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진짜 회개는 어떻게하는가 삶의 적용 원리 세 번째 시간입니다. 삶의 적용 원리 세 번째 시간 말씀의 실재화와 영성 치유 삶의 적용 원리 편 세 번째 시간 오늘 회계는 어떻게 하는가? 함께 나누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여러분 회계라고 하면 너무 잘 아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만 사실 회계만큼 우리가 잘 모르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회개라고 하면 저도 회개라고 하면 그냥 내가 잘못한 게 깨달아지고 느껴지면 주님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고 주님께 용서를 빌고 그런 기도를 회개의 기도를 하고 또 울부짖기도 하고 여러 가지 그런 종교 활동을 통해서 회개를 한다고 그렇게 많이 생각을 해 왔습니다. 아 그런데 여러분 회계는 죄의 본질을 모르면 회계가 온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 죄의 본질에 대해서 지난주에 함께 나눴지만 여러분 제 본질 뭔지 기억납니까 하나님을 떠나는 게 죄입니다. 다른 말로 내가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그것이체입니다. 덧붙이면 내가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서 내가 지금까지 나댄 모든 것이 사실은 죄라고 보면 정확하게 맞을 겁니다. 죄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상가운데 행하는 어떤 잘못만 가지고 그것을 잘못했다라고 하는 게 회계인 줄 우리는 많이 착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회계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아주 적은 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본질의 그래서 뭔가가 잘못되어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온전한 회귀가 잘 되지 않는 걸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 저의 본질 기억납니까 죄란 무엇인가 과녁을 벗어나는 게 죄라고 그랬습니다. 과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바로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는 그 모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가 자신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 자기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 자기를 위하여 치운 자 자기를 찬양하기 위해서 지은 자 여러 가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형상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자 여러분 지난주에 한 거 기억납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라 그리스도만 담는 질거릇이라 그것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그게 창조의 모습이고 그것이 타겟인데 타겟을 벗어나는 과녁을 벗어나는 게 죄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떠나는 게 죄의 본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남으로 해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 것이 천나라인 겁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라고 여러분 본질을 깨닫기 시작하면 회계는 완전히 달라져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게 죄면은 회계는 하나님께 돌아오는 게 회계입니다. 너무 간단하죠. 그건 고민할 것도 없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돌아온 것으로 생각을 하는데 실제로 안 돌아온 게 많이 있다라는 거죠. 우리 안에 우리 안에 하나님께 다 돌아오셨습니까? 하나님의 타깃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질거리에서의 하나님만 담고 있습니까? 그게 아니죠. 오늘 그림에서 보는 오른쪽의 그림 여러분 이 그림은 1번 그림을 내가 이렇게 바꿔놓은 그림하고 똑같습니다. 왜 이렇게 해놓은 건가 하면 왼쪽의 그림이 여러분 왼쪽의 그림이 본질로 돌아가는 거라 제가 이렇게 표현을 해놨을 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을 떠나기 시작하는 그 모든 것이 육체가 됨이라 그리고 그 육체의 죄를 정하셨다고 했고 육체가 되는 순간 하나님의 신이 떠나고 육체가 되었기 때문에 그 육체가 여러분 사람이 세상의 딸들과 결혼하며 이렇게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였더라 거기서부터 여러분 제가 완전히 세상을 덮은 것을 보여줄 수가 있는데, 결국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해서 우리에게 임하였던 죄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가 하나님 되기라고 그렇게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이다. 내 그릇에 하나님을 담은 것이 아니라 나를 담은 것이 죄다 그래서 나의 나대기 위한 모든 것이 사실은 우리는 죄라고 보면됩니다. 여러분 내가 뭔 죄입니까? 우리는 내가 뭔 죄입니까? 이렇게 낳았는데 어떡하란 말입니까? 그런데 한 사람의 죄로 인하여서 모든 사람에게 죄가 임하였고 사망에 임하였다고 여러분 로마스 5장에 분명히 한 사람의 죄 한 사람의 의해 대해서 함께 나눈 바가 있습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어쩔 수 없는 죄인입니다. 내 자신이 죄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요. 그런데 예수님을 딱 믿으면 우리가 홀라당 바뀌는 줄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예수님을 믿어도 여러분 그 로마스 7장의 고백처럼 내가 원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나타내지 않고 원치 않는 뭔가 있는데, 그것이 내 안에 있는 죄라는 놈이라고 그랬거든요. 그것이 나를 사망으로 끌고 간다고 그래서 내 사도바울은 자신의 정체성을 그때 뭐라고 했는가 하면 사망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라는 거예요. 죄삭슨 사망이라고 그랬고 죄 결과가 죽음 곧 사망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 자신이 죄 덩어리가 되어 버린 것을 말하고 근데 많은 착각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죄가 완전히 끝난 걸로 생각을 하고 이제부터 우리 멋대 살아도 된다. 그런데 잘못이 있으면 그냥 잘못했습니다. 하면 되는 걸로 다 해결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 그렇지 못한 물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해서 우리 원죄 여러분 죄의 뿌리에서 난 모태에서 난 죄 그렇죠. 그것은 끊어지고 해결되었을지 몰라도 죄에서 우리를 덮고 있었던 그 죄의 뿌리로 나눠서 우리 삶 가운데 나를 만들어 놓았던 그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죠. 그래서 그 부분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죄를 짓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로마 7장의 사도바울의 한탄이 바로 그 고백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다니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한탄하죠. 근데 회개한다. 회개는 반드시 해야 되고 예수님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그렇게 말씀까지 하셨는데 그 회계가 우리는 제대로 잘 모르고 있어서 천국을 우리 안에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회개해야 천국이 우리 안에 임하는데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천국이잖아요. 그래서 내가 천국에 가까이 왔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희 회계하면 바로 내가 들어가서 너희 안에 천국이 이루어진다 그 말이거든요. 근데 회계를 안 하고 그 잘난 유대인들 오늘날 교회 와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율법 안에 있는 사람들을 말하죠. 그 사람들은 이미 다 회개를 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회개가 할 것이 없고 내가 율법에 따라 얼마나 멋지게 잘 살고 있는데, 그런 말을 하느냐 그러면서 도리어 회개하라고 하는 예수님을 죽여버립니다. 그것이 여러분 오늘날 잘난 우리의 신앙생활의 모습입니다. 엄청난 일이죠. 그래서 우리는 사실 회계를 잘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그림을 잘 보시면 바로 이 오른쪽 그림이 맨 오른쪽에 있는 성경책과 무릎 꿇고 우는 모습을 여러분 잘 보십시오. 이 모습이 뭔가 하면 이제 예수님을 이 상태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죠 오른쪽에 그릇에 내 모습을 담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바로 왼쪽 그림이 되는 줄 아는데 실제로 그렇지 않죠 여러분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좀 전에 로마 7장의 말씀처럼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있는 상태가 바로 그 오른쪽 그림입니다만. 화장도 예복하고 있습니다만 이 자신은 아직도 내가 하나님이 되고 있는 내가 하나님 된 그 상태입니다. 우리는 이걸 다른 말로 부자라고 할 수도 있고 성경에는 악인이라고도 하고 여러분 이게 부자라는 게 보여집니까 부자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부자라는 표현은 우리가 알고 있는 부자와 사뭇 다르죠 우리가 예수님 외에 담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부자라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믿고도 우리는 처음에 이런 모습이죠. 예수님을 믿었는데 이제 회개하면 된다 라고 하니까 이 회개를 어떻게 하는가? 하면 성경 말씀을 읽다가 그 말씀을 보고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이렇게 무릎 꿇고 회개합니다. 주님 잘못했네요. 용서해라 했는데 용서를 못했네요. 그러면서 막 미워하지 말라 했는데 또 미워했네요. 여러분 30년 몇십 년 동안 계속 그 회계를 하고 있죠. 아멘 남편을 계속 미워했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회계를 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만 그 회계가 그게 친정회계일까요? 어제 한 걸 또 하고 또 하고 수십 년 동안 또 하고 물론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이기는 합니다만 죄를 정당화할 수는 없는 거예요. 그렇죠. 그렇지 않습니까? 죄를 정당화한다면, 뭐하러 회계하러 가겠습니까? 우리는 육이를 입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영지주의자들처럼 오직 영어로만 영어로만 육은 아무것도 아니야. 육신은 이 땅에서 멋대로 죄를 짓고 멋대로 살아도 상관없어 그렇게 하면 되겠냐고요. 그건 아니거든요. 그 제 값은 반드시 또한 치르게 되어 있다는 게 성경의 말씀인데 어쨌든 우리가 회계라고 하면 누구가 널 잘못했네 지적하면 그걸 가지고 내가 잘못한 걸 알고 또 깨닫고 막 잘못했다고 무릎을 꿇고 눈물 흘리고 별 회개 어떤 그런 행위를 합니다. 말씀을 보다가도 잘못된 게 있으면 막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막 회개를 합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여러분 회개 엄청 해보셨죠 한 두 달 이상 하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한 두 달 이상은 계속 갔어요. 회개만 했어요. 두 달 넘게 회개 콧물 눈물 막 엄청 흘리고 그게 회개인 줄 알고 이제 회개가 다 끝난 줄 알았어요. 진짜로 아 이제 더 이상 회개할 게 없겠다. 라면 하면 안 돼요. 그럴 때는 라면 하면 안 되는 거예요. 회개할 게 없겠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성경을 보면 볼수록 회계할 게 점점 더 많아지죠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이 회계라는 걸 제대로 잘 알지 못하고 있고 죄라는 걸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회계도 제대로 못한 겁니다. 그냥 육적으로 우리가 나타나는 이런 부분만 잘못했다고 하면 회개가 끝나는 건 줄 아는데 실제로 그렇지 못하다는 거죠. 왜냐하면, 죄가 뭔지 모르는데 어떻게 회개를 합니까? 그렇죠. 그래서 죄의 본질부터 어제 함께 나눴던 겁니다. 죄의 본질 여러분 타깃을 벗어나는 게 죄라고 그랬죠 말 그대로 이 모습이 죄인 겁니다. 어제 죄의 본질에서 오른쪽 그림 이 아담이 독립선언한 이 모습 자체가 죄인 겁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어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죄라고 그랬죠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뭔가를 세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느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했는데 우리가 그 창조의 목적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죄다 그렇게 말씀을 드렸고 그래서 죄 있는 육체의 모양을 하신 예수님이 어떻게 살다 가셨는지 말씀을 드렸죠 예수님도 아담이셨는데 여러분 없음으로 오셨다 자기 자신이 하나도 없었다 라고 그랬죠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잔뜩 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죄라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 회계는 어떤 걸까요? 회계는 그럼 돌아가는 겁니다. 오늘 이 단어를 보시면 n 타이틀 회계가 shube라고 되어 있는데, 원래 이 suv가 어근입니다. 어근 그 회계라는 단어의 어근이 바로 슈브라는 단어인데 이 슈버라는 단어가 바로 돌아가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돌아오라 돌아오라 그래서 이 슈버라는 이 단어가 돌아가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회개하라고 성경책에 딱 나오면 무조건 우리가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멀리 떨어졌구나 내가 하나님 되려고 노력하고 있구나 이걸 알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게 획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유대인들도 그 율법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자신들이 돌아갔다고 생각을 하고 실제로는 하나님을 모른다라고 하나님 자신이 그렇게 말씀을 하셨죠. 우리도 하나님을 잘 아는 것처럼 그렇게 매일 회개하고 매일 성경을 읽는다고 생각을 하는데 실제로는 하나님을 모른다라는 거예요. 모르는데 어떻게 돌아가겠습니까? 여러분 어떻게 돌아가겠어요. 제가 뭔지 모르는데 어떻게 회개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회개가 뭔지 모르는데 어떻게 회개를 하겠습니까? 회계는 그냥 우리는 눈물 흘리면서 콧물 흘리면서 잘못됐다고 용서를 비는 게 그걸 회계라고 생각하는데 그 회계의 본질이 물론 그것도 포함되겠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고 회계는 돌아가는 거죠. 돌아가는 어디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겁니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걸 근데 여러분 이미 우리는 우리 자신이라는 것이 너무 강력하죠. 너무 뭐라고 그럴까요? 철옹성이죠. 마치 그것이 어떻게 어디에 비유되어 있는가 하면 바로 여러분 가나안으로 진곤할 때 맨 앞에 버티고 있는 뭐가 있죠. 바로 여리고성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말합니다. 그 여리고성을 어떻게 무너뜨리죠 말씀이 뱅뱅 돌고 무너뜨리죠 그러죠 나팔을 불며 무너뜨리죠 그러니까 이 여리고 성 마치 바벨탑이죠. 여러분 우리가 쌓아 올린 그게 내 자신이라고 내 안에 있는 성전이라고 그랬죠 우리는 우리는 그렇게 우리 자신을 성전을 쌓아올렸죠 바벨탑이라고 그러는데 그래서 내가 지은 성전에 내가 거기서 왕이 되어서 다스리는 게 본질이라고 그랬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 안에 있는 걸 홀라당 비워내야 합니다. 여러분 홀라당 비워내는 게 왜냐하면, 비워내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고 어디 어떤 종교에서처럼 무 무 그러면서 뭐 공적이 뭐고 색적시공 공적시색 그런 비워내는 게 아니고 비워내고 채워야 합니다. 그게 이제 원래 여러분 과녁이죠. 하나님으로 다시 채우는 걸 말합니다. 이게 바로 그 모습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로 채우는 그래서 질결에서의 부활을 담는 그 모습이죠. 여러분 비워내고 채우는 걸 회개라고 합니다. 여러분 내 자신을 비워냈습니까? 아니면 내 자신을 채우기 위해서 교회에 와 계십니까? 거의 대부분이 후자입니다. 자신을 비우기 위해서 오늘날 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 회귀하지 않습니다. 잘못했다고 반성문은 쓰죠 에일 제가 말씀을 드렸죠 잘못했다고 하지만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돌아가는 게 어딘지도 모르고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왜 돌아가야 하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나는 이미 돌아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돌아온 걸 인정을 받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 속에 있는 것들이 안 돌아가고 그대로 있는 게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이게 돌아가다 돌아가다 라는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여러분 슈버라는 말이 그런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비워내고 하나님을 채우는 것이 회개인 줄 알지 못합니다. 자신을 비워내는 게 회개인 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면 여러분 내 것을 잔뜩 가지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라는 말이 잘 이해 옵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그럼 교회에 오면 예수님 믿음을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리는 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거기에 여러분 뭔가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다 라는 이 말은 하나님과 연합을 하는 걸 말합니다. 하나님과 연합을 여러분 삼일체의 원리에서 말씀을 드렸던 거 기억납니까 하나님과 연합을 할려면은 우리 걸 잔뜩 가지고 연합이 안 된다라는 거죠. 연합은 상대방을 나로 완전히 채우는 걸 말한다고 그랬죠 나를 완전히 비우고 상대방을 채우는 것으로 되는 것이 연합이라고 그랬죠 그래서 연합이 되려면 나를 비우는 게 먼저인데 그걸 비우고 하나님으로 채우는 게 돌아가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회개를 우리는 테슈바라고 하는 단어인데 그 회개라고 하면 바로 여러분 유대인들은 그렇게 깨닫습니다. 그 회계의 어근이 바로 슈버라는 단어고 이것이 바로 주님께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다 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났을 때 하나님께서 사람과 땅을 저주하면서 아담에게 그런 말을 했죠.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흙으로 돌아가 그게 원래 너 티끌로 돌아가라 이 말이죠. 우리는 티끌이었잖아요. 그러니까 티끌로 돌아가라는 겁니다. 티끌로 안 돌아가고 내가 뭐가 됐다라고 우리는 생각을 하는 게 우리 자신이죠. 그게 아담이었잖아요. 아담을 하나님이 되고자 보내서 그래서 하나님을 비워내 버렸죠 그리고 자신으로 채웠죠 자신으로 채운 것이 사실은 마귀라고 그럽니다. 마귀와 연합하므로 마귀적인 것으로 채웠잖아요. 근데 그거는 우리를 아름답게 포장을 하고 우리 자신이 어떤 윤리나 도덕으로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면 그것이 죄가 없는 걸로 착각을 합니다만 그것 자신이 더 큰 죄라는 거예요. 그것을 세상에 하나님을 떠나서 우리가 우리 자신 안에 채운 모든 것들 비우라고 하니까 여러분 그게 됩니까? 교회 와서 못 채운 걸 채우기 위해서 왔는데 그걸 비우라고 하니깐 됩니까? 그래서 그냥 와서 대충 잘못했습니다. 하고 그거 싫으면 한 달에 한 번씩 그냥 몰아서 하고는 죽을 때 한 번만 이 쏘리 아이엠 쏘리 하고 흥요를 베풀 썼어 오늘날 낙원에 있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때 가면 솔리 단어가 안 나온다라는 거예요. 왜 나를 이렇게 죽이냐 이렇게 반항한다라는 거예요. 절대로 그렇게 될 것 같지만 여러분 안 됩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고도 못 채운 게 너무 많은 거예요. 하나님 이름으로 내가 채우길 원했던 게 어릴 때부터 빼곡히 써놨었는데 그걸 아니라고 다 비워내라 하니까 내 정체성이 완전히 부정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려거든. 니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는 게 그 말이거든요. 근데 그게 되나요? 그러니까 요즘 교리에 십자가가 쏙 빠져버리고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까 어떻게 하면 복 받을까? 이런 것만 어떻게 하면 내 자신이 하나님 이름으로 내 소원을 내 원하는 것을 성취할까 이게 교회가 돼버리다 보니깐 요즘 교회는 회계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잘못했습니다. 하고 용서를 비는 그런 종교적인 행위는 있을지 몰라도 진정한 회개가 없어지고 그래서 여러분 이 땅을 휩쓸었던 성령의 역사가 지금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인간의 스토리만 크게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그건 바로 아담이 점점 더 장성하였던 모습 그게 인간의 모습이 돼버렸어요. 근데 누가 누가 잘하나 이게 교회의 모습이 되어 버렸다 보니까 회계라는 게 진정한 회계를 찾을 수가 없다라는 거죠. 그러면서 온갖 종교적인 활동을 다 하고 별별 행사를 다 합니다만 거기서 나를 없애는 그런 코스가 있던가요 자기 부인의 코스가 있던가요 십자가를 지는 코스가 있던가요 가끔 여러분 4순절 되면 종이 십자가 만들고 끙끙대면서 막 이런 흉내 내는 그런 것은 있을지는 몰라도 진짜로 예수님이 진 십자가 내가 왜 또 저 이미 다 끝났는데 없습니다. 이제는 그래서 회계라는 게 없어요. 유대인들은 매일 회개하고 매일 금식하고 매일 성경 읽고 있는데, 회개 안 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오자마자 회개하라라고 그럽니다. 말이 됩니까? 여러분 우리도 얼마나 회개 많이 했겠어요. 근데 또 예수님이 회개하라고 합니다. 말이 됩니까? 우리는 예수 믿고 다 회개한 줄로 생각합니다만 실제로는 제대로 회개를 못하고 이 회개의 본질을 모르고 제 본질을 몰랐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를 못 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제 본질을 똑바로 깨달으셨으면 이제 회개할 게 엄청나게 많습니다. 죄의 본질이 바로 이 모습이라고 그랬죠 내 안에 나댄 모든 것이 죄라는 걸 아십니까? 물론 하나님이 주셔서 하신 것도 있지만 내 의지로 그것을 채우고 했던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내가 그렇게 나를 만들어놨던 게 내가 하나님처럼 되어보고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능력을 내 자신이 흉내 내보고자 얼마나 우리는 많이 노력을 했습니까? 우리 자신이 그렇게 되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습니까?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완전한 죄일 수 있다. 라는 거예요. 여러분 타깃을 벗어난 지난주에 한 것처럼 여러분 창세기 6장에 보면 하나님의 신이 떠나고 육체가 되면 그것이 죄라는 겁니다. 육체가 되니까. 온 세상에 죄가 관용하였더라 악밖에 없더라고. 그랬죠 그래서 다윗은 내가 모태의 죄에서 태어났다고 그랬습니다. 우리의 본질이 죄라고 그랬어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서 낳았다고 예수님이 직접 말씀도 하셨고 그래요. 우리는 죄 자체인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으면 그게 다 끝난 걸로 생각을 하는데 문제가 있다라는 거예요. 제 본질을 잘 몰라서 원죄 이것만 어떻게 알고 있어요. 그래서 원전이 없어진 건 맞아요. 예수님이 저주를 다 짊어지셨기 때문에 저주도 다 끊어진 건 맞습니다. 그렇죠. 근데 왜 내게는 이렇게 잔뜩 있죠. 아직도 그 사도바울의 고백을 여러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로마스 실장이 이 사망의 몸이라고 한 겁니다. 내 안에 죄라는 놈이 있더라는 거예요. 완전히 인격체처럼 자리를 딱 잡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것이 왕노릇하죠. 죄왕노릇 아멘 그걸 하고 있으니까 그 왕을 몰아내야 하나님이 왕으로 오실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걸 회개라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채운 게 어떤 게 있습니까? 그것을 여러분 찍어내기가 쉽겠습니까? 그게 안 되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억지로 우리를 끌고 다니면서 찍어내는 겁니다. 그걸 환랑 고통이라고 하죠. 그걸 다른 말로 십자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내 안에 지은 이 모든 성전은 다 무너져야 하죠. 하면 어떤 게 성전으로 세워져야 합니까? 예수님이 성전으로 세워져야 하죠.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이 육체 옛날의 모습 육의 모습으로 오셨죠 그 육체의 죄를 정했다고 로마스 발작이 말씀하셨죠. 그래서 죄인의 모습으로 오신 죄 없는 예수님 그 죄를 어떻게 처리하셨어요. 십자가로 죽고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 우편의 연합 데모로 완성됐잖아요. 그게 회개죠 하나님 앞에 돌아가는 거잖아요. 우리도 그 방법밖에 없는 거예요. 내 이 육체가 되면 이게 죄기 때문에 이 육체가 없어져야 되는 거예요. 말 그대로 우리 목숨이 끊어지는 걸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그건 마지막 날 누구나 다 끊어지겠지만, 그걸 말하는 게 아니고 육신이라고 말하는 거죠. 그죠 영적으로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 하면 육에 속한 것을 말하고 있죠. 하나님을 떠나 내가 내 안에 건축한 모든 건축물들을 말하죠. 여러분 그 건축물들이 뭐라 그랬습니까? 지난주에 열두 아들 하면서 말씀을 드렸죠 하나님의 말씀으로 낳은 것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세상의 것들 내가 가치를 가지고 이데올로기나 철학이나 세상의 어떤 가치 이런 것들로 내 안에 낳은 것들은 전부 다 여러분 사생아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이 생각이고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어떤 사상이 되고 나의 어떤 행동의 기준이나 가치가 되고 이런 것들이 전부 다 내 안에 지어놓은 건축물이잖아요. 나를 나대게 한 건축물이죠. 아멘 그걸 이제 허물려고 하는데 여러분 동의하십니까? 아무도 동의 안 합니다. 그걸 그게 왜 죄라고 하냐고요. 그걸 죄라고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내가 열심히 산 거라고 하지 열심히 내가 세상을 살았다. 라고 생각을 하지 그걸 왜 죄라고 합니까? 그래서 죄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회개는 일어나지 않은 겁니다. 잘못했다고 우리가 용서는 몇 번 빌었지만 진정한 회개를 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죄가 뭔지 몰랐었기 때문에 과녁을 벗어난 걸 몰랐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가끔 인용한 것처럼 여러분 아버지를 떠난 그 탕자가 만리 타국에서 아버지 내가 잘못했어요. 왜 아버지를 떠났는지 모르겠는데 그게 회개가 아니라고 했잖아요. 아버지께 돌아오면 다 되는 거잖아요. 그게 진짜 회계인데 그걸 안 하고 우리는 이 상태에서 스님을 믿었으니까 완전히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고 이제 필요한 것만 이름으로 취하면 되는 것이 신앙생활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회계라는 건 그냥 성경 보다가 찔린 거 있으면 잘못했습니다. 이게 회계인 줄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고 본질은 그 잘못된 게 나오게 만드는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말합니다. 그렇죠. 제가 가끔씩 여러분 인용했던 거 기억납니까 어떤 큰 건물 안에 냄새가 자꾸 나는데 여러분 창문만 닫으면 되냐고요. 냄새 안 나도록 봉해버리면 됩니까? 내가 치워야죠 오늘 내가 냄새 풍겨서 죄송합니다. 내가 입냄새 풍겨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내일 또 입냄새 풍기면 됩니까? 입 냄새 나는 걸 다 없애버려야죠 그렇죠. 그게 회계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 안에 냄새 풍기는 게 뭡니까? 나잖아요. 나 내 자신이라는 거잖아요. 하나님과 떨어진 육체라는 거잖아요. 육체의 죄를 정했다고 그랬잖아요. 하나님이 그러니까 이거 육체가 생산하는 모든 것이 죄 하나님과 분리된 게 육체가 된 것이니까. 육체가 생산하는 모든 것이 죄가 됐는데 그걸 없애는 게 회계라는 거죠. 그걸 비워내는 게 회계라는 거죠. 그걸 비워내는 게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어떻게 했다고 그럽니까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요. 갈라데스 고장 입사절 그 말씀이 여러분 우리는 이미 다 이루어진 줄로 생각하는데 물론 이루어져 있죠. 묵시 안에 근데 지금 우리가 아직 유고를 입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따라갈 때는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매일매일 죽으면서 따라오라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그거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을 못 따라간다고요. 예수님을 따라가면 어떻게 됩니까? 우편에까지 갈 거 아닙니까 그죠 그게 진정한 거라고요. 그런데 그거를 예수님이 우편에 가려니까 제 모습을 한 우리하고 똑같이 육체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으시고 부활해서 하나님 우편에 연합해서 앉으셨는데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그 길밖에 없다는 걸 보여주고 가신 거죠. 그러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과하셔서 우편에 앉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가려면은 예수님이 가셨던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육체와 함께 정과의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거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도바울르는 내가 매일 죽노라고 고백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내 안에 지금까지 쌓아 올렸던 이 모든 것들을 완전히 허물어내는 거죠. 그래서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나면서 자신이 거꾸로 치고 자신이 그때까지 자신 안에 세워왔던 모든 것을 다 배설물처럼 버렸다고 그랬죠 그렇습니까? 여러분 그렇게 배설물처럼 버리고 있어요. 아니면 이것만 남겨놓고 아직 할 게 많으니까 여러분 안 그래요. 그러면서 성경보다가 잘못했다고 하면은 그게 진정한 회개가 되냐고요. 오늘 이 오른쪽에 걸음처럼 막 성경 보고 잘못했으니까 또 무릎 꿇고 막 운다고 얘기가 되냐고요. 그 육체는 그대로 냄새를 풍기고 있는데, 향수만 뿌리면 되겠어요. 가려버리면 되겠냐고요. 안되죠. 예수님을 믿고도 아직도 내가 예수 이름으로 원래대로 돌아가려면 없어져야 되는데 그것이 아니라 아직 예수 이름은 내가 아직도 내 자신을 세우려고 하는 이것들이 전부 죄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것을 허물어뜨리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우리는 교회 와서도 그것을 세우기를 바라죠 예수님과 영 다르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것을 하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어떤 개인적인 어떤 육체 정욕을 위하여 사용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게 바로 표준이지 않습니까? 그는 없음으로 왔기 때문에 근데 우리는 잔뜩 가지고 있으니까 이게 꽉 차 있는 있음이 됐잖아요. 그걸 비워내야 없음이 되고 다시 예수님을 담을 수 있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 텅 빈 이 빙그릇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다시 돌아가라는 거예요. 여러분 이 모습으로 다시 돌이키라는 거예요. 너를 뽑아내라 너를 뽑아내라는 거예요. 이걸 자신을 뽑아낼 수 있겠어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뽑아낼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도 예수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이제 똑같이 우리도 그렇게 끌고 가시는 겁니다. 이해갑니까? 그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이고 그것이 우리가 하는 회계라는 걸 아시겠습니까? 그걸 모르고 계속 우리는 잘못했다. 라는 것만 계속 반복하고 있는 거죠. 물론 육을 입었기 때문에 그것이 한 번에 되지는 않습니다만 우리는 최소한 알면서 이제 내 자신이 없어지길 원하고 질그릇으로 돌아가서 예수님만 담은 내가 너의 하나님이야 너는 나를 닮는 질그릇이야 이걸로 너는 나만 담아야 하는 줄거릇이야 이게 본분이죠. 이것으로 돌아가기를 우리를 알면서 기도해도 잘 안 되죠. 그런데 그 기도는 하나님이 다 들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그렇게 인도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이 스님 안에 행하셨듯이 우리도 그렇게 인도하여 가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우리도 결국은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했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계속해서 우리는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삶을 사는 거예요. 계속 내 자신을 내려놓고 내 자신이 손해 보고 내 자신이 더 섬기는 자로 낮아지는 자로 그런 삶을 살아가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힘으로 안 되니까. 주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억지로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가시죠.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우리 힘으로 안 되는 걸 알기 때문에 주님이 오셨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점점 빈 그릇으로 지어져 가는 겁니다. 비워져 가는 겁니다. 내가 싫어도 그렇게 비워져 가는 거예요. 그게 여러분 크리스찬이라는 그리스도 인이라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죠. 그래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담아야 하는 그릇입니다. 근데 그렇게 되려면 이쪽으로 돌아가야 되죠. 나를 먼저 비우고 예수님을 담아야 되는데 이것이 여러분 바로 1번 그림입니다. 1번 그림 이해 가시죠. 그 1번 그림 어떻게 나를 비우고 예수님을 담으셨죠 예수님과 연합했었죠. 7번이 연합한 그림이잖아요. 일곱 날 일곱 날이 연합한 걸음이죠. 일곱 날 연합판을 여니까 첫날에서 여섯째 날을 거쳐가야 될 거 아니에요. 그것이 바로 여러분 회계예요. 회계 그것이 비워지고 채워지는 과정이기 때문에 말씀과 성령으로 되는 거라고요. 어떻게 돌아가냐고 묻거든. 우리 교회에 오라 하시면 됩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됩니다. 그러면 그게 거짓말 같지만 오늘 말씀으로 다시 증거 보여드릴게요. 다른 데서 계속 장식 1장만 하니까 그게 장바울 이론이라 해서 못 알아듣는 사람이 있어서 제가 오늘은 성경에 다른 곳을 갖다 대서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역창조 안으로 들어가는 게 회개입니다. 우리 자신을 뭉개뜨려 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를 뭉개뜨리는 겁니다. 그래서 말씀이 전부 금이요. 불이요. 여러분 세제요 막 깨뜨리는 거요 계속 성령도 우리를 죽여서 생명을 불어넣는 영이고 계속 그거밖에 없는 거예요. 성경은 그래서 그걸 회계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안 끌려가면 나는 끌려가게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다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라고 이미 완성이 돼 있기 때문에 여기서 그게 안 일어나면 안 되는 거예요. 안 일어나면 나중에 뭔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아무도 장담 못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우리의 삶만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이 십자가를 못 박는 그 삶이란 그거밖에 없는 거예요. 우리는 왜냐하면, 완성을 행하여 우리는 갈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죠. 그게 신앙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그게 회계라는 거예요. 그래서 창조의 틀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계획입니다. 그래서 일곱난로 다시 가서 연합해서 예수 그리스도만 담는 것이 완성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지금까지 원하던 소원 이런 거 다 내려놔야 되는데 그게 싫어요. 그죠 아직도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벌써 내려놔야 돼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솔로몬도 죽을 때까지 그걸 못 내려놨는데 그랬죠 근데 하나님은 그걸 억지로 끌고 가면서 그냥 내려놓게 만드시죠. 여러분 포기 많이 당했어요. 포기당하면 저처럼 이렇게 됩니다. 마구 끌려 다니다가 아무것도 없으면 이렇게 된다고요. 여러분 그게 최고의 선인 거 아십니까? 그게 평강인 걸 아십니까? 그게 심이라는 걸 아십니까? 그게 안식이라는 걸 아십니까? 그게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인 줄 아십니까? 경험을 해 봐야 알지 아면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이거는 일단 경험을 해 봐야 알아요. 그냥 되는 게 아니라니까요? 무소유의 소유 이런 말 들어봤어요. 절간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만 그건 비운다고 채워지는 게 비운 자리에 다시 들어옵니다. 하나님을 채우지 않으면 다른 것으로는 절대로 여러분 만족함을 얻을 수 없는 게 인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다시 1번 틀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인생인데 말씀으로 여러분 지난주에 열두 아들 했듯이 말씀이 들어와서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다 허물어내죠 그리고는 12기둥이 세워지죠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지죠 예수 그리스도가 모퉁이 돌이었죠. 사닥다리가 위로 해서 위에서 먼저 내려오죠 그리고 올라갔죠 그래서 한 다리 한 다리 올라서 결국은 마지막에 하늘까지 올라가는 게 그 그림이에요. 우리가 그렇게 돼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 안에 가짜는 다 무너져야 되는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우리 자신이라고 세워왔던 모든 것이 다 가짜라는 거예요. 여러분 저주받은 사기꾼이라고 그랬던 기억납니까 나는 누구인가 할 때 기억나요? 그 그림 몇 번 그림입니까? 21번 마지막 날 했던 그림 그걸 잘 보세요. 그래서 여러분 육체와 예스 성전 이것은 무너져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육체와 예 성전 육체 저의 모습으로 오셔서 무너졌죠 맞아요. 그리고는 새 성전이 완성됐죠 게시록에 보면 성전이 누구라 했어요. 어린 양이 성전이라고 그랬죠 그게 거처라는 거예요. 우리가 어린 양 안으로 들어와 그 안에서 안식을 얻는 거예요. 여러분 너무 정확하지 않아요. 그래서 예수님이 옛 성전으로 육체에 몸으로 오신 게 옛 성전이 무너지고 그래서 무너뜨려라 3일째 내가 다시 세우리라 죽은 자가 살아나는 거라고 말했죠. 그래서 살아나시므로 예수님이 부활하여 하나님과 연합해 그게 성전이라 계시록에 하나님과 어린 양이 성전이라고 그랬잖아요. 예수님이 성전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그 안에 들어가서 안식을 누리는 거예요. 그래서 그 안에 들어가 하나님 예수님은 왕이 되고 나는 그 백성 자녀가 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왕 노릇하는 천국이죠. 맞아요. 우리는 우리가 왕 노릇 해보려고 내 안에 이 많은 성전을 지었잖아요. 지금까지 그걸 허물려니까 얼마나 아파요 그걸 허물려니까 얼마나 괴로워요 우리 힘으로 안 되니까. 성령님이 우리를 그렇게 끌고 다니시죠. 예수님도 그 육에 속한 죄속한 육신을 꿰뚫으려니까 안 되잖아요. 그래서 키스마네에서 그걸 위해서 기도한 거예요. 예수님이 어떻게 하면 내가 그 십자가를 피해갈 수 있을까요? 있을까요?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꿈쩍도 안 하시고 너는 반드시 거기서 죽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을 버려버리죠 하나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우리도 그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버립니까 여러분 그런 버림을 당해봤어요. 안 당해봤어요. 너무 평탄한 신앙생활을 하셨군요. 그런 버림을 당해봐야 안다니까요? 이걸 아무리 기도해도 안 듣고 아무리 울보짖어도 얘기해도 안 되고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어찌하여 나를 버리나이까 여러분 그 지경까지 가보면 압니다. 그것이 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고 나를 영원히 살리는 거구나 라는 걸 알게 되는데 여러분 다 그렇게 20년 30년 지나고 나서야 압니다. 그 당시에는 몰라요. 잘 그게 미련한 인간이라 그래서 대부분 그런 상황에서 다 배신합니다. 여러분 대부분 하나님을 떠나죠. 그래서 십자가 십자가 하면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겁니다. 죽어라 죽어라 하면 전부 맨날 죽으란 소리만 한다고 그러고 또 같은 이야기 또 하냐고 또 하냐고 그럽니다. 왜냐하면, 그게 자기가 안 죽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가 죽었으면 그게 그렇게 안 들립니다. 그래서 또 죽으라고 하냐고 무조건 죽으라고 하냐고 이런 말하는 사람 아직은 전혀 이해를 못 한 거예요.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제가 그걸 다 경험해 봤기 때문에 그래서 육체와 예수성전 여러분 그래서 예수님을 보면 그걸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가 있어요. 정확하게 예수님은 육체의 모습으로 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육체의 죄를 정했죠. 너희가 육체가 되면 로마스 8장에 예수님이 죄 있는 육체의 모양으로 오셨다고 그랬죠 거기에 여러분 그 비밀을 깨달으셔야 돼요. 그래서 그 죄 있는 육체를 예수님은 십자가에 처리하셨죠. 근데 철회한 게 아니라 처리 당했죠. 하나님이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로 던졌다고 했잖아요. 히브리스 9장 14절 영원하신 성령께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예수 그리스도의 피라고 그랬죠 영화씨 성령님이 예수고예수들을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드렸다고요. 우리도 이제 예수님 안에 계셨던 그 성령이 이제 우리 하나에도 오셨죠 그러니까 어떻게 되겠어요. 우리를 십자가에 올려놓고 하나님께 드리겠다. 그 말이잖아요. 그럴 때 기도해도 절대 안 듣겠다. 그 말이잖아요. 살려달라 해도 꿈쩍도 안 하겠다. 그 말이잖아요. 나를 버리시냐니까 버리시나 하니까 그래도 내가 너를 반드시 버리겠다. 그 말이잖아요. 각오돼 있어요. 그것이 회개라는 겁니다. 여러분 그것이 내가 비워지는 거잖아요. 그리고는 부활연합해서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을 담는 거잖아요. 그게 회계잖아요. 그러니까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는 회계는 없는 겁니다. 여러분 근데 우리는 그냥 무릎 꿇고 울면 다 되는 줄 알고 있으니까 이 생이 안 풀어지는 거예요. 하나님 아직도 멀었다 또 울고 울고 불고 해봐야 소용없다. 그런 거예요. 예수님이 여러분 게시만 해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때까지 울고 불고 안 했겠어요. 근데 꿈쩍도 안 합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십자가에 가서 이렇게 나를 버리시나 하니까 오냐 나는 너를 완전히 버려야 한다고 처절하게 죽여버리는 겁니다. 여러분 그게 우리예요. 여러분 예수님의 아담이잖아요. 여러분 아담이 아닌가요 그래서 죽었어요. 안 죽고 아직도 잘못했다만 하고 있죠. 그러니까 아직도 죽을 일이 엄청 남은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 대단한 사람도 매일 죽노라 매일 죽노라 그게 회계입니다. 여러분 매일 죽어야 매일 예수님을 담을 거 아니에요. 그게 본분이죠. 우리의 그래서 여러분 없음의 자리로 내려가는 게 순종이라는 겁니다. 이해 가셔요 그래서 여러분 이 땅에 오른쪽에 그 그림 이 그림이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은 부자라고 명하신 거예요. 말하신 거예요. 땅에서 너희가 부자다 근데 하늘에서 보니까 그게 없음이더라는 거예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이걸 위해서 살아온 인생이었죠. 그러니까 이 부자 청년이 머리를 긁으면서 슬슬이 떠나가는 겁니다. 우리도 그런 거예요. 우리도 내 것을 잔뜩 담아 있고 잔뜩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다 팔아버리라 그러고 나를 따르라고 하니까 못 따르는 거예요. 다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복받을지어다 복 받을지어다 이런 데 바글바글한 거예요. 자기의 자기가 자기 의지로 자기를 세우려고 하는 그것과 딱 맞거든요. 거기에서 번영신학이 나온 겁니다. 여러분 마귀신학이에요. 그게 여러분 인생을 죽이는 마귀정의 신앙이고 인생을 죽여놓는 거예요. 안 돌아가게 만들고 영원히 이 땅에 살라는 거죠.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돌아오라 돌아오라 못하게 하는 것 예수님이 다 졌는데 무슨 소리 하느냐고 그럽니다. 그걸 바로 여러분 내가 하나님이 된 것이고. 부자라고 하고 여러분 타락한 고멜로도 비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가진 것이 다 배설물처럼 깨달아져요 깨달아져요 그게 깨달아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근데 그건 예수님 앞에 고꾸라지지 않으면 절대로 안 깨달아집니다. 다른 말로 말씀 앞에 내가 완전히 고꾸라지지 않으면 결코 깨달을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부자가 머리를 긁으면서 물러가는 겁니다. 그 부자는 성경에 나온 대로 다 했다고 했는데요. 회개 안 했겠어요. 매일 헌재물 갖다 드리고 했을 거예요. 매일 회개하고 매일 사랑했다고 하고 매일 뭐 하고 뭐 하고 다 했다고 하잖아요. 바리스인들도 그렇게 다 했다고 하잖아요. 근데 그 앞에서 예수님이 회개하라고 하니까 예수님을 죽여버리는 거예요. 우리도 그렇다니까요? 우리도 그런 말씀이 나오면 다 밟아버리는 거예요. 그냥 넘겨버리는 거예요. 필요 없다라는 거예요. 근데 이게 필요한 말씀만 좋은 거죠. 들어가도 복 나가도 복 받을지 알아 그러면 난리야맨 원천의 복 태의 복 아멘 받을 치어다 하늘의 복 땅의 복 아멘 원천의 복 젖먹이의 복 아멘 아멘 막 그런 걸 선포합니다. 발광을 하면서 난리가 납니다. 여러분 그렇게 인간들 속여요. 그렇게 해서 받아줄 것 같으면은 내가 맨날 그렇게 하겠어요. 뭐 말씀이 필요해 복판을 지어다 하면 원천의 복판을 지어다 하면 선포하세요. 여러분 믿음으로 크게 크게 그렇게 하니까 되겠어요. 크게 선포해야 되지 아메 그렇게 한 사람들 봤어요. 결과를 어떻게 가는지 여러분 사람들을 잠깐 속을 수 있을지 몰라도 오랫동안은 속지 않습니다. 한 알이면 그 택한 영혼들을 건지시기 때문에 깨닫게 합니다. 여러분 그게 아니에요. 여러분 지금까지 내가 쌓은 것이 다 배설물처럼 보여집니까 만약에 안 보여진다면 우리 회계를 아직 회개가 뭔지 모르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육체라는 겁니다. 예스정전이죠. 그래서 그것을 사도바울은 사망의 몸이라고까지 고백을 했는데 그래서 도대체 그 사망의 몸에서 내가 벗어날 길이 없었다고 하는데 팔장으로 넘어가면서 반전이 일어나죠. 로마스 8장으로 넘어가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는 결코 정재함이 없는 이런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으며, 그 생명을 주는 성령이 창세기 일장에 처럼 운행하시고 그 성령이 운행하실 때 말씀을 가지고 우리에게 비쳐 보이게 하시오. 그래서 말씀으로 우리를 비춰 보이고 성령 운행하심으로 우리가 다시 비워지고 예수님을 담는 그릇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겁니다. 그것이 창조의 일곱 날이 바로 여러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게 회계입니다. 아멘 여러분 그 아래 스갈에서 너는 없음이니 없음으로 돌아가라 이것이 진정회개입니다. 없음으로 돌아가 주님을 닮는 것이 있음이죠. 그게 존재죠 그걸 산 자라고 하는 거죠. 그걸 부자라고 하는 거죠. 진정한 부자 아멘 그 아래 서간에서 일장삼절 그러므로, 너희는 무리에게 고하기를 만군의 여하께서 이처럼 일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이 말씀의 뜻을 아시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말씀 그 아래 여러분 슈브헤게라고 써놓은 걸 보십시오. 너희는 마음을 여하께로 향하라 여호수아 24장 23절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여하께 속하라 예레미야 사장사자 스스로 알레를 행하여야 여왕께 속한다는 겁니다. 할례가 뭔지 알죠 육적인 자아를 벗는 거죠. 육체를 벗는 거죠. 육체를 어떻게 벗어요. 첫날에서 여섯째 날 셋째, 날 안에서 여러분 이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통해서 여서 일곱 나라에 가서 내 안에 있는 걸 비우고 채워 넣음으로 여러분 벗어내죠 그것을 할례 세례라고도 하죠. 그리고 내 마음의 악을 씻어버려라 예레미야 사장 14절 동일하게 나오죠. 여러분 할례를 행해야 여호와께 속할 수가 있다는 거예요. 요하께 다시 돌아가는 거죠. 요하께 속하는 게 그죠 할례를 행해야 돌아간다라는 거예요. 우리가 우리라는 걸 내 자신이 나라는 것을 내 안에 잔뜩 세우고 가지고 그걸 가지고는 못 간다 라는 거죠. 너희는 묵은 땅을 기경하라 그래서 10장씩이죠. 묵은 땅을 기경하라 이러면서 얘도 보면 내가 묵은 땅을 기경하라는 내용이 또 나오죠. 묵은 땅이 내 여러분 육체 옛사람이라고 옛 성전 그것을 기경하여 갈아엎으라는 거죠. 여러분 2번 그림 기억납니까 3번 그림 다 그거예요. 먼저 있던 건물을 다 깨 부시라고 헐어버리라고요. 땅을 갈아엎으라고 했죠. 그게 우리 마음이 우리 몸이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걸 여러분 묵은 땅을 기경하라 이 말이에요. 호세스에 말하는 거예요. 이런 말씀들로 쭉 나와 있고 그러나 인간의 회귀 행위에 강하는 이러한 모든 표현은 이 한 동사 슈브 에 포괄되며 슈브로 요약된다. 이 동사는 본질적으로 회귀의 두 가지 필수 조건들을 다른 어느 동사보다도 더 잘 결합시키고 있기 때문인데 그 두 가지 필수 조건이 뭔가 하면 바로 악에서 돌아서는 것과 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회계란 예를 들면 바이오블랙스에서 제가 발췌한 거예요. 슈버라는 단어가 이렇게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악에서 돌아서서 선으로 들어 돌아가는 건 선은 누구요. 하나님만 선이라고 그랬죠 하나님만 옳다 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걸 말합니다. 결국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여러분 우리가 창세의 새창조의 안으로 새창조의 메커니즘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그랬죠 그게 첫 번째 그림이라고 그랬습니다만 여러분 어떻게 돌아가는가가 여러분 호세아스에 잘 나와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마지막으로, 오늘 회귀에 대해서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호세아스 14장을 펴보겠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돌아가는가 호세아스 14장입니다. 구약성경 1269페이지 호시아스 14장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하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 보세요. 여기 돌아오라 하죠. 돌아오는 게 그 내용입니다. 불의함으로 인하여 엎드러졌다고요. 불의가 여러분 의가 예수 그리스도죠 그럼 내가 내가 하는 게 모두 불의라는 거예요. 여러분 거기서 돌아오는 내가 하는 것 때문에 너희가 엎드러졌다는 거예요. 이게 뭔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하나님의 저주에 떨어져서 여러분 환란 고통 당하는 그런 걸 말해요. 우리도 인생 가운데 엎드려지는 그런 경우가 생기면 내 불의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내 멋대로 살아서 그렇다 그 말이에요. 여러분 너는 이제 보세요.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와 있어 2절에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합니다. 여러분 말씀을 가지고 성경책 들고 교회에 오면 여와께 돌아오는 겁니까? 이걸 말하는 걸까요? 여러분 말씀을 가지고 여와 함께 돌아온다는 것은 뭔가 하면 바로 이 말이에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죠 첫날에서 여섯째 날 그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말씀이 우리에게 들어오면 어떻게 돼요. 말씀이 씨죠 씨가 우리에게 뿌려지면 어떻게 돼요. 죽죠 그리고 다시 싹이 나죠. 그리고 열매가 맺죠 그런 과정을 거치는 걸 말합니다.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 가야 내 안에 불의가 죽어진다는 거예요. 말씀을 내가 볼 때 이 기 안에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고 선한 발을 받으소서 한다. 하나님께 돌아와서 말씀을 가지고 돌아와서 내가 불의가 다 재하여지고 선함을 받아서서 이렇게 돌아오는 거라고요. 불의가 어떻게 말씀을 가질 때 이 불의가 재하여진다 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말씀이 뭐라고 했어요. 금이요. 불이요. 여러분 다 말했죠. 그러니까 그 말씀을 볼 때 우리가 그렇게 회개할 수 있다는 거예요. 진정한 회개는 말씀으로 나를 깨뜨려내는 걸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 말씀을 먹어라 라고 그랬죠 그 말씀을 먹는 게 여러분 태워버리다라는 뜻이라고 했잖아요. 말씀은 그 자체가 금이고 마치 폭탄 같고, 불 같아서 우리를 태워 없애는 역할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말씀이 오면 그 일이 우리 안에 일어난다는 거예요. 말씀으로 죽고 그다음에 말씀으로 다시 장성하여서 열매를 맺겠죠. 그게 열두 아들이잖아요. 여러분 기억납니까 그게 그거예요. 그러니까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내 안에 끓는 물 같고, 잔에 하는 칼 같은 것들이 점점 없어지고 나중에 어떻게 우편에 앉는 베냐민까지 간다고 그랬잖아요. 그 말이에요. 여러분 그게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그래서 이 말씀이라는 게 여러분 바로 그 말씀 속에 생명이 있죠. 그래서 여기서 말씀이 다바르라고 제가 말씀을 몇 번 드렸죠 다바르라는 게 그 안에 생명의 씨가 들어가 있는 그게 제라 생명이라는 거죠. 그렇죠. 그래서 이 씨가 내 안에 뿌려진 씨 뿌린 비유에도 나오죠. 그래서 씨가 뿌려지면 우리가 첫날에서 여섯째 날 과정을 통과해 가는 거예요. 말씀이 들어오죠 그러면 땅이 하늘과 나눠지죠 빛이 나면 어둠이 나눠지죠 그리고는 묻이 드러나서 죽고 묻이 드러나서 구하니 일어나고 그리스도 내 안에 있는 걸 비워주고 채워지죠 생명으로 점점 충만해지죠 하나님이 형상으로 6일 날 바꿔가고 동물도 있지만 그다음에 7나라에 가서 연업을 하죠. 그게 말씀이 들어오면 일어나는 일이잖아요. 사이클이잖아요. 그래 그게 그 말이에요. 여러분 그래서 말씀을 가지고 오라는 건 그런 뜻이에요. 말씀을 가지고 들어가면은 내가 죽어지고 결국은 12 아들로 다시 내가 세워지는 걸 말하죠. 그게 바로 11조라는 거라고 지난번에 옛날에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죽고 열매를 맺게 되는데 여기 보세요. 모든 부리를 제외하고 선한 발을 받아서 선 이름 선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게 선이라고 그랬죠 토부 빛이 있으라 하니까 빛이 있었고, 그게 좋았더라 토부 선 그러면 말씀을 우리가 받으면 말씀대로 이루어진 게 선이라고요. 말씀대로 이루어지려면 부리를 재해하여야 이루어지죠 갈아엎어야 이루어지죠 태워내야 재가 돼가 없어지고 다시 싹이 나서 열매가 맺죠 그걸 선이라고 한다고요. 첫날에서 여섯째 날을 거쳐서 일곱째 날 아래로 들어가는 게 그거 모든 걸 통칭해서 선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죽게 드리 이게 그 말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헛되이 제사를 지내는 율법적인 행위 그걸로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게 아니다. 그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교회에 헛 다니고 있는 거예요. 잘못하면 송아지만 들이고 있다. 제사보다는 순종이 낫다고 하는데 그 순종은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왔을 때 풀이를 체하고 묵었던 걸 갈아엎고 가시덤불 태워내고 이런 과정을 거쳐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 원하시는 듯 된 그 상태가 선이라고요. 7나리죠 그게 그래서 보시기 심히 좋았더라 아멘 그렇게 됐어요. 아니면 맨날 잘못했습니다. 오늘도 잘못했습니다. 내일도 잘못했습니다. 30년 동안 잘못해오고 있는데, 죽는 날까지 돌아가시면서 까짓조야 잘못했어요. 이러고 가는 인생이 그게 여러분 그럼 어디 갈지 모른다니까요? 그러면 부활해서 갔는데도 하나님 앞에서 뛰어들 거예요. 왜냐하면, 잔뜩 있잖아요. 어떡할 건데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드린다는 거예요. 입술의 고백을 말하죠. 여러분 입술의 고백은 어디서 나와요. 마음에서 나오죠. 입으로 나오는 것은 마음에 능히 나온다고 그랬죠 그 마음에 있는 것이 하나님께 나가는데 입술의 열매가 나간다라는 거죠. 그렇죠. 그게 바로 여러분 우리가 열매로서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갔는지 안 돌아갔는지 우리 입술로 안다 라는 거예요. 이해갑니까? 그래서 이 세상적인 모습을 다 벗어버리는 걸 말하죠. 3절에 우리가 앗수려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하가 죽게로 말미암아 궁유를 얻음이니다. 할지니라 여러분 보세요. 앗수뢰의 구원을 의지하나 이게 여러분 이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하셨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국으로도 도움을 청하러 갔죠 그걸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데 가서 도움을 취하는 걸 말해요. 여러분 우리는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다 안 되면 어디로 가요 점쟁이한테 가든지 뭐 절에 가든지 아니면 돈 많은 사람한테 가든지 뭐 가잖아요. 그게 앗수라예요.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않겠다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완전히 하나님께 완전히 돌아오면 하느님만 의지하는 거죠. 그 다음에 말을 타지 않아요. 말은 뭐예요? 말은 내게 큰 힘을 주잖아요. 그죠 뭔가 의지하는 걸 말하죠. 이것도 전부 다 내가 가진 어떤 힘과 능력을 말하죠. 또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고 손이라는 게 여러분 영적인 그런 어떤 활동을 말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우상 섬기는 걸 말해요. 여기서 우리는 그런 거 안 한 것 같지만 실제로 엄청나게 하고 있죠. 우리 자신을 의지하는 모든 것들 말을 하나님 외에 내가 뭔가를 지어놓은 것들이 다 여기에 해당해 손으로 우상을 다듬을 때 소도로 막 이렇게 섬세하게 조각하잖아요. 그것처럼 우리 마음으로 생각으로 영어로 섬세하게 내 안에 하나님 대신 만들어 놓은 것들을 말해요. 그게 송아지죠 송아지 그런 것들을 말하는 거예요. 송아지가 밖에 보이는 송아지입니까? 내 안에 있는 바알신들 이런 거죠. 어떻게 하면 잘 될까 어떻게 하면 뭔가 대박을 터뜨릴까 이런 걸 말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것을 향하여 다시는 안 하겠다고 그걸 여러분 돌아가는 거라고 해요. 이와 함께 돌아가다라는 건 그런 말이에요. 그게 뭔가 하면 불의를 제하는 걸 말하죠. 불의가 삼절에 설명이 돼 이는 고아가 죽게로 말미암아 큰일을 얻으면 고아가 뭐예요? 여러분 태월호 난 고자 먼 고자 하나님이 없는 자죠 그렇죠. 하나님이 없는 자가 죽기로 말미암아 그러니까 하나님께 이제 극유를 바란다라는 거죠. 사절 내가 저의 배역을 고치고 즐거이 죄에게 그렇게 돌아오면 하나님이 우리를 고친다라는 거예요. 이해가시죠. 즉의 저희를 사랑하느니 나의 진노가 저에게서 떠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 하느님의 진노가 떠나가는 거예요. 돌아가는 거예요. 이게 돌아가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나는 아직도 그대로 뭔가 하나님이 다른 걸 의지하고 내 자신을 의지하고 내가 가진 걸 의지하고 내가 뭔가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고 뭔가를 행할려고 하고 이런 걸 잔뜩 가지고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이런 게 아니라고 그런 상태에서는 계속 진노가 임한다고요. 어떻게 해야 된다고 갈아엎어야 된다고요. 그게 진짜 핵이라는 걸 말하고 있잖아요. 그래야 흥률을 얻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치고 사랑하고 친모를 위해서 떠나가게 하고 그때 오절에 보세요.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고.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남나무 같고, 가지가 뭐라고 했어요. 아들이라고 했죠. 벤 아담 아들 백향목이 전부 다 내 안에 말씀으로 세워지는 그런 든든한 나무 기둥 그렇죠. 이슬은 여러분 뭐예요?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은 우리 그때 이스라엘 중동이나 이런 데는 비가 안 오고 새벽에 이슬이 많이 온대요 이슬이 많이 와서 땅을 적시고 거기에 싹이 나게 한다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생명을 나게 하는 하나님 말씀을 말해요. 신명기 32장 2절을 잠깐 보고 넘어갈게요 거기에 이슬이라는 내용이 나와요. 신명계 32장 2절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에는 나의 말은 맺히는 있으리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담비라 그렇죠. 이게 말이라는 게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죠. 하나님의 말씀 교훈 이게 있으리라고요. 그 이슬이 우리 심정을 적신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최소 위에 담배로다 여러분 최소가 뭐예요? 창작 1장으로 가면은 채소가 나죠. 씨 맺히는 맺는 채소 이게 뭐야? 생명이 채취해라 여러분 이슬은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들어오면 우리가 생명으로 충만해지는 걸 말하죠. 첫날에서 여섯째는 여섯째 날로 가면서 점점 충만해지잖아요. 그렇죠. 그게 오절에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학화같이 피겠고 그러니까 이슬처럼 하나님 말씀이 들어오니까 우리 안에 꽃이 피고 그다음에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든든하게 내린다는 거죠. 그렇죠. 맞아요. 그래서 그 가지가 뻗고 이 가지가 뻗는 게 어떤 단계예요. 요셉의 단계잖아요. 말씀이 들어와서 채소가 나고 이슬이 맺히고 채소가 나고 풀이 나고 나무가 나고 이렇게 해서 나무 여러분 가지 다 아들이라고 그랬죠 그렇게 나면 가지가 이제 옆으로 뻗어나가잖아요. 그러면 아름답다 요셉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그랬죠 그게 바로 요셉이에요. 창세기 49장에 지난번에 말씀을 드렸잖아요. 요셉은 무성한 가지요 선행이 많고 자식도 많고 지식도 많고 은사도 많고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고 이게 요셉이에요. 그게 아름답다라는 거예요. 감남나무 같다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죠. 거기에는 레바논의 백향목 카트린이 이 백향목은 무슨 향을 레바논 백향목은 건축의 최고의 재료라고 해요. 그렇죠. 건축이 우리 자신을 짓는 게 건축이죠. 그래서 최고의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건축되어지는 걸 말하죠. 그러면 칠절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저희는 곡식같이 소성할 거고, 여러분 씨가 그렇게 곡식이 씨예요. 여기도 소성한다. 살아나는 걸 말하죠. 포도나무같이 꽃이 피고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같이 되리라 예수고 있을 때 향기가 풀풀 난다 라는 거죠. 그렇죠. 씨가 들어오면 불의를 죽이고 장성하고 열매를 맺는 게 말하죠. 여러분 이게 창세기 첫날에서 여섯째 날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요 바로 열두 아들에게서 보여준 그 내용 그대로죠 그렇죠. 예수 그리스도가 백향목 같고, 감남나무 같고, 포도나무 예수님이 포도나무에도 비유되고 성령은 감남나무에 비유되고 여러 가지 있잖아요. 이게 바로 교회의 모습이기도 하고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죠. 열매가 많으면 그러면 하나님께서 영광받는다고 그랬죠 요한복음 15장 맞습니까? 이게 바로 그게 그러니까 그렇게 되니까. 어떻게 돼요. 이 팔절에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어요. 할 줄이야 내가 저를 돌아봐도 되는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너로 말미 너는 나라고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 그러니까 열매가 맺히는 거죠. 열매가 뭐예요? 수 그리스도가 나는 첫 열매라 죽은 자 가운데 부하라 해서 첫 열매라고 했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내 안에 생명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혀지죠 주렁주렁 많이 맺혀지고 담을 넘고 그게 다섯 날이죠. 여러분 여섯 나라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나죠. 이에 열매를 얻는 게 그거예요. 그래서 누가 지혜에 있어 이 말을 깨더라면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러분 이게 깨닫기 힘들어요. 그래서 아무리 말을 해줘도 잘 못 알아듣는 거예요. 왜냐하면, 육적으로 너무 충만해 있기 때문에 내 소원 성취를 해야 되고 내가 원하는 걸 이루어야 되는 것들이 너무 잔뜩 내 안에 그것이 불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게 앗술의 힘을 빌리고 말을 힘에 빌리고 내 안에 공교롭게 그렇게 조각처럼 조각해 놓은 우상들이 다 그런 거라는 거예요. 그게 전부 나라는 거잖아요. 내가 원하는 건 내가 뭐라고 할려고 많이 배워서 내 안에 막 우상처럼 모시고 있는 것들은 많잖아요. 이건 이렇게 해야 돼 저건 저렇게 해야 돼 얼마나 많아요. 여러분 인간은 너무 많이 배웠죠 철학 이데올로기 사상부터 해서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것들이 여러분 다 갈아엎어야 되는데 이 세상의 지혜를 누가 지혜가 있어 이 일을 깨닫겠느냐 라는 거예요. 못 깨닫는다는 여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 그러니까 여러분 의는 누굽니까 의는 없으되 하나도 없다고 그랬죠 어떻게 의가 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의가 된다고 그랬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가 이걸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걸쳐 넘어지리라 여러분 그래서 십자가에도 바로 새 창조의 도 나를 배설물처럼 벗어 던져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잇겠다고 하는 이 도가 여러분 죄인에게는 걸려넘어집니다. 죄인들은 이것이 아니라고 거쳐 넘어지는 거야. 이해가죠 정확하게 맞죠. 여러분 그걸 죄라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죄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가 자기를 이루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게 다 걸려 넘어지는 거예요. 왜냐하면, 으는 자기를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 자가 으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벗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이 안으로 못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해가 안 되고 이런 말에 걸려 넘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지혜가 있어 누가 깨닫고 총명이 있어서 누가 이것을 깨닫겠느냐 못 깨닫는다는 거예요. 여러분 못 깨닫는데 아무리 말해줘도 못 깨닫는 제가 그래서 맨날 가슴을 치면서 내 말에도 못 깨닫는다고 못한다고 모른다고 그래도 다 안다고 다 안다고 하는데 실제로 다 모르는 거예요. 안타깝게도 왜 그런가 하면 자신의 것을 너무 많이 가지고 밭을 갈아엎지 않고 할례를 행하지 않기 때문에 이와 함께로 속하지 않아서 이걸 못 깨닫는 거예요. 여러분 근데 이건 너무 간단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바로 깨닫기 시작하는 그게 빛이 들어오는 거거든요. 그런 일이 일어나야 됩니다. 여러분 그것을 우리는 회개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 회귀할 때 그냥 무릎 꿇고 하는 정도만 생각했지 그게 아니에요. 고양이도 회귀할 때 보면 죄를 막 뒤집어쓰고 굵은 베옷을 입고 옷을 찢고 그렇게 하죠. 옷을 찢는 건 뭐예요? 옷은 우리 존재를 말하죠. 여러분 뭔 옷을 입었어요. 아줌마 옷 입었어요. 사모 옷 입었어요. 목사 옷 입었어요. 거지 옷 입었어요. 장군의 옷을 입었어요. 그걸 찢는다라는 거예요. 내 자신이 없어지는 걸 말하죠. 옷을 찢고 어떻게 해요. 죄 가운데 무릎을 꿇고 그 죄를 확 뒤집어쓰죠 제가 뭐예요? 태우고 남은 게 저잖아요. 그럼 나는 다 태우고서 없어진 먼지입니다. 이게 회개예요. 유업이 그렇게 회개했죠. 제 가운데 쟤를 뒤집어 쓴다고 그랬잖아요. 그게 회개예요. 여러분 내 옷을 내 존재를 찢어내고 다 태워서 한 줌의 대가 번저당을 통과해서 하나님께 올라가는 게 그게 회개예요. 내가 없어지는 걸 말해요. 질거를 쓰고 다시 돌아가는 걸 말합니다. 그리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담아야 하는 겁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이루어진다고요.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라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겁니다. 말씀을 안 보는 사람은 절대로 회개 안 합니다. 뭔 잘못했다는 말은 잘할지 몰라도 회개 안 해요. 여러분 회개가 뭔지 몰라요. 여기 모르는 못 깨닫는다고 하잖아요. 여러분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았고 여러분 누가 총명이 있어 이 일을 알겠느냐 어떻게 해서 열매가 맺는지 알겠느냐 라는 거예요. 여러분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라 해놓고는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게 여러분 호세아스의 고멜에 대한 이야기예요. 고멜 그렇죠. 고멜이 어떻게 돌아와야 되는지를 말하고 있는 거잖아요.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돌아가야 되는지를 말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회귀라는 건 여러분 쉬운 게 아닙니다. 간단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 회귀를 쉽게 생각했어. 그래서 여러분 오해했어. 성경을 오해했어. 분리 그 자체가 죄인데 하나님과 연합하라고 들어오려면 십자가를 통과하기 때문에 그게 싫은 거예요. 내가 죽는 게 싫은 거예요. 내 계획을 포기하는 게 싫은 거예요. 내가 원하는 걸 내려놓는 게 싫은 거예요. 그걸 위해서 교회를 다녔는데 그걸 다 내려놓으라 하니까 이제 싫은 거예요. 그래서 교회를 떠나버리는 거예요. 복 받으라는 곳으로 가버리는 거예요. 받는 건지 그것이 여러분 저주가 될지는 자신이 분별을 못합니다. 그걸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자예요. 여러분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하야 그 도에 행하고 죄는 그 도에 넘어지느리라 십자가의 도에 넘어지는 사람들은 전부 죄인입니다. 그걸 모르는 거예요.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모르고 회계를 모르는 겁니다. 여러분 맨 아래 박스로 내려갑니다. 말씀을 가지고 주님께로 돌아갑니다. 여러분 어떻게 주님께로 돌아가는지 아시겠습니까? 회개가 뭔지 아시겠습니까? 말씀을 가지고 내 안에 있는 걸 갈아엎고 씨를 뿌려서 생명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열매 맺는 게 회개라고요. 그게 여학계로 돌아가는 거라고요. 나멘 이 수고리스트의 나무에 수그리스트가 열려야지 그것이 생명의 열매죠 맨 아래 내려갑니다. 아브라함을 부를 때 여러분 뭐라고 그랬어요. 너는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네가 원하는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 라고 그랬죠 그 본토 기억납니까 본토 본토는 우리 땅이죠. 내 마음 땅을 말해요. 내 마음 땅을 내 마음 땅을 떠나라고 그러니 내 마음 땅에 내가 지금까지 쌓아놓은 걸 다 떠나라는 거예요. 그다음에 친척 이 친척이라는 단어가 열매 맺다라는 단어예요. 그러니까 열매 내 안에 지금까지 하나님을 떠나서 열매 맺었던 모든 것 그게 여기에 좀 전에 호사에서 14장에도 나왔고 오늘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담고 있는 나의 나대 모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내 안에 세운 모든 것들을 말합니다. 이스마일 그렇죠. 그거를 나의 나댄 것 그것을 여러분 떠나야 하고 아비 집 아비 집 아비 집은 여러분 우리가 부모에게 양육을 받죠. 세상에 것에서 양육받은 걸 말하는 거예요. 인간이 세운 것 인간이 세운 어떤 도덕률 여러분 철학 지식 전통 이 모든 우리가 양육받은 세상의 하나님을 떠나 양육받은 이 모든 것이 아비집이에요. 이 양육되어서 내게 인격이 된 걸 말하죠. 이것이 아비 집이에요. 이것을 떠나야 됩니다. 떠나서 내가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 그곳이 가나안이죠. 그게 천국이라는 거예요. 그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이 길이 되신 거죠. 가라 뒤돌아보지 말고 계속 가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무수하게 뒤돌아보죠. 무수하게 좀 숨 쉴 만하면 또 뒤돌아가서 원하는 걸 숨 쉴 만하면 또 뒤로 또 뒤돌아가고 그런데 하나님은 또 끌고 가고 또 끌고 가고 아브라함을 그렇게 끌고 가잖아요. 또 끌고 가고 또 끌고 가고 결국은 아브라함을 어떻게 만들어 버려요 아브라함으로 만드는데 아브라함에게 준 게 무덤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는 너희가 그걸로 없어져야 되는 걸 말하는 거예요. 우리의 본향이 그게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라는 거예요. 결국 우리 인생이 그거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걸 여러분 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이 여러분 이 세 가지 이것이 바로 내 육적인 육체를 벗는 거하고 똑같죠 탕자처럼 돌아오라 그 말입니다. 누가 보면 15장에 나오는 탕자 만세 부르고 돌아오라는 거예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거죠. 멀리서 잘못했다. 하지 마시고 돌아오라는 거예요. 어제 했던 거 오늘 또 하고 하나님이 얼마나 듣기 싫어할까요? 주여 오늘 용서 못했네요. 내일 가서 주님 용서해 주세요. 모레 가서 또 주님 용서해 주세요. 그 다음 날 가서 또 주님 30년에 한 것 또 주여 용서해 주세요. 또 용서해 주세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성질 안 나겠어요. 이제 그만해라 그만하고 돌아오라 돌아오라 어떻게 돌아오라고요.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라고 말씀을 가지고 나를 찔러 쪼개 깨뜨려내고 내 안에 씨를 뿌려서 생명을 맺어라 그것이 돌아오는 거라고요. 그게 하나님의 형상이죠.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 그래서 성경은 전부 예수 그리스도만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더 이상 말하는 게 없어요. 여러분 회개가 뭔지 이제 감이 잡히십니까 깨닫는 자가 복입니다. 깨닫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자꾸 걸려 넘어지는 여러분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은 전부 제 가운데 아직 헤매고 있는 걸 말합니다. 근데 그걸 얼마나 인정하기 싫을까요? 회귀하라니까 성질부터 내죠 뿔내고와 예수님을 죽여버리잖아요. 똑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생명의 씨가 떨어진 걸 다 잘라버리는 거예요. 그게 우리 모습이에요. 내가 원하는 게 너무 많은 거야. 내가 원하는 걸 이루어야 될 게 너무 많은데 나를 포기하라고 하니까 너무 싫은 거예요. 여러분 죽으라고 하니까 더 싫은 거예요. 포기하는 것까지는 그래도 참겠는데 죽으라고 하니까 이건 진짜 싫은 거예요. 니나 먼저 죽으라고 거기서 그게 걸려 넘어진다고 다 넘어져요 그래서 자신은 절대로 안 돌아보는 거예요. 내가 지금까지 하고 있는 모든 것이 배설물이라는 게 안 깨달아지는 거예요. 그게 깨달아지면 가차 없이 버릴 텐데 그것의 최고의 가치를 내 인생의 최고의 가치를 거기에 뒀기 때문에 절대 안 깨달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안 깨달아진다는 거예요. 그 도에서 그 길에서 넘어진다 예수님의 길이라고 했잖아요.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서 넘어져버려요 못 따라가는 거예요. 그 길만이 생명의 길을 하는데 못 따라가는 거예요. 그리고 넘어져 버리는 거예요. 못 따라가는 거예요. 그리고는 너나 가라 너나 잘해라 이런 식으로 감히 예수님을 다 죽여버린 거예요. 우리는 잘하고 있으니 너나 잘해라고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여러분 그게 여러분 오늘날 교회 이런 말씀을 하지도 않지만 여러분 이 번영신앙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에 죽으라는 말은 안 나옵니다. 이제는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구원을 얻기까지 하느니만 계속해서 우리를 그렇게 끌고 가십니다. 결국은 그렇게 만들어 놓고 마실 거예요. 끌려가니까 얼마나 힘들어요. 여러분 무지하게 힘들죠 여러분 진짜 힘들어요. 끌려다녀 본 사람들 압니다. 여러분 그래서 회계는 결코 쉬운 게 아니에요. 한 번에 이렇게 휙 하는 게 아니고 매일 죽는 걸 말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게 돌아가는 거죠. 매일 따라가려니까 어떻게 해야 돼요. 매일 나는 지금까지 나의 나된 것은 내가 아니다. 라는 걸 할려니까 얼마나 싫은 거예요. 그게 얼마나 성질나는 거예요. 그게 또 죽어라까지 하니까 내려놓는 것까지는 어떻게 애를 쓰다가 안 되면 그만이고 뭐 근데 죽어라 하니까 그것만은 안 되거든. 자기 부인과 십자가는 똑같은 거예요. 여러분 같은 말을 말하는 거예요. 자기를 부인하는 게 자기가 죽은 거지 뭐예요?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회 사람은 정과 십자가와 함께 육체와 함께 정과 육십이 죽은 자라를 말하는 거예요.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에요. 그리스도인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왕 노릇하는 삶을 사는 자 천국을 말하고 그것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다 그리스도인이 맞습니까? 교인입니까? 교회 다니는 사람입니까? 교회 다니는 사람입니까? 종교인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입니까? 그리스도인입니까? 그것조차 분별을 못합니다. 무슨 소리 하느냐 장바울처럼 이상하네 뭔 똑같은 말을 이상하게 늘어놓고 말장난을 하네 이렇게 생각할까요? 그리스도 예수회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회 사람은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 말을 왜 몰라요. 그게 돌아가는 겁니다. 여러분 여러분 시간 있을 때 돌아가야 돼요. 마지막 날 가면 돌아갈 시간이 없어요. 불모스로 돌아갈 수가 있습니다. 잘못하면 예수님을 안 믿어요. 믿는다 하면서 여러분 그래서 신앙생활은 그냥 대충 하면 되는 거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쉬운 거 아닙니다. 진짜 죽을 각오를 하는 겁니다. 안 그러면 죽습니다. 진짜로 진짜 힘든 거예요. 예배에 목숨을 건다면 여러분 율법적인 신앙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예배는 우리 삶을 말한다고 그랬죠 산 제사 그게 영적인 예배라고요. 내 삶을 드리는 게 예배지 한 시간 나와서 예배 드리는 걸 예배라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 상을 일주일 내내 멋대로 살다가 한 시간 와서 아멘 아멘 경건하게 무릎을 꿇는 게 예배라고 생각을 하면 율법이 있죠. 그게 율법주의자 이스라엘 율법주의자들이 다 그랬잖아요. 그걸 예배라고 착각하시면 안 되는 거예요. 회개를 그냥 눈물만 흘리는 게 회개라고 착각하시면 안 되는 거고, 제가 그냥 뭔가 죄인지도 잘 모르는데 회개가 안 되는 게 그래서 인생이 꼬이고 있는데도 눈치를 못챈다는 거예요. 그래서 걸려서 넘어졌다고 했잖아요. 모른다 라는 거예요. 자신은 계속 옳은 것 같은데, 모른다라는 거예요. 회계가 뭔지 모른다라는 거잖아요. 제가 있으니까 하나님을 안 받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의 보혜를 의지하고 내가 다시 돌이키고 이런 과정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게 그런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그렇게 쉬운 신앙생활이 있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내 존재가 없어진 자를 말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그리스도인이 다 되어 계신 줄 믿습니다. 아멘 우리가 찬양하면 내 안에 부엉을 달라고 다시 우리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 깨닫지 못하므로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어려움을 당했는지 인식을 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고통입니까? 여러분 제발 깨달으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