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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 5: 7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 벧전 5: 8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 7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
사람이 세상을 사는 데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 염려거리가 항상 존재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시다. 특히 자기 백성을 결코 버려두지 않으시며 날마다 돌보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의 모든 염려를 그에게 다 맡겨야 한다.
시편 55: 22은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 로다.'고 가르친다.
1]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맡겨 버리라)
본 절은 시 55: 23(LXX)의 인용이다. '염려'(메림난)은 '나누다'라는 의미의 '메림나'에서 유래한 단어로 악한 자들로부터 받는 핍박뿐만 아니라 내면에 있는 여러 가지 걱정이나 고민 등을 의미한다.
* 마 6: 25-34 -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염려를 다 그리스도께 맡겨야 한다.
'맡겨 버리라'(에피립산테스)는 '던져버리다'라는 의미로 부정 과거 분사형이나 본 절에서는 새로운 명령형 형태를 취하지 않고 6절의 명령법과 연결되어 강조되고 있다(Kelly).
이것은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는 자들이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항상 보호하시는 손에 염려를 맡겨야함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을 권고하시기 때문이다.
2] 이는 그가(저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권고하심이니라)
'권고하심이니라'(멜레이)는 '돌보다', '관심을 갖다'라는 의미로 '염려가 그에게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돌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걱정과 외부로부터 오는 위험을 맡겨야 하며 그때만이 평강을 소유하게 된다.
벧전 5: 8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
마귀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교회와 성도들을 대적하는 자이다. 그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대적한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불신앙에 떨어지고 낙심하고 좌절하며 서로 미워하게 만들기를 원한다.
그는 우는 사자같이 성도들을 삼키고 죽이며 멸망시키려고 한다. 어떤 때는 질병으로, 또 어떤 때는 가난으로, 또 다른 때는 가정적, 사회적 환난으로 성도들을 시험한다. 초대교회는 성도들이 많은 핍박과 고난을 받았던 시대이었다.
1] 근신하라. 깨어라.
'깨어라'(그레고레사테)는 '깨어 있다'라는 의미인 '에게이로'에서 유래된 단어로 잠에서 깨어있는 상태뿐만 아니라 영적인 경각심을 갖도록 할 때 또는 권고나 주목을 요청할 때 사용되었다.
* 마 26: 40-41 -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 막 13: 35-37 - (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이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할 이유는 대적 마귀가 삼킬 자를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마귀'(디아블로스)는 '비난하는 자' 곧 '사단'을 가리킨다.
* 대상 21: 1 -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 욥 1: 6-12 - ⑥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⑦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⑧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⑨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⑩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⑪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⑫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 슥 3: 1 -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베드로는 '마귀'를 배고픈 사자로 비유하여 사단의 유혹이 강력함을 시사한다.
마귀가 신자들을 삼킬 수는 없다. 우는 사자와 같이 위협적일 수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보증된 우리의 구원을 결코 빼앗지는 못한다.
성경은 마귀의 간계에 대해 거듭 경고한다. 하지만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여 이길 수 있다고 격려해 준다.
* 약 4: 7 -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 엡 6: 11-17 -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성령의 은사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는 절제의 은사라 하겠다. 마귀가 음란(淫亂)을 강력한 무기로 사용하여 우는 사자와 같이 타락한 성도들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귀는 음란으로 뭇 영혼들을 사냥하고 있으며 이러한 전쟁은 천국 문 앞에서 비로소 끝이 날 것이다. 사탄은 언제나 정상의 자리에 이르러 방심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을 타켓으로 삼아서 공격하고 있다.
성경은 믿음 안에서 경건에 힘쓰지 아니하면 그 누구도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전한다.
3] 덮어주는 사랑 : 김홍도 목사
베드로전서 4장 8절에 보면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죄와 허물을 덮어주신 사랑은 무엇보다도 큰 사랑이요 고마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덮어 준다는 것은 죄를 심판하지 않고 용서하는 것을 의미하며 죄를 드러내지 않고 감싸주는 것이요 죄를 기억하지 않고 잊어버려 주신 사랑이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고맙고 넓은 사랑인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덮어 주시는 사랑>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덮어 주시는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범죄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으려면 소나 양이나 염소를 잡아 그 피를 뿌리며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죄가 아무리 크고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는 길을 피로써만 할 수 있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피만이 죄를 덮어주고 가리워 주고 씻어주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보면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죄대로 심판하시지 않으시고 죄와 허물을 덮어 주시고 용서하시기 위해서 구약시대는 양과 염소와 짐승의 피를 뿌려서 용서받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하나님께서는 온 애굽의 가정마다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이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서 그 재앙을 면하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양의 피가 그 집 사람들의 죽음을 대신해 주었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는 피는 우리들의 죄를 모두 덮어 주시는 것이기에 이 다음 심판대 앞에서 누구든지 예수님의 대속의 피를 믿고 마음의 문설주에 바른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민수기 19장에 보면 다른데와 달리 붉은 암송아지를 잡아서 제사를 드린 것이 있습니다. 붉은 암송아지를 잡아서 그 피를 회막을 향하여 일곱번 뿌리고 그 암송아지를 그 가죽과 고기와 심지어 피와 똥까지 불사르게 하라는 말씀이 민수기 19장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송아지를 불태울 때에 우슬초와 홍색실과 백향목을 함께 태우게 했습니다. 불이 다 탄 후 재는 한 곳에 긁어 모아 두었다가 죄를 지었거나 무슨 부정한 일을 한 자에게 그 재를 물에 타서 그 잿물로 씻으면 부정한 자가 깨끗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여기 붉은 암송아지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대개 남성적인 것은 객관적인 진리와 증거와 신앙을 의미하고 여성적인 것은 주관적인 경험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붉은 송아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날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체험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특별히 재라고 하는 것은 그 속에 피가 들어있습니다. 또 그 재속에는 암송아지를 태울 때 함께 넣어 태운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의 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백향목과 우슬초는 세상을 의미하고(왕상 4:33) 홍색실은 죄를(이사야 1:18) 의미합니다. 붉은 암송아지가 위의 모든 것과 함께 태워진 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죄를 모두 다 걸머지고 죽임을 당하신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재라는 것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재는 모든 물질의 마지막 형태요 또 재는 더 이상 변하지 않는 것이며 또 재는 썩지도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구속사업은 최종적인 완성이요 영원히 변치않는 것이며 썩지 않는 구속사업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아무 때라도 어떠한 무서운 죄와 많은 죄를 졌다 하더라도 주님 앞에 나와서 자백하면 우리의 모든 죄를 씻음받고 용서함 받고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 뿐만 아니라 미래의 죄까지도 다 담당하시고 대속의 사업을 이루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믿기 전의 죄나 예수 믿은 후의 죄나 무슨 죄라도 주님 앞에 나와서 자백하면 예수님의 구속의 은총이 나타나서 죄를 용서함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1서 l장 7절에 보면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빛이라 함은 복음의 빛 은혜의 빛을 말하는 것입니다. 율법이나 우리의 죄대로 판단하지 않고 예수님 께서 나의 죄를 대속해 주셨다는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그 예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모든 죄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에서 용서받지 못할 것같은 죄라도 아무리 큰 죄라도 또 아무리 많은 죄를 졌더라도 다 포함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또 8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죄가 없다고 하고 숨기고 회개가 필요없다는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도리어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9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범죄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할 것은 하나님께 자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자백하면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미쁘시다"고 하는 말은 이쁘다는 뜻이 아니고 믿으실만 하다 신실하다는 뜻입니다. 신실하고 믿을 만하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2장 1절에 보면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은 후에 범죄하게 되면 구원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구원이 없어진다면 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여러분! 어떤 부모가 죄를 졌다고 해서 호적에서 지워버립니까?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니 우리는 자녀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앞에 대언자가 계신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2절에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기 전의 죄나 믿은 후의 죄나 혹은 미래의 죄까지도 예수님은 모두 담당해 주셨 습니다. 모든 죄를 다 담당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으십니다. 하나님 께서는 신실하시기 때문에 그 언약을 안 지키실 수 없으신 것입니다.
만일 회개치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마치 어린 아이들이 부모님께 잘못하고 그것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숨기면 그 아이는 부모들이 아무 말을 안해도 무섭고 가까이 가기가 싫고 양심이 괴로운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죄를 짓고 회개치 않으면 스스로 하나님과 거리감이 생겨 기도가 나오지 않고 마음이 괴로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솔직하고 진실하게 자복하고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32편 1절에 보면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는자는 복이 있도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가 아무리 무섭다 할지라도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희생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마치 암송아지가 희생의 제물이 되어 불에 탄 재를 물에 타서 그 물로 씻기만 하면 어떠한 더러운 죄라도 다 깨끗함을 입는 것처럼 우리들은 우리의 죄를 아무 때라도 그 앞에 자백하기 만하면 예수의 피가 모든 죄와 모든 불의를 깨끗하게 씻어 주시고 덮어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우리도 남의 허물과 죄를 덮어 주는 자가 됩시다>
그런고로 우리도 남의 죄를 덮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더러운 죄인들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하나도 남김없이 끄집어 내어 심판하신다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자가 없고 구원받은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로 용서를 받았습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의 죄와 허물 그리고 잘못을 덮어 주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느날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앞에 놓고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는 사람들의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이 여인을 돌로 칠까요 말까요?" 만일 "돌로 치라"하면 "당신은 사랑을 외치 면서 어떻게 돌로 치라"고 합니까 할 것이고 "용서하라"고 하면 "구약 율법에는 간음죄를 범한 자는 돌로 쳐죽이라 했는데 왜 율법을 무시합니까"하고 예수님을 잡으려고 간계를 꾸며 질문했습니다. 이 때 주님께서는 땅에 글을 쓰시고 나서"누구든지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 니까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 돌을 버리고 한 사람 한 사람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물러난 후에 예수님께서는 돌에 맞아 죽을 것을 기다리고 있는 그 여인에게"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하시고 그를 용서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형제들의 죄와 허물을 덮어 주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노아가 포도농사를 짓고 포도주를 잔뜩 마시고 취해서 겉옷을 벗어 버리고 하체를 드러내 놓고 잠을 자고 있는데 "함"이란 아들이 이 광경을 보고 덮어 드리지 않고 뛰어나와 형과 아우에게 흉을 봤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이 말을 듣고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아버지의 하체를 가려 드렸습니다. 후에 잠이 깬 노아는 셈과 야벳은 축복을 했고 함은 저주를 했습니다. 이와 같이 덮어 주는 자는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마주볼 때는 충고하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는 용서해 주고 덮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에 보면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잠언 10장 12절에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가리우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잠언 17장 9절에 보면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저의 친구 목사님 중에 김모(某) 목사님이 계시는데 그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교회에 그 남편이 외항선을 타고 나간 여자 집사님 한 분이 계시는데 어느날 갑자기 그 신앙 생활 잘하시는 집사님의 남편이 수개월만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 돌아온 주일 예배에 그 집사님이 참석을 안하셔서 아무리 반갑다 해도 주일 날 집사가 예배에 참석도 안하다니 신앙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또 한편 괘씸한 마음도 들어 "다리 뭉둥이가 부러져라"하고 교인들 듣는데서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예배가 끝난 얼마후 바로 그 여집사한테 전화가 왔더랍니다. 목사님은 이거 정말 다리가 부러진 게 아닌가 하고 겁이 덜컹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그 여집사 말이 "목사님 감사합니다. 저를 그렇게 염려해 주시고 축복 기도까지 해주시다니…" 하더랍니다.
무슨 영문인지 몰랐는데 후에 알고 보니 그 이웃에 계신 집사님이 그 집사님을 찾아가서 목사님은 다리 몽둥이가 부러져라 했는데 그 말은 한마디도 안하시고 목사님께서 그 남편과 가정을 위해서 크게 축복기도 해주셨다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여집사가 고맙다고 전화를 한 것이더랍니다.
나쁘게 말했는데 좋게 전한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의 사람이 있습니다. 없는 것 있다고 하고 없는 허물도 덮어 씌우고 허물을 억지로 드러낼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것이 대단히 나쁜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와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해 주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와 허물을 아무리 무서운 죄라도 아무리 큰 죄라도 자복하고 회개하기만 하면 다 용서해 주시고 덮어 주셨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오늘 말씀의 가르침대로 남의 허물을 용서하고 덮어주는 사랑의 성도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