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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체인 성경 읽기(3월19일부터 15일)
3월 9일(일) 맥체인 성경읽기
출애굽기 20장, 누가복음 23장, 욥기 38장, 고린도후서 8장
출애굽기 20장은 십계명을 주실 때, 말씀으로 일 계명에서 사 계명까지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으며, 오 계명에서 십계명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하는 일들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지켜야 할 것과, 하나님 앞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릴 때, 제단에 대한 말씀을 흙으로 제단을 쌓으라고 하셨고, 만일에 돌로 쌓을 때는 정으로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제단을 쌓으라고 하십니다. 또한 제사를 드릴 장소는 하나님께서
정하여 준 곳에서, 드리라고 하십니다. 이 모든 말씀을 출애굽 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과 함께 나온 모든 이방 사람이 직접 다 들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출애굽기 20장
18절에서 21절까지 말씀으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본 이스라엘과 이방 백성들은
자신들이 죽을까 봐, 모세를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올려보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
때문에, 장차 모든 민족을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이 있을 것에 대하여 신명기 18장
15절에서 19절까지 기록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교만하게 드리는 제사를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흙으로 제단을 쌓으라고 하셨고, 돌을 쓸 때는 자연석으로 하라고 말씀
하셨던 것이며, 제단을 낮게 만들어서 맨살이 보이지 않게 하라고 하십니다. 즉 죄와 관련한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서 제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자신에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은 자신의 자아(自我)가 십자가상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성령께서 함께, 하는 삶으로
열매를 맺으라고 하십니다. 저 스스로 돌아보며 끊임없이 겸손으로 옷 입기를 다짐해 봅니다.
이어서 살펴본 누가복음 23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세 이후로 모든 영혼을 살리기 위하여
이방인들에 의하여 온갖 치욕을 당하시고, 죄의 값을 치르시려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셔서, 십자가상에서 죄의 값을 치르시는 일을 기록하여 알려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자신에 구세주로 영접하지 못하고, 십자가상에 못 박은 대제사장들과
율법 학자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고발하는 말은 모두 거짓된 말로서, 로마가 통치하는 일에
동조하는 말로 이스라엘 민족을 오도하고,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반대하면서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사실과 다른 말로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 있을
때, 을사오적들이 한 말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곧 정의로운 말이 아닌 아부하는
말을, 함으로서 정의를 굽게 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하나님과 같은 마음, 양심 곧 이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는 아무런 변명을 할 수 없게 하십니다. 빌라도(창을 가진 자)에 이름의 뜻과 같이
힘과 권력을 가진 빌라도가 보더라도 죄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세 번에 걸쳐서 무죄를 이야기하지만, 이미 자신들의 생각에 갇혀서 양심을 버린 자들은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는 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관중을 선동하였고, 이러한 군중 몰이는
성공하였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상에 못 박아서 죽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이미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사야를 비롯하여 수없이 말씀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스스로 성경 말씀을 거울삼아서 자신에 삶을 항상 살펴야 하는 것이며,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욥기 38장에서 하나님께서 욥을
향하여, 말씀하는 내용으로 알게 하십니다. 즉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으며, 모두가 하나님께서 하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다못해 모든 날짐승, 들짐승, 길짐승들이 먹고 사는 것까지, 다 책임지고 하고 있다고 하며,
깊은 심연까지 직접 걸으셨다고 하십니다. 오늘날 과학이 발달해서 심해 잠수함으로 겨우
일부분만 알게 되는 세상이 되었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학문을 뛰어넘는 일들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일을 놓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은 사람의 학문을
우습게 여기신다고 하십니다. 이는 어린아이와 같이 말씀을 받고, 삶을 살라고 하시는 것이며
겸손하게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면서 살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바다, 속 깊은 곳에 있는 물 근원에까지 들어가 보았느냐?
그 밑바닥 깊은 곳을 거닐어 본 일이 있느냐? - 욥기 38장 16절 - 새번역성경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는 말씀이 고린도후서 8장에 말씀으로 교회들끼리 어려울 때
서로 구제 헌금으로 돕고, 믿음으로 서로를 사랑으로 대하면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은 그대로 살아서 서로에게 힘이 되는 삶을 살라고
부탁하면서 바울의 제자 디도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이는 믿음에 삶을 말씀합니다.
저의 믿음에 현주소를 말씀을 살피면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좀더 정진하는 믿음에
삶을 살아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해 봅니다.
3월 10일(월) 맥체인 성경 읽기
출애굽기 21장, 누가복음 24장, 욥기 39장, 고린도후서 9장
출애굽기 21장에 말씀은 사탄의 종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조건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반드시 지켜야 할 법규로 주인과 종에 대하여 말씀을
하여 주심으로서, 하나님이 공의와 질서를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씀하여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유괴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여
악의 뿌리를 제거하라고 하시는 것은 모든 영혼을 창조하시고, 남자와 여자의 관계 가운데
영혼의 옷, 몸을 창조하시는 참 부모로서 하나님과 같은 마음으로 살지 않는 일은 그 뿌리가
존재할 수 없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람을 이롭게 해야 할 소가 사람을 공격할 때
그러한 소는 주인이 알아서 죽이라고 하십니다. 즉 창조의 섭리를 배반하는 존재는 살 수
없다고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살펴본 누가복음 24장에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로 제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3년 동안
계속해서 동행하였던 베드로와 요한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었고, 조상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깨닫는 마음을 주지 않으셨기에 자신들의 눈으로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모습을 직접 보여 주시고, 그들의 마음에 눈을 열어 주셨을 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에 구세주로 영접하였고, 이후로 이들에게 일어난 온갖 고난과
환난을 겪을 때, 죽음에 이르는 순종과 믿음을 보였던 것입니다. 이는 45절에 말씀과 같이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셨을 때 가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오늘을 사는 믿음에 사람이
어떠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야 하는지를 본으로 보여 주고 계신 일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통로로 삼으셔서, 함께 살고 계시는 성령 하나님의 감동과 감화하심을 알고
순종하려면, 피조물을 통하여 얻은 지식으로 형성된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자아(自我)가
죽어야 비로소 성령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 가운데 역사하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교만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욥기 39장에 말씀은 사람과 함께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날짐승과 들짐승에 관하여 상세하게
말씀하시면서 어떻게 그 짐승들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욥이 알고 있느냐? 고 반문하시며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거듭하여 강조하십니다. 이는 사람이 함부로 하나님을 판단하거나,
부인할 수 없게 하는 말씀으로 오로지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찬양해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9장의 말씀에서 하시는 말씀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 사람으로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하십니다. 즉 여느 짐승 같은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같은 마음, 양심 곧 이성으로 감정을 따라서 사는 짐승과 구별되게
삶을 살아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제와 자매를 돌보는 뜻으로, 마음 가운데서 우러나오는
사랑에 마음으로 구제 헌금을 하여 서로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삶을
살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으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며, 마음의
문을 닫아 놓았기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방적인 은혜를 자신이 소유한 자유의지로 받을 수
없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 반드시 영원한 삶을 두고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면서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모른다고 부정하면서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
성경 말씀을 받아들여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모든 사람에 마음의 중심을 살피고 계신다는 사실이며, 진리를 잊지 말아야
자신에게 주어질 영원한 삶을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증거로 주는 마음이 바로
사람이 좋은 일을 하고 난 후에 갖게 되는 따뜻한 마음이며,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육체는 비록 고단하고, 힘이 들더라도 다음에 또 기회가 주어지게 되면
주저하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이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늘 힘씁니다.
3월 11일(화) 맥체인 성경 읽기
출애굽기 22장, 요한복음 1장, 욥기 40장, 고린도후서 10장
출애굽기 22장에 말씀은 전반적으로 죄의 값을 치르면서 자신의 삶을 살라고 주문하는 말로
다른 사람이 노력하여 얻은 것을 탐내지 말라고 하십니다. 도둑질하는 사람은 넉넉한 가운데
살면서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경우라도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고 강하게
경고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는 말씀은 외국인이나, 고아와 과부를 홀대하지 말라고 하여,
함께 사는 존재로서 돌보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만일에 어려운 사람을 괴롭혀서,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그들의 부르짖음을 하나님이 들어 주시는 날에 그들의 자녀들도
꼭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같은 사람으로서 어려운
사람이 꼭 필요로 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담보물로 잡지 말라고 하셔서, 사람이 가장
기본적인 삶을 살게 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출애굽기에 말씀은 죄를, 인하여 사탄의 종이
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의 값을 치러주셨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살아야 하는 삶을 율법으로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이어서 읽은 요한복음 1장에 말씀은 천지창조부터 함께 하셨던 예수님께서 참 빛으로서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셨음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제주로 영접한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고 하십니다. 이에 대한 보증이, 성령 하나님으로
이러한 일들을 알리려고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세상에 오신 분이 세례 요한이라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계셔서, 모든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십니다.
이와 함께 깨닫게 하는 말씀이 베드로와 형제간인 안드레를 통하여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일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을 때,
예수님이 처음 만난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셨고, 그들이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른 것처럼 생각할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인격적인 만남을 통하여 사명을 주시든지, 일을 맡기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서 믿는 사람은 함께 살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기에, 삶을 살면서 잠시 넘어져도 바로 오뚜기처럼 일어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날을 맞이할 수 있음을 51절에서 인자 위에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하십니다.
욥기 40장에 말씀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능력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직접 해보라
하시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욥이 하나라도 하게 되면 욥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욥을
찬양하고, 욥이 승리하였다는 것을, 인정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사람이 스스로 머리카락
하나도 돋아나게 할 수 없는 존재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으로 생을 이어가고 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베헤못에 대하여 말씀함으로 사람들이 공룡시대를 말하는 것에
대하여 알게 하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베헤못은 오늘날 하마와 비슷한 짐승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17절 꼬리에 대한 말씀은 공룡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러한 베헤못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라고 하십니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알게 하는 것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살펴본 고린도후서 10장에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바울 자신의 복음을 들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말씀을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를 두고 편지를 쓴 것으로, 함께
있을 때, 부드러운 말로 말씀을 전하였지만, 삶으로 본을 보여 준 것을 생각하여, 말씀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삶으로 살아야 할 것을 부탁합니다. 그래서 다시 만날 때에는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할 수
있도록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자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자고
권면합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것은 바울 자신의, 생각으로 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따라서 한 것이라고 12절에서 16절까지에 말씀으로 확인시켜 줍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영, 성령으로 모든 일들을 직접 하고 계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때, 성령으로 잉태되셨던 것이며, 믿음의 사람과 성령께서 동행하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되셔서, 참부모로서 자녀를 직접 구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유의지와 책임에 관한 일, 즉 인격적으로 대하고 계시기에 하나님은 구원에 손을 절대로
먼저 놓지는 않으시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하면, 하나님도 배반하십니다.
3월 12일(수) 맥체인 성경 읽기
출애굽기 23장, 요한복음 2장, 욥기 41장, 고린도후서 11장
출애굽기 23장에 말씀은 저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셨던 말씀으로 마음의 눈을 열어 주셔서
보게 된, 말씀을 믿음에 형제, 자매들에게 전하였을 때, 마치 이단을 보듯이 보았고, 이를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저 자신을 놓고 기도를 드렸을 때 주신 말씀이 출애굽기 23장 2절에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까지 이렇게 말씀을 살피면서 감동과 감화하여 주실 때마다,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블로그, 카페를 통하여 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거짓 증인이 되지 말라는 말씀에 이어지는 말씀은 원수가 고난과 환난을 겪을 때, 좋아하지
말고, 도와주라는 말씀에 이어서 안식년을 지켜서, 안식년에 소출은 추수하지 말고, 가난하고
나그네와 짐승들을 위하여 놓아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일 년에 세 번에 절기를 지키라고 하십니다. 즉 유월절(무교절), 맥추절(추수감사절), 수장절을
지켜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이는 사탄의
이간질로 죄를 지어서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던 것을 회복시키는 일을 말씀합니다.
이러한 삶은 자신의 첫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게 되는데, 이에 대한 말씀을
첫 것은 모두 하나님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실 때, 이집트에 있는 모든 생명체에 첫 것을 희생제물로 하나님이 직접 취하셨기에
생긴 일이며, 이때 이집트에 모든 우상을 함께 심판하심으로서, 하나님을 세상이 알게 하신
일로, 이스라엘을 통하여 세상에 있는 모든 민족을 부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기에
첫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실 일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에는 머리카락까지 세실 정도로 보호하고, 채워주심이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천사를 보내어 인도하시겠다는 말씀으로 알게 하십니다. 하지만 자유의지와
책임에 관한 일, 곧 인격적으로 대우하시는 하나님의 인품을, 인하여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면
그 자체가 그 사람을 찌르는 가시와 넘어지게 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이어서 살펴본 요한복음 2장에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생애에 삶을 시작하시고 삼 일째 되는
날에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신 첫 번째 기적에 관한 말씀으로, 사람이 삶을 살면서 왜 술에
취하여 살지 말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십니다. 즉 물은 생명수입니다. 하지만 술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답게 삶을 살 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사람이
겪는 고난과 환난으로 찌르는 가시와 넘어지게 하는 일을 만듭니다. 그래서 술에 취하여,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짐승에 비유합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으로서 모습을
지니지 못하여, 비인격적인 모습으로 삶을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일을 생각하면서 함께 떠오르는 조심스러운 생각은 선악과가 포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열두 정탐꾼을 보내었을 때,
그들이 에스골(포도송이) 골짜기에서 두 사람이 메어야 할 정도에 포도송이를 따서 가지고
돌아왔지만, 여호수아(여호와는 구원이시다)와 갈렙(개)을 제외하고 모두 불순종하였다는
사실과 함께 하나님께서 더 이상 함께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마음을 돌이키는 것
같았지만, 자신들의 생각에 갇혀서 고집을 부렸고, 모세와 언약궤가 함께 하지 않았음에도
가나안 땅으로 정복 전쟁에 나섰지만, 크게 패하였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예수님께서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셨던 첫 번째 기적을 행한 후에 하신 일은 예루살렘 성전
정화를, 하셨으며 이어서 헤롯 대왕이 46년 동안 유대인들에 환심을 사려고, 스룹바벨
성전을 증축한 대리석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세우겠다고 하셨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창세 이후로 모든 영혼을 살리는 죄의 값을 치러주셔서 이를 믿는 사람을
성령님을 통하여 성전이 되게 하는 일이 되며, 그 증거로서 십자가 사건이 있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으며, 뒤를 이어서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을 믿었던 믿음의 사람에 무덤에서 함께
부활하는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과 같이
아무리 의로운 일이더라도 사람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일에 있어서는 선을 악이라고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나라가 반으로 갈라지는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은
이러한 사실마저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의지하지 않으셨고,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순종의 본을 보여 주셨던 일을 되새기고, 누가 자신에게 총부리를, 들이대고 있는
존재인지를 잘 살피고, 열매를 맺는 삶에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고 하신 불 심판이 진행되고 있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욥기 41장에 말씀은 리워야단에 대한 말씀으로 용에 관한 말씀입니다. 욥기에 말씀은 세상이
왜 고난과 환난으로 뒤덮여 있는지?!를 알게 하십니다. 욥기에 시작은 욥에 대하여 소개를
하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천사들)과 사탄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보고를
드리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42장에 앞서서 하는 말씀은 리워야단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리워야단의 말씀이 누가 보더라도 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자세하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용이 곧 옛 뱀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최측근에서 보좌하였던 루시퍼 천사
이었지만, 최초로 하나님 아버지를 배반하였기에 사탄이며, 악마, 마귀라는 사실을 알게 하며,
이에 대하여, 확인시켜 주는 말씀이 요한계시록 12장 9절과 20장 2절에 말씀입니다.
사탄의 정체에 대한 말씀을 마무리하는 말씀은 교만한 것들을, 우습게 보고 그 거만한 모든
것, 앞에서 왕 노릇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모든
존재가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삶의 자세를 말씀합니다.
이어서 살펴본 고린도후서 11장에 말씀은 하나님의 신부로서 성도들에 삶을 두고 말씀하며,
바울의 마음을 주장하는 성령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에 성도들을 향하여 갖는 안타까운
마음을 3절에서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뱀이 그 간사한 꾀로 하와를 속인 것과 같이,
여러분의 생각이 부패해서,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대한 진실함[과 순결함]을 저버리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과 함께 다른 영에 대하여 알게 하십니다. 사람이 귀신으로
이야기하는 존재는 다름, 아닌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으로 49일이 지나도록
떠나지 않고, 이 세상을 떠도는 영혼을 가리킨다고 국어사전에서, 조차 말하고 있습니다.
귀신(鬼神) : 명사 - 사람이 죽은 뒤에 남는다는 넋(영혼). - 국어사전
여기에서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 하나님은 영이시며, 하나님으로부터 영을 받아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서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과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 영혼의 옷, 몸을 남자와 여자의 관계 가운데 창조하셔서, 영혼을 넣어 주실 때부터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주는 기간을 인생으로 살게 됩니다. 하지만
썩어지는 옷, 곧 몸을 입고 살기에 영혼의 옷, 몸이 나이를 먹게 되면 혼(魂), 곧 기(氣)는
점점 약해지면서 정해주신 때가 이르면 영혼은 몸으로부터 분리됩니다. 이를 사람들은 죽음,
곧 사망(死亡)이라고 부릅니다. 기(氣)는 숨 쉴 때 나오는 기운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흙으로 지으시고, 코를 통하여 생기(生氣)를 불어넣어 주셨다는 말입니다.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 창세기 2장 7절 - 새번역성경
사람이 무심하게 쓰는 말 중에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말들이 많습니다.
이는 현존하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깨닫게 하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양심에 모두 기록
되어져 있기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러 심판대 앞에 설 때, 아무도 변명할 수
없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서 하나님의 신부로서 삶을 방해하는 사탄이 빛의 천사로
가장하고 믿음에 사람을 속이고 있기에, 이방인들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은 온갖
고난과 환난을 겪으면서도 복음을 올바르게 전하기 위한 자신의 영적인 싸움과 삶을
포기하거나, 절망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에 약함을 통하여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말씀을 전하고 있으니까, 성도로서 믿음 안에서 굳게 설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말씀 안에서 주시는 감동과 감화하심에
사도 바울과 같이 귀 기울이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가져봅니다.
3월 13일(목) 맥체인 성경 읽기
출애굽기 24장, 요한복음 3장, 욥기 42장, 고린도후서 12장
출애굽기 24장에 말씀은 하나님의 섬세하심을 알게 합니다. 그것은 십계명과 율법을 주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과 사람과에 관계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율례와 규례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기록하신 말씀이 출애굽기 24장에 말씀이며, 모세를 비롯하여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
그리고 이스라엘의 장로 일흔 명과 함께 하나님께로 올라와서 멀찍이 엎드려서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말씀과 함께 4절부터 8절에 말씀을 통하여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기둥을 세우고, 제단을 쌓은 다음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고, 언약의 책을 낭독하고, 피로서
언약을 맺는 의식을 가진 후에야,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를 비롯
장로 70명이 시내 산으로 올라갔으며, 그곳에서 하나님을 뵈었고, 음식을 먹었다는 9절부터
11절에 말씀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여호수아와 함께 시내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여기에서
헷갈릴 수 있는 것이, 시내 산으로 올라 간 사람은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를 비롯하여
일흔 명에 장로들이었고,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뵈었는데, 왜 여기에서 다시 모세는 자신의
부관 여호수아만을 데리고 시내 산으로 올라갔다고 하시는 것일까요? 이 같은 의문에 답은
1절 하반 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즉 “멀찍이 엎드려서”, 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
하셨기에 시내 산에서 먹고 마셨지만, 정작 하나님과 대면한 사람은 모세밖에 없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함께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을, 향하여 가까이, 가다가 그 어디쯤부터
모세만 하나님께로 가서 십계명과 율법의 말씀을 돌판에 기록하여 주신 것을 40일 동안
교육받았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믿음에 삶을 살고 있는지? 를
깨닫게 하는 일이 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성막을 떠난 후에도 계속해서 성막에 머물렀던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모세 다음으로 지도자가 될 것을, 알게 하는 일이 모세가 자신의
부관 여호수아를 데리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만 말씀하셨던 것이 아니며 모세로 말씀을 받게 하신 것은 오늘날 헌법과
같은 죄를 드러내는 중추신경과 같은 삶의 기본이 되는 법을 주셨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어서 살펴본 요한복음 3장에 말씀은 출애굽기 24장 말씀에 이어지는 말씀으로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삶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으며, 법 위에 율법, 곧 마음의
할례,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성화되는 삶을 말씀합니다. 이에 대하여 알 수 있도록 유대인의
선생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질문하고, 답하는 말씀으로 알게 하십니다.
즉 다시 태어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하시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세례의 의미가 노아의 홍수 때, 죽은 영혼을 생각하며, 선한 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삶을 의미한다고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서 22절까지 말씀으로
확인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어둠에 속한
사람으로 사탄이 잡고 있는 죽음의 권세 하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일을
드러내는 일이 세례로 세례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세례에 차이를 세례 요한은
공개적으로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증언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이 모든
구원의 은혜가 시작되고 있다면서, 신랑과 신부에 비유로 참 하나님이시며, 구제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례 요한의 증언에 더하여
예수님이 말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이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성령을 아낌없이 주시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은
16절 말씀과 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것인데, 이는 믿는 사람에게
영생을 주어, 아들에게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어서 살펴본 욥기 42장에 말씀은 세상의 사람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하나님과 다른
무한하신 권능과 힘으로 세상의 모든 일을 직접 주관하고 계시기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은 어김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덧붙여 하는 말은 그동안 하나님에
대하여 잘못 알고 말하였으며,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직접 뵙고 나니, 자신의 주장을 거두어
들일 수밖에 없다고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욥과 말씀을 마치고, 욥의 세 친구에게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마련하여, 욥에게 가지고 가서 자신들을 위하여, 욥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번제를 드려달라고 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욥과 같이 하나님에 대해
옳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욥이 친구들을 위하여 번제를 드리고 난 후에야
욥의 재산을 배나 더 돌려주셨고, 자녀도 이전과 같이 아들 일곱과 딸 셋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140년을 더 살면서 손자 사 대를 보았다고 합니다. 욥이 고난을 받을 때, 건강을
모두 잃었는데, 치아가 다 빠졌고, 온몸은 온갖 피부병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굉장히
심해서 기왓장으로 긁어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욥이 회개하고, 친구를 하나님 앞에서 용서
하였을 때, 회복시켜 주셨던 것은 젊은 상태로 회복하여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때부터 믿음의 성도가
상으로 받게 될, 썩지 않을 몸을 주실 것을 알게 하십니다.
이어서 살펴본 고린도후서 12장에 말씀은, 사도 바울이 다녀온 하늘나라에 대한 말씀을 마치
자신에 경험이 아닌 다른 사람이 경험한 것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모습과 계시를 들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을 고린도 교회에 서신을 섰던
AD 55년 말에서 56년 초로부터 14년 전이니까, AD 41년경에 경험하였다는 말입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자신에게 주어진 이방인에 사도로서 사명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위로와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백하는 말이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한 고백은 모든 믿음에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때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사도 바울의 고백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낼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후에
모든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성령에 이끌려서 만류하였지만, 자신이 핍박을, 받고 감금을
당하게 될 것을, 본인조차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길을 갔고, 로마에서 최후를 맞게
되면서까지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소홀히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과연 저도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견딜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과 함께 끝까지 견디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한 일을 가지고
스스로 자랑하게 되면, 그 일은 이 세상에서 상을, 받은 것이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이 자신의 말을 하게 된 것은 고린도 교회에 믿음의 사람들을, 인한
것이라고, 11절에서 이야기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은 사람에게 위로를 받고, 인정을 받으려
하지만, 완전한 위로와 인정을 받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사람을 믿지 않았고,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일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직접 함께, 하시려고 아버지의
영,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셔서, 함께 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믿고,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마음으로 듣는 사람은 열매를 맺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 삼위일체가 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저도 이러한 삶을 놓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습니다.
3월 14일(금) 맥체인 성경 읽기
출애굽기 25장, 요한복음 4장, 잠언 1장, 고린도후서 13장
출애굽기 25장에 말씀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출애굽 하는 날에 이집트 사람들로부터
빼앗은 온갖 물건 중에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바치는 것은, 하나님과 만나는 성막을 지을
재료로 받으라고 하셨고, 성막과 관련한 모든 설계도를 모세에게 직접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언약궤를 만드는 나무로 아카시아 나무를 쓰라고 하시는 이유는 어떠한 뜻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카시아 나무는 번식성이 강하고, 찌르는 가시가 많은 나무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반드시 지켜야 할 십계명과 율법을 주신 시내 산에 뜻이 “가시나무 무성한
곳”,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관관계가 뜻하는 것은 불순종하는 삶에서
순종의 삶을 살게 하는 일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닐까요?!
그래서 영혼이 살기 위하여 꼭 필요한 영의 호흡은 기도이며, 영의 양식은 성경 말씀이
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어서 살펴본 요한복음 4장에 말씀은 세례 요한과 세례를 주는
일을 가지고 바리새파 사람들이 문제 삼으려는 것을 아시고, 그 자리를 피하여 사마리아,
곧 이스라엘의 수도이었던 곳으로 가셨고, 그곳 우물가에서 뜨거운 대낮에 여인을 만나
우물물을 달라고 하시면서 여인에게 영혼의 생수를 줄 수 있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이 여인은 기쁨으로 충만하여 자신과 함께 사는 동네 사람에게 자신이
메시야를 만났다고 전합니다. 이 여인의 전도는 그 동네 사람을 구원하는 이틀에 시간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사마리아를 유대 사람이 하찮게 보았던 것은 솔로몬이 하나님을 배반한
결과로부터 시작되었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백성의 수가 많다)때, 말씀을 성취하셔서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백성을 더하게 하소서)에게 주셨고, 남 유다은 르호보암에게 주셔서
이후로 북이스라엘은 악의 기준이 되는 여로보암 왕 이후로 우상숭배를 하여, B.C. 721년에
앗시리아의 살만에셀 5세에 의하여 멸망 당하면서, 이주정책과 함께 통혼 정책에 의하여
이방인과 같은 존재가 됩니다. 즉 대한민국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는 상황과 같이 되었고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로 완전히 적대적인 감정을 갖게 되었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사마리아를 떠나신 예수님은 자신에 고향 갈릴리로 가셨고, 그곳에서는 스스로 갈급한
마음으로 찾아온 왕의 신하에 아들을 말씀으로 치료하여 주십니다. 이러한 표징을 보여
주면서 하신 말씀을 오늘을 사는 믿음에 사람들은 되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표징이나 기이한 일들을 보지 않고는, 결코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 말씀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기를 저 역시 지난해 11월에 발 절단 수술을 하기 전에 간절한 마음으로
바랐던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잠잠하셨고, 잠시 저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일을 놓고 여쭈었을 때, 주신 마음은 이제껏 마음의 눈을 열어 주셔서 새롭게 보고 있는
말씀을 같은 병실에 있는 환우들에게 때를 따라서 전하게 하셨고, 큰 은혜를 더하셨습니다.
이후로 저는 오른발을 시멘트 독이 올라서 절단하는 일을 겪었지만, 오히려 감사는 삶을
살고 있으며, 성령 하나님의 감동과 감화하심에 순종하려고 더욱더 힘쓰고 있습니다.
잠언에 말씀이 좋은 명언으로만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며,
잠언에서는 예수님을 지혜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말씀의 시작을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하여,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여,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정의와 공평과 정직을 지혜롭게 실행하도록 훈계를 받게 하며,
어수룩한 사람을 슬기록게 하여 주며, 젊은이들에게 지식과 분별력을 갖게 하여 주는
것이니, 지혜 있는 사람은 이 가르침을 듣고 학식을 더할 것이요, 명철한 사람은 지혜를
더 얻게 될 것이다.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사람의 말과 그 심오한 뜻을 깨달아 알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 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23절부터 33절까지에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창세 이후로 모든 영혼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일을 두고 모세는 신명기 18장 15절
이하에 말씀으로 미리 알려 주었습니다. 삼차원에 속하여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권능에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깨달을 수 없으며, 실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어야 했던 것이며, 이를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영,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사시며
중보의 기도와 조력자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에 말씀은 구원받은 신자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버림받지 않도록 스스로 항상 말씀으로 살피라고 권면합니다.
“끝으로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그리하면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통하여 고린도 교회에 서신서의
형식으로 말씀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겸손하게 받아들여서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13절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사도 바울이 기도한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사는 동안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될 것으로 이해됩니다.
오늘날을 사는 모든 믿음에 사람이 영혼의 잠에서 깨어나서 공의와 질서를 지키는 가운데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온전하게 감당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3월 15일(토) 맥체인 성경 읽기
출애굽기 26장, 요한복음 5장, 잠언 2장, 갈라디아서 1장
출애굽기 26장에 말씀은 성막을 짓는 일과 관련하여 말씀하여 주심으로서, 하나님과 만나는
마음가짐과 어떠한 삶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완전한 사랑의 가족 공동체가 될 수 있는지?!
그래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믿음의 성전이 어떻게 삶을 살아야 사랑의 공동체를 이뤄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몸 된 교회를 중심으로, 지체 성전 곧 각 믿음의
사람을 향하여 명령하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를 알려 주십니다.
이를 놓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신랑으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을 신부로 말씀하고,
계시면서 신랑과 신부는 한 몸이라고 말씀하셔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뜻을 가지고, 한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이러한 증거가 옛날 결혼식에서는 청실과 홍실을 혼례상에 놓아서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는 의례로 삼았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11절에 쉰 개의 갈고리로 양쪽 고에 마주
걸어서, 한 천막을 만들라는 말씀으로 하나님에 백성의 삶이 어떠한 삶이어야 하는지?!를
말씀합니다. 이어서 14절에서 천막 덮개를 두 개 더 만들 때, 하나는 붉게 물들인 숫양 가죽,
또 다른 덮개는 돌고래 가죽으로 만들라고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의 값을 치러
주실 일을 숫양의 가죽으로 말씀하였고, 돌고래 가죽은 바다의 왕 용왕, 곧 옛 뱀이며, 사탄,
악마, 마귀를 예수 그리스도에 순종의 제사로 심판하실 일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성막을 세우는 뼈대를, 아카시아 나무를 자재로 사용하게 하심으로서 불순종의 죄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의 값을 치러주시겠다는 성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에
은혜를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결재가
있었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현실을 성막을 짓는 일로서 알게 하십니다. 특히 성막의 설계도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셨기에 정교하고, 섬세한 일까지 행하여,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성막을 지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30절에 기록하여 알려 주십니다.
이어서 살펴본 요한복음 5장에 말씀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많이 기록하신 말씀입니다. 즉
구원이 어떠한 이치로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심판은 또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하여
아주 자세하게 말씀하고 있으며, 이 세상을 살면서 육신에 고난과 환난이 있는 것은 죄가
그 원인이라고 14절에서 "보아라. 네가 말끔히 나았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그리하여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생기지 않도록 하여라.", 라고 말씀 하심으로서,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하여 주고 계십니다. 36년 동안 중풍 병으로 꼼짝 할 수 없었던 사람이 고침을 받은 날이
안식일, 곧 주일이었기에 하나님을 잘 알고, 잘 믿는다는 바리새파 사람들에 율법 학자,
제사장, 장로들은 예수님을 핍박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은 죄를 드러내는 율법을 모세를
통하여 주실 때, 수없이 안식일을 지켜서 아무런 일을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굳이 안식일에
일을 하셨고, 이러한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안식일에 일을 하고
계시기에 하신다고 17절에 기록하셨을까요?!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 19절에서
36절까지 기록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 곧 예수님의 것이며, 예수님의 것이 곧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라는, 성 삼위일체에 대한 말씀으로 충분하게 설명하여 주십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는 분명히 예수님께서 인자가 되신 초림의 뜻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살리시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5장 22절, 27절에서 30절까지
말씀은 예수님이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재림의 날에 있을
일을 말씀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어서 39절에서 하는 말씀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 그 안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하셨고, 그 성경의 기록이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는 말씀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모세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검사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 45절에서 말씀합니다. 이는 죄를 드러내는 죄의 권세가 율법이기에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백 보좌 심판대 앞에서 마지막 세 번째로 심판을
진행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는 변호를 모세는 검사 역으로 심판이 진행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세상에서 만왕의 왕이 되셔서,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의 발아래 순종할 때까지, 천 년 동안 구약의 제사로부터 순종을 가르치는 기간으로
모든 생명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죄의 값을 자신에 자유의지로 믿고 순종하면서
영생을 얻게 하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최초의 배반자 사탄, 곧 옛 뱀이여,
용이고, 악마, 마귀를 예수님께서 통치하는 기간에, 무저갱에 가두셔서, 천 년 동안 미혹하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어서 살펴본 잠언 2장에 말씀도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잠언 2장을 시작하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믿는 사람에게 솔로몬의 죄를 대속하여 주신 예수님께서 솔로몬으로 기록하게 하셨던
말씀으로 생명에 이르는 길을 지혜와 슬기와 명철에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육체가 살기 위하여 필요한 것, 곧 온갖 보화를 찾고, 구하듯이 예수님을 찾고, 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렇게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을 때, 만나 주시고, 하나님께서 하는
일을 깨닫게 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정의와
공평과 정직, 이 모든 복된 길을 깨달을 때, 예수님께서 함께 사시면서 성 삼위일체가 되는
영혼이 거룩하고 즐겁게 되는 삶을 살게 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한 음녀, 곧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썩어짐의 종살이를 하는 하와의 후손으로 살면, 반드시
죽음으로 내려가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잠언 2장 21절, 22절에서, 2장에 맺음말로 하는
말씀은 이 세상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일곱 번째 천사가 일곱 번째 나팔을 불 때부터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을 시작하는 사도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서 된 것으로, 갈라디아 교회와 갈라디아 지역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니, 믿음으로 말씀을 받으라는 의미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 의미를 설명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 곧 적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이 교회 안에서 전해지고 있다는 말과 함께 바울은
너무나도 괴로워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복음을 받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면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였을 때, 인간적인 지식으로 교회를 핍박하였던 일을 이야기합니다.
사도 바울의 이러한 고백을 믿음의 성도도 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을 통로로 삼아
함께 살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 성령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 안에서 감동과 감화하여
죄를 지어서 갖게 된, 선과 악을 아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은 마음 양심, 곧 이성을
깨우실 때,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의 감옥에 갇혀서, 자신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일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 때문에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성령께서 믿음의 사람 안에서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기록하신 말씀이 요한복음 14장에서 17장까지 말씀이며, 요한일서 2장 27절에
말씀이고, 이 외에도 수없이 많은 성경 말씀으로, 말씀하십니다. 제가 이렇게 깨닫게 하신
말씀을 기록하여 나누고 있지만, 사도 바울이 고백한 고백을 저 또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저의 달려갈 길을 마치기까지 저는 제 생각, 곧 자아(自我)의 마음이 죽고, 성령님께서
성경 말씀 안에서 저의 양심에 감동과 감화하심으로 깨우실 때, 순종하여 선한 양심으로
성경 말씀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스스로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곧 있게 될
영원한 나라가 시작될 때부터 썩지 않을 옷을 입게 될 일을 소망합니다. 마라나타 호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