불과하다. 족보에 적힌 것처럼, 그렇게 많은 지방관이 있으려면은 조선은 8도가 아니라 80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족보 기록대로 대부분 조상이 서울 조정에서 벼슬살이했다면 도대체 지방에는 누가 살았다는 말인가?
우리나라는 피휘[21] 전통이 있다. 기휘(忌諱)라고도 하는 이 전통은 조상 이름을 한 글자씩 나누어 부르도록 강요한다. 아무나 부를 수 있는 호(號)나 시호(諡號)가 있지만 호나 시호가 있는 사람이 극히 일부에 불과한 문제가 있으므로 벼슬을 인용해 호처럼 사용하면, 피휘를 안 해 편리할 뿐 아니라, 양반처럼 보이는 장점도 있다. 참봉, 감찰, 봉사 등 주로 직급 낮은 벼슬을 사용하는 것은 검증을 어렵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족보에 적힌 벼슬을 진짜로 생각하면 오해다. “O자X자 할아버지”라고 복잡하게 부를 것을 “참봉공”하고 간단히 부를 수 있으니 편리하다. 공(公)은 존칭의 뜻도 있지만, “할아버지”의 뜻도 있다. 정리하면 족보에 적힌 벼슬은 호칭 이상 의미는 없고, 윤리적 문제도 없다. 다만 그 벼슬이 진짜라고 곧이곧대 믿지만 않으면 된다.
가문을 화려하게 장식하려고 근거 없이 옛날 저명인사를 끌어다가 조상으로 만든다거나, 검증 불가능한 세계를 만들어서 억지로 이어 붙이는 짓은 환부역조 패륜이므로 해서는 안 되지만 오르지 않은 벼슬을 이용해 피휘하지 않고 쉽게 부르는 것을 장려(獎勵)할 일은 아니겠지만, 윤리적 문제가 없고 약간의 편리성도 있으므로 크게 문제 삼을 것까지는 없는 것 같다.
인류는 원시시대를 거쳐서 문명한 오늘에 이르렀으므로 우리는 모두 원시인(原始人) 후손이지만, 나에게 DNA를 물려 준 원시인이 누군지는 알 수 없다. 문명이 생기면서 자취가 남게 되었고, 세대가 내려올수록 문명이 발전하여 자취는 더욱 선명해져 오늘에 이르렀다. 거꾸로 보면 아버지, 할아버지는 명확한 물증이 있지만, 세대가 올라갈수록 점차 입증이 어려워져서 결국 상고시대(上古時代)에 이르면 거의 입증이 불가능하게 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유튜버(youtuber)들이 떠드는 자극적 정보에 흔들리지 않도록 올바를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지금까지 알려진 유구한 역사의 명문거족 함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증거를 바탕으로 전주최씨 고대사를 기록하여 전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책은 이러한 목적에서 저술되었다.
전주최씨 문성공 26세손 최순주(崔順周)
* 각주 ------------------
[1] 部曲人. 부곡(部曲)에 사는 천민(賤民). 과거 응시가 금지 되었다.
[2] 良妾. 양인(良人) 신분의 첩(妾)
[3] 賤妾. 천인(賤人) 신분의 첩(妾)
[4] 自賣奴婢. 자진하여 몸을 팔아 노비가 된 사람.
[5] 從母法. 어머니가 노비이면 자식은 모두 노비가 되는 법.
[6] 雜尺. 다양한 직무에 종사하는 천민(賤民). 몸을 움직여 일하는 사람.
[7] 中人. 향리(鄕吏), 의사, 법률가, 통역(通譯), 화가 등 전문직 종사자.
[8] 班常. 양반(班)과 평민(常)의 구분.
[9] 宗中. 8촌이 넘는 일가붙이.
[10] 私譜. 종중 허락 없이 개인적으로 만든 족보. 일제강점기에 유행했다.
[11] 投託. 남의 조상을 자기 조상으로 족보를 만드는 것. 남의 족보에 끼어드는 것.
[12] 金庾信王京人也十二世祖首露不知何許人也.
[13] 少昊金川氏. 전설 속 중국 고대 첫 임금 황제(黃帝)의 아들.
[14] 軒轅. 중국 전설 속 첫 임금 황제(黃帝). 한국의 단군(檀君)처럼 회자 된다.
[15] 其子孫相承至九世孫仇亥[或云仇次休]於庾信爲曾祖羅人自謂少昊金天氏之後故姓金庾信碑亦云軒轅之裔少昊之胤則南加耶始祖首露與新羅同姓也.
[16] 高陽氏. 전설에 나오는 중국 다섯 성군 5제(五帝) 중 한 사람 전욱(顓頊)
[17] 雲祖父高和句麗之支屬自云高陽氏之苗裔故以高爲氏焉.
[18] 崔氏大同慶州起源說. 모든 한국 최씨는 사량부(경주) 후손이라는 주장.
[19] 門中. 8촌 이내 일가붙이로 고조부가 같은 사람들. 8촌을 넘으면 종중(宗中)이다.
[20] 創姓. 성씨를 새로 만듦. 여기에서는 성과 본을 함께 만드는 것을 말한다.
[21] 避諱. 조상(祖上), 스승, 성인, 임금 등 거룩한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